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지도자가 그립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지도자가 그립다
  • 미래한국
  • 승인 2015.08.3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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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가졌던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고위층의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 한다. 특히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확고해져 오늘날 서양 사회의 아름다운 풍습으로 여겨져 왔다. 

1·2차 세계대전 시 영국의 고위층 자녀들이 재학하던 이튼 칼리지 출신 중 2000명 이상이 전사(戰死)했고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때에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아들 앤드류가 전투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6·25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그중 35명이 전사 또는 부상을 당했다. 미8군 사령관으로 낙동강 방어선 사수에 공헌한 월튼 워커 장군은 그의 아들 샘 워커 미 24사단 중대장이 전투에서 공로를 세워 맥아더가 내린 훈장을 수여하러 가던 도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샘 워커 대위는 부친 사망 소식을 듣고도 한국에서 계속 싸우겠다고 했지만, 부자(父子)의 사망을 염려한 맥아더 장군은 샘 대위에게 부친의 유해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오라고 명령함에 따라 전장을 벗어났다. 그는 후일 육군 대장까지 진급했다. 

그의 후임으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 밴 플리트 2세도 미 공군 중위로 한국전에 참전하여 평양 인근 순천지역 야간폭격을 위해 출격했다가 1952년 4월 2일 실종되었다.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을 찾는 수색작전은 또 다른 희생만 낳을 것이라면서 즉시 중단시켰다. 

당시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는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전쟁 최전방을 방문했을 때 사령관에게 전투 현황을 브리핑 받고는 “내 아들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인제 최전선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자 아이젠하워는 “내 아들을 전선에서 철수시키라”고 했다.

아이젠하워의 설명이 분명했다. “내 아들이 포로로 붙잡힐 경우 적들은 내 아들을 갖고 흥정을 걸어 올 걸세. 그때 미국 여론이 팽배해질 것이고, 우리는 내 아들을 구하기 위해 훨씬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을 것일세.”

장군의 전략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켜 그의 말대로 후방으로 배치했다.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도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마오는 시신 수습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했다. 

영국의 왕위 서열 3위 해리 왕자가 아프가니스탄 최전선에서 10주간이나 대(對) 탈레반 전투작전을 수행했다. 영국은 모병제라서 해리 왕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에 따라 그의 조부(祖父) 에딘버러 공(엘리자베스 여왕 남편)은 2차 세계대전 때 해군으로, 부친 찰스 왕세자도 해군으로 복무했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박주신의 병역 비리 미스터리는 진위 여부를 막론하고 듣는 이들을 매우 불쾌하게 만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는 신실하고 헌신적이며 책임감이 투철할 뿐 아니라, 무사기한 희생정신을 갖고, 백성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도덕적 고상함과 높은 비전을 갖고, 지혜와 믿음이 충만하며 황금만능주의와 소욕을 버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돈보다 보람과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를 추구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이루는 데 앞장서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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