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역사의 교훈 위해 <청일전기> 번역
이승만, 역사의 교훈 위해 <청일전기> 번역
  • 미래한국
  • 승인 2015.08.0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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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이승만의 <청일전기(淸日戰記)>

“우리 한인이 대조선 독립 위해 갑오전쟁(청일전쟁)의 역사 모르고 지낼 수는 없다

▲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원장

<청일전기(淸日戰記)>는 청일전쟁(1894~1895)이 종료된 후 5년이 지난 1900년, 만 25세의 나이가 된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이 한성감옥에서 순 한글로 원고를 편역한 책이다.

이승만은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독립협회 간부들과 함께 한성감옥에 투옥 중이었다. 출판은 원고가 마무리 된 지 17년 후 하와이 태평양잡지사에서 이뤄졌다. 

1917년 출판된 <청일전기> 서문에서 이승만은 “만일 한인들이 오늘날 유구국(琉球國·오키나와)이나 대만(臺灣·타이완) 인종들의 지위를 차지하고 말 것 같으면 이 전쟁의 역사를 알아도 쓸데없고 오히려 모르는 것이 나을 터이지만, 우리는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여 태평양이 마르고 히말라야가 평지가 될지라도 우리 대조선 독립은 우리 한인의 손으로 회복하고야 말 터인즉 우리 한인이 갑오전쟁(청일전쟁)의 역사를 모르고 지낼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옥중에서 이승만은 청일전쟁에 관한 중국책 <중동전기본말(中東戰紀本末)>(1897)을 발췌 및 번역하고 그에 더해 ‘전쟁의 원인’ 그리고 ‘권고하는 글’이라는 논설을 덧붙여 원고를 완성했다.

<중동전기본말>은 당시 중국에서 선교사 겸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알렌(Young J. Allen, 林樂知)과 중국 언론인 채이강(蔡爾康)이 공동 편저해 1897년 전체 18권(전편 8권, 속편 4권, 3편 4권, 부록 2권)으로 출판한 청일전쟁에 관한 역사책이다.  중국과 동영(東瀛, 바다의 동쪽 나라 즉 일본)의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설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책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언론인 유근(柳瑾)이 돕고 사학자 현채(玄采)가 발췌 및 정리하고 국한문으로 번역해 두 권의 책으로 묶어 1899년 <중동전기(中東戰記)>라는 이름으로 번역본이 출판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1900년 청일전기 서문에서 이승만은 이 번역본을 참고하여 원고를 썼다고 밝히고 있다. 

이승만이 <청일전기>를 펴낸 이유 

책에 수록된 내용은 청일전쟁과 관련된 여러 당사자들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역사적 기록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 입체적이라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다.

전쟁의 당사자인 일본과 중국의 시각에서 기록된 문건은 물론, 전쟁의 명분이 된 ‘독립국가’ 조선의 상황, 여기에 더해 만주에 야심이 있던 러시아 그리고 중국에 관심이 있던 당시의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시각까지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청국 황제 광서제와 일본 천황이 발표한 선전포고문, 청국 대표 이홍장(李鴻章)과 일본 대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시모노세키 강화회담 대화록, 전쟁에 패배한 청국의 슬픈 운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모노세키 최종 조약문 등은 물론 이홍장과 로마노프 간에 체결된 ‘청러밀약문’과 청국과 일본 간 조선 문제를 두고 서울에서 조인한 ‘한성조약문’ 등이 그 예다. 이 가운데 지금도 울림이 큰 몇몇 대목만 추려서 살펴보자. 

알렌이 쓴 ‘네 번 째 조선난리의 역사적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러시아 신문에 실린 논설에 의하면 일본이 조선을 누에가 뽕잎 먹듯 하려는 것을 러시아가 허락하지 않고 청국과 함께 조선의 자주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하면 러시아 국경과 마주하게 된다. 이를 수수방관하면 일본 같은 강한 나라가 러시아와 이웃하게 되고, 시베리아 철도가 완성되면 조선은 블라디보스토크로 출입하는 관문이나 다름없다. 비유하자면 두 선박이 서로 접안할 때 서로 부딪쳐 망가지지 않도록 중간에 부드러운 나무를 끼우듯, 지금 조선은 두 선박 사이에 낀 부드러운 나무나 다름없는 신세다.” 

이홍장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시모노세키 강화조약을 준비하면서 던진 대화록도 백미다. 

“귀 대신은 저와 만난 후 귀국의 좋지 않은 제도를 일제히 고쳐서 오늘과 같이 발전했으니 진실로 부럽습니다. 우리 청국은 과거의 제도에 젖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역사의 교훈 

일본 해군 사령관 이토 스케유키(伊東祐亨)가 청국 북양함대 제독 정여창(丁汝昌)에게 보낸 항복권유 편지 또한 압권이다. 

“지금 청국 해군과 육군이 교전할 때마다 연전연패하여 낭패를 당하고 있는 것은 각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청국이 과거의 법과 제도만 굳게 지키고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청국은 글로만 과거를 보아 인재를 선발하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대신과 조정의 모든 관리들은 모두 문학에만 힘쓴 사람들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과학기술이라든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실사구시의 학문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불과 30년 전에는 우리나라도 오늘의 청국 비슷하게 위태로웠던 형편이었음을 각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일본은 과거의 제도를 모두 뜯어고치고 새로운 법을 받아들여 오늘날 부강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귀국도 하루빨리 과거의 제도와 습속을 버리고 새로운 문물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조속한 시일 내에 변혁을 이루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개전(開戰)하기 전부터 이미 귀국이 패할 것이란 사실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이 끝난 지 120년이 지난 오늘날의 동북아는 또 다른 격동의 중심에 서 있다.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위한 굴기(山屈起)의 중국과 120년 전의 영광을 기억하는 일본이 갈등하고 있고, 한반도 북쪽에서 진행되고 있는 핵무기 개발과 인권 유린은 국제사회의 첨예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주체(主體)의 ‘강성대국’을 쌓아가고 있다. 이 소용돌이 한 가운데 존재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건국부터 지금까지 피 흘리고 땀 흘리며 이뤄 놓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어느 한 순간에 사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형국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말씀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120년 전 갑오년은 우리에게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생히 보여 주고 있다. 동북아의 새로운 국제 정세가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떠오르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는 일본이라는 오늘날의 상황이 120년 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북한이라는 한민족 내부의 변수가 러시아는 물론 미국을 여전히 한반도에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2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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