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R&D 예산 줄여서 복지를?
국가 R&D 예산 줄여서 복지를?
  • 미래한국
  • 승인 2015.08.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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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안] 국가 R&D 예산 감축 파장

전체 예산은 4.1% 증액, 국가 R&D 예산 2.3% 줄여 복지 강화는

미래 희생시켜 복지 확대한 그리스와 완전 닮은 꼴 

기업 성장 동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연구개발(R&D)이라고 한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R&D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성장 동력도 그 나라의 R&D 투자 여부에 달려 있다. 선진국들이 앞 다퉈 R&D 투자를 최대한 늘리려고 애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내년 우리나라 정부 R&D 예산이 늘어도 시원치 않은 상황인데,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보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6월 10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열고 아직 미확정 분야인 국방, 인문·사회 분야의 R&D를 제외하고 내년 19개 부처 373개 주요 과학기술 관련 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올해의 12조9350억 원보다 2.3% 줄어든 12조638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올해보다 무려 5% 정도 줄어드는 셈이다. 정부 R&D 예산이 축소되는 것은 1991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충격적인 결정은 과학기술인으로서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과학기술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두겠다”고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고, 현 정부 출범 이후 과학기술 기반의 창조경제를 내세우고 있으면서 관련 예산을 줄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를 단념한 것인가, 아니면 창조경제를 위해 과학기술의 역할이 미흡하므로 그 육성 방침을 포기한 것인가? 정부 R&D 예산 감축은 과학기술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 경쟁력 제고에도 심각한 차질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발견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의 전체 예산은 내년에 4.1% 증가할 것이라고 하는데, 유독 정부 R&D 예산이 2.3% 감소하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방향이다. 정부 R&D 예산은 국가재정순위에서 한참 뒤처졌다고 볼 수 있다. 

▲ 2017년 4월 가동되는 신한울원전 1호기에 설치될 APR140 원전.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원전 모델로서 한국표준형 원전보다도 발전 용량, 내진 능력 등 성능이 개선됐다.

25년 만에 국가 R&D 축소

과거의 정부 R&D 예산을 보면,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00년대 들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는 연평균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MB 정부에서도 그 증가율이 9.6%에 달했다.

반면에 박근혜 정부에서는 2014년에 3.5%, 2015년에 6.6%로 평균 5% 정도이고, 내년에는 이를 -2.3%로 하겠다는 것이다. 국방과 인문·사회 분야가 정해지면 내년 정부 R&D 예산규모가 밝혀지겠지만, 전체적으로 전년 대비 감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감축 이유를 “내수 경기 침체에 따른 세입감소, 복지·고용·보건·교육 분야의 재정지원 수요 확대 등으로 재정 여건이 R&D 투자 요구에 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정책 방향은 미래를 희생시켜 복지를 확대해 온 그리스의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재정부처의 고민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 근간은 과학기술 진흥이라고 볼 때, 정부 R&D 예산을 줄이는 것은 창조경제를 핵심가치로 하고 과학기술과 ICT를 국정목표로 두고 있는 정부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래부에 의하면 예산 감축은 “예산 규모를 늘리는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낭비요인 제거, 기술사업화 확대 등을 통해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물론 최근 불거진 일부 기관에서의 연구개발비 유용 사례가 낭비 요인으로 인식되어 예산 삭감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극히 일부의 연구비 유용은 선진국들에서도 존재하며, 이는 R&D 혁신 방안 등의 별개의 방법으로 바로잡을 일이다. 이를 이유로 예산 자체를 삭감하는 것은 빈대를 잡기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민간 부문 투자를 포함한 국가 R&D 투자액은 국내총생산(GDP)의 4.15%(2013년 기준)로 세계 1위이므로, 이제는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을 도모할 때라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 R&D 투자액은 미국의 9분의 1, 중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며, 일본이나 독일 등에도 크게 뒤진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국가 R&D 투자 중 정부투자비율은 24%(2013년 기준)에 불과해, 미국 37.1%, 독일 30.2%, 프랑스 37.3%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정부 R&D 투자는 정부의 의지를 보이는 상징적인 것으로, 아직은 미래를 위한 투자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시점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정부는 R&D 예산 중에서 76%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부분의 R&D 세제(稅制) 지원도 축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기재부는 기업의 R&D 인건비나 교육비, 물품비, 설비투자 등에 대해 연간 3조5000억 원 규모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기재부는 R&D 세액공제를 줄이는 방안을 올해 세제개편안에 담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R&D 투자도 당연히 줄어들 것이고, 내년 국가 R&D 투자는 GDP 대비 확실히 4%를 하회할 것이다. 

2017년까지 국가 R&D 투자를 GDP 대비 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R&D 투자도 늘리고 민간의 R&D 세제 지원도 당분간 지속되어야 한다.

영국이 산업혁명 이후 250여 년 간 성장한 분량을 한국은 지난 50년 만에 압축 성장을 이뤘다. 이러한 압축 성장의 배경에는 우리 정부와 민간부문의 과감한 R&D 투자와 기업가 정신이 있었으며, 이를 지속적으로 추구하여 나가는 것이 미래 발전을 담보하는 길이다. 

예산 줄여 질적 성장이 가능한가? 

예산 감축의 원인으로 지적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R&D 예산이 감축되면 질적으로 성장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예산 감축은 과학기술인들의 사기 저하를 초래하여 도리어 질적 성장을 저해할 소지가 크다. 질적 성장은 효율적인 R&D 혁신방안으로 도모해야 하며, 예산 감축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최근에 과학기술분야의 생산성이 낮다는 주장이 많은데, 이것은 장기적 회임기간을 가지는 과학기술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기술혁신투자에 따른 생산성 증가는 평균 14년이 지나야 제대로 발현된다고 하지만, 정부의 과학기술 투자는 그 회임기간이 더 길어서 최소한 20년을 봐야 한다. 

정부의 R&D 예산 집행과 관련하여 지난 6월에 정부에서 발표한 ‘정부 R&D 혁신방안’도 대학과 출연연(硏)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연구자 중심의 자율형 연구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이 혁신방안에서 “대학은 신기술 창업, 출연연은 중소기업 지원으로 연구개발 결과의 사업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방향보다는 대학은 소규모의 창의적 연구를 담당하고 교육 활성화에 주안점을 두며, 출연연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대학이 할 수 없는 대형연구와 국가의 전략연구 등을 담당해야 한다. 

또 정부 R&D 추진체계의 거버넌스도 비전문가인 관료는 손을 떼고,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처럼 민간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비전문가인 관료들이 과제까지 사업예산 심의하듯이 해서는 미래지향형 선도적 연구를 기대하기 어렵다. 

전체 예산규모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 같은 곳에서 부문별로 정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를 연구할 것인지는 한국연구재단, 한국산업기술평가원 등에 대폭 자율권을 주고, 부문별로 세부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공정하게 정해서 연구를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꼭 해야 할 도전적 과제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며, 연구 생태계가 건강해지며, 선의의 경쟁원리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R&D 예산은 기초연구, 응용연구, 개발연구로 구분되어 있는데, 2013년 이들 연구비의 비중은 각각 34.1%, 22.1%, 43.8%이었다. 기초연구는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기초과학 또는 기초과학과 공학, 의학, 농학 등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이론과 지식 등을 창출하는 연구 활동”으로 정의되어 있다.

‘후퇴 금지의 원칙’

기초연구는 우리나라가 과거 추격형(fast following)에서 미래 선도형(first moving)으로 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며, 기초원천 기술 개발의 핵심적인 지식을 제공해 준다. 

정부는 기초연구비의 비중을 2017년까지 40%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부 R&D 예산이 증액되는 가운데 기초연구비 비중이 커지는 것은 의미가 있으나, 정부 R&D 예산이 줄어들면 40%라는 목표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기초연구:응용연구:개발연구의 비중을 우리나라는 4:2:4로 갈 계획을 잡고 있으나, 대부분 선진국들의 기초연구 비중은 50% 근처다. 우리도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개발연구는 전략적인 국책연구를 제외하고는 정부 R&D로 하기보다는 민간기업의 R&D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초연구를 더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들이 창의성 제고를 위해 일률적인 지원에서 탈피하여 연구자 친화적이고 연구자 중심의 맞춤형 지원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연구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여 연구자가 연구기간과 연구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유연한 지원 방식이 조속히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한 조직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인 R&D 예산은 ‘후퇴 금지의 원칙(no backsliding)’을 따르는 것이 상식이다. 이러한 원동력을 감축하면 그 즉시 동력이 상실될 가능성이 있다. 마치 달리는 자전거의 속도를 갑자기 낮추면 자전거가 쓰러질 위험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번에 발표된 국가과학기술심의회의 정부 R&D 투자규모 발표는 앞으로 기획재정부의 예산 확정 단계나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R&D의 국가재정순위를 높여서 R&D 투자를 최소한 정부 예산 증가율과 유사한 수준으로 상향조정해야 한다. 기획재정부와 국회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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