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대한민국, 그리고 국회 독재
헌법과 대한민국, 그리고 국회 독재
  •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 승인 2015.07.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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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슈퍼 甲질 국회

 

이 나라의 주인인 시민(국민)들이 국회 독재에 맞서 ‘제2의 민주화 운동’ 벌여야 

●“한국의 지도자는 누구나 ‘민주주의의 십자가’ 지고 고난의 험로 달려야 될 운명” 
●권력이 청와대에서 여의도로 이동하면서 브레이크 없는 ‘국회 독재(elective despotism)’ 시작돼 
●최근 국회 리더십의 본질은 포퓰리즘과 친(親)사회주의 지향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되면 ‘슈퍼 갑(甲)질’의 최고 정점인 국회의원의, 국회의원을 위한, 국회의원의 세상 될 것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1948년 여름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우리는 국민의 대표를 뽑아 헌법을 제정하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건설했다. 헌법(constitution)이란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핵심을 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는 최고법이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국가의 작동원리와 기본철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뜻은 이렇다. 우선 민주(民主)란 고대 아테네에서 만들어진 정치 형태로서 ‘국민(demos)이 지배(kratos)하는 정치체제’, 즉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국민에 의한 정부’, 그러니까 시민(국민)이 주인이란 뜻이다. 

내가 나라의  주인이면 주인답게 행동하고,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만 터졌다 하면 대통령을 탓하고, 사회를 저주하며, 가진 자와 기득권자들을 향해 날선 항의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심리기저에 아직도 식민지적 노예근성이 질기게 박혀 있음을 증거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담긴 의미 

다음으로 공화국(共和國·republic)이란 무슨 뜻인가. 라틴어의 레스(res·것)와 푸블리카(publica·국민의)의 합성어인 공화국은 국가는 한 개인 소유가 아니라 공적(公的)인 것으로서 국민 전체의 소유라는 뜻이다. 공화주의적 시민은 개인의 권리보다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의 목표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국가의 주인인 우리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반성과 참회의 자문자답(自問自答)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명제가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합쳐진 정치체제다. 자유주의란 17세기 중엽 영국의 명예혁명과 존 로크의 정치사상 이래 수백 년 서양을 지배해 온 이데올로기로서, 그 핵심에는 ‘개인’이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이란 무법천지에 유아독존으로 미쳐 날뛰는 인간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근면·자립·자조·금욕·절제로 무장한 사람을 뜻한다. 

서구에서 근대는 개인의 발견, 그리고 이기심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시작되었다.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는 사익(私益) 추구를 보장하는 제도다. 그런데 사익만 추구하면 개인들 간에 갈등과 투쟁, 협잡과 다툼이 벌어진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합리적 이기주의자들(rational egoist) 간의 신사협정에 의한 시민사회의 확립에서 그 해법을 찾았다. 이때부터 공적(公的) 영역과 사적(私的) 영역이 구분되고, 공적 영역의 엄정한 수호와 공공성의 공유를 통해 사적 영역과 개인의 자유도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가치 개념으로 헌법 제1조를 정리해보자. 대한민국은 독립적이고 책임의식이 강하며, 근면·자립·자조·금욕·절제로 무장한 시민(국민)이 주인으로서, 책임감 있는 시민(국민)이 공적 책무를 수행해야 국가 공동체가 건전하게 유지 발전되는 나라다. 

박길성 고려대 교수는 책임감 있는 시민이 ‘질서’라면, 책임감 없는 시민은 ‘혼란’이라고 지적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The Republic)>에서 가장 이상적인 국가(즉 폴리테이아·politea)’가 되려면 지혜·용기·절제·정의 등 네 가지 덕목이 필요하며,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적절한 교육과 훈육이 없으면 시민들 사이에 이기적 야욕이 싹터 갈등이 야기되고 인간관계에 대립이 생겨 국가는 안정을 잃고 위기를 맞게 된다고 경고했다. 

최근 들어 세월호 사고, 메르스 전파로 인해 민심이 흉흉하고 나라가 혼란스럽다는 지적들을 하는데, 헌법정신으로 돌아가면 문제의 본질이 쉽게 풀릴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는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했는가”라고.

리버티(liberty)냐 프리덤(freedom)이냐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이 어떤 특성과 문제가 있는지는 우리와 태생이 근본적으로 다른 미국이나 서구 선진국과 비교함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종교의 자유, 정치적 자유를 위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이주한 청교도들이 건국한 미국은 계약국가의 전형이다. 그들은 연방정부가 존재하기 전에 주(州)정부가 있고, 주정부가 있기 전에 자율적인 사회가 있었으며, 자율적인 사회가 있기 전에 자유로운 개인이 있었다.  이러한 개인들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사회요, 주정부요, 연방정부다. 

인종, 언어, 종교가 이질적인 미국 사회는 법률에 의한 강제보다는 사회에 의한 자율을 선호한다. 이 경우 자유는 동물적, 혹은 물리적 자유를 뜻하는 프리덤(freedom)이 아니라 절제 있는 자유를 뜻하는 리버티(liberty)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자유로운 개인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한 역사적 경험이 없다. 우리 민족은 수 천 년 간 전제군주정치와 봉건사회 제도 하에서 정치적 자유나 사회적 자율을 누려본 적도 없고,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향유해보지 못했다. 따라서 자유에 필연적으로 부수되는 책임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왔다. 한민족 역사상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리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향유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부터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기본적 자유(언론, 종교, 집회, 결사 등)를 보장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했다. 조선의 백성에서 일제 식민지 하의 신민(臣民)이 되었다가, 느닷없이 ‘국가의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국가의 주인이 되었으니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함께 책임도 짊어졌으나, 그에 대한 준비나 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국민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언론 지면을 달구고 있는 사회 지도층들의 표절, 탈세, 병역기피 등등은 국가의 주인이 되기 위한 준비나 교육의 부재가 낳은 업보다. 

이점이 미국 혹은 서구 국가들과 한국이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미국은 자유로운 개인과 자유로운 사회가 그 자유를 수호 발전시키기 위해 주정부와 연방정부를 구성한 반면, 한국은 헌법에 의해 존재하지도 않았던 개인과 사회의 자유가 보장 육성되어야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개인과 사회가 앞섰고, 우리나라는 국가가 앞서 있었다. 

똑같은 자유라 해도 미국 국민이 향유하는 것은 절제 있는 자유(liberty)였고, 우리 국민은 절제 없는 자유(freedom)였다. 3·15 부정선거의 원흉으로 사형 당한 당시 내무부 장관 최인규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인텔리로서, 미국 유학 과정에서 느낀 한국 지도자들이 처한 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최인규 옥중 자서전>). 

첫째, 절제 있는 자유(liberty)가 필요한 한국 현실에 반하여 국민은 절제 없는 자유(freedom)를 갈망한다. 

둘째, 한국 지도자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민주주의와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민주주의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최인규는 이 두 가지 점을 들어 “한국의 민주 지도자들은 누구나 ‘민주주의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험로를 달려야 될 운명에 처했다”고 토로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헌법은 국가의 최고 법규이기 때문에 하위 법령인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등은 헌법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고 해석된다. 따라서 헌법을 알아야만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국가경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우리 헌법 전문(前文)에는 3·1운동 정신, 상해 임시정부, 4·19 이념 등을 계승한다고 명문화하고 있으나 정작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 정치인과 관료, 국민은 건국정신과 헌법정신,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가 무엇이고, 그것이 행정을 통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날 국회에서 제정된 법들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違憲) 판정을 받아 법의 권위는 물론, 국회의 권위까지 추락시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삼권분립, 법치주의, 다수결의 원리 등 헌법에 규정된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행정부가 입법부와 사법부를 통제했지만, 입법 권력이 대폭 강화된 6공 헌법 하에서는 입법부가 행정부와 사법부의 영역에 개입함으로써 ‘국회 독재’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다수결의 원리도 ‘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해 무의미해지고 있다. 

▲ 지난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 발언을 하고 있다. 이로써 대통령과 국회의 대결이 표면화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 대결 

지난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대통령과 국회의 대결이 표면화되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대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켜 노무현의 대통령 직위를 정지시킨 사례도 있다. 

대통령과 국회가 정면충돌한 사례는 1공화국 당시에도 있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생한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이다. 부산 정치파동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없으니까 장기 집권을 획책하기 위해 정치깡패와 계엄선포 등 강제력을 동원하여 무리하게 헌법을 개정했다”는 식이다. 어떤 인사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라고 이승만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한국이 처한 국제정세까지를 폭넓게 조망하면 1952년 개헌을 둘러싼 대통령과 국회의 격돌은 집권 연장을 둘러싼 치졸한 정치 헤게모니 쟁탈전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건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아젠다가 숨어 있다. 

1950년 12월, 맥아더 장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대실패로 끝나면서 미국은 38선 부근에서 어정쩡한 휴전을 하고 철군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을 통해 38선 이북 지역을 수복하여 통일정부를 수립한다”는 의지로 버티면서 미국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미국 정부는 고집불통의 노인에게 사사건건 끌려 다니면서 막대한 예산과 인명피해가 늘어나는 것에 진저리를 쳤다. 미국은 1952년 대선(당시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간선제로 선출)을 이용해 이승만을 패배시키고 야당에서 유화적인 인물을 당선시켜 휴전협상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의 의도를 간파한 이승만은 “미국과 국회가 나를 제거하려 한다면, 나도 방법이 있다”면서 대통령 선출권을 국민의 손에 넘기는 직선제 개헌안 승부수를 던졌다. 원내의 반(反)이승만 세력들이 5월 29일 국회에서 대통령 선거를 전격 실시해 장면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기 위해 움직이자 이승만은 5월 24일 공석 중인 국무총리에 장택상, 내무 장관에 이범석을 임명하고 다음날 0시를 기해 ‘공산침투분자와 폭도 소탕’ 명목으로 부산을 비롯한 전남북, 경남의 23개 시군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정국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자 미국은 도쿄 극동군사령부의 클라크 장군에게 ‘이승만 제거를 위한 쿠데타 계획을 수립하라’는 긴급 전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미국은 야당 인사 중에서 이승만을 대체할 만한 리더십을 보유한 인물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야당 의원들에 대한 설득과 회유에 나섰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정부 측 개헌안과 국회 측 개헌안을 절충한 발췌개헌안이다. 

이승만은 미국과 국회를 상대로 승부수를 던져 정치적 승리를 거뒀지만, 독재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부산 정치파동의 이면사를 들춰보면 지도자는 인기 있는 정책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국민의 비난을 뒤집어쓰는 인기 없는 투쟁도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발췌개헌안에는 대통령과 부통령이 미국식으로 러닝 메이트 제도가 아니라 각각 따로 선출하는 제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이승만의 권력에 제동을 걸기 위한 미국 측의 의도였다. 이 조항의 문제점이 나타난 것이 1956년 5·15 정부통령 선거였다.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대통령에,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부통령에 당선되면서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부통령을 상대도 하지 않고, 부통령은 노쇠한 대통령이 속히 사망하여 자기가 대통령 직을 승계할 날만 기다리는 불안한 4년이 이어졌다. 

정부통령이 제각기 다른 정당에서 당선됨으로써 국가 지도부의 리더십에 문제가 발생하자 제3대 국회에서 정부통령이 동일 정당에서 나오도록 하는 ‘동일 티켓 개헌안’이 일시 제기되었으나 세월만 허송하다가 3·15 부정선거가 폭발했다. 1960년의 3·15 선거는 강력한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지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이승만은 무투표 당선된 셈이고, 이승만과 같은 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다 시민혁명이 촉발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1960년 4·19 시민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붕괴된 후 ‘제왕적 대통령’에 혼쭐이 난 정치권과 국민들은 내각책임제 헌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독재를 무너뜨리고 내각제를 하면 민주주의가 만개할 것이라는 믿음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장면 정부는 거듭된 사회 혼란으로 재임 8개월 만에 군부 쿠데타로 실각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한국은 민주주의를 시행하기 위한 경제적 여건과 물적 토대가 부재했기 때문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은 후의 일이다. 배고픈 민중들은 민주주의보다 당장 허기를 면할 수 있는 밥과 빵을 더 갈망한다.

배고픈 민중은 지도자가 업적을 쌓을 때까지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지도자는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허상의 빵이라도 제공해야 한다. 4·19 이후의 한국,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재스민 혁명 이후 민주화로의 이행에 실패한 이유는 경제 여건의 미비로 인해 중산층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1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 수준의 경제 여건과 탄탄한 중산층의 형성이 필수 요건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1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 탄탄한 중산층이 형성된 시기는 전두환 정부 말기였다. 바로 그 시기에 6·29 선언과, 6공화국 헌법이 제정되면서 명실상부한 민주화 시대가 열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는 경제 여건과 중산층도 형성되었으니 민주 헌법만 제정하면 민주주의는 완벽하게 작동할 것으로 우리는 믿었다. 그래서 1987년 10월 29일 여야 합의 하에 6공 헌법을 제정했다.  박정희 독재와 전두환 권위주의 정부에 넌더리가 난 정치권과 국민들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고,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폐지하는 등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대신 국회에는 대통령 탄핵권을 부여하는 등 입법부의 권한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이것이 현행 6공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때부터 대통령과 국회 간에 상생(相生), 화합, 소통을 통한 바람직한 민주주의 모델이 작동할 것으로 기대가 컸다. 국회의 입법 권력이 강화된 만큼 국회가 국정의 동반자라는 책임감을 갖고 대통령의 국가 통치에 협조해야만 원활한 국정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늘 다른 법이다. 권력의 중심이 청와대에서 국회로 옮겨가면서 골치 아픈 문제들이 파생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국리민복을 위한 정책을 펴고 싶어도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관련법 제정에 협조해주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국회로의 권력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최근에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탱크처럼 ‘제왕적 국회 독재’라는 폭주가 시작되었다. 

‘국회 독재(elective despotism)’란 용어는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메디슨이 제기한 것이다. 메디슨은 미국 헌법 제정 과정에서 3권 분립체제 하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지고 의회로 권력이 집중되는 정치 체제의 타락 현상을 경고하기 위해 이 용어를 내놓았다. 메디슨은 ‘국회 독재’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제력을 발휘하여 헌정 질서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과연 이런 자제력을 잘 발휘하고 있는가? 

▲ 현행 헌법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인사청문회법이라는 희한한 법을 만들어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권을 제약하고 나섰다. 헌법상 근거도 없는 국회 독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진은 지난 7월 3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는 이병기 비서실장(왼쪽 두 번째).

대통령을 옭죄는 무소불위의 국회 권력 

현행 헌법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인사청문회법이라는 희한한 법을 만들어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권을 제약하고 나섰다. 인사청문회가 최초로 도입된 것은 16대 국회 때인 2000년 6월이다.

이때는 헌법상 대통령 임명권에 대하여 국회 동의를 얻도록 규정되어 있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13인 및 국회가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3인에 대하여 청문회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막상 시행해 보니 이것이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국회는 슬그머니 국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및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6인과 중앙선관위 위원 6인, 국가정보원장, 검찰청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합동참모의장,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KBS 이사장에 이어 행정 각 부의 장관에 이르기까지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하는 것으로 고쳐버렸다. 

그 결과 국회의 협조 없이는 대통령이 사람 하나 쓰기 어려운 난국에 처했다. 국회법 단 한 줄을 고쳐 대통령 인사권에 족쇄를 채워버린 것이다. 이것은 헌법상 근거도 없는 국회 독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밖에도 국회 독재의 결과로 탄생된 위헌 소지가 있거나 소비적이며 낭비적인 부문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망국적인 포퓰리즘적 법률이 부지기수다. 

국회 독재의 횡포에 휘둘리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라는 칼을 뽑아들었다. 특히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향한 날선 공격에 국회와 언론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봉건시대 여왕’, ‘악몽과 같은 독재정권’, ‘공안통치’ 등의 용어를 동원해 박 대통령을 공격했고, 추미애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대국민 쿠데타’이자 ‘실질적인 국회 해산 요구’”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경제는 6년 만에 최악, 권력 싸움에만 골몰하는 청(靑)·여당”(7월 1일), “청(靑)·비박, ‘나라 어려운데 무슨 권력 놀음이냐’ 소리 안 들리나”(6월 30일), “막장으로 치닫는 여(與) 내분, ‘실패한 정권’ 작정했나”(6월 29일) 등 연일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싸잡아 비판하는 양비론(兩非論)을 펼쳤다. 

대통령과 국회 권력의 충돌은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위험하다. 과연 국민들은 누구 편을 들어줄까를 타산하기에 앞서 이것은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다. 국회 독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존재는 ‘대통령’과 여론을 일으키는 언론이다.

그런데 두 가지 다 하자가 발생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카드는 국회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하여 재의결을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뉴미디어의 등장과 온라인의 폭발, 매체 다변화로 인해 경영 압박을 받으면서 ‘존재의 위기감’에 처한 언론의 최근 행보는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한’ 선동꾼으로 전락했다.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은 “야당은 대통령이 꼭 처리해달라고 당부하는 민생 법안만을 골라서 훼방놓고 있다”고 질타했다. 국회는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 일을 못하도록 옭아매고는 ‘무능 리더십’ 프레임을 뒤집어 씌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대화하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에 숨은 뜻은? 

국회는 대통령 탄핵권과 개헌이라는 카드를 손에 주고 있다. 이미 국회는 개헌에 대한 속내를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국회에서 개헌 드라이브가 걸리면 ‘대통령제의 무력화’로 향할 것이 분명하다. 국회 권력자들은 ‘이빨 빠진 고양이’로 전락한 대통령제를 유지해봤자 덕 될 것이 없다고 계산이 끝났기 때문이다. 

현재 거론되는 차기 대선 후보의 면면은 여야를 막론하고 과거의 정치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중량감이나 존재감이 확연히 비교된다. 누구도 국민들의 성에 차지 않는 동병상련(同病相憐) 입장이다 보니 탈출구는 내각제가 제격인데, ‘내각제’는 2공화국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고민하던 개헌론자들은 이원집정제라는 묘수를 꺼내들었다. 대통령제에 익숙해 있는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내각제에 당의를 입힌 것이 의미도 모호한 ‘분권형 대통령제’다. 

우리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숨어 있는 본뜻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용어를 혼란시키고,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본질은 내각제이고, 제2공화국 당시 윤보선과 장면의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정권의 기승전결(起承轉結)도 우리는 학습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이 시퍼렇게 존재하고 있어도 거리낌 없이 입법 독재를 자행하는 국회이니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국방 안보권만을 가진 허세 대통령과 실세 총리, 그 총리의 선출권을 가진 국회의 야합과 이전투구와 멱살잡이…. 그다지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도 공중부양 국회, 해머 국회, 최루탄 국회 등 익숙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 이뤄지면 ‘슈퍼 갑(甲)질’의 최고 정점인 국회의원들의, 국회의원을 위한, 국회의원의 세상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국회는 국민들만 설득할 자신이 있다는 타산이 서면 박근혜 대통령의 동의 혹은 임기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든 개헌을 추진할 수도 있다. 

국회의 입법 리더십이 대통령제의 리더십보다 더 뛰어나고 국리민복에 도움이 된다면 내각제든 분권형이든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작금의 국회법 개정안, 공무원 연금법 개악(改惡), 국회선진화법, 위헌 시비가 불거진 김영란법, 통과를 앞두고 있는 사회적 경제기본법 등등의 면면을 보면 국회 리더십의 본질이 포퓰리즘과 친(親)사회주의 지향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민심은 바보가 아니다. “리더십이 꽝인 불통의 여왕적 대통령도 문제지만, 포퓰리즘의 극치를 달리는 제왕적 국회 독재는 더더욱 문제”라고 믿는 국민이 다수다. 깨어 있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근면·자립·자조·금욕·절제로 무장한 ‘이 나라의 주인’인 시민(국민)들은 이제 국회 독재 척결을 위한 제2의 민주화 운동에 나서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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