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에서 제외된 한국의 운명
TPP에서 제외된 한국의 운명
  • 미래한국
  • 승인 2015.10.21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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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갈팡질팡 한국 외교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국제 왕따’  

지난 10월 5일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 블록이 탄생했다.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이다. 그런데 세계의 웬만한 자유무역협상에는 빠지지 않던 한국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내 언론들은 그 이유를 “정부가 TPP 가입에 노력하지 않았다”는 정도로만 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2009년 국내 친중파(親中派)들의 거센 반발을 우려한 이명박 정부가 가입을 거절하면서 초래된 것이다. 

TPP 협상이 타결되자 언론들이 ‘세계 최대의 자유무역블록 탄생’이라고 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핵심 국가들이 대부분 참여했기 때문이다. TPP는 2005년 뉴질랜드, 브루나이, 싱가포르, 칠레 등 경제 규모가 비교적 작은 아·태 지역 국가들이 자국(自國) 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FTA를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이들 4개국은 TPP를 처음 출범시켰다는 의미에서 P4라고 불린다. P4 정부는 TPP의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아·태 국가들을 돌며 가입을 권유했다. P4의 노력은 2008년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면서 빛을 보게 된다. 오바마 정부는 TPP 가입 신청서를 낸 뒤 TPP 확대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호주, 말레이시아, 베트남, 페루 등이 TPP에 가입한다. TPP에 참가하기로 한 나라들은 연이어 주변국에 가입을 권유, 2013년 5월 일본까지 모두 12개국이 참가하여 엄청난 규모의 FTA 블록을 만들어 냈다. 현재 TPP 가입국은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멕시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칠레, 페루, 브루나이, 베트남 등 12개국이다. 

▲ TPP 참가국 현황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기술 보유국 일본, 농산물 대국인 호주·칠레 등이 참여함으로써 TPP는 역내 국가들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다.

TPP 가입국가의 총 인구는 7억9900만 명이지만, 이들 국가의 GDP 합계는 27조7189억 달러로 전 세계 총생산의 37.1%를 차지하며, 무역액도 9조4894억 달러로 세계 무역의 25.8%를 차지한다. 

TPP의 위력은 경제 규모가 아니라 그 잠재력에 숨어 있다. 협상 타결 직후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 참가를 결정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TPP는 농산품, 공산품 등에 대한 단순한 자유무역 블록이 아니라 지적 재산권, 서비스 시장,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제까지 개방, 시장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크게 높인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TPP 외면한 한국, RCEP와 AIIB에는 서둘러 가입 

즉 TPP 가입국은 근로자들의 근무 규정이나 최저 임금,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공동대응 규정 등을 함께 만들 수 있어, 진정한 의미의 자유 무역을 이뤄내는 데 협정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가진 미국과 첨단산업의 원천 기술을 가진 일본, 농산물 대국(大國)인 호주, 뉴질랜드, 칠레 등의 TPP 동참은 이들 역내(域內) 국가들의 부가가치 상승과 함께 경쟁력 강화를 도와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언론들은 지난 10월 11일, 한국 정부가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 합의를 위해 적극 나서기로 했다고 전했다. 아·태 지역의 공업국 가운데 유일하게 TPP에 참가하지 않은 한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RCEP에 가입해 있다. 

RCEP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난 뒤 논의가 시작된 자유무역협정으로, 처음 제안은 아세안(ASEAN) 국가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을 끌어들여 동아시아만의 자유무역 블록을 만드는 형태로 추진됐다. 

RCEP에 대한 첫 논의는 2012년 11월 18일부터 20일까지 캄보디아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서 나왔다. 이때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가 RCEP 참석을 결정, 2015년까지 논의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RCEP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국 때문에 논의가 3년째 지지부진이다. 

지금까지 RCEP에 가입할 뜻을 밝힌 나라는 한국 외에도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인도,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등 16개국이다.

RCEP 국가들의 인구는 34억2140만 명으로 전 세계 FTA 블록 가운데 가장 많지만, 경제력이나 무역 규모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RCEP 역내 GDP는 21조6439억 달러로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9%, 무역 규모는 10조6710억 달러로 세계 교역의 29%를 차지한다. 

중국은 미국과 핵심 동맹국인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이 참여하는 TPP에 맞서 RCEP를 키우겠노라고 공언했지만, TPP처럼 시장과 법률까지 함께 바꾸는 것은 중국 스스로도 반대하고 있어 잠재력이 높은 FTA 블록이라는 평가는 못 받고 있다. 

중국은 자국(自國) 시장은 개방하지 않으면서도 역내 국가들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할 방안을 생각해 냈다. 바로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이다. AIIB는 2015년 4월 15일 57개 회원국을 확정하고, 6월 29일 공식 출범했다. 

국내 언론들은 AIIB가 마치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유사한 기구이거나 IMF(국제통화기금)에 맞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국제연대 기구처럼 보도했지만, 실상은 중국이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만드는 ‘중국 통화전략 기구’다.

중국의 주창으로 만든 AIIB가 얼마나 배타적이고 불투명한지는 대만에 대한 가입 거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만은 2015년 3월 31일 AIIB에 가입하겠다는 뜻을 공표했지만, 중국은 4월 13일 가입을 거절한다고 밝혔다. 

AIIB는 창립 전에는 출범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벌일 것처럼 떠들었지만, 이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과 AIIB의 대외적인 움직임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이 AIIB를 만들면서 주창한 “회원국의 낙후된 지역 개발을 돕는다”는 말도 아직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자칭 ‘실용주의’ 외교의 참극 

한국은 서방 국가들이 주도하는 TPP는 외면한 채 RCEP와 AIIB에만 가입했음을 알 수 있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살펴보려면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TPP의 첫 주창국인 P4는 한국에게도 가입을 권유했다.

하지만 ‘강대국’에만 관심을 보이는 한국 정부는 그 권유를 외면했다. 2008년 오바마 정부가 TPP에 가입한 뒤 ‘혈맹’인 한국에도 가입을 권유했으나 이명박 정부는 이에 난색을 표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한국이 2008년 TPP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시 우리나라는 한미 FTA가 체결된 직후였고 한중(韓中) FTA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고 설명했지만, 뒤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2008년은 ‘미국산 쇠고기’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난 해였다. 이 일로 인해 국내 좌익세력들의 영향력과 반발에 잔뜩 겁을 먹은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에 이어 TPP까지 가입한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이라고 우려하여 정부의 TPP 가입 권유에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행보는 국민들에게도 잘 알려진 것처럼 한중 FTA에 치중했다. 

▲ 한국의 TPP 불참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친중(親中) 공산당 세력이 주도한 반미(反美) 여론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과거 TPP 가입의사를 밝힌 각국 정상들의 회담 모습.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13년 11월 박근혜 정부는 캄보디아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때 RCEP 가입에는 즉각 나섰지만, TPP 가입은 일본이 참여를 밝힌 뒤인 2013년 11월에서야 참여 희망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미 협상이 활발히 진행되던 상황에서 TPP 참가국들은 한국을 즉시 가입시킬 이유가 없었다. 특히 일본보다 농산품 시장 개방에 부정적이고, 지적 재산권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며, 노동 시장 개방에 결사반대인 한국이 TPP에 참여할 경우 기초 협상 타결이 더 미뤄질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결국 TPP 핵심국인 미국은 한국의 가입 의사에 대해 난색을 표했고, 한국은 ‘대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행태에 대해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자칭 실용주의를 내세운다. 문제는 이 주장 자체가 가진 심각한 오류에 대해서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주장이 한국 사회 내부에서, 조용히 이뤄진 합의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과 미국 정부가 이런 주장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도 없는 ‘자칭 전략’에 따라 한국 정부가 움직였다는 뜻이 된다. 

간략하게 풀이하면, 한국 정부가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전략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즉시 중국과 미국 정부는 “이런 잔머리를 굴리는 나라는 믿을 수 없으니 필요한 것만 빼 먹으면 된다”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실제로 이런 형태의 외교적 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사드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 한국의 AIIB 가입, F-35 관련 핵심기술 전수 불가 방침, 일본의 안보법제 개정 등 굵직한 국제적 사건이 일어날 때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을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움직임이 없었다.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 고위층이 사드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대놓고 한국 국방장관을 협박하고, 한국 정부와 나눈 대화에는 아랑곳 않고 북한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내고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점, 수백억 달러를 출자하기로 했음에도 한국 정부의 몫은 크게 줄어든 AIIB, 한국 정부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안보법제를 통과시키고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물론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환영 의사를 밝힌 점 등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한국 정부 스스로 초래한 결과다. 

위험한 줄타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미국 정부의 TPP 가입 권유에 난색을 표했다는 점은 국내에서 친중파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 

광우병 폭동 직전인 2008년 4월 27일, 중국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자칭 중국 유학생’ 4만여 명이 서울 시내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당시 경찰은 한국 시민과 시민단체, 외국인들이 폭도들에게 얻어맞아도 ‘외교적 갈등’을 이유로 그저 바라만 볼 뿐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서울 도심에서 난동을 부린 중국인 폭도 가운데 실제 감옥에 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후 국내 친중파들은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국내 친중파는 또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좌익=종북’이라는 공식이 통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로는 ‘좌익≠종북’이라는 공식이 등장했다. 북한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한국과 미국을 비난하는 친중파들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현재 좌익은 물론 우익 진영 내부에도 파고들어 한국 정부의 친중 정책을 옹호하고, 미국과 일본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데 전력하고 있다. 

보다 교묘한 친중파는 ‘우익’을 자처하면서 “한국의 모든 안보는 미국에게 맡기면 된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펼치며, 한국 사회에서 ‘우익’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거나, 일제 침략시대를 언급하며 “한미일 군사동맹 보다는 반일(反日)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중이다. 

이런 ‘구(舊)종북 신(新)친중’ 세력들은 TPP 가입 반대는 물론 제주해군기지 건설, 원자력 발전소 증설, 한미 동맹 강화,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한국의 스텔스 전투기 도입,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등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또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불법 폭력 시위꾼을 동원하여 시위대와 정부 간의 갈등을 조성하는 데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 언론과 학계, 정치권 등에서는 한국의 TPP 불참을 단순한 경제 논리로 해석하고 있지만, 진짜 원인은 국내의 각계각층에서 득세하고 있는 친중파, 보다 구체적으로는 ‘친(親)중국 공산당 세력’들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 점을 망각하고 TPP와 다른 안보 이슈들을 따로따로 취급할 경우 국내 친중파들에 의해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는 냉엄한 국제관계의 현실을 망각하고 소위 ‘용미론(用美論)’이니 ‘실용주의’를 표방하다가는 미국과 중국에게 외면당하는 ‘국제 왕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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