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양극화가 악습의 근원
노조 양극화가 악습의 근원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5.09.1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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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부자 노조와 가난한 노조의 갈등과 대립

대한민국 노조는 부유한 노조와 가난한 노조로 양극화되어 있다.

노사정 회의에 참여하는 노동계는 전체  근로자의 7.6%에 불과한 귀족노조

국가 간에는 경쟁력이 존재한다. 그런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기관이 세계경제포럼(WEF)이다. 지난해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은 세계 144개 국 가운데 26위로 평가됐다.

이 정도면 선진국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는 어떨까. 그 전망을 암울하게 만드는 성적표가 있다. 한국 노동시장의 효율성은 86위, 노사 간 협력은 132위로 노동부문은 사실상 낙제점에 머무르고 있다. 

노동은 자본과 함께 생산에 필요한 본원적 요소다. 하지만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이미 1960년대에 미래에는 지식이 부(富)를 창조하는 지식사회가 될 것이며, 이때 근로자는 육체보다는 지식을 활용하는 ‘지식 근로자’로 변모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반세기 전 드러커의 예측은 오늘날 놀랍도록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과거와 달리, 근로자의 지식이 부를 창출하는 근본자원의 성격을 띠면서 우리는 이제 노동을 ‘휴먼 캐피털’이라고 부르는 시대에 왔다.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 노사관계로는 휴먼 캐피털인 노동을 더 이상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라 부른다. 최근 정부가 노동개혁을 강력히 추진하려는 배경에는 이런 인식이 자리한다. 144개국 가운데 132위를 달리는 지금의 노사관계로는 단 한 걸음도 미래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개혁은 번지수가 틀렸다는 지적이 있다. 노사정(勞使政)회의에서 노동계를 대표하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조는 대한민국 근로자의 7.6%만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대한민국 노조가 실제로는 대기업과 공사 등과 같은 귀족노조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이를 ‘1차 노동시장’이라 부른다. 

1차 노동시장의 특징은 ‘스펙중심, 고임금, 고용안정’ 등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하는 2차 노동시장은 ‘저임금, 고용불안’이 특징이다. 이런 현상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고착화되어 왔다. 

사회보험 가입률에서도 유노조 대기업 정규직 남성 근로자의 4대보험 가입률은 평균 76%에 달하는 반면 무노조 중소기업 비정규직 남성 근로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이보다 낮은 50%대를 기록하고 있다.

아울러 유노조 대기업 정규직 남성 근로자의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 유급휴가 적용률은 모두 77%를 상회하는 적용률을 보이고 있지만 무노조 중소기업 비정규직 남성 근로자의 적용률은 46~53%대에 그치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회의는 대기업과 공사 근로자들의 처지만을 대표할 뿐, 중소기업이나 노조가 없는 기업들의 근로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노동계는 이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노조는 부유한 노조와 가난한 노조로 양극화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노사정회의에 참여하는 노동계는 전체 근로자의 7.6%에 불과한 귀족노조들이다. 이들 노조원들은 높은 임금과 정규직 보호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조원 자녀 우선 취업’과 같은 고용세습을 주장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지독한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우는 구호는 ‘노동자의 생존권’이다. 

최근 노조 파업에 맞서 직장폐쇄를 단행한 금호타이어의 경우 노조원의 연봉은 평균 6380만 원에 달했다. 이들은 회사 실적이 나오기도 전에 임금인상을 주장하며 장기파업을 단행했다. 이런 문제는 노동개혁의 타깃이 어디인지를 말해준다. 바로 정규직 중심의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라는 이야기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 근로자로 구성된 1차 부문은 법제도의 보호와 더불어 강한 노조의 보호를 받고 있고, 연공형 임금체계는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있다. 결국 노동시장에서 자유로운 노동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무능한 근로자를 해고하기도 어렵지만, 중소기업에서 전문화된 인력이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따라서 이 부분의 처방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에 대한 과보호를 완화하고 임금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해고 규제 완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성과중심 임금체계 도입 등이다. 

약탈협상 

반면에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 등에는 불법근로와 임금체불을 막기 위한 강력한 정부의 감독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 근로자의 약 80%가 중소기업에 고용되어 있고, 이들 중소기업들 가운데 벌어서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4개 중 1개라는 점에서 2차 노동시장에서 일어나는 고용불안과 연간 1조 원의 임금체불이 국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민주노총과 같은 전투적 노조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주창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정규직 근로자인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희생시키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해 왔다. 이 문제는 정부가 결코 협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되는 문제였지만 결국 포퓰리즘에 굴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OECD 국가들은 비정규직을 금지하기 보다는 비정규직을 허용하되 동일가치노동의 경우 정규직과 임금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정규직 보호를 이유로 아예 비정규직 채용을 막는 수준이다. 노조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야당과 여당이 서로 경쟁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입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는 아예 고용을 하지 말라는 명령과 다를 바 없게 된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는 정규직의 임금조정과 해고 요건이 법에 의해 대단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규직 노조가 단체협상에서 10%의 임금 인상을 요구해 타결되면 당연히 사측은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을 10%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한마디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몫을 가져가는 ‘약탈협상’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사측과 정치권에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요구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되면 노조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겠지만, 그것은 회사가 망하든 말든 관계치 않겠다는 입장과 같다. 

산별노조로 이행하지 못하는 이유

이렇듯 1차 노동시장을 대표하는 노조와 2차 노동시장의 근로자들 간에는 ‘골육상쟁’의 모순이 존재한다. 실제로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 간에 벌어지는 모순은 기업 경영에 심각한 복잡성과 비효율을 낳고 있다.

정부가 노조와 결탁해 대기업의 비정규직 고용을 원천적으로 불가능도록 막자, 기업들은 비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외주 하청을 늘리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본청에서 생산성을 상회하는 과도한 임금 인상 교섭이 타결되면 하청기업에 돌아갈 몫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 문제를 둘러싸고 원청기업-하청기업-하청노동조합 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들면서 대기업들은 대기업대로, 하청 중소기업들은 중소기업대로 경영에 불확실성이 증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귀족노조가 차지하고 있는 1차 노동시장에서 정규직 보호를 포기하는 것 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대기업은 생산기지를 해외로 내보내는 선택만 남을 뿐이다. 

노동시장 양극화는 우리나라 노조가 유럽처럼 산별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로 구축되어 있는 원인이 크다. 유럽에서는 기업노조보다는 산별노조가 활성화되어 있고, 산별노조는 정당정치에 참여해서 사회적 협약체를 구성한다. 이를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라고 부르며, 이는 유럽형 노사정회의의 본질이 된다. 

이러한 산별노조 하에서는 기업과 노조가 개별적으로 충돌할 이유가 없다. 산별노조에서 근로자는 기업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노조에서 정체성을 갖는다. 동시에 산별노조 복수화 되어 서로 경쟁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노동전문가들은 노사관계가 본질적으로는 이런 산별노조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도 산별노조를 중요한 추진 사업으로 규정하고 매년 보고를 하고 있지만 그 진척은 매우 더디다. 그러한 이유가 있다. 

산별노조 하에서 노조 간부들은 더 이상 기업노조 간부로서 누리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대기업 노조의 경우, 노조위원장은 사장과 동급으로 노사관계에 임하기 때문에 기업노조는 기업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와 파업 시 기업이 건네주는 무마비와 같은 것이었다. 

동시에 기업노조는 외부 감사가 의무가 아니어서 현대차 노조와 같은 거대 기업노조라도 노조비 사용은 노조 핵심 간부 몇몇 이외에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 노조위원장 후보들은 저마다 ‘회계 투명성’을 내세우지만 자발적으로 외부감사에 맡기겠다는 약속은 나오지 않는다. 

특히 기업별 노조 하에서 노조 간부들은 회사 간부들과 결탁해 취업 브로커로서 취업 장사를 했다가 법의 처벌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회사 경영진의 약점을 잡을 수 있다면 그 회사는 사실상 노조가 좌우하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에 빠져든다. 실제로 국내 재벌기업들 가운데 노조가 비대하고 강성해진 기업들의 경우 기업 오너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비판도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노조 편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노사 관행으로 오히려 산별노조보다 기업별 노조가 노조 간부들로서는 입맛 당기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기에 요란한 산별노조 구호 속에서도 실제로는 산별노조 추진 움직임은 미미하다. 물론 기업들도 정치세력화 되는 산별노조보다는 적당히 구슬릴 수 있는 기업별 노조를 선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우리 노사 간에 기업별 노조가 그 방향이라면 노사협약은 노사 간에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정상이다. 이를 ‘사적 자치의 원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노총이 단위별 노사협상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는 산별노조가 아니라면 기업별 노사관계에 상위노조의 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노사문제에 관한 한 우리 정부는 노조 편에 경도되어 있다. 표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박근혜 정부가 돌파해 낼지는 미지수다.

다만 올해 할 수 없다면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은 노동개혁을 포기하는 쪽으로 갈 것은 분명하다. 그것도 한 국가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현실정치를 뛰어 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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