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다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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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5.09.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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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전문가 긴급제언] 변죽만 울린 노사정위원회 대타협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경제학)

‘노사정 대타협’은 노조에 대한 항복 문서, 독일의 ‘어젠더 2010’ 벤치마킹 필요

9월 13일의 노사정(勞使政) 합의를 ‘노사정 대타협’이라 부르며 노사정 위원장, 정부, 박근혜 대통령이 축배라도 드는 분위기다. 그것이 왜 ‘대타협’이란 말인가?

이 ‘대타협’에 대해 남성일 교수(서강대)는 “노동개혁이 아니라 개악(改惡)으로 가는 합의”라고 말했고, 박기성 교수(성신여대)는 “최악의 합의이고 노조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한 전문가는 TV 토론에서 카메라 앵글이 비켜가자마자 ‘대타협’을 서슴지 않고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 지난 9월 5일 오전 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노사정 대표들이 노사정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필자도 참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변죽도 울리지 못한 합의’다. 그것은 왜 ‘대타협’이 아닌가?

첫째, 합의된 내용은 노동개혁을 전제로 노사정위원회가 2014년 12월 23일에 채택한 ‘노동시장 구조개선 기본 합의문’에 포함된 5대 의제 가운데 하나로, 기껏해야 ‘일반해고 기준 완화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가능케 하는 취업규칙 변경’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말이 합의이지 ‘노조에 대한 항복 문서’이기 때문이다. 남성일 교수는 “노사정위원회는 법에 명시된 협의기구를 넘어서 이제는 노조와 합의가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합의기구로 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 규제 강도는 박근혜 정부에서 157개국 가운데 15위!

‘9·13 노사정 합의’로 정부가 축배를 든 이틀 후인 15일 프레이저 인스티튜트가 발표한 자료는 쇼킹 그 자체였다. 박근혜 정부 첫 해인 2013년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가 약하기로 157개국 가운데 143위, 달리 말하면 노동시장 규제가 심하기로 157개국 가운데 15위였다.

이는 노동시장 규제가 얼마나 악화되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노동시장 규제는 약하기로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58위(123개국 중),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81위(127개국 중), 2006년 노무현 정부 말에 107위(141개국 중),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128위(141개국 중), 2012년 이명박 정부 말에 134위(152개국 중), 그리고 2013년 박근혜 정부 첫해에 143위(157개국 중), 이처럼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2013년 노동시장 규제가 한국보다 심한 나라는 노르웨이(145위), 베네수엘라 등 남미 5개국, 앙골라 등 아프리카 8개국, 모두 합쳐 14개국뿐이다.

선진국 가운데 노동시장이 가장 경직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은 어떤가?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가 약하기로 58위로, 74위의 독일을 앞섰다. 이 같은 추세는 2008년까지 이어져 2008년 한국은 128위, 독일은 129위를 나타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순위가 반전(反轉)되기 시작하여 불과 5년 후인 2013년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가 약하기로 143위로 악화된 반면 독일은 79위로 개선되었다. 참으로 놀라운 반전이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독일은 노동개혁으로 ‘일자리 기적’ 이뤄

지속적인 경제 침체를 우려한 좌파 정당인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3년 3월 ‘독일 자체가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분배 중심의 사회주의 정책을 버리고 성장 중심의 시장경제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하고,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인 ‘어젠다 2010’(Agenda 2010)을 도입했다.

‘어젠다 2010’은 노동시장, 사회복지제도, 경제 활성화, 재정, 교육 및 훈련에 관한 개혁을 골자로 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2004년 1월부터 시행되었는데 2004년 말에 정권을 잡은 메르켈은 2005년부터 시장경제 정책과 함께 ‘어젠다 2010’을 추진하여 독일경제를 살려냈다.

슈뢰더는 2015년 5월 21일 전경련에서 가진 ‘독일 어젠다 2010의 경험과 한국에 주는 조언’이라는 강연에서 노동개혁 추진 과정을 소개했다. 그는 여기서 ‘하르츠 위원회’를 구성해 노동개혁안을 만들어 성공했다고 밝혔다. 독일의 주요 노동개혁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0인 이하의 소기업들이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하여 신규채용을 늘렸다.

• 파트타임과 임시직(비정규직) 규제를 완화하여 이 분야에서 일자리를 늘렸다.

• 실업자들이 취업에 나서도록 자극책을 마련했다.

• 실업급여 기간을 32개월→12개월로 줄여(55세 이상은 18개월) 취업을 촉진했다.

• 취업 알선 거부자에게는 실업급여 지급을 중단하여 일자리를 고르지 못하게 했다.

• 창업 이후 4년까지는 고용계약기간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하여 단기계약근로자 채용을 촉진했다.

• 산업별 단체협상으로 이뤄졌던 임금협상을 기업별 협상으로도 가능하게 했다.

독일 노동개혁은 어떤 성과를 가져왔을까? 대표적인 성과는 실업률 감소와 고용률 증가다. 독일 실업률은 2005년 11.3%로 OECD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현재 4.7%로 낮아졌다. 실업률은 10여 년 동안에 무려 6.6%포인트나 감소했다.

고용률은 2005년에 65.5%였는데 2014년 말경 74%로, 9년 동안에 무려 8.5%포인트나 증가했다. 과문인지는 몰라도, 이런 나라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OECD는 한 보고서에서 독일 노동개혁의 성과를 ‘독일의 일자리 기적(German job miracle)’이라고 불렀다.

진정한 노동개혁에 대한 제언 : 독일을 벤치마킹하여 다시 하라

독일의 노동개혁은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첫째, 노사정위원회를 제쳐놓고 정부 단독으로 노동개혁을 하라. 노동개혁을 한답시고 정부가 노조에 항복문서나 써서 바치는 노사정위원회는 아예 없어져야 한다.

노사정위원회를 도입해 노동개혁을 시도한 김대중 대통령의 노동정책은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실제로 민노총은 김대중 정부에서 1998년 한 번만 참여했을 뿐 지금까지 밖에서만 겉돌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으로 한국노총이 참여하고는 있지만 반쪽 노조 참여로 노동개혁을 한다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마거릿 대처는 노사정위원회 격인 ‘소득정책 관련 기구’를 없애버린 다음 노동개혁을 추진하여 성공했다. 그런 방법으로 성공한 슈뢰더가 한국에 와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값진 조언을 주지 않았는가!

그는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노조, 사측이 한 테이블에 모여 의논했지만, 노사가 모두 적대적인 위치에서 정부에 요구만 했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정부가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개혁의 당위성이 충분했기 때문에 ‘하르츠 위원회’라는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개혁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을 한 배경에 대해 그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와 정부 수반이 개혁을 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다”면서 “개혁이라는 것은 밑에서 위로 갈 수 없다. 개혁은 위에서 아래로 가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참으로 값진 조언이다.

둘째, 노동개혁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된 노동정책으로 한국 노동시장은 지금 경직될 대로 경직되어 있다. 노동시장 경직의 주범은 김대중 대통령이 도입한 정규직 과보호라고 필자는 믿는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워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에 도입한 정리해고법은 근로기준법 23∼26조와 관련 시행령이 소상하게 보여주듯이, 한국에서 정규직 해고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OECD 보고서는 한국은 정규직 해고가 회원국 가운데 포르투갈 다음으로 어려운 나라라는 것을 밝혀준 바 있다.

한국이 추진해야 할 노동개혁은 변죽도 울리지 못한 일반해고 기준 완화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가능케 하는 취업규칙 변경이 아니다. 노동개혁의 핵심은 정규직 과보호 완화, 비정규직 보호 완화, 파견근로제 전 업종으로 확대,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등이다.

이 가운데 정규직 과보호는 ‘청년 실업 증가, 비정규직 증가’의 주범이다. 정규직 과보호는 무엇보다 신규 채용을 막는다. 따라서 청년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서 비정규직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포르투갈 다음으로 정규직 보호가 심한 나라 한국이 이 이슈의 표본이다.

‘9·13 노사정 합의’를 대타협이라 부르며 축배를 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규직 과보호 완화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면 2014년 12월 23일 노동시장 구조개선 기본 합의문에 포함된 5대 의제 14개 세부 과제라도 대상으로 삼아 노동개혁을 다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9·13 합의 내용인 ⓵‘일반해고 요건이나 취업규칙을 바꾸는 것’을 제외한 5대 의제는 다음과 같다.

② 기간제 사용기간을 4년 연장하거나 파견업무를 확대하는 것

- 35세 이상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 60세 이상 근로자는 파견근로 업종을 현행 33개에서 전 업종으로 확대

③ 근로시간 단축을 당장 시행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

④ 정년 연장 및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는 것

- 정부안은 59세부터 임금을 낮춰 가는 것

⑤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

- 정부안은 연공급을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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