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이상한 통일 나눔 캠페인
조선일보의 이상한 통일 나눔 캠페인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8.11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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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제도권 범털 언론’ 조선일보 비판

조선일보가 통일 나눔 캠페인 진행할 때  김정은은 10월 경 ‘큰 거 한 방’ 도발설 나돌아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지난 6월 29일, 조선일보의 독자들은 한 기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외국 돕는 데 5년간 3조4000억 쓴 한국… 북 주민 돕는 데는 2%도 안썼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한마디로 왜 다른 빈민국의 주민들은 인도주의로 도우면서 북한 주민들은 도와주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조선일보는 기사 말미에 “우리 집 앞마당은 안 쓸고, 남의 집 앞부터 쓰는 격”이라고 말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의 발언을 붙였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라는 단체였다. 

북한의 빈곤한 주민들을 돕자는 조선일보의 취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이라는 아젠다를 그 정치적 동력으로 삼았다. 그런 동력으로 조선일보사의 인적(人的) 네트워크가 기반이 된 ‘통일나눔재단’이 설립됐고, 조선일보는 모금을 위한 통일 캠페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많은 인사들과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북한을 인도적으로 돕겠다는 취지는 좋은 것이다. 다만 그 ‘선(善)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다. ‘지옥에 이르는 길은 수많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영국 속담은 ‘대북(對北) 인도주의 지원’에 만큼은 예외일까. 

이런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가 제기한 ‘좋은 사회(Good Society)의 조건’을 생각해 보는 정치철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조선일보의 ‘통일나눔 캠페인’을 우려하는 이유는 조선일보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최근 사보(社報)에서 “좌와 우,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민간 통일 운동의 ‘허브’로서 통일 나눔 펀드를 모아 남북 교류협력과 동질성 회복, 통일 공감대 확산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단체를 지원할 예정”이라며 통일나눔재단의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왜, 갑자기, 이 시점에서, 조선일보가? 

그렇기에 우리는 의문이 든다. 과연 조선일보의 ‘이념 초월’의 좌우 합작 통일 운동은 바람직한 것인가 라고. 이런 우려는 조선일보가 대한민국 정치 사회의 주류, 그것도 독보적 위치에서 아젠다 세팅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선일보의 통일철학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해 봐야 한다. 

조선일보의 ‘통일 나눔 캠페인’의 기획 의도는 지난 7월 22일 주용중 정치부장이 쓴 ‘통일이 말만으로 되나’라는 칼럼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먼저 남북 간에 통일이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를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에서 통일을 바라는 힘(의식+제도)의 총합보다 통일을 바라지 않는 힘의 총합이 더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 통일나눔운동 캠페인을 소개하는 조선일보 기사(5월 27일자). 이념과 정파를 초월하겠다는 조선일보의 통일운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다시 말해 남한이나 북한 내부에서 모두 통일에 대한 추진력과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남북한을 둘러싼 열강들의 이해관계도 통일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해석이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 남한 국민들이 먼저 주도적으로 통일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칼럼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역사는 우연을 허용치 않는다. 꿈이 있는 민족이 개척해 나가는 게 역사다. 우리가 통일이란 꿈을 위해 작은 실천을 모아 나가면 한반도에서 저물고 있는 마지막 냉전(冷戰) 게임의 무게추가 반(反)통일에서 통일 쪽으로 서서히 기울게 될 것이다. 나눔이 통일의 시작이다.’ 

조선일보의 이런 장엄한(?) 선언이 전개되고 있는 즈음에 들려오는 북한 소식은 대조적이다. 미(美) 정보당국은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방미(訪美) 순방에서 ‘북한의 10월 도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올해 10월 노동당 창당기념일에 김정은이 ‘큰 거 한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들은 계속 있었다. 

지난 4월 7일 윌리엄 고트니 미군 북부사령관은 “북한은 이미 핵탄두를 소형화했고, 이를 북한이 개발한 이동식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인 KN-08에 장착해 미국 본토를 향해 발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언의 의미는 올해 10월, 북한이 미 본토에 도달할 만한 수준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과 4차 핵실험을 완료하고 ‘핵무기 실전 배치’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핵 정치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국내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의 통일대박, 통일나눔 캠페인은 어딘가 불안하다. 통일에 대한 철학 부재가 엄중한 시기에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국가론(Politeia)>에서 정치 엘리트들에게는 세상을 보는 데 있어 보편적이고 전체를 관통하는 질서, 즉 ‘파라데이그마(Paradeigma)’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플라톤은 그런 덕성을 ‘탁월함(Arete)’이라고 규정했다. 그러한 탁월함은 기회주의나 포퓰리즘이 아니라, 언제나 현실을 뛰어 넘어 ‘좋은 가치’를 선택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통일은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이 먼저 주어져야 하고, 그 대답은 특수한 역사성이나, 민족주의로부터 구해서는 안 된다. ‘남북한은 과거 하나의 민족이었기 때문에 통일은 좋다’라는 답은 우리가 통일을 추구하려는 당위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은 좋은 것이다’라는 생각은 자유와 민주에 대한 어떤 판단도 중지시킨다. 좋은 정치공동체(Good Polity)는 민족이라는 허위개념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를 함께 하는 시민들의 덕성(Virtue)이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사회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스트라우스는 그런 정치공동체를 ‘굿 소사이어티(Good Society)’라고 불렀다. 

그렇기에 우리는 통일이 바람직하다면 ‘어떤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 내에서 ‘좋은 통일’의 가치를 확인하고 공유해야 하는 것이 선결조건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전체성의 탐색으로 얻어진 아이디얼(Ideal)한 질서가 바로 플라톤이 말한 파라데이그마이고, 우리는 통일에 있어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라는 것을 안다. 

‘통일이 말만으로 되나’ 칼럼의 문제점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진보와 보수, 좌우를 초월한 통일의 철학적 기초가 ‘인도주의’라는 것은 주소를 잘못 찾은 것이다. 우리의 인도주의는 양심적 결단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런 인도주의를 북한 주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절대 빈곤층에 대해 결심하면 안 되는가. 조선일보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대한민국 절대빈곤층에 눈을 감더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주의를 실천해야 하는 통일의 가치와 정당성을 ‘통일 나눔’이라는 아젠다로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조선일보의 ‘통일 나눔’은 한국의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서로 경쟁적으로 선택하려는 ‘가치 있는 통일’을 변별하지 못한다. 그런 점이 정치공동체 내에 철학적 빈곤과 위기를 불러온다.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이 자유민주통일을 천명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대한민국 내 살아 있는 모든 권력은 이 헌법이 천명하는 통일의 근본적 당위 명제에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정치공동체(Polity)를 유지할 수 없다. 

조선일보가 통일 나눔 캠페인을 통해 지우려는 것이 있다면 바로 통일에 대한 ‘가치 논쟁’이다. 그런 점에서 마키아벨리적이다. 가치중립이나 가치독립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주의를 불러온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상대주의는 포퓰리즘으로 기울기 마련이고, 플라톤과 스트라우스는 이 점을 개탄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는 올바른 패러다임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론(公論)과 정론(正論)의 의미이고 지혜로운 자들은 그러한 공론장에서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통일 나눔 캠페인의 근거로 내세웠던 ‘통일이 말만으로 되나’ 칼럼의 한 구절을 보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지난달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8%는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통일 준비가 잘돼 있다’는 응답은 15.6%에 불과했다.” 

조선일보는 여론조사에서 ‘자유통일을 지지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언급을 생략했다. ‘통일을 위해 북한주민 돕기를 하고 통일기금을 마련하면 통일은 올 것’이라는 생각은 차라리 주술에 가깝다. 조선일보가 그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배경에 자사(自社) 이기주의적인 마키아벨리즘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것이다. 

대북(對北)유화적 사고는 국민과 엘리트들의 오판을 불러오기 쉽다. 조선일보가 통일 나눔 캠페인에 열을 올리는 지금, 미국의 정보기관은 ‘북한의 10월 도발’에 주목하고 있다. 미 의회는 올해 말까지 대북 제재를 계속하기로 결의했다. 포기하지 않는 적(敵)에 대한 유화적 태도는 언제나 오판을 불러왔다. 그러한 사례를 돌이켜 보자. 

“지금은 대북 포용정책을 포기할 시점이 아니며 제재를 가할 시점도 아니다.” 

1998년 12월 6일, 대통령 김대중은 청와대에서 미국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 조정관을 면담하며 그렇게 말했다. 북한의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이 불거지고 미사일 문제가 터져 나오는 상황이었고, 미국은 대북 제재를 검토하고 있었다. 대통령 김대중의 판단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북한의 지하의혹 시설은 핵시설로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4,5년이 걸린다”(경향신문 1998년 12월 8일자) 

▲ 북한에 나붙은 선전 포스터. 북한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햇볕정책이 몹시 그리운 것 같다.

돈을 주고 산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김대중은 김정일이 미국이 반대하는 핵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거대한 오판을 했다. 집권 1년차에 햇볕정책이라는 대북 유화노선을 걸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북핵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에서도 ‘포용 계속, 제재 불가’를 주장하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한 퍼주기에 나섰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연방제’를 골자로 하는 6.15 선언을 김정일과 채택했다. ‘한반도에 평화가 왔다’는 선동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정상회담 대가로 지불한 5억 달러를 제외하고, 김대중 정부에서 북한에 지원한 금액은 총 2조7028억 원에 달했다. 그 기간에 평화는 왔는가. 

햇볕정책 10년 동안 북한은 해마다 14차례 가량 대남 무력 도발을 일으켰다. 1998년 금강산 관광 사업의 출범을 전후하여 속초 앞 잠수함 침투 사건, 강화도 앞 간첩선 도주 사건, 여수 앞바다 반(半)잠수정 침투 사건 등이 발생했다. 두 차례 연평해전이 발발했다. 돈을 주고 산 평화는 평화가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한 술 더 떴다. 

“북한 핵문제는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평화적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북한도 체제 안정과 경제적 지원을 보장하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2003년 1월 18일, KBS,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듣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2006년 핵실험을 하는 그 순간까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지를 부정했다. 그리고 북이 핵실험을 한 후에는 ‘왜 인도는 핵을 가져도 되고, 북은 핵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인가’라고 북한 핵무기를 두둔하는 발언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북한에 지원한 금액은 5조6777억 원에 달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북한에 8조 원이 넘는 돈을 퍼주고 얻은 것은 장거리 미사일과 ‘서울 불바다’라는 핵무기였다. 

이러한 도발들은 모두 대북 유화책을 썼던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명박 정부는 남한에 대한 ‘보급투쟁’ 전략의 북한에 원칙으로 맞섰다. 천안함 도발이 일어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기념관에서 ‘보복’을 다짐했지만 실행에 옮긴 것은 없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영토가 북의 포탄에 피격되는 연평도 사건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의 인명이 손상됐고 재산이 불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보복을 하지 못했다. 대신 대북선전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원점 타격하겠다는 북한의 협박에 굴복해 전방의 대북방송 확성기를 껐다. 도발에 보복하지 않는 것도 유화책이고, 그러한 유화책은 억지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통일은 대박이다.” 

박근혜 정부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떤 통일이 대박인지 박근혜 정부는 분명하게 국민들에게 말한 바 없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핵-경제 병진’이라는 노선으로 대응했다.

핵 포기는 있을 수 없다는 선언이었으나 경제라는 것은 기껏해야 스키장이나 건설하고 선전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기에 남한의 대북지원단체들과 야권은 5·24 대북제재 조치를 풀고 북한과 협상에 나서라고 종용해 왔다. 

역사의 순리에 따르자 

그런 요구에 박근혜 정부는 다시 대북지원을 재개했다. 비료와 의약품이 북에 들어갔다. 유화책 분위기가 일면서 조선일보의 통일 나눔 캠페인이 시작됐다. 여기에 좌우, 진보-보수가 하나 되어 북한을 돕자는 취지다.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통일운동이고, 우리가 선택할 만한 통일운동인가? 

미국의 정보 당국자는 “중국이 북한 체제의 경제적 몰락을 허용할 것인가?”라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질문에 “그럴 가능성은 회의적”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결단을 하지 않더라도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점에서는 북한 체제의 모순은 그 모순에 의해 자기 변혁과 진화를 할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의 굶주림과 생활고를 참지 못하고 김정은 체제에 낫과 몽둥이를 드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면 그렇게 되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조선일보가 말하는 “역사는 우연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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