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약산업의 가난한 현주소
한국 제약산업의 가난한 현주소
  • 미래한국
  • 승인 2015.10.11 0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환규 청진기] 정부의 과보호로 경쟁력 상실한 국내 제약산업

국내 제약산업 보호 명목 하에 복제약값 비싸게 책정한 결과 거의 모든 제약사들 현실 안주

얼마 전 매스컴은 롯데그룹 형제난의 소식을 전하느라 떠들썩했다. 일반인에게 가려져 있어서 가끔 드라마의 소재가 되곤 했던 재벌가의 내분에 사람들은 흥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적지 않은 실망을 느꼈다. 

그런데 이런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은 제약계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국내 빅5 대형 제약사 중 창업자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한양행과, 창업자가 아직 현직에서 물러나지 않은 한미약품을 제외하고 동아제약, 대웅제약, 녹십자 등 국내 대형제약사들은 예외 없이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을 겪은 바 있다. 

해외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이 국내 제약업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유는 명백하다. 제약업계의 ‘안정적 성장’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제약사들이 현재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활발한 M&A를 통해 기업 경쟁력 갖춰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제약회사 화이자는 1849년 독일계 이민자였던 찰스 화이자와 사촌인 찰스 에하트가 뉴욕 브루클린의 한 벽돌공장에서 ‘찰스 화이자 앤 컴퍼니’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시작됐다.

처음 그들은 사탕 맛이 나는 구충제를 만들어 큰 돈을 벌었다. 1930년대 비타민을 주로 생산하던 화이자는 1940년대에 들어 2차 세계대전 중에 정부 요청에 의해 ‘기적의 약’이라고 불리던 페니실린을 대량생산함으로써 획기적인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이를 발판으로 1950년 테라마이신(항생제), 1967년 바이브라마이신(광범위 항생제), 1980년 펠덴(소염제), 1986년 유나신(주사형 항생제), 1992년 졸로프트(항우울제)와 노바스크(고혈압 치료제), 1995년 카듀라(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1997년 리피토(고지혈증 치료제), 1998년 비아그라(발기부전 치료제) 등 블록버스터 급 신약 개발에 성공하여 세계 제약시장을 주도해 왔다. 

2014년 화이자의 연 매출은 약 60조 원에 달하고 리피토 등 신약 특허가 만료됨에 따라 순익이 절반 이상 줄었음에도 약 10조 원의 순익을 냈다. 

화이자가 오늘과 같은 세계적인 제약사로 발돋움하기까지 역사를 살펴보면 적극적인 기업의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화이자는 2000년 워너 램버트 제약회사를 약 870억 달러(100조 원)에 인수했고, 2002년에는 파마시아를 600억 달러(69조 원)에 인수했으며, 2009년 와이어스 제약을 680억 달러(78조원)에 인수했다. 2010년에도 킹 제약을 36억 달러에 인수했고, 올해 2월에도 호스피라를 152억 달러(17조 원)에 인수했다. 

지금까지 화이자가 인수 합병한 회사는 총 17개에 이르는데 화이자가 인수 합병한 회사들은 또 다른 회사들과 이미 합병된 회사들이어서 이전의 합병까지 합치면 총 41개 제약기업이 현재 화이자에 녹아 있는 셈이다. 화이자는 지난 해 1000억 달러에 영국의 대표 제약기업인 아스트라 제네카에 대한 인수합병을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인수 합병을 통해 제약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화이자만의 일이 아니다. 독일의 다국적 제약사인 머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30개 회사가 합병되어 만들어진 것이고, 현재 세계 1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스위스의 노바티스도 30개 회사가 합병되어 만들어졌다. 사노피는 현재까지 28개, 아스트라제네카는 20개의 회사가 합병된 결과물이다. 

▲ 화이자는 인수합병 과정을 거쳐 세계적인 제약사로 성장해 2014년 연매출이 약 60조 원에 이르렀다. 사진은 도쿄의 화이자 일본 본사(좌)와 화이자를 설립한 찰스 화이자(우).

세계 제약시장을 주름잡는 소위 빅파마(Big Pharma)들 사이에 인수합병이 활발히 일어나는 이유는 파이프라인 확장(생산분야 확대), 특허 및 인재와 기술의 흡수를 통한 기업의 노하우 확보, 브랜드 파워 확장, 영업망 확대, R&D 부담 절감 등 다양한 목적이 있다. 특히 신약의 허가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갈수록 R&D 생산성이 악화되어 신약개발을 위한 R&D 부담의 절감이 큰 몫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제약업계에서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 제약회사들의 M&A가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금 빅파마들은 ‘규모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제약계 현황 

온실속의 성장이 보장된 국내 제약업계, M&A 외면

우리나라 제약업계의 M&A 현황은 어떨까. 한 마디로 표현하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녹십자, 동아제약, 대웅제약, 한미약품의 발전사에서 M&A 역사를 찾기는 힘들다. 녹십자는 녹우제약, 상아제약, 경남제약, 이노셀 등 4차례에 걸쳐 인수합병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이중 녹우제약과 경남제약 등 2개 제약사는 시세차익을 내고 되팔았다. 

한미약품도 2000년 동신제약을 인수했으나 3년 후 시세차익을 내고 되판 것 외엔 인수합병 기록이 없다. 국내 매출 1위 기업인 유한양행은 이렇다 할 M&A가 전무하다. 동아제약은 2010년 삼천리제약을 인수한 것이 고작이고, 대웅제약 역시 2015년 한올바이오파마를 인수한 것이 전부다. 

해외 다국적 제약사들이 활발한 M&A를 통해 규모를 키우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은 M&A에 소극적이다. 그 이유에 대해 국내 제약사들은 “대형 다국적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에 대한 R&D 부담을 크게 느끼는 반면, 복제약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들 입장에서 파이프라인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아 굳이 덩치를 키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복제약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제약회사인 테바(TEVA)는 그 답변이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76년 기존의 3개의 약도매상이 합병하여 탄생한 테바는 이후 14개의 제약회사를 인수, 덩치를 키워 세계 1위의 복제약 전문회사에 등극했다. 게다가 테바는 지난 7월 26일, 앨러간의 복제약 부문을 405억 달러(47조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공룡이 더 큰 공룡으로 진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세계적 제약회사가 전무하다. 국내 1등 제약회사도 세계 50위에는 턱도 못 미친다. 더 심각한 것은 규모 뿐 아니라 내실도 열악하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연매출 1조 원을 넘긴 국내 1위 회사인 유한양행의 매출을 들여다보면 그리 달갑지 않다. 2011년까지 연매출 6000억 원대에 머물던 유한양행이 1조 원 매출기업으로 등극한 것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신약을 수입해서 판매를 대행하는 이른바 ‘도입 신약’ 사업 덕분이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전체 도입 신약 매출 규모는 2010년 32억 원에서 2014년 2790억 원으로 4년 사이 90배 이상 커졌다. 유한양행의 매출 상위 1, 2위 제품은 길리어드에서 수입한 B형 간염 치료제 ‘비리어드’와 베링거인겔하임의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다’다.

국내 1위 제약사인 유한양행이 뛰어난 제품 경쟁력이 아니라 뛰어난 영업 경쟁력으로 외국 제품을 판매하여 매출을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본사가 판권을 회수하는 경우 일궈놓은 시장과 매출을 고스란히 빼앗기게 되는 취약한 구조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뿐이 아니다. 세계 2위 기업인 화이자가 연간 약 10조 원(매출의 13.5%)의 연구개발비를 사용하는 동안 유한양행은 그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연간 약 560억 원(매출의 5.6%)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의 전체 연구개발비를 모두 합해도 다국적 제약사 한 곳의 연구개발비에도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신약 하나를 만드는 데 약 1조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제약산업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지금 우리나라 제약환경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제약회사가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큰 무리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규모를 키우지 않는 이유 

정부가 마련해놓은 온실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제약업계 
복제약 조제 활성화 위해 약사에게 리베이트까지 제공 

국내 제약회사들이 M&A를 통해 규모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가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세계 무대와 달리 국내 제약환경은 아직도 따뜻한 온실이다. 정부가 마련해놓은 안전장치 속에서 겉으로는 ‘제약강국’과 ‘신약개발’을 외치며 뒤로는 여전히 많은 제약회사들이 여전히 리베이트 영업에 의존하면서 가족경영을 지켜내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마련해놓은 안전장치란 무엇일까? 그것은 높은 복제약값이다. 일반 공산품이나 소비재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전문의약품은 거의 모두 건강보험급여대상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정부가 약가(藥價)를 결정한다. 그런데 정부가 국내 제약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높은 복제약가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국가에서 복제약값이 오리지널의 20~50%에 불과하지만 국내 복제약값은 오리지널의 80%를 상회하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심지어 오리지널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개발비가 들지 않는 복제약값을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개발비가 들어가는 오리지널 의약품과 거의 같거나 더 높게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놓았으니 국내 제약사가 신약개발에 전념할 이유가 없다. 의사들과 약사들을 찾아 은밀히 돈을 건네며 영업하는 소위 리베이트 영업의 유혹을 외면하기 힘든 상황이다. 

국내 제약사를 도우려는 정부 정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복제약 조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약사에게 리베이트를 지급하기도 한다. 즉 의사가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오리지널 의약품을 처방했을 때 약사가 이것을 값싼 복제약으로 바꿔 조제하면 약값 차액의 30%를 정부가 약사에게 건강보험재정에서 지급하는 것이다. 복제약을 조제하라고 정부가 약사에게 합법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제약회사들은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에 몰두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마련해놓은 안전장치 속에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유지할 수 있는데 굳이 유전 개발처럼 실패 가능성이 큰 신약개발의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수백 개에 달하는 제약회사들이 변화를 꾀할 이유가 없고, 대다수 기업들이 가족기업이 되었다. 창업자가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한양행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제약회사들이 창업자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아들은 손자에게 물려주는 식의 가족기업이 된 것이다. 

이런 환경이 우리나라 제약업계에서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이 유난히 많은 이유가 되었다. 제약기업의 발전과 확장보다 경영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제약사들의 현주소다. 그 이유는 정부가 제약기업들의 안정적 수익원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한 데서 출발한다. 

온실의 비닐막을 거둬야 할 때다 

온실 속에서는 세계적 제약사가 탄생할 수 없어 
강력한 약가 인하 및 R&D 강화정책을 통한 M&A 유도 

지난 3월, 한미약품은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인 일라이릴리 사(社)와 한미약품이 개발한 면역질환치료제의 추가 개발과 상업화에 대한 라이센스 및 협력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계약금으로 5000만 달러를 받고, 상품화에 성공하는 경우 단계별로 최대 6억4000만 달러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4개월 후 한미약품은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총 7억3000만 달러(약 8500억 원) 규모의 폐암 치료제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계약금으로 5000만 달러를 받고, 상품화에 성공할 경우 단계별 기술료 6억8000만 달러와 별도의 매출에 따른 경상 기술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약기술 수출 희소식을 알려준 한미약품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며 성장한 대표적인 제약회사다. 이 때문에 2010~2011년에는 의사들의 불매운동까지 벌어져 큰 매출 손실을 입었던 기업이다. 한미약품의 화려한 변모는 70대의 나이에도 은퇴를 모르고 고집스럽게 신약개발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은 임성기 회장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한미약품 질주의 이면에는 지난해 임성기 회장이 10살도 안 된 7명의 손주들에게 수백억 원 규모의 주식을 증여함으로써 구설수에 오른 일이 있었고, 재벌가처럼 지주사를 통한 순환출자를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경영방식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한미약품 계열사의 지배회사 격인 한미IT의 지분은 91%가 임씨 오너 일가의 몫이다. 세계적 제약사를 꿈꾼다는 한미약품 역시 예외 없이 가족경영의 틀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약업계 사람들은 한미약품이 2세 경영체제에 들어서면 신약개발에 대한 의지가 꺾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지난 8월에는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의 4남이며 동아제약의 지주회사인 동아소시오홀딩스 강 모 사장이 병원 주차 관리원이 자신의 차량에 불법주차 경고장을 붙였다는 이유로 주차 관리실의 노트북을 내던져 부순 사실이 약 5개월 만에 드러났다. 

제약산업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산업이다. 세계적인 제약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회장의 아들이나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제약기업을 소유하고 경영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며,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되돌아가서도 안 된다.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보건복지정책의 후진성은 보건의료산업에도 해당된다. 정부가 마련해 놓은 온실 속에서 성장해 온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의 국가경쟁력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바이오 의약산업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미래 핵심산업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우리나라 제약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온실의 비닐막을 거둬야 한다. 

경쟁력 없는 부실한 제약사들은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도록 R&D 실적이 없는 제약회사들의 복제약값을 대폭 인하해야 한다. 400여 개가 넘는 제약회사 중 30~40여 개만 남아도 충분하다는 것은 거의 모든 제약인들이 동의하는 중론이다. 그리고 정상적인 연구 활동에 수반하는 합법적인 의약거래와 불법행위를 명확히 구분하여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도록 리베이트 쌍벌제를 보완해야 한다.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제약회사의 품목은 투아웃제가 아닌 강력한 원아웃제를 통해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솜방망이에 불과한 제약사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수만 명의 의사들을 범죄자로 만든 책임은 리베이트 영업을 부추긴 정부에게 있다. 정부가 굳은 의지를 갖고 이상의 정책을 강력히 실천할 때만이 미래 유망산업인 제약바이오산업의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노환규 의료희망연구소 소장·전 대한의사협회장·미래한국 편집위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