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냥꾼’ 엘리엇의 삼성 길들이기
‘기업 사냥꾼’ 엘리엇의 삼성 길들이기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5.07.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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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엘리엇’ 對 삼성의 대결 내막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은 美 공화당의 최대 후원자, '정치적 논리'로도 삼성 공격 가능    

미국의 ‘벌처펀드(Vulture Fund·기업구조조정 펀드)’ 엘리엇 자산운용(이하 엘리엇)과 삼성물산 간의 대결이 점입가경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을 엘리엇이 반대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한국 언론들은 엘리엇이란 펀드의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엘리엇 설립자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벌처 펀드란 죽은 동물의 고기를 깨끗이 먹어치우는 대머리 독수리(vulture)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부실기업을 싼값에 인수해 인원 정리, 부동산 매각,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한 후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 다시 매각하는 기업회생 펀드다.
엘리엇은 폴 엘리엇 싱어가 1977년 1월, 13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설립했다.

▲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이 평소에 네오콘을 능가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엘리엇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단순한 수익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초기에는 주식을 사들였다가 오르면 되파는 차익 수익 위주로 운용했다. 엘리엇은 1987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M&A 붐 당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이후 엘리엇은 TWA, MCI월드콤, 엔론 등에 투자하는 등 2012년까지 연 평균 1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엘리엇은 ‘치고 빠지기’식 투자 덕분에 설립 38년 만에 자체 운용자산 8조6000억 원, 총 운용자산 21조 원에 런던과 홍콩에 지사를 둔 글로벌 헤지 펀드로 성장했다.

현재 엘리엇은 케이먼 군도에 있는 햄블던을 비롯하여 켄싱턴 인터내셔널, 매이든헤드, 워링톤, 엘리엇 투자자문(영국 런던)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설립자인 폴 싱어는 이제 절반쯤 은퇴한 상태로, 그의 아들이자 런던 사무소를 맡고 있는 고든 싱어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 엘리엇이 투자한 업체는 미용 용품업체인 웰라 AG, 소매 체인점 숍코(Shopko), 인력파견 및 자문업체 아데코, 캐나다 통신업체로 중국 공산당의 해킹 대상이기도 했던 노벨(Novell), 영국의 조선기업 비나신(Vinashin), 영국·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에서 휴대전화 통신사업을 하던 사이폭스(Sighfox) 등이 있다.

엘리엇은 이밖에도 영국의 태양광 사업과 부동산에도 거액을 투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동산의 경우 미국 뉴욕에 있는 63층짜리 상업용 건물을 시작으로, 영국 런던, 홍콩, 일본 도쿄 등의 빌딩을 매입하거나 개발에 투자했다.

엘리엇의 희생양이 된 아르헨티나, 콩고, 페루

엘리엇을 금융계에 널리 알린 사건은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정부 채권을 매입해 막대한 차익을 남긴 일이다.

아르헨티나는 2002년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당시 채권단 가운데 해외 정부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채무조정에 합의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이에 반대, 소송을 걸었다. 엘리엇은 2000년경 정크본드(Junk Bond. 액면가대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없는 채권) 취급을 받던 아르헨티나 정부 채권을 대량 매입했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미국과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엘리엇이 보유하고 있던 아르헨티나 정부 채권의 액면가는 6억3000만 달러. 하지만 실제 가치는 10분의 1도 되지 않는 4800만 달러였다.

엘리엇은 미국과 영국 법원의 재판에서 승소한 뒤 이를 근거로 아프리카 가나에 정박 중이던 아르헨티나 해군의 신형 함정을 압류하는 등 강력하게 아르헨티나 정부를 압박했다.

결국 아르헨티나 정부는 엘리엣에 항복, 이 일로 엘리엇은 2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당시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엘리엇 펀드의 운영자 폴 엘리엇 싱어를 “탐욕스런 투기꾼”이라고 비난하자 싱어 회장은 “아르헨티나 지도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맞받아쳤다.

콩고도 엘리엇에게 쓴 맛을 봤다. 엘리엇은 2008년 콩고의 한 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헐값에 사들였다. 액면가로는 3260만 달러였다. 이런 식으로 엘리엇은 자신들이 사들인 정크본드를 근거로 콩고의 해당 은행에 1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돈을 받아냈다.

1996년 페루의 페루비안 은행 채권도 이런 방식으로 1100만 달러 상당을 사들인 뒤 1998년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 5800만 달러를 받아냈다. 엘리엇의 공격을 받은 아르헨티나, 콩고, 페루는 국가 신용도가 하락하는 등 한동안 큰 고통을 겪었다.

엘리엇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휴지조각이 돼 버린 해외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한 다음, 이를 근거로 소송을 걸어 돈을 받아내는 등 악명을 떨치면서 벌처(Vulture) 펀드로 불리게 됐지만, 설립자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다.

폴 엘리엇 싱어는 1944년 8월 22일 뉴욕 맨해튼에서 약국을 하던 부친과 주부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로체스터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1974년 그의 첫 직장은 ‘도날드슨, 러프킨 앤 젠렛’이라는 투자은행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부동산 분야 법무담당으로 근무했다.

美 공화당 최대의 후원자

싱어는 10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지금도 레드 재플린, 미트 로프 등이 연주한 곡을 따라 연주할 때가 많다고 한다. 폴 엘리엇 싱어가 다른 투자가들과 조금 다른 점은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사회공헌활동과 정치활동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현재 싱어 회장의 재산은 19억 달러 가량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 돈 가운데 일부로 폴 E 싱어 가족 재단을 만들어 하버드대에서 음악에 재능을 가진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뉴욕의 푸드 뱅크, VH1 음악구제 재단, 게이-레즈비언 행동기금, 뉴욕 경찰재단, 해병부모회 등에 매년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다.

싱어 회장은 뉴욕 기업연구소, 공화당 등에도 선거 때마다 거액을 기부한다. 때문에 미국 언론계는 그를 코흐(Koch) 형제와 함께 미 공화당 최대의 후원자라고 부른다. 실제로 싱어 회장은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규제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공화당을 지지하는 발언과 행동으로 유명하다.

그가 게이,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들의 권리 향상에도 관심과 지원을 쏟고 있다는 점은 기존의 공화당 입장과 다르지만,  이는 1996년 이혼한 뒤 홀로 살고 있는 그의 개인사와도 연관이 깊어 보인다.

그가 “어쨌든 가족을 이뤄, 그 가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미국 사회를 유지한다”며 동성애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가정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폴 엘리엇 싱어가 동성애자보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는 곳은 지역 사회와 경찰, 군대, 그리고 취약 계층이다. 그는 뉴욕 로체스터 대학에 장학금을 주는 것은 물론 할렘 어린이 보호구역, 성공지원네트워크, 뉴욕경찰운동 리그 등에도 많은 기금을 대주고 있다. 또 특수부대원 재단인 밥 우드러프 재단과 미국의 정신 재단, 순직애국자 자녀재단 등에 140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싱어 회장은 선거 때가 되면 공화당 편에 서서 금융규제 철폐를 외친다. 이를 위해 부시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기업에 대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기조를 가진 맨해튼 정책연구소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또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2008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함께 찾기도 했다.

이런 정치적 성향 때문에 현재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나 연방준비제도, 그리고 미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 그는 엘리엇 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상당 부분을 미국이 아닌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의 인생과 투자 철학 등을 살펴보면,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에 반대하는 것이 차익으로 인한 수익 외에도 정치적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게한다.    

‘네오콘’을 능가하는 그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은 이스라엘이나 미국과 그리 편한 관계는 아니다. 특히 폴 엘리엇 싱어를 비롯하여 미국 공화당 골수 지지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삼성그룹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에 못지않게 중국과 그 이상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경제적 논리 넘어 '정치적 논리'로 수익 쫓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을 주도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은 중국 공산당 최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특히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에 인공 섬을 만들어 영토 분쟁을 조장하고, 일본과 외교적 냉각 관계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그룹이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제스처가 많았다는 점이 미국과 동맹국들의 이익을 중시하는 싱어 회장의 주목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엘리엇과 삼성그룹의 충돌은 2002년 초에도 있었다. 삼성전자가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없도록 하는 정관 변경을 단행하자 당시 우선주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 측은 이에 반발하여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들은 엘리엇의 그 동안의 행보로 볼 때 삼성물산에 대한 경영 참여가 국내법 등 제도를 치밀하게 연구한 후 행동에 옮긴 것으로 보고 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보유지분을 늘린 것을 공식 발표한 날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대표적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삼성의 지배구조 변경 계획을 바꿀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그레그 팰러스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폴 엘리엇 싱어 회장은 경제적 계산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연재해, 정치적 암살, 경제적 혼란을 이용해 돈을 번다. 추악한 정치의 힘을 빌려 돈을 버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팰러스트 기자는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것에 대해 “경제적 논리로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닐 것”이라면서 “(고용 등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한국식 경영 관행을 깨뜨린다면 새로운 주주 가치가 생긴다고 믿고 있다”면서 “자신들이 개입해서 삼성 측에서 어떻게든 ‘특별한 보상’을 내놓도록 만들고 싶은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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