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애증의 비극적 결말
욕망과 애증의 비극적 결말
  • 미래한국
  • 승인 2015.10.1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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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아이스킬로스 著, <오레스테이아>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비극적 최후와 대를 이은 복수극을 다룬 작품이 <오레스테이아(Oresteia)>다.

아이스킬로스는 인류 최초의 본격적인 비극작가다. 그는 제자인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그리스 3대 비극작가로 평가받는다. 디오니소스제의 비극 경연 대회에서 열두 차례 연속 우승을 할 정도로 독보적인 작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가 기원전 458년인 67세에 생애 마지막이자 열세 번째 우승을 거머쥔 최고의 걸작이 바로 3부작인 이 작품이다. 

남편 살해와 모친 살해, 어느 것이 더 무거운 죄일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 아가멤논이 트로이 정벌에 나설 때, 순풍을 기원하며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양으로 바친 것에 원한을 품었다. 그녀는 아가멤논이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아이기스토스와 간통하고, 그와 공모하여 아가멤논이 귀환하자 욕조에서 손도끼로 무참하게 살해한다. 

어머니와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의 흉계에 의해 쫓겨나 방랑하던 아들 오레스테스는 청년이 되어 누이 엘렉트라와 어렵게 상봉한다. 이들은 힘을 합쳐 어머니와 정부를 죽여 복수한다. 

이 비극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 분노와 복수심이 끔찍한 패륜을 만들어 내는 저주의 집요한 굴레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갈등과 대립을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이 비극을 통해 당시 그리스 사회와 인간들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과연 무엇이 선(善)이고, 악(惡)인지,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준엄하게 묻는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살해한 후 복수의 여신들에 쫓겨 아테나 신전의 재판을 받는다.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탁의 명령에 의해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복수의 여신들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혈연관계가 아닌 남편을 죽인 것보다, 아들인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 더 중죄(重罪)라며 단죄할 것을 주장한다. 아테네 원로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 투표에서 찬반 동수가 나오자 최종 심판관인 아테나는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언한다. 

살인의 동기를 놓고 보면 둘 다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 원한과 증오, 극도의 배신과 분노가 뒤엉켜 있다. 현대적 관념에서 보면 오레스테스에게 더 무거운 죄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 두 끔찍한 사건을 정당화하는 표면적 명분의 뿌리에 도사린 인간의 탐욕과 분노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작품 속에서 부부와 부모 자식 간에 벌어진 저주와 추악한 죄악의 양태는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개연성도 충분하다. 이들이 뿜어내는 정당한 분노와 인간적 탐욕이 복잡하게 얽혀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도 죄악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 그 자체가 비극이다. 

작가는 오레스테스 신화에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덧붙여 인간의 본성과 정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아테네 도시국가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통해 인간의 행복과 불행, 죄와 벌은 인간의 지혜가 아닌 신의 최종적 판단과 의지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하면서, 당시의 부권(父權)중심적 정의관을 드러내려 했던 것 같다.

이 비극적 이야기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에게 부딪치게 될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인간의 내면에 깃든 원초적 애증의 감성과 권력 욕망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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