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가들 중국 전승절 외면하는 이유
서방국가들 중국 전승절 외면하는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5.09.0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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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박근혜 대통령,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중국 공산당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勝戰)’한 적이 없기 때문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공산당이 주최하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지금까지 외신 보도를 종합해 보면 행사에 참석하는 외국 국가원수는 러시아, 중앙아시아 일대의 구(舊) 소련 국가들, 이집트 등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이런 정황은 지난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 전승절 행사 때도 비슷했다. 하지만 세계 주요 국가원수들이 러시아 전승절 참석을 보이콧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공산당의 전승절은 그런 일이 없음에도 서방 국가 정상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 2014년 5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전승기념일 행사 때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각국 정상들.

과거 공산주의를 겪었던 국가들은 저마다 전승절을 기념하고 있다. 러시아는 1945년 5월 9일부터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식’을 치러 오고 있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수천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다. 구 소련 시절에는 동구권 국가들 모두가 5월 9일을 국경일로 정해 ‘반(反)파시즘 항전 승리 기념일’을 축하했다. 

소련이 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 열병식을 벌인 것은 1945년 6월 24일이 처음이었고, 이후에는 매년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병식을 갖고 있다. 소련에 속해 있던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도 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전승 기념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2014년이다. 그 전까지는 전승 기념일에 별 다른 행사를 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중국 공산당은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勝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전승절은 9월 3일이다. 소련을 이뤘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나치 독일과의 승전을 기념한 반면, 중국 공산당은 1945년 9월 3일, 일제가 미국 등 연합군 대표 앞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날의 다음 날을 기념한다. 

하지만 일제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을 때 중국 공산당은 연합군에 속해 있지 않았다. 당시 중국을 대표하여 연합군으로 싸웠던 나라는 현재의 대만, 즉 자유중국이었다. 장제스(蔣介石) 정부는 2차 세계대전 중반부터 미국, 영국, 소련과 함께 일제와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맞서는 연합국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 것도 장제스 총통이었다.

2014년부터 전승절 행사 시작한 이유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공산당을 이끌던 마오쩌둥(毛澤東)은 장제스 총통의 국민당 정부를 와해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2차 국공합작 이후 결성한 동북항일연군의 활동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것도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국민당 정부의 뒤통수를 계속 쳤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 법적으로는 반란군인 ‘팔로군’을 이끌고,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소련 88여단’을 만들어 일제와 싸웠다. 실상은 일본군과 싸우기 보다는 민가를 약탈하고 장제스 정부의 뒤통수를 치며, 중국 공산화에 열을 올렸다. 

이후 일제가 패망한 뒤에도 중국 공산당은 연합군과 함께 전후(戰後) 처리를 논의하는 데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국민당 정부를 공격하며 중국 본토 공산화에 열을 올렸다. 

마오쩌둥은 1949년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몰아내고 공산당 정권을 수립한 뒤에는 소련과 함께 세계 공산화 활동에 열을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김일성의 남침을 간접 지원한 것도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이었다. 

1950년 말, 김일성이 유엔군에 의해 패퇴할 조짐을 보이자, 마오쩌둥은 ‘인민지원군’이라는 그럴싸한 명칭으로 위장해 인민해방군 300만 명을 한반도로 보내 김일성 정권을 살려냈다. 중국 공산당이 보낸 ‘인민지원군’ 때문에 전쟁은 2년을 더 치르게 됐고, 민간인과 군인 사상자 수도 급증했다. 

중국 공산당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았는지 2013년 이전까지는 전승 기념일을 공휴일로 지정하거나 성대한 행사를 열지 않았다. 러시아 등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들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2차 세계대전 당시와 일제 패망, 6·25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가 거의 사라지자,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이 일제와의 전쟁에서, 나치즘과 파시즘 등 전체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선전하고 나섰다. 

동아시아에서 ‘진짜 전승절’ 행사를 여는 나라는 대만이다. 대만은 1936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침략군, 만주군과 싸웠던 것을 기념해 매년 7월 4일 승전 기념 열병식을 갖는다. 지난 7월 4일에는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중국 공산당이 대만의 ‘진짜 전승절’ 행사를 제치고, 초대형 행사를 기획하는 이유는 ‘하나의 중국’ 정책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은 이번 전승절 기념행사를 통해 ‘대국굴기(大國起)’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도 이런 의도를 간파하고 있다. ‘전승절 기념행사’ 이후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패권 전략을 드러낼 계획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중국은 9월 3일 전승절 행사에 서방 국가 정상들을 대거 초청했으나 거의 대부분의 나라 정상들은 참석하지 않는다. 이유는 중국 공산당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중국군 열병식 장면.

“싸우지도 않았는데 무슨 전승?” 

오바마 정부가 중국의 패권 전략을 적극 견제하고 나선 것은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올라서면서부터다. 시진핑이 처음 한 일은 동지나해와 남지나해에서의 패권 전략 강화였다. 

시진핑은 집권 이후 국방비를 1000억 달러 이상으로 대폭 늘리고, 최신형 ICBM과 차기 탄도탄 탑재 핵잠수함, 미국에서 훔친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스텔스 전투기, 최신형 방공 구축함 개발 등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이와 함께 동지나해와 남지나해에서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어선들을 침몰시키거나 나포하면서 힘을 과시했다. 급기야 2015년 들어서는 남지나해의 센카쿠 열도 인근에 거대한 인공섬을 만들어 병력을 주둔시키기 시작했다. 

이 같은 행동은 오바마 정부가 더 이상 중국 공산당과 친밀감을 표시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시진핑이 2015년 9월 3일 전승 기념행사에 세계 50개국 정상들을 초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주로 구 소련 소속 국가들) 외에는 불참을 통보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전승 기념행사에 불참할 명분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연합국의 일원으로 전후 처리와 재건을 논의한 나라 가운데 중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공산당이 주최하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을 통해 해방된 나라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연합국에 속한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 등의 노력으로 미 국무부가 상하이 임시정부 소속 광복군을 미 정보기관 OSS에 위탁해 한반도 진공작전에 투입하도록 훈련시켰고, 소수의 광복군은 영국군에 배속돼 버마(現 미얀마) 전선에서 일제와 싸웠기 때문이다. 해방은 연합국인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이뤄졌다. 

중국 공산당은 1936년 제2차 국공합작을 통해 동북항일연군을 결성, 일제와 싸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중국 공산당이 일제와 싸운 전적은 다른 연합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미미하다. 동북항일연군을 결성하기 전이었던 1934년부터 1935년 사이 마오쩌둥은 공산당 세력을 이끌고 중국 전역에서 ‘대장정’이라는 이름의 도피생활을 했다. 

이후 결성된 동북항일연군에는 소련의 지시를 받는 세력과 중국 공산당 세력이 뒤섞여 권력투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때문에 실제 항일 투쟁은 장제스의 국민당 군 몫이었다. 

제대로 된 항일투쟁도 못했던 동북항일연군은 1939년부터 일제의 괴뢰국가인 만주군 간도특설대의 공격을 받아 1942년에는 거의 소멸됐다. 이 시기  소련은 동북항일연군의 잔당 세력을 불러들여 하바로프스크에서 제88여단을 창설한다.  

태평양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1942년부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중국 공산당이 내세우는 동북항일연군의 대일(對日) 항쟁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중국 공산당이 ‘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는 것은 당시 연합국 등 서방 국가들이 보기에는 웃기는 일이다. 이런 행사에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면, 서방 국가들은 한국을 어떤 눈으로 볼까. 

최근 들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반일친중(反日親中)’의 외교 전략은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비슷해 보인다. 이런 모습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일본과는 점점 더 거리를 두는 반면 중국과 호흡을 맞추려는 행태를 보일수록 미국은 물론 아·태 지역의 서방국가들은 한국을 ‘친중 국가’로 분류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 북한을 움직이고 남북통일을 도모하고 싶다면, 그 전에 한미 동맹과 한미일 삼각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라.”

이것이 안보 전문가들이 노무현 정권 때부터 10년 동안 반복해 온 충고다. 박근혜 정부는 이 충고를 가슴 깊이 새겨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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