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앙과 勞使관계 해법 찾기
기독교신앙과 勞使관계 해법 찾기
  • 미래한국
  • 승인 2015.09.3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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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눈]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 “이제 더 이상 머물거나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노사(勞使)의 책임 있는 대승적 결단을 다시 한번 부탁드린다”고 했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국가 경제와 노사의 유익된 결과를 가져온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겠지만, 노동개혁은 노동자를 위한 것보다는 자본가가 바라는 개혁이라 타협이 노사정위원회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여론이 있다. 그런가 하면 노동계 일부 강경파들의 시대착오적 기득권 확보 주장에 밀려 협상이 난항을 겪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분배 문제를 통찰하고 대처할 준비를 했어야 했다.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여 파업과 도산이라는 극단적 방향으로 치솟는 경우도 있었다. 균형 잡힌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양자택일의 단순논리보다 양자를 지향하는 통합을 추구하는 변증법적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양자를 초월해서 즉 지양(止揚)해서 양자를 흡수하면서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종합을 찾는 변증법적 사고를 할 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죽기 아니면 살기의 피를 보고야마는 양극적 단순논리에 사로잡힌다. 그 결과는 슬기롭게 계산된 타협이 아니라 증오에 찬 적대관계에 들어가 공멸을 초래하게 된다.

기업주와 노동자 관계도 마찬가지다. 기업주는 자기가 기업의 소유주고 근로자는 그를 위해 돈을 벌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근로자는 그릇된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아 자기들이 기업의 실제적 주인이라 주장하면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그러면 기업도 노동자도 파멸을 면치 못한다. 

우리나라의 노사문제가 심각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인의 잘못된 노동관에 있다. 본래 노동은 괴로운 것이다. 괴로울 노(勞), 움직일 동(動) 즉 괴로운 움직임이다. 히브리어 ‘아르다’는 노예, 러시아어로 ‘라보타스’ 역시 노예라는 말에서 나왔다.

희랍어 ‘토너스’는 아주 괴로운 것, 독일어 ‘아르바이트’는 가난하다는 말과 어원이 같다. 때문에 사람들은 일하지 않으려 한다. 일이 육체와 관계된다고 생각해서 육체를 천한 것으로 보고 노동을 천하게 보았던 것이다. 

노동을 괴로운 것으로 보게 된 것은 성경에서 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노동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되어 있다. 노동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까지 가르쳤다. 그렇다고 모든 노동이 다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도둑이나 살인행위도 열심히 노력은 하지만 그것은 파괴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따져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기독교적 기업관리의 정신을 말한다면 청지기 직(Stewardship)이다. 청지기는 재산의 소유주가 아니라 주인의 재산 관리인이다. 정직과 충성을 감당하는 청지기는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지키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만물의 소유주시고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지나지 않는다. 발전과 정의의 바람직한 해결은 기업가가 청지기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느냐에 있는 것만 아니라, 근로자의 기업주에 대한 태도와 관계에 크게 좌우된다. 

근로자는 소명(召命) 혹은 천직(天職)의 사상이 있어야 한다. 소명의 독일어 Beruf(Berufen 동사)는 ‘부른다(calling)’ 즉 그의 직업이 하나님이 불러서 맡긴 소명으로 생각해야 한다.

노동자의 정직한 충성은 기업주에 대한 정직한 충성이 될 터이니 서로의 이권 다툼으로 생긴 노사문제 즉 노동개혁은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노사문제에서 기독교의 청지기 신앙과 소명의식을 갖게 함으로 노동개혁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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