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취해 해롱대는 북한
마약에 취해 해롱대는 북한
  • 미래한국
  • 승인 2015.07.1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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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란의 평양별곡]

김정일 교시로 국가 공식 사업으로 마약 제조, 軍에 마약 제조 부대 조직하여 해외 밀매

최근 탈북자들이 전한 소식에 의하면 현재 북한에서는 마약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으며, 상류층으로 갈수록 마약 중독률이 높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이 마약 중독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북한에서 마약은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아편 재배를 시작한 것은 1980년대로 추정된다. 노동당 외화벌이 부서인 5호 관리부가 아편 재배를 맡아서 진행했는데, 외부와의 차단을 위해 외진 산간벽촌을 중심으로 은밀히 양귀비를 생산해왔다. 때문에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마약 재배 사실은 일반 주민들에게는 비밀로 부쳐졌으며 이때만 해도 북한의 아편 생산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1990년대에 경제난과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1992년부터 김정일이 김일성의 교시라고 하면서 ‘백도라지 생산’이라는 이름으로 마약 사업이 국가의 공식적인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북한에서는 노동당 지시문이라고 하여 양귀비 재배사업을 ‘백도라지 사업’이라고 명명하고 공장, 기업소, 농촌에 백도라지 생산 과제를 할당하고 도시 노동자들과 시민들을 아편 농사에 동원했다. 북한은 강연과 학습회를 통해 “백도라지 사업은 김일성이 제약 생산을 위해 지시한 것이며, 외국에 팔아 외화를 많이 벌어오면 식량난이 해결될 수 있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했다. 

당시 강연 자료에는 김일성이 국제사회를 속이기 위해 백도라지라는 이름을 직접 지었으며 “인민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백도라지를 많이 심어 외화벌이를 하라”고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국가의 공식사업으로 백도라지 농장들이 전국 도처에 생겨나면서 양귀비 재배는 북한의 산간지역에서는 흔한 일이었고,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김일성에게 바치는 조화(弔華)에도 양귀비꽃이 등장할 정도였다. 

김정일이 중앙당에 마약 생산 지시 

그러다보니 그전에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아편을 1990년대에는 북한 주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아편 생산의 부산물로 얻어진 아편 씨는 볶아서 음식 조리에 사용하거나. 양귀비 잎을 된장에 찍어 쌈으로 먹는 방법도 등장했다.

양귀비는 특히 비위생적인 식수로 인해 빈발하는 수인성 전염병(이질과 설사, 대장염 등)을 치료하는 비상약으로 사용되었고, 고난의 행군으로 굶주림에 지친 북한 주민들이 자살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 북한에서 마약은 모든 계층에 만연해 있으며, 심지어 북한의 법관들까지도 마약을 즐긴다고 한다. 사진은 김정은이 평양 장천남사(채소) 전문협동농장을 찾아 현지 지도하는 장면.

군인 출신 탈북자로 구성된 북한인민해방전선은 지난 5월 29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에는 북한에서 중학생들까지 마약을 소지하는가 하면, 결혼식 부조금, 대학 입학, 승진 뇌물로도 마약을 선물할 정도로 마약이 성행하고 있다”는 탈북자 A씨의 증언을 전했다. 

탈북하기 전 북한 노동당 연락소 해외파견조에 근무했던 탈북자 A씨는 북한 당국이 조직적으로 진행한 마약 생산과 판매 과정을 목격했다면서 김정일의 지시로 북한군 내부에 백도라지(아편)를 재배하는 부대를 조직한 뒤 완성된 마약을 해외에 팔거나, 계획적으로 시중에 흘려 외화벌이 단위들이 자발적으로 밀매에 나서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군인들이 마약 제조에 참가했고, 이들 기술자들은 제대하여 사회에 나와 마약을 생산·유통시키는 일을 통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0년대 이후 북한 전역에서 마약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북한군 대대장으로 근무하다 2014년에 탈북한 이성국(가명) 씨는 “북한군 간부들이 키리졸브 등 한미 합동군사연습 때 상부에서 내려오는 전투 정황을 처리하느라 잠을 안자고 버티기 위해 마약을 복용한다”고 증언했다.

그는 “김정은 집권 이후 훈련 강도가 높아지면서 한미군사훈련 때 잠을 안 자려고 (나도) 마약을 복용했다”고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참모장과 참모들도 마약을 복용했으며, 업무보고 차 상급 지휘부에 갈 때에는 꼭 마약과 담배를 챙겨가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하루 종일 돌려보내지 않고 잡일을 시킨다고 증언했다. 

함흥에는 두부집보다 마약 제조집이 더 많아 

탈북 전 인민무력부에서 근무한 탈북자 B씨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민무력부와 총참모부(우리의 합참에 해당) 고위 간부들도 마약을 한다, 말하자면 전당(全黨)·전군(全軍)·전민(全民)이 마약을 한다”고 폭로했다. 

현재 북한에서 마약은 모든 계층에 만연해 있으며, 심지어 북한의 법관들까지도 마약을 즐긴다고 한다. 2014년 11월에 국내에 입국한 함북 청진 출신의 탈북자 C씨에 따르면 “북한에서 마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층은 사법·검찰·보안원(경찰)들”이라고 증언했다.

최근 보위부가 법관들의 마약행위 단속 권한을 달라고 김정은에게 요청해 허가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보위부가 법관들을 단속해 존재감을 과시하고 마약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또 북한 주민들이 마약을 자주 하는 이유는 배고픔을 비롯한 현실의 고통을 잊고 쾌락을 추구하며 각성 효과를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다수의 탈북자들에 따르면 요즘 북한에서는 “북한의 화학공업도시 함흥에는 두부집 보다 많은 것이 마약 제조집”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일반 주민들 사이에 마약 제조가 일상화되면서 일반 주민들의 마약 중독이 심해지자 김정일은 2009년 함흥에서 마약소탕전을 벌였지만 김정은 시대가 오면서 다시 함흥이 마약생산기지로 부활했다고 한다.

또 북한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매춘이 성행하면서 매춘 여성들이 마약거래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매춘 녀들 가운데 마약 중독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청진의 라남제약공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명 ‘총탄’으로 불리는 화학합성제 ‘덴다’, 각성제 ‘얼음’, 강심지혈제 ‘파인디아’ 등 여러 종류가 제조되고 있다. 북한의 열악한 의료 상황으로 인해 주민들이 진통제나 진정제 대신 마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마약이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또 경제난과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개별 기관들이 각종 마약을 생산 판매해 식량 구입 재원을 마련하기 때문에 마약 유통은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 마약이 중국과 남한 등으로 유입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1996년 양강도 혜산에서는 3명의 남성이 국가 지령으로 약 100㎏의 아편 진액을 중국에 판매하려다가 중국 당국에 체포되어 사형 당했으며, 2014년 8월에도 북한에서 필로폰 3.75㎏을 중국으로 밀반입해 판매한 혐의로 체포된 32세의 북한 남성에 대해 지린성(吉林省) 옌볜(延邊)조선자치주 법원은 사형을 집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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