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달라져야 사회도 달라진다
국민이 달라져야 사회도 달라진다
  • 미래한국
  • 승인 2015.07.1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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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 민주시민, 일류국가로 가는 길

김충남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 

메르스 사태로 6월 말 현재 30여 명이 사망하고, 150여 명이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었으며, 1만5000여 명이 격리 대상이 되어 자유를 제약받았다.

이 사태로 전 국민이 몇 주 동안 공포에 사로잡혀 사회 활동을 주저하고 외국인 관광객까지 급감하면서 경제적 타격이 막심했다.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치부 

메르스 사태가 사회적 재난이 되었던 데는 보건 당국의 초동대처 실패 못지않게 실종된 시민의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1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서 사우디 방문 사실을 솔직히 말했다면 메르스는 여기서 차단되었을지 모른다. 삼성서울병원에 온 14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의 진료 사실을 밝혔다면 메르스의 대량 확산이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또 일부 감염자 또는 격리 대상자들이 당국이나 의료진의 통제와 지침을 무시하고 자기 편한 대로 행동하여 사태를 악화시켰다. 확진 환자가 의사의 만류를 무시하고 해외 출장을 강행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입국 시 감염 사실을 숨겨 국제적 논란이 되었다. 어떤 감염 환자는 평소처럼 생활하며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고 가족 여행까지 갔으며, 어떤 환자는 역학조사관의 질문에 거짓말로 일관했다. 

이처럼 감염자 또는 격리대상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질병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는 의식이 없었다. 전염병은 공동체의 재난이기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 협조 없이는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다. 중국에서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발생했을 때 군대를 동원하여 통제했다.  

민주 사회인 한국에서는 시민의 자발적 협조를 통해 메르스를 극복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만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 시민의식 결여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통렬하게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메르스 사태가 사회적 재난으로 확산된 이유는 보건 당국의 초동대처 실패 못지않게 실종된 시민의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메르스 사태로 한산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장면.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의 취약성이 드러났지만, 따지고 보면 법과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수많은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빈발해왔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곳곳에서 부끄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공공도서관의 도서 중에는 훼손되어 폐기하는 책이 너무 많고, 지하철역 등 공공장소에 설치된 무료 대여 도서관이 도서 분실로 대부분 운영에 실패했다. 울산의 ‘양심자전거’는 2주 만에 69%가 분실됐다고 한다. 야구장에서의 음주는 보통이고, 경복궁에서 텐트를 치고 삼겹살을 구어 먹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후진국 수준의 시민의식 

교통질서는 시민의식의 척도라 하지만, 우리의 교통사고율은 OECD 34개 회원국 중 폴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난폭운전과 과속운전을 당연히 여기는 운전자가 많고, 저녁이나 이른 아침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들이 너무도 많다. 국제적으로 비교한 법질서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OECD 최하위 수준이다. 기초질서 위반으로 처벌된 건수는 일본의 44배에 달한다. 

기초질서와 교통질서 위반처럼 보이는 곳에서 위반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더 나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선진국 대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대학에서는 시험 부정과 과제물 표절행위가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주한(駐韓) 외국인들 중에는 장차 엘리트가 될 대학생들이 부정행위에 물든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부정과 비리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톱니바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 사회는 모두가 원칙을 지키고 서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정직한 사람보다 부정직한 사람이 더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통상 60% 정도가 된다. 이것은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이익을 취하겠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각종 서류를 위조하여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람이 많고, 다른 사람을 거짓으로 고소하고 법정에서 위증하는 사람도 매우 많다. 

2007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위증죄 건수는 일본의 171배, 무고죄 건수는 217배나 된다.  미국 FBI 국장으로 40년 간 온갖 범죄를 다룬 바 있는 에드거 후버는 “수많은 범법자들로부터 발견한 한 가지 공통적 요소는 그들이 예외 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압축성장으로 물질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인 1인당 소득 3만 달러에 달했지만 시민의식은 이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국회 청문회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문제가 다운계약서 작성, 탈세, 위장전입, 병역기피, 표절, 잘못된 전관예우 등이다. 이 같은 일탈행위들은 관행이었다는 변명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윗물이 맑아도 아랫물이 흐리면 물은 흐릴 수밖에 없다. 또 민주국가에서는 지배받기만 하는 사람도 없고 지배당하기만 하는 사람도 없다. 모든 국민은 지배하는 자인 동시에 지배를 받는 자다. 이것은 국민과 국가 간의 관계가 자발적이며,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주어진 관계임을 의미한다.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다해야 

법규 위반은 너무나 보편화되어 있어 바로잡기 어려울 정도다. 금년 초 언론에 보도된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간 부동산 거래 중 약 절반(48%)인 113만 건이 양도소득세를 신고하지 않거나, 다운계약서 작성으로 세금을 적게 낸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이라면 1~2%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미국 상원의원은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은 시민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는 시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로 누구든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온갖 권리를 주장하게 된 것이 3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정부에 온갖 요구를 하고, 정부와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고, 무능과 실책을 규탄하는데 열을 올렸지만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소홀히 했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민주 사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가? 

정부란 요술 방망이처럼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부한 세금과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한정된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동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는 지나쳤던 반면, 국민의 성원은 크게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는 신뢰받기 어려웠고 대통령들도 존경받지 못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재임 당시 자신을 ‘동네북’이라 했고,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도 임기 말엔 기진맥진 상태가 되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초에 “대통령 직 못해 먹겠다”고 토로했다. 당시 언론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온갖 비판을 서슴지 않았지만, 그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지도자를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기만 한다면 훌륭한 자질을 가진 지도자라도 성공한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결국 정치 사회적 논란 속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연이어 집권당에서 탈당했다.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비정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탈당은 피했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어려움이 많았다. 과연 한국은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군림하는 나라인가? 

▲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세월호 침몰과 올해 메르스 사태로 어려움에 빠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려 한다. 사진은 지난 6월 30일 세월호 유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요구사항을 담은 국민 서명을 청와대에 전달하겠다고 나서자 경찰이 이를 막아서는 장면.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의 세월호 침몰과 올해의 메르스 사태로 어려움에 빠져 있다. 우리사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려 한다. 국회의 책임, 관료들의 책임, 언론의 책임, 기업의 책임, 시민의 책임은 없었는가?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뿌리부터 고장 나 있기 때문에 각 분야에서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책을 찾으려 하지 않고, 한정된 임기를 가진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돌린다면 그런 사회는 발전이 없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의 로버트 켈리 교수는 조직의 목표 달성에 있어서 리더십의 역할은 20%에 불과하고 팔로워십(followership)의 역할이 80%에 달한다고 한 바 있다. 민주국가의 팔로워십이란 곧 시민의식(citizenship)을 말한다. 국가는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이기 때문에 시민의 역할이 80% 이상으로 중요할지도 모른다.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등한히 하면서 정부에 대해 권리만 주장하고 정부에 지나치게 의존만 하는 사람은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공권력만으로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고, 시민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한 정부가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청년 이승만은 1904년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 ‘종의 근성’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자유인이 될 수 없다고 썼다. 대대로 양반집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 풀려나 자유롭게 살게 되었지만, 스스로 삶을 꾸려갈 자신이 없어 종살이하러 양반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1948년 7월 민주헌법을 제정하여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시대를 열었지만, 그것은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더구나 대다수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바빴고 동시에 공산세력과 싸워야 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뒤이어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가 되면서 또 다시 민주주의는 뒷전으로 밀렸다. 

현실정치가 헌법과 어긋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민주 투쟁이 시작되었다. 독재를 타도하면 민주사회가 저절로 열릴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독재정권이 무너진다고 해서 민주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절대왕조가 무너졌지만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데 100년 이상 걸렸다. 최근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혁명이나 ‘아랍의 봄’으로 연이어 독재정권이 무너졌지만 어느 나라도 내실 있는 민주주의로 정착되지 못했다. 

우리의 민주화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독재 타도를 민주화로 여겼기 때문에 민주화 세력은 집권하고 나서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의 집권세력을 타도하는 데 급급했을 뿐, 그들 스스로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조치들을 서슴지 않았고, 또한 민주주의의 정신적 인프라인 민주시민의식 함양을 위한 노력도 등한히 했던 것이다. 

민주시민교육, 선진국의 지름길 

민주(民主)란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주인이 주인답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제대로 설 수 없다. 링컨도 민주주의를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정부라 했다.  따라서 정치 수준은 곧 시민의식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한국의 시민의식 지수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이고 세계적 비교에서도 58위로 중간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시민의식은 희박한 반면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어느 나라도 처음부터 민주국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되었다. 민주시민 또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되고 훈련되는 것이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나라임에도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것은 체계적인 민주시민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시민 의식의 핵심은 공동체 의식이다. 나의 안위와 행복은 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안위와 행복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불행은 곧 나의 불행이 될 수 있다는 의식이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우리 시대, 우리나라, 우리 이웃에 빚진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민주시민다운 태도다. 그래서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여러분은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까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법과 원칙을 지키고 예의염치를 존중하여 동방예의지국의 명성을 되찾자. 가정과 학교에서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주의를 몰아내고 남을 먼저 배려하도록 교육하며, 우리에게 이익이 되면 그만이라는 집단이기주의와 지역이기주의를 부끄럽게 여기고 지역사회와 국가공동체를 앞세우는 범국민적 노력에 앞장서자.

※ 이 글과 관련된 필자의 저서로 <일등국민 일류국가>가 있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서울대 석사, 미네소타대 정치학 박사
육사 교수, 청와대 사정·정무비서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연구원
저서: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 
<대통령과 국가경영>, 
<일등국민 일류국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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