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태의 진상 ‘좌익이 꿈꾸던 사회’의 실패
그리스 사태의 진상 ‘좌익이 꿈꾸던 사회’의 실패
  • 전경웅 객원기자
  • 승인 2015.07.3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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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그리스 사태와 한국

‘포퓰리즘 天國’ 그리스와 한국의 완전 닮은 꼴 정치 백태

그리스의 급진좌파 연합인 ‘시리자(SYRIZA)’ 정권이 결국 유럽연합(EU)과 IMF 등 국제사회에 두 손을 들었다. 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강도 높은 개혁안을 채권단에 제출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려면 앞으로도 시일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들은 그리스 시리자 정권의 패배를 보면서 “복지정책의 실패다” “부유층의 부패가 문제다”라는 등 서로 다른 보도를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좌익이 꿈꾸던 사회’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자 7월 6일 오전 그리스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국민투표를 이끈 시리자 정권은 결국 채권단의 압박에 굴복해 보다 강도 높은 개혁안을 제출했다.

국내 언론들이 언급하는 그리스 복지정책은 단편적인 정보들이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 “그리스의 복지 지출이 많아 위기를 초래했다”는 말은 잘못된 주장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그리스의 복지 재정지출은 GDP 대비 21.3%로 유로존 회원국 중 가장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복지 정책의 문제는 통계보다는 정치 역사의 창으로 바라봐야 그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다. 

1981년 그리스 총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했다. 당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사회당 당수는 총리 취임과 동시에 내각에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줘라.” 

사회당 정권은 최저임금 기준을 대폭 인상하고,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는 국민들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했다. 1970년대 연평균 성장률 4.7%였던 그리스의 몰락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사회당은 8년 동안 집권했는데 1970년대까지 GDP의 28% 수준이었던 국가 부채는 그의 재임 기간 중 80%까지 솟아올랐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줘라”

사회당의 라이벌이었던 신민주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회당의 포퓰리즘을 그대로 따라했다. 이들은 서로 국민들에게 “얼마나 더 퍼줄 것인가”를 놓고 경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90년대에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연금 종류가 13개로 늘었다. 그리스 학계에서는 “우리가 점차 중동 산유국을 닮아가기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그렇다면 그리스가 그렇게 돈이 많았을까. 아니었다.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돈, 즉 빚이었다. 하지만 사회당과 신민주당은 ‘포퓰리즘 경쟁’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들은 표를 얻기 위해 새로운 인기 정책을 생각해 낸 것이 ‘철밥통 공무원’ 늘리기였다. 

1980년 이후 사회당과 신민주당 정권에서 그리스 공무원 수는 2배로 늘었다. 인구 1100만 명의 나라에 공무원 수가 100만 명이나 된다. 이 숫자만 보면 “뭐, 많지도 않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매년 5% 이상 임금 인상” “은퇴 직전 5년 평균 임금의 95%를 연금으로 지급” “55세부터 공무원 연금 수령 가능”이라는 정책을 겹쳐서 봐야 한다. 

이렇게 공무원 수를 늘리고, 연금을 파격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그리스에서 공무원 대접을 받는 사람은 전체 근로자 수의 4분의 1에 달했다. 이들에게 지급하는 돈이 GDP의 12%에 달했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각종 자문위원회에서 일하는 수 만여 명을 포함시키지 않아도 이 정도다. 

이들에게 주는 수당의 명목도 상상을 초월한다. ‘팩스 받는 수당’ ‘계단을 통해 다른 층으로 이동한 수당’ ‘정시 출근하면 주는 수당’ ‘화장실 가서 손 씻으면 주는 수당’ 등은 국내서도 잘 알려져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리스 공무원의 ‘마인드’였다. 부정부패는 기본이요, 게으르고 불친절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사명감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사회당과 신민주당은 표를 얻기 위해 공무원을 상전처럼 떠받들었다. 

세금 인상 20년 동안 미뤄 

그리스 정치권이 공무원들에게 퍼주기를 하려면 당연히 세금을 더 걷어야 할 터.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리스의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20.4%다. 하지만 이 정도의 조세부담률로 재정을 모두 감당할 수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모자란 돈은 주변의 부자 나라에서 빌려서 충당했다. 

그리스 사회당과 신민주당은 “세금을 올리면 표를 얻기 어렵다”며 세금 인상을 20년 넘게 미뤘다. 세율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스 정치권은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하면서도 소득세나 재산세, 법인세 비율을 유로존 회원국들의 기준에 맞추지 않았다.

게다가 개인의 소득세는 많이 걷고 재산세는 낮게 걷었다. 참고로 그리스의 재산세율은 15.9%. 영국의 42.7%는 물론 독일의 24.4%에 비해서도 크게 낮다. 반면 소득세율은 46%로 대단히 높았다. 

이렇게 되자 그리스 국민들은 부패한 공무원과 손잡고 나라 전체에서 광범위한 소득세 탈세 사태가 벌어졌다. 높은 소득세를 피하기 위해 부자와 사업가들은 차명으로 사업을 벌였고, 많은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 재산세와 소득세를 내지 않기 위해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거짓 신고를 일삼았다. 심지어 ‘실업급여 수급자’가 200만 유로를 해외로 빼돌리다 적발되는 일도 일어났다.  

EU 등이 그리스의 탈세 규모가 GDP의 12~15%에 달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지하경제 규모도 26% 내외라는 것이 ‘공식 집계’이지만 그리스의 행태로 볼 때 그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국민들의 부정부패는 곳곳에서 일어났다. 최근까지 그리스의 100세 이상 인구는 9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실상은 이미 숨진 노인들의 노령연금을 타먹기 위해 가족들이 허위 신고를 했음에도 공무원들이 눈감아준 탓에 초고령자 수가 이렇게 많아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을 부정 수령한 그리스 국민은 밝혀진 것만 무려 20만 명이나 된다. 이 숫자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리스 정치권은 국민들의 부정부패를 고치려 하지 않고 복지정책으로 문제를 감추려 했다. 그 결과를 볼 수 있는 2010년 통계가 있다. 국민 1인당 평균 납세액은 8300유로인데 정부가 국민들에게 지출하는 복지비용은 1인당 1만600유로에 달했다. 

그리스 정치권은 유로존 국가들과 IMF 등 국제기구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정부가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회원국들에게 “3%의 재정적자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유로존의 권고를 충실하게 지킨 것처럼 보고한 것이다. 

분식회계로 적자를 숨겨온 그리스 정치권은 국가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2009년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실상을 밝혔다. 그리스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 대비 12.7%나 됐고, 국가부채 비율은 143%로 드러났다.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 

IMF와 유로존 회원국들은 그리스에 수백억 유로의 구제 금융을 지원해줬지만, 그리스 정치권은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었다. 해외로부터의 구제 금융 자금은 고스란히 공무원과 공공노조, 정치인들 밑으로 들어갔다. 일부 정치인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도 이미 100만 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조직한 강성노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스 공무원·공공분야 노조는 IMF와 유로존 회원국들의 긴축재정 요구를 “자본가들의 탐욕만 충족시킨다”며 반대했고, 그리스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젊은이들이었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2012년 10월 기준으로 2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24세 이하 청년층 실업률이 56.5%라는 점이다. 청년 실업률은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경제가 무너지면 젊은이들의 꿈도 사라진다. 취업이 안 되는 청년들은 극단적인 경우 강도나 범죄의 길로, 여성들은 몸을 팔러 나가기도 한다.

최근 그리스 현지를 찾은 외신들에 따르면, 멀쩡하게 차려 입은 그리스 청년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걸식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나이 든 공무원과 노조의 세상이 되어버린 그리스에서 청년들이 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산업구조가 1차 산업과 3차 산업 위주로만 구성된 것도 문제다. 그리스의 3차 산업도 대부분 관광업이어서 다른 나라의 경기에 영향을 크게 받는 것도 문제다. 외신들은 “그리스는 올리브를 재배해도 가공 공장이 없어 다른 유럽국가로 수출한 뒤 훨씬 비싼 값에 올리브유를 수입한다”며 제조업이 빈약한 산업 구조를 지적했다. 

그리스의 위기를 보는 한국 언론과 정치권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리스가 위기를 겪게 된 지난 35년을 살펴보면, 한국이 지난 15년 동안 지나온 길과 거의 비슷하다. 

한국의 공무원 수는 2013년 100만 명을 넘었다. 여기에 군인, 사립학교 교원, 지방 공기업, 비영리 공공기관 근무자 수는 모두 빠져 있다. 이를 포함하면 거의 200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공무원 수가 폭발적으로 는 것은 노무현 정권이 “우리나라 공무원 수가 OECD 평균과 비교해 너무 적다”며 정원을 대폭 늘린 탓이다. 노무현 정권은 중앙 공무원 수를 늘리기 어렵자 지방 공무원을 크게 늘렸다. 

문제는 또 있다. 그리스처럼 은퇴 직전 받던 임금과 거의 맞먹을 정도로 지급하는 공무원·군인·교원 연금 개혁을 공공 노조의 반대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점,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퍼주기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기업마다 존재하는 ‘노조 기득권’과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평가를 듣는 건물주들의 탈세, 사업자들을 지원하는 각종 보조금과 지원 혜택 등으로 인해 정부 재정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그리스는 한국의 미래 

한국도 2005년 이후 청년 실업률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 통계는 한국의 실업률이 5%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체감 청년 실업률은 20%에 육박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때문에 한국 젊은이들 가운데 다수가 공무원, 공공기관, 공기업 또는 노조가 있는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한다. 

노무현 정권 시절 한국의 좌익들이 꿈꾸던 대로 공무원 수를 늘리고, ‘적게 걷고 많이 주는 연금’을 고치지 않고, 정부가 걷는 세금은 줄이는 대신 각종 복지 혜택을 늘리는 정책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공무원과 부유층이 짜고 벌이는 부정부패와 탈세, ‘약자 지원’ 명목으로 벌어지는 각종 지원제도를 개혁해야 함에도 한국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외면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권과 지자체들은 ‘관광산업 육성’에 목을 매고 있다.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것이 그저 쇼핑과 성형수술을 위한 것이어서 언제든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관광산업’이라고 우긴다. 

우리는 삼성그룹이나 현대·기아차그룹, SK그룹 같은 거대 제조업이 버티고 있어 그리스처럼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강성노조가 사회를 뒤흔들고,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모든 것을 국가의 책임으로 몰아 세금으로 배상하라고 우격다짐하는 것이 작금의 우리 자화상이다.

이런 현상이 수정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한국은 그리스보다 더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경고는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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