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제조기’로 전락한 종편
‘괴담 제조기’로 전락한 종편
  • 미래한국
  • 승인 2015.08.0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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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휘청거리는 종합편성채널 해부

“종편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이 금방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메르스 파동’이 사망자는 물론 감염자도 추가로 보고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종식됐다. 그러나 이 런 소강 국면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어마어마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실제 상황이 그렇게 심각했다면 지적할 만한 게 못된다. 문제는 지난 3개월여 동안 관련 정보가 끊임없이 과장 왜곡되는 분위기 하에서 불필요한 공포가 양산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극단적 공포 분위기 조성의 중심에 미디어가, 그중에서도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 TV조선, JTBC, 채널A 등 종편 3사들은 국민적인 관심사인 메르스 사태를 과다 편성 및 취재 보도를 함으로써 국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3개월여 동안, 종편은 거의 매일 메르스 관련 보도와 시사프로그램 등을 내보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어차피 JTBC를 제외하면 사실상 보도전문 채널화 돼 있는 게 지금의 종편 현실이다. 이슈가 터지면 하루 종일 반복적으로, 집중적으로 프로그램들을 배치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게 종편의 흥행 전략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메르스처럼 정보가 제한되어 있는 전문적인 사안이 이슈화 됐을 땐 문제가 심각해진다. 메르스와 관련하여 ‘쓰잘 데 없는’ 공방이 만들어진다. 전문가들이 분석을 해야 할 사안임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치평론가, 문화평론가, 심지어 변호사들까지 동원돼 난상토론을 벌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유의미한 정보들이 도출될 수 있겠는가. 

비전문가들 의견이 뒤범벅되다 보면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도 다수 끼어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미디어의 힘을 빌려 금세 수그러들 인터넷 괴담은 ‘그럴 수도 있을 법한’ 정설로 자리를 바꿔 생명력을 얻게 된다. 

‘괴담 제조기’ 종편 

아니나 다를까, 지난 3개월여 이런 상황들이 매일 낮밤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고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직접 TV조선과 채널A를 방문해 “사실 위주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국민들이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면서 메르스 확산 방지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발언했을까. 

▲ 종편을 방문한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최 위원장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 종편들이 사실 위주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불안감을 해소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 7인회 멤버인 김용갑 전 한나라당 의원은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종편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이 금방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시청률 경쟁이 아니라 신뢰성 조사를 통해 방송의 격을 높였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종편의 폐해는 비단 메르스 사태에만 그치지 않는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 결과, 지난 6월 기준으로 TV조선, JTBC, 채널A 등 종편 3사 프로그램들이 오보와 막말, 편파방송으로 징계 받은 건수는 전년도보다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절대다수가 보도 또는 관련 시사프로그램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그렇게 보도 관련으로 치중하면서 정작 콘텐츠 투자엔 소홀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지난해 사업계획으로 내놓은 콘텐츠 투자계획을 살펴본 결과, TV조선 23억 원, 채널A 116억 원, JTBC가 438억 원가량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마디로, 콘텐츠 투자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선정적인 막말과 오보, 편파구성을 통해 시청률을 끌어 모으고 있었단 얘기다. 

2011년 개국 이래 근 4년여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와 상업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되는 종편이 왜 이런 식의 ‘괴담 제조기’가 돼야 했을까. 하나씩 살펴보자. 

종편이 개국하고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면서 가장 특이했던 점은, 여타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에서 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단골 지적 대상이었던 예능과 드라마 프로그램들이 ‘의외로’ 선정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위 ‘착한 예능’, ‘착한 드라마’들이 많았다. 지금도 종편 예능은 여타 케이블 프로그램들에 비해 지적 정도가 매우 낮다. 드라마는 현재 JTBC만 이어가고 있지만, 기껏해야 ‘밀회’ 정도만 소재의 선정성 탓에 지적받았을 뿐 소재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오히려 진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종편들이 ‘착한 예능’ ‘나쁜 보도’를 반복하는 이유 

이는 각 종편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한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상업적으로 여겨지는 콘텐츠에서 선정성을 줄이면 나름 신뢰도와 충성도, 거기서 비롯되는 채널 브랜드 이미지가 상승하리라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으로 대중신뢰도를 쌓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종편들은 기이한 곳에서 상업성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상업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던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에서 상업성을 꾀했다.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다시피 한 ‘정치의 해’ 2012년은 그렇다 치자. 새 정권이 탄생하고 난 뒤에도 종편의 보도 및 시사프로그램들은 각종 막말과 편파, 오보가 넘실대고, 가히 드라마를 능가하는 연출을 통해 엄밀하고 엄연한 현실에 극적인 선악(善惡)구도를 입히기까지 했다. 

종편의 공통된 전략은 결국 ‘착한 예능’ ‘착한 드라마’이지만 ‘나쁜 보도’ ‘나쁜 시사’이기도 했다. 기존의 통념을 깨는 이 전략은 화제를 불러 모으고 일시적으로 시청자들 시선을 끌어 모으는 데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점차 범대중적 차원에선 신뢰도가 떨어지고, 충성도 역시 소수 타깃층을 제외하곤 추락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채널 브랜드 이미지도 함께 떨어지고 있다. 광고주협회의 신뢰하는 방송매체 조사에서 지상파 3사는 물론 같은 케이블인 YTN에도 밀리고 있다. 

그렇다면 종편들이 갈 길은 어디일까. 현재 종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편파 왜곡보도 비판이 일고 있다. 당연히 이런 효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데도 각 종편들은 ‘꿋꿋하게’ 나쁜 보도, 나쁜 시사를 반복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정치를 대하는 한국 대중의 지극히 진영화 된 성향 때문이다. 보도 및 시사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시청자 층은 사실상 ‘정치 마니아’층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정치 지향성은 대한민국 현실에선 스포츠 경기와 다름없다.

그냥 “우리 편 이겨라” “너네 편 져라”다. 정치의 근본이 되는 각각의 정책적 사안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따져볼 생각 따윈 별로 없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어느 한쪽 편에 서기로 작정하면 그 뒤부터는 무조건 그쪽 입장을 옹호하고 상대편 입장을 짓밟는다. 

이것도 압축성장의 비극이라면 비극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건 이 같은 대중 성향을 바탕으로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달리는 게 최상이다. 이러면 선을 넘나드는 반칙과 야유도 무방해진다. 축구 훌리건들에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반칙을 하건 어쩌건 별 의미가 없다. 무조건 이기는 것, 그리고 상대 팀을 조롱하는 것, 둘 뿐이다. 

둘째,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방향이 독(毒)이 된다는 점을 보도전문가들이 모를 리 없다. 언론의 신뢰성은 감정적 야유나 조롱, 의도적 편파 왜곡을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 건 ‘그 순간’에만 소비되고 말 뿐 장기적으로는 신뢰성을 잃어, 그야말로 ‘희한한 주장’이 나올 때만 소비할 뿐 다른 때는 접근을 꺼리게 된다. 

▲ 종편 보도 프로그램의 연성화는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진행된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의 영향 탓이다. 이러한 인포테인먼트의 원조는 정연주 사장 시절의 KBS다.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의 함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상식 밖의 선정보도와 토론을 일삼고 있는 이유는 2000년대 들어 일기 시작한 보도 대상의 꾸준한 연성화 경향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게 상업적으로 효과가 좋아 그쪽을 택했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쪽이 더 ‘나은 길’이라 믿게 된 환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2000년대 초반, 정연주 사장 재직 시절의 KBS 상황을 돌아보자. 정 사장 재직시절 최대 업적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의 개발이었다. 정보를 뜻하는 information과 entertainment를 합성한 단어다.

즉, 기존 정보 프로그램의 딱딱한 형식을 깨고 보다 쉽고 유쾌하며 자극적인 방식으로 내용을 풀어 훨씬 대중적으로 호응도 높은 교양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큰 화제를 모았던 ‘스펀지’ ‘비타민’ 등이 좋은 예다. 

이 ‘인포테인먼트’는 한국에서만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 방송계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다. 그런데 이 용어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정반대다. 한국에서는 ‘착한 예능’ 정도 이미지로 잡혀 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선 ‘나쁜 교양’을 의미할 때 쓴다. 

엄밀하고 엄격해야 할 교양 프로그램마저 엔터테인먼트적으로 해석돼 본래 지향점에서 벗어나고 선정적인 자극 일변도로 가고 있다는 비판에서 시작된 용어다. 아닌 게 아니라 ‘스펀지’나 ‘비타민’ 역시 특정 사안에 대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해석을 집어넣느라 편파 및 왜곡 논란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한국 방송계는 21세기 들어 이러한 ‘연성화’ 혹은 ‘대중화’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기에 지금의 종편과 같은 상황까지 치닫게 됐다. 무엇이건 권위의 문턱을 낮춰 어려운 것을 쉽게, 딱딱한 것을 즐겁게 풀어내는 게 방송의 미래 방향이란 인식이 들어서버렸다. 

그러다보니 정치적 사안, 심지어 메르스 같은 과학적 사안에서마저 왜곡도 좀 하고, 막말도 좀 하며 선정적 분위기로 이끄는 게 새 시대 흐름에 걸맞는 방향이라 착각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각 종편들은 전반적으로 자사(自社) 프로그램들을 ‘착각’ 속에 만들어내고 있다. 어려운 사안은 본래가 어려운 사안이다. 쉽게 풀어내려 하면 할수록 사안의 복잡성은 단순화뿐만 아니라 왜곡의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좌파들이 만든 방송 트렌드 

엄밀한 사안 역시 본래가 엄밀한 사안이다. 다른 ‘의견’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추가되는 ‘정보’가 필요할 뿐이다. 그런 조건이 전복됐을 때 메르스 사태처럼 ‘의견’이 ‘정보’를 대체하는 언론 참사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볼 부분이 있다. 앞서 정연주 사장의 ‘인포테인먼트’를 소개했다. 정연주 사장은 한겨레신문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 시절 그야말로 ‘위에서 찍어 내린’ 사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시절 등장했던 ‘방송의 새로운 트렌드’는 인포테인먼트만 있었던 게 아니다. ‘착한 예능’ ‘착한 드라마’란 개념도 그때 처음 방송 용어처럼 쓰이게 됐다. 

시사나 교양 등 경성프로그램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섞어 연성으로 가고, 예능이나 드라마 같은 연성프로그램엔 공익적 차원을 가미해 준(準)경성으로 이끌어낸 게 바로 좌파정권 시절 방송 전략이었다. 

대중의 가지각색의 쾌락적 본성에 공공성, 공익성이란 기준을 삽입시켜 전체주의적으로 통제하고, 대신 엄격한 정치와 정책엔 쾌락적 요소를 가미해 안 그래도 스포츠 경기 수준으로 저급화 된 대중의 진영논리를 더더욱 극단적으로 악화시키는 것. 이것은 정확히 좌파세력이 원하는 대중선동 방향과 일치한다. 

결국 보수언론들이 주축이 된 종편들은, 21세기 좌파정권 시절 방송 권력이 만들어놓은 대중 선동 방향을 그대로 따라 자사(自社) 프로그램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이쯤 되면 종편들이 택한 방향성은 더 이상 ‘착각’이 아니라 ‘세뇌’ 단계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세뇌된 방송관 속에서 계속 별스럽게 착한 예능과 드라마, 짜증스러울 정도로 나쁜 보도와 시사가 반복되면 될수록, 보수를 표방하는 종편들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자기 발등을 자기가 알아서 찍고 있다는 뜻이다.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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