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해결 위한 ‘신(神)의 한 수’
청년실업 해결 위한 ‘신(神)의 한 수’
  • 강혜련 편집위원
  • 승인 2015.09.23 14: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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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길

존경받는 기업에 대한 시대의 트렌드는 ‘돈 잘 버는 기업’보다

‘더 많이 고용하는 기업’

▲ 강혜련미래한국 편집위원·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요즘 대학 강의실의 풍경 중 하나는 출석을 부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석하는 학생이 좀처럼 없고 불성실하거나 불량스런 행동을 보이는 학생도 거의 없다.

모두들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졸업하면 갈 데가 없다는 것이 웬 말인가요?”하는 표정들 같아 착잡하고 안쓰러운 마음이다.

일자리 문제는 전 세계가 고민하는 사회적 이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유독 청년실업 문제를 국가적 위기로까지 느끼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우선 대학입시를 위해 재수하던 패턴이 취업을 위한 재수, 삼수로 이어지는 사회적 양상의 심각성 때문이다. 비정규직(인턴이나 계약직 등)과 정규직 간에 넘나드는 유연성이 없다보니 일단 정규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기 때문에 반복 시도하면서 패배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해가 갈수록 기업들의 신규채용은 줄어들고 취업에 실패한 청년 실업층이 계속 누적되다 보니 지난해까지 한 자리에 머물던 청년 실업률 평균치가 올 상반기 10%에 이르고 있고, 청년들이 체감하는 실업률은 20%를 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것은 단기적, 단편적 처방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성장 잠재력의 침체에서 비롯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년실업이 장기화되면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는 등 개인적 삶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미래 세대가 업무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여 노동력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는 데 있다.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은 미래 산업 전망을 불안하게 보기 때문에 채용을 축소하는 한편, 실질적 성과를 내기까지 상당기간의 교육 훈련이 요구되는 신입사원 보다는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경력자 채용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그 동안 우리나라가 고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노동력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청년실업 문제가 국가의 장기적인 인적자본 축적을 방해하고, 나아가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지난 9월 3일 임금피크제도입청년본부 회원들이 한국지엠주식회사와 노동조합이 우선채용조항을 즉각 폐기하도록 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에 제출하고 있다.

실업 문제에서 청년층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것은 청년 구직자들 대부분이 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들이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한) 당장 경제적 취약계층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간 1000만원 대학 등록금 시대에 대출받은 학자금 상환 압박까지 받고,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취업 준비금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어떤 연령계층보다 경제적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다.

벼랑 끝에 선 청년실업

기업 입장에서도 60세 정년 연장이 시행되고 채용은 경력자 위주로 하다보면 결국 고연령 조직의 문제인 활력 부족과 함께 창의성과 혁신성이라는 시대정신 구현에 뒤처져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이 조 단위의 현금을 내부에 쌓아두고도 투자에 인색하여 신규채용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 수출 및 내수경기 부진 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기업 환경에서 무턱대고 고용 규모만 확대할 수도 없는 노릇일 것이다.

이처럼 청년실업 문제는 경제적, 산업적 차원 뿐 아니라 사회적 파장이 큰 다면적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그 해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 간 협업의식과 정책메커니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청년실업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누적된 사회문제다.

정부는 청년고용과 관련해 취업교육, 해외취업, 청년창업에 이르기까지 각종 대책을 내놓고 막대한 예산을 집행해 왔지만 단기적 지표관리에 머물렀고 좀처럼 청년실업이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박근혜 정부 들어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이 내세운 것이 노동개혁이고 임금피크제다. 이에 반해 야당과 노동계는 대기업의 막대한 사내(社內)유보금을 비난하면서 청년실업의 해법으로 재벌개혁을 역설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정치권이 지난 2012년 무책임하게 60세 정년 연장법을 덜컥 통과시킨 것에 대한 후속조치다. 일부 공공기관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민간기업에서 정년을 지키는 일은 드물었고, 50대 초반이면 대체로 퇴사(退社)하는 관행이 지속되어 왔다.

이제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정년을 60세로 보장하여 중장년층의 고용안정을 담보해 주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맞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비중을 대책 없이 높일 수는 없는 것이기에 임금피크제가 인건비 상승의 완충제 기능을 하고, 절약된 비용을 신규 채용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를 두고 최근 정치권이나 노동계 일각에서 부모의 임금 삭감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일자리를 두고 부모세대와 자식 간 갈등을 부추기는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금피크제가 청년실업 해결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40만 명에 육박하는 청년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무리이고 정부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기성세대와의 정서적 문화적 충돌

청년실업 문제에서 가장 심각하고 동시에 가슴 아픈 것은 우리 젊은이들이 희망과 미래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지금 청년층은 ‘노력’이라는 단어를 제일 싫어한다고 한다. 기성세대의 충고는 ‘노력해야 성공한다’이지만 이는 그 시절에 통한 애기라는 것이다. 부모님 세대에는 고속성장 경제체제 하에서 개인들의 취약함이나 문제점은 사회 전체가 덮어서 이끌어갔다고 믿고 있다.

반면 지금의 청년세대는 부모의 배경을 포함해 개인의 능력과 경쟁력 외에는 사회에 기댈 언덕이 없다. 그러다 보니 ‘부(富)의 대물림’처럼 자식들의 취업도 현대판 음서제도라 할 정도로 기득권층 부모를 둔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투자은행이나 대형 로펌 취업에서 부모의 직업과 직함이 거의 절대적이라는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바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부모의 권력과 재력이 작동하는 세상이다 보니 ‘부모를 잘 만나야 성공한다’고 믿는 청년들에게 ‘노력하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사회적 계층의 이동(신분상승) 사다리가 부러진 사회에서 절망하는 청년들에게 ‘너희들이 우리의 미래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다. 취업난에 지친 청년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우리나라를 ‘헬(hell) 조선’ 즉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자조적 표현을 써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언급하기조차 민망한 표현이지만 청년들의 자괴감과 절망감이 분노의 감정으로 압축된 것이라 생각된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귀가 따갑게 들어왔는데, 성취에 대한 기대감만 높였을 뿐 노력이 그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하니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법과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정의로운 사회,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작은 승리라도 손에 쥘 수 있고, 몇 번의 실패쯤은 보듬어주는 패자부활전이 존재하는 ‘살아볼 만한 사회’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 기득권 자녀층이 ‘부의 대물림’ 하듯 ‘일자리 대물림’을 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확충하는 것이다.

정직하고 투명한 사회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몇 만 원짜리 밥을 얻어먹고 선물을 받았는지를 다투는 소위 ‘김영란 법’보다는 국회의원 자녀가 대형 로펌에, 시중 은행장 자녀가 이웃 은행에, 정부 고위층 자제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인턴으로 척척 들어가는 그런 현상들을 감시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가 도와줘야 하는 것은 스스로 경쟁력 없다고 열등감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마중물을 부어 주는 것이다. 사실 능력과 여건을 어느 정도 갖춘 청년들은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 가운데 얼마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출발한 청년들은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어렵다. 아울러 대학 졸업 후 몇 년에 걸쳐 구직에 실패한 청년들은 스스로 더 위축되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정부는 공공, 민간부문과 협조하여 이들을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 인턴, 파견 등 비정규직으로 맴돌던 구직자만을 대상으로 한 정규직 채용제도를 만들어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 예를 들어 3년 이상(혹은 그 이상) 구직에 실패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채용 프로그램도 만들면 좋겠다.

물론 자유경쟁 사회에서 일자리도 각자 경쟁하여 얻는 것이지만 사회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청년들에게 작은 승리의 경험은 이들의 인생 행로를 바꿔놓을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 때 잠정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가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도임을 이미 선진사회가 증명해 보였다.

사회정의 실현과 작은 성공의 체험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국가 최대 현안인 일자리 문제의 해결은 경제적 이슈이자 ‘사회적 미덕’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하고, 이는 기업에게도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한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새로운 일자리는 소비와 생산의 증가로 인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므로 기업의 투자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추구와 함께 동시에 생각해야 할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다. 환경을 보호하고 국가의 재난 극복에 동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자리가 최대의 복지’라고 하듯이 청년층 일자리 창출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하이테크’(high technology) 사회가 될수록 동시에 인간적 감성을 원하기 때문에 ‘하이터치’(high human touch) 사회가 공존하게 된다.

이제 기업도 인공지능, 로봇 활용 등 최첨단 기술을 추구하여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의 손과 마음, 터치가 필요한 일자리는 자동화, 기계화에 함몰되지 말고 사람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기업경영의 미션으로 삼고 인적자본 창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돈을 잘 버는 기업보다는 국민으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는 기업들이 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른 동물과 비교해 인간이 지니는 고유한 가치는 ‘더 나아지기를 소망하거나 상상하는 능력’에 있다고 한다. 즉 본래의 모습보다 더 나아지기를 열망하는 동물은 인간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원하는 체형을 갖기 위해 다이어트 하는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인간만이 더 나아지려는 열망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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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2015-09-30 10:20:38
늙은 노동자들이 물러난다고해서 기업에서 '어익후!사람이없으니 정규직을 더채용해야하겠군' 이렇게 생각할까요?? '정규직 나갔으니 그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넣어야지~ 노동법도 완화&#46124;는데뭐 굳이 정규직넣을필요가있나?'라고 생각하지 정규직채용할꺼면 진작에 저들이알아서 채용했을것이다.
그리고 자녀우선채용..그거없엔다고 흙수저가 금수저되는거아니다. 그냥 금수저는사라지고 다같이 흙수저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