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예능으로 먹고 산다
종편, 예능으로 먹고 산다
  •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 승인 2015.07.1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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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종합편성채널(종편)의 가능성과 한계

종편 출범 4년의 결과는 JTBC 약진, MBN 안정, TV조선·채널A 고전 중

‘종편 전성시대’라는 문구가 미디어를 통해 오르내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국내 방송계 이슈 대부분을 종합편성채널이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현상화 된 히트 프로그램 탄생, 저명한 방송상 수상 소식, 기자 및 아나운서 이적 이슈, 유명 예능인 출연 화제 등 방송계 거의 전 범주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종편 전성시대’라 딱 잘라 말하긴 좀 어색한 측면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실질적으론 종합편성채널 4개사 중 JTBC가 이슈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시청률 차원에서 4개사 중 1위를 달리는 MBN이 그 다음, 나머지 TV조선과 채널A는 사실상 이슈 생산이나 상업적 실적 면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분위기는 엄밀히 말하면 ‘JTBC 전성시대’ 혹은 ‘JTBC-MBN 쌍두마차 시대’ 정도로 불려야 옳다. 

약진의 중심인 JTBC 상황을 보자. 확실히 화제성 면에선 따를 자가 없다. 지상파 채널까지 포함해도 그렇다. 일단 콘텐츠 면에서 ‘비정상회담’과 ‘냉장고를 부탁해’가 매회 방송이 끝나자마자 관련 기사들을 양산해낼 정도로 큰 관심을 얻고 있다. 화제성에 비례해 시청률도 만만찮고, 특히 ‘비정상회담’의 경우 제5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예능상을 수상,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 중 최초 수상을 기록했다. 

▲ JTBC에서 예능은 방송국의 위상을 세워준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녀사냥’은 19금을 양지로 끌어올리며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했고, 푸드 토크쇼 ‘냉장고를 부탁해’는 신선함과 재미를 동시에 주며 매회 화제가 되고 있다. ‘비정상회담’은 외국인들이 난상토론을 벌인다는 콘셉트로 외국인들의 예능 시대를 여는데 큰 몫을 했다.

상반기 드라마도 선방했다. 지난해 12월 첫 방송한 사극 ‘하녀들’은 시청률 5%대에 육박하는 성과를 거뒀다. 

상반기 JTBC 최대 이슈는 유재석 영입이다. 지상파 예능, 아니 대한민국 방송예능계의 황제 격 인물이 종합편성채널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KBS2 ‘해피투게더-쟁반노래방’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윤현준 PD와 손잡고 8월부터 방송될 새 예능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이밖에 MBN은 ‘황금알’ ‘리얼다큐-숨’ ‘천기누설’ 등 기존 교양 프로그램들을 유지하며 안정적 시청률 확보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경제보도채널 시절부터 인지도를 쌓아 탄탄한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는 MBN은 뉴스인력 흡수 차원에서 이슈를 터뜨렸다. 아나운서 출신 전(前) 국회의원 유정현을 주말뉴스 앵커로 기용해 화제를 모았고, MBC 메인뉴스 앵커 출신 김주하 영입에도 성공했다. 이는 손석희의 JTBC행(行)만큼이나 방송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반면 TV조선과 채널A는 고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예능을 강화해 김구라, 이영자, 신현준, 장윤정, 김국진 등을 대거 영입했지만 효과가 제대로 나오고 있지 않다. 특히 채널A는 뉴스와 시사, 예능프로그램 등 모든 분야에서 정체 상태다. 그나마 ‘이제 만나러 갑니다’가 종편들 중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는 점 정도가 언급될 뿐이다. 

‘압점’ 논리로 승부수 던진 SBS 

이런 판도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방송시장의 신규채널 진입 전략부터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스테이션 파워를 쌓아온 방송사들의 기존 방송시장 구도에 신규 채널이 진입하려면, 유일한 성공전략은 압점(壓點)논리다. 

기존 방송시장은 종이로 치면 단단하고 질긴 마분지다. 이 마분지를 뚫기 위해선, 그러니까 기성시장을 돌파해 신규시장에서 파이를 얻어내기 위해선, 가늘고 얇은 송곳이 필요하다. 

설명하자면 기존 채널들이 고루 갖추고 있는 두루뭉술한 채널 구성 및 프로그램으론 신규시장을 뚫고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처음 진입할 땐 타깃층을 좁게 잡고, 타깃층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하는 날카로운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1991년 개국한 지상파 채널 SBS가 개국 초기 이런 전략을 펼쳤다. 그래서 내세운 게 ‘신개념 드라마’와 ‘도발적 탐사보도’였다. 전자는 여배우 노출 논란을 일으킨 ‘금잔화’부터, 후자는 각종 시시비비를 낳은 ‘그것이 알고 싶다’부터 시작됐다. 기존의 KBS와 MBC는 보다 넓은 가족 시청자 층을 노리다보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 기획을 꺼렸다. 스테이션 이미지가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케이블 가입자 1000만 시대가 가져온 변화 

이런 전략이 빛을 본 건 개국 4년 뒤인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부터다. 꾸준히 신개념 드라마에 역점을 둬온 노선이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역대 최고 시청률에 근접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것이 알고 싶다’ 등 탐사보도 프로그램 역시 꾸준한 이슈 메이킹으로 화제성을 얻어 효자 프로그램으로 거듭났다. SBS가 교양, 예능, 뉴스 등으로 발을 넓히고 KBS와 MBC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건 이처럼 압점 논리를 통해 일단 좁은 타깃층을 제대로 뚫어낸 뒤부터다. 

이런 압점 논리는 SBS까지만 통용됐다.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케이블TV 시대부턴 이 전략이 잘 먹히지 않는 얘기가 됐다. 한순간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케이블 채널들도 처음엔 대부분 SBS와 동일한 전략을 구사했다.

선정적인 예능과 자극 일변도 드라마들을 편성했고, 그 결과 방송통신심의위 경고를 월례행사처럼 받았다. 심지어 나체로 누워 있는 여성의 몸에 생선초밥을 올려놓고 시식하는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영화 채널들도 외설적 내용의 영화들을 고의로 낮 시간대 내보냈다. 

물론 이것도 압점 전략이었다. 어찌됐건 SBS조차 시도하지 못했던 기획들을 시도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전략은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케이블TV는 김대중 정권을 거치며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가입자가 늘었다. 21세기 들어 단자수 기준 1000만 가입자를 확보했다.

3인 가구 기준으로 보면 3000만 명 수준이 된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론 1483만4605단자까지 늘었다. 지금은 지상파 채널들도 모두 케이블 단자를 통해 유선으로 시청하는 시대다. 

이러면 미디어 환경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개개 방송사의 스테이션 파워는 실질적으로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지상파건 케이블이건 같은 단자를 통해 공급된 수많은 채널들 중 번호만 눌러 고르는 구조가 되다보니 지상파와 케이블의 선택 조건이 동등해졌다. 물론 앞번호냐 뒷번호냐의 차이는 있다.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조차 지상파가 케이블보다 더 잘 나가는 데 대해선 콘텐츠 자체가 더 뛰어나기에 선택받는 것이란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이제 지상파 채널은 그간 독점구조 속에서 쌓아온 유·무형의 자산을 토대로 보다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채널이란 인식이 뚜렷하다. 

여기에 환경변화가 하나 더 겹쳤다. IPTV의 등장이다. 지난해 8월 1000만 가입자를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기준 1047만6445 가입자, 올해 내로 케이블TV 가입자 수를 추월하는 ‘골든 크로스’까지 예상된다.

IPTV 기반 하에선 케이블TV보다 채널 번호의 힘이 더 미약해진다. 채널이 아니라 콘텐츠 하나하나를 따로 선택해서 보는 구도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VoD와 스마트 방송 수요 증가까지 감안하면 더 그렇다. 이러면 콘텐츠 자체의 매력 및 퀄리티 승부로 넘어가는 구도가 완성된다. 

이런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신규 케이블 채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였다. 스테이션 파워가 아직 큰 힘을 발휘하던 시절의 대세였던 ‘타 방송사가 못하거나 안 하는 시장 확보’ 전략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의 질적 향상과 기획력 강화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슈퍼스타 K’를 위시로 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들과 ‘미생’으로 폭발한 웰 메이드 드라마들이 탄생됐다. 그렇게 생존에 성공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해낸 것이다. 

종편은 이 같은 미디어의 대변환기에 등장한 방송사다. 스테이션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가 아니라, 오직 콘텐츠 자체의 힘으로 승부해야 하는 시점에 등장한 채널이란 뜻이다. 개국 4년여가 지난 지금, 각 종편들의 판도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도 이런 상황 인식에 종속된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한 JTBC 

JTBC는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채널이었다. 여타 채널들은 대부분 구시대적 압점 논리로만 상황을 해석했다. 대규모 신문사를 끼고 있으니 당연히 뉴스 정보력이 탁월할 수밖에 없고, 대부분 보수 성향 신문사들이 모기업이다 보니, 두 조건을 합쳐 뉴스·시사 프로그램에서 보수 색채를 강하게 띠는 전략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전체 편성에서 뉴스·시사 프로 비중을 압도적으로 높였다. 

강한 정치적 색채 부여는 공영방송이나 공적자금이 투여되는 방송사 차원에서 시도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압점 전략은 개국 초기엔 들어맞았다. 개국 직후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만나는 ‘정치의 해’ 2012년이 밝으며 더 그랬다. 모두들 정치 관련 뉴스와 대담, 토론 등에 촉각을 곤두세울 시점, 여기에 올인 해 들어간 채널들이 주목을 받고 큰 호응을 얻어냈다. 그러면서 서서히 돈만 들어가고 반응은 신통치 않았던 드라마를 접고 예능을 축소시키며 교양도 규모를 줄였다. ‘되는 분야’에 올인 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정치의 해’를 보내고 난 뒤, 종편 채널들에 부여됐어야 할 채널 신뢰도와 충성도는 거의 쌓이지 않았다. 스테이션 파워가 급격히 하락하는 시점이 되면, 시청자들은 그때그때 관심 가는 콘텐츠를 골라 볼 뿐 해당 콘텐츠가 방송된 채널을 계속 틀어놓고 있을 생각은 않게 된다. 그러다보니 종편 채널들에 신뢰도와 충성도를 갖게 된 이들은 지극히 정치 지향적인 시청층, 그 중에서도 보수 성향이 강한 중장년층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건 ‘정치의 해’건 뭐건 ‘되는 쪽’에만 올인 하지 않은 채널들이다.  JTBC는 끝까지 드라마를 놓지 않은 유일한 채널이었고, 오히려 예능을 강화해 밀고 나간 채널이었다. MBN은 기존 신뢰도와 충성도에 더해 교양 프로그램 안정화로 나간 행보가 존재했다. 

TV 앞에 사람이 모인다 

다시 말하지만, 시청자들은 이제 JTBC 프로그램 한두 개가 좋다고 그 채널을 하염없이 틀어놓는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때그때 좋은 콘텐츠, 이목을 끄는 콘텐츠를 ‘개별적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어떤 콘텐츠가 이 복잡하고 변덕스러운 대중의 이목을 끌고 만족감을 줄지에 대한 감각은 드라마나 예능, 교양을 손에서 놓지 않고 꾸준히 실험해가며 노하우와 개성을 발견해낸 방송사들 손에 쥐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JTBC였고 MBN이었다. 그런 방향을 택하지 않고 구시대적 스테이션 파워 구축 신화에 목을 매단 게 TV조선과 채널A였다. 

물론 JTBC에도 문제는 많다. 일단 손석희 보도부문 총괄사장이 진행하는 ‘뉴스9’는 방송 시작부터 지금껏 꾸준히 문제를 일으켜왔다. 보수 성향 신문 계열사에 걸맞지 않게 좌편향 논란을 일으키며 방송통신심의위 단골 출석 대상이 되고 있다. 왜곡보도, 과잉보도, 심지어 타 방송사 여론조사 결과를 ‘훔쳐와’ 같은 시간대 방송하는 도둑행위까지 선보였다. 

그러나 전반적 채널 방향성으로 봤을 때 가장 희망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곳은 JTBC다. 시청률 제조기인 드라마와 예능 분야에서 거의 완벽하게 지상파 콘텐츠와 맞대결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드라마는 이미 ‘밀회’라는 히트작을 내놨고, 곧 인기 웹툰을 드라마화 하는 ‘송곳’이 방송 예정이다. 교양은 ‘썰전’과 ‘비정상회담’, 예능도 ‘마녀사냥’과 ‘냉장고를 부탁해’가 탄탄히 버텨주고 있다. 

이처럼 예능·드라마에서 성공을 거둔 전략, 즉 자극과 선정, 편향 일색의 압점 전략이 아닌 하이 퀄리티-웰 메이드 전략을 뉴스·시사 분야에서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면 향후 총체적 개선 및 발전 가능성이 크다. 

마침 한국인의 여가활동 관련 조사가 발표된 시점이다. 한국인의 하루 여가시간은 4시간49분, 그런데 그중 절반 가까운 1시간55분을 TV 시청에 쏟고 있다. 모든 여가 행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며, 5년 전보다 오히려 4분 늘어난 수치다. 반면 친구를 만나는 등의 교제활동은 하루 43분, 취미나 놀이를 즐기는 활동도 41분으로, 각각 5년 전에 비해 2분씩 줄었다.

전문가들은 주거비용이 올라가고 교육비도 증가하며, 노후 불안 등도 발생하다보니 전체 여가에서 금전적 부담이 없는 TV 시청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란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놀 거리가 딱히 없어 저녁만 되면 삼삼오오 TV 앞으로 모여들던 1970~80년대를 지나, 이제 노는 비용이 부담돼 다시 TV 앞으로 모여드는 시대가 되돌아왔다. 

이런 환경과 분위기를 타고 방송사를 개국하게 된 것도 기회라면 기회다. 어찌됐건 종합편성채널 4사 모두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은 넘겼다. 개국 초기만 해도 3년을 채 못 버티고 문 닫을 채널들이 거론되기도 하고, 난관에 부딪힌 모기업 측에서 채널을 매각할 의사가 있다는 풍문도 돌았으며, 모 대기업에서 그중 한 채널을 인수하려 한다는 정보가 퍼지기도 했다. 

이제 종편 채널들도 마(魔)의 3년을 버티고, 4년차로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종편 채널은 애초 안 되는 모델’이란 개국 초기의 비판들도 지나치게 과한 우려 또는 저주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부터가 승부다. 방송채널사업자를 가리키는 PP(Program Provider)란 프로그램 공급자를 가리키는 단어다. 지금은 백 투 더 베이직(Back to the Basic), 그 어느 때보다 프로그램 공급자로서 방송사 역할과 기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치열한 환경 속에서 고단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종편 채널들인 만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현 시점, 각자 명확한 현실 인식과 전향적 발상으로 광포한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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