우리가 살 곳은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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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5.07.0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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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일수교 50주년을 맞아
▲ 복거일 소설가

韓日이 연합해서 중국의 가파른 흥기 대응해야 

바로 이웃인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가 근년에 갑자기 험악해졌다. 두 나라 정부들은 상대국에 대해 외교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거친 태도를 보이고, 두 나라 시민들은 서로 격앙된 감정들을 분출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를 갑자기 험악하게 만든 요인을 살피면, 우리는 두 나라 사이의 분쟁들은 실질적 이해와 거의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960년대에 수교가 이뤄지면서 물질적 보상은 일단 타결되었고, 뒤에 나온 실질적 문제들은 그리 크거나 복잡하지 않다. 

실제로 역사에 대한 태도만 빼놓으면, 한국과 일본은 모든 면들에서 모범적으로 협력해 왔다.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공유하고, 경제적으로 긴밀히 협력해서 서로 큰 이익을 보고, 문화적으로 무척 동질적이며, 군사적으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서로 의지해 왔다.  

특히 6·25 전쟁에서 미군의 발진과 보급의 후방 기지였던 일본은 그 전쟁에서 국제연합군이 이기는 데 결정적 공헌을 했고, 지금도 그런 군사적 중요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대중들의 낭만적 애국심 

일본이 한국보다 상당히 앞섰으므로 문화와 정보의 흐름은 늘 일방적이었지만, 일본의 침략과 식민통치가 남긴 감정적 앙금을 고려하면, 한국 시민들은 일본에서 들어오는 문화와 정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의 두 나라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해석과 태도에서 두 나라가 서로 다르고, 그것이 다른 면들에서 긴밀하게 협력적인 두 우방국들 사이의 관계를 독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 왜 이리도 끈질기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거세게, 두 나라가 보다 나은 관계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가? 

▲ 지난 6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8회 한일 국회의원 축구대회에서 양국 의원들이 경기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일 양국은 ‘낭만적 애국심’에서 벗어나 실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연합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를 살피면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 태도는 현대 인류 사회에서 점점 뚜렷해져 온 추세임이 드러난다. 현대에선 대중이 민족적 정열을 경험하므로, 그 정열이 이전보다 훨씬 더 순수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향한 명예나 모욕에 아주 민감하고 거세게 반응한다. 그들은 진정한 국익(國益)이 무엇인지 모르고, 실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국가에 대해 자신들이 품은 자부심만으로 정책들과 외교 활동들을 명쾌하고 단호하게 판단한다. 

상황을 한결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런 자부심이 주로 역사와 관련되어 표출된다는 사실이다. 대중은 조국의 역사를 체험하고 싶어 한다. 특히, ‘역사적 권리’들을 누리고 싶어 한다. 이런 ‘낭만적 애국심’이 바로 대중이 가장 열정적으로 발휘하는 애국심이다. 

이런 사정은 지금 한국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맞은 어려움을 잘 드러낸다. 양국의 대립은 본질적으로 양국의 역사에 관련된 것이고 어느 쪽도 자신의 ‘낭만적 애국심’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기를 거부한다. 실제로, 양국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명예로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요인들은 두 나라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이 전면전을 한다는 생각을 품도록 만든다. 즉 그들은 두 나라만이 참여하는 이인 영합경기(two-person zero-sum-game)에 임한다는 마음을 갖도록 한다. 

그러나 국제 관계는 여러 나라들이 관계를 맺고 끊임없이 연합과 협력을 하는 다자(多者) 비영합경기(n-person non-zero-sum game)다. 그런 상황에서 두 나라가 전면전을 하듯 영합경기를 벌이는 것은 두 나라 다 손해다. 상대와의 대결에서 이기려면, 다른 나라들의 지원이 필요하므로, 다른 나라들의 지원을 받는 데 자원을 많이 쓰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는 일본과의 싸움에 자원을 너무 많이 쓴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자기 나라의 역사에 대해 품은 자부심을 무엇보다도 높이는 ‘낭만적 애국심’이 워낙 강력한 힘이어서,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합리적으로 타협할 여지가 아주 좁다. 

정체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 

근본적 해결책은 두 나라 시민들이 두 나라가 ‘이인 영합경기’를 함으로써 입는 손실을 제대로 알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가파른 흥기를 걱정한다. 두 나라가 그런 걱정을 더는 길은 연합해서 중국에 대응하는 것뿐이다. 그 점을 두 나라 시민들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다자 비영합경기’인 외교에서 ‘이인 영합경기’를 벌이는 어리석음을 줄일 수 있다. 

이웃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관계가 좋은 경우는 드물다. 불행하게도 한국과 일본은 사이가 유난히 나쁘다.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전망도 없다. 그래도 두 나라 시민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이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사를 갈 수 있는 개인들과는 달리, 나라들은 이사를 갈 수 없다. 

무엇도 느닷없이 나올 수 없다. 모든 사물들이 그것에 앞서 존재했던 것들로부터 나온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진 것은 역사뿐이다. 그래서 역사는 근본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래도 역사가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 곳은 미래다. 당연히, 우리가 물려받은 역사를 자산으로 삼아 앞으로 다듬어내고자 하는 우리 모습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정체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낭만적 애국자들이 놓치는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역사가 이웃 민족, 국가 또는 인종의 그것보다 으리으리했다고 해서, 우리의 정체성이 또렷해지거나 충실해지지 않고, 우리 역사가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해서, 우리 정체성이 흐릿해지거나 빈약해지지 않는다. 우리가 마음 속에 그리고 실현하려고 애쓰는 우리의 미래 모습이 우리 정체성을 규정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것처럼, 과거에 너무 집착해서 미래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잘 살기 어렵고 사회에 공헌할 수도 없다. 과거의 영욕이나 은원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려는 태도가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건강하고 현명하다. 나라나 민족이라고 이런 원리가 다를 바 없다. 

이제 우리는 역사로부터 벗어나려 애써야 한다. 스스로 역사에 얽매이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 보다 알찬 나날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우리의 나날이 바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역사라는 생각은 우리를 현명한 선택으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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