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으로부터의 위대한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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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5.11.06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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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노벨경제학상 수상한 앵거스 디턴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한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감 가져야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 교수는 여러 명이 동시에 수상하던 예년과 달리 단독 수상했다. 그만큼 경제학 분야에서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은 한 개인이 평생을 통해 추구한 학문의 가치를 인정한 결과이므로 특정한 몇 개의 책으로 그의 사상을 정리하긴 어렵다. 그러나 사상의 전파는 논문과 서적을 통해 보급되므로 유명한 두 권의 책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다. 

앵거스 디턴이란 이름이 일반 경제학자들에게 알려진 것은 <경제학과 소비자 행태>(Economics and Consumer Behavior)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은 대학원의 미시경제학에서 중요한 교과서 및 참고서로 활용됐던 책이다. 경제학의 미시이론에서는 소비자의 선택행위가 중요한 연구과제다. 

▲ 디턴은 경제성장과 과정에서 빈곤의 변화를 파악함으로써 경제성장이 빈곤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선택행위에 대한 이론은 단순하지만 이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개인 혹은 가구 단위의 개별 자료가 필연적이다. 소비행태는 주로 가구단위로 많이 분석되는데, 이를 위해 가구별로 전체 소득과 개별 소비행태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많은 표본수를 선정해서 개별 가구들의 소득 및 지출실태를 세밀히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디턴 교수는 미시자료를 사용하여 소비자들의 소비행태를 분석했다. 경제주체들은 결국 소득이 아닌, 소비를 통해 효용을 증대시킨다. 이는 곧 선호체계를 고려해서 경제주체들의 효용을 분석하는 것으로, 단순히 소득크기에 따른 효용크기를 분석하는 기존연구에 비해 더 현실적이다.

빈곤정책을 개발할 때도 개별가구의 소비행태에 따라 의료, 교육, 식료품 등으로 맞춤형 빈곤정책을 입안할 수 있으므로 전체 가구의 후생을 높일 수 있다. 미시자료를 사용한 가구의 소비행태 분석에는 계량경제학적 기법이 많이 활용되는데 디턴 교수는 소비행태를 계량기법으로 분석해서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디턴 교수의 또 다른 서적으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 전인 2013년에 발간한, 인생의 후반기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다. 전반기 연구가 미시경제학적 분석에 치중했다면 후반기 연구는 경제발전 및 빈곤문제로서, 다소 거시경제학적 시각을 통해 분석했다. 어쩌면 전반기 연구가 후반기 연구를 좀 더 풍성히 할 수 있었던 토양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 국가가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슈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경제성장과 빈곤 문제를 새롭게 해석한 측면이 있다. 물론 실증자료의 사용과 함께 그의 전반부 연구과제인 미시경제학적 지식이 후반부의 다소 거시경제학적인 이슈를 논리적으로 견고하게 만들었다. 

잘사는 나라의 의미는? 

디턴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잘 사는 국가를 정의하는 방법의 차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잘 사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여기에 대해선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경제성장 수준을 통해 그 국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와 대비되는 생각으로 불평등 수준을 통해 국가를 평가하는 시각이 있다. 또 이와 비슷한 접근이지만, 절대 빈곤층의 비중을 통해 국가를 평가하는 방법도 있다. 

세 가지 접근은 서로 상충하는 듯하여 많은 전문가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주제다.  특히 경제성장과 분배가 상충적이냐에 대한 대립적 시각은 경제학에서도 오래 전부터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한 국가의 경제수준을 정의하는 데 이 세 가지 시각은 서로 대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종합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좀 더 단순하게 설명하면 한 국가의 소득분포를 <그림 1>과 같다고 가정하자. 이때 A는 국가의 평균소득을 의미하고, B는 빈곤층 비중, C는 부유층의 비중을 나타낸다. 잘 사는 국가를 정의하는 논쟁은 A, B, C 중에서 어느 곳에 가중치를 주느냐의 문제다. A를 강조하면 경제성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시각이고, B는 빈곤층 비중을 통해 국가를 평가하는 시각이다. C는 부유층의 점유수준을 통한 평가로서 많이 사용되지 않으나 피케티는 주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잘사는 국가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위해 소득분포 수준을 통한 평가방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분포곡선에서 퍼져 있는 정도(수학적으로는 표준편차라고 함)를 살피는 방법이다. 전체 분포수준은 지니계수와 같은 하나의 함축적 지표로 표현 가능하다. 그러나 A, B, C는 서로 연관성을 가지므로, 서로 배타적인 정책목표가 설정되면, 본질을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게 된다. 

디턴은 빈곤문제를 해석할 때 경제성장과 연계해서 설명했다. 빈곤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정적인 반면, 디턴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빈곤의 변화를 파악함으로써 동적인 관점을 제시했다. 즉 우리는 어느 한 시점을 독립적으로 떼지 않고 동태적으로 파악할 때 시장경제의 위대한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디턴, 경제성장이 이끈 빈곤으로부터의 ‘위대한 탈출’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를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그림 2>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과거와 현재의 분배구조는 차이를 가지는데 시간이 감에 따라 분포 그림이 오른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즉 소득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소득불균등 수준은 더 심각해진다. 따라서 불균등 관점에서 평가하면 과거가 현재보다 나은 세상이 되는 것이다. 어디에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문제다. 

사회의 가치는 불균등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체의 수준이다. 경제성장을 통해 1인당 국민소득은 A에서 A'로 상승하게 되고, 빈곤층의 절대소득도 B에서 B'로 상승하게 된다.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B'는 더 이상 빈곤층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위대한 동태적 특성은 여기에 있다. C' 계층이 더 잘 살게 됨으로써,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의 소득이 높아지게 된다. 

물론 상대적인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상대적 차이를 중요시해서 C' 계층의 경제활동을 억제하면 이 나라의 A', B', C'는 모두 낮아져서, 전체 분포 그래프는 왼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즉 경제가 퇴보됨을 의미한다.

잘 사는 나라는 C를 통해 A와 B를 높이는 것을 정책목표로 한다. 디턴은 이를 경제성장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해석했다. 즉 빈곤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경제성장을 통해서라는 주장이었다. 

디턴 사상의 핵심을 담은 책자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은 영화 제목에서 책 이름을 따왔다. 수용소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남겨졌고, 또 도중에 죽었다.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인류의 시도도 이와 마찬가지다.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나라도 있고, 아직도 탈출하지 못한 국가들도 많이 있다. 한국은 운 좋게도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한 국가이며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탈출에 성공했다.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6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 한국은 빈곤을 완전히 벗어났고,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 이렇게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보릿고개 세대와 배고픔을 전혀 겪어보지 않았던 세대가 공존하는 나라가 됐다.

우리는 빈곤이 어떻게 이 땅에서 그토록 빠르게 사라질 수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한국이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위대한 탈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 체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성장=빈곤층 희생’이라는 피케티 사고의 한계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 차이가 왜 났는가를 생각하면 이는 극명하다. 1960년대까지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액이 남한보다 높았지만, 1970년대부터 차이가 벌어져 이젠 비교 자체가 의미가 없다. 남한은 빈곤에서 탈출했지만, 북한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고생하고 있다. 

유전자가 같았던 한 민족이 이렇게 경제적 격차를 가지게 된 유일한 원인은 체제에 있다.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빈곤층은 더 증가했지만, 자본주의 체제는 거의 모든 국민을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게 했다.

피케티 류의 생각은 부자 계층에 대한 배 아픔의 정서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런 정서가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면 우리 경제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빈곤층이 다시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떤 이념을 가졌는가에 관계없이 한국을 잘사는 국가로 만들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사는 나라를 정의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피케티 식으로 잘사는 국가를 만들려고 하면 과거 인류가 겪었던 빈곤과 죽음을 한국에서 다시 겪게 될 것이다. 

잘사는 국가는 모든 국민이 빈곤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국가다. 빈곤에서 탈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빈곤과 성장은 같이 가야 하며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반대로 성장이 빈곤층의 경제적 희생에 의해 생겼다는 ‘제로섬 게임’처럼 생각하는 피케티 류의 사고가 우리 사회에 퍼지면 우리는 다시 빈곤에 빠질 것이다. 

디턴은 빈곤과 죽음으로부터 위대한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민들을 빈곤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빈곤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턴은 서구 국가들이 많이 사용하는 국가 원조는 오히려 이들 빈곤 국가들이 위대한 탈출을 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주장한다. 

조건 없는 원조는 원조를 주는 국가에 감상적인 자만심을 심어주고, 원조를 받는 빈곤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빈곤에서 탈출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이러한 디턴의 주장은 한국의 통일정책에 커다란 시사성을 준다.

우리는 빈곤으로부터 탈출한 국민으로서 절대빈곤에 처해 있는 북한 주민에 책임감을 느낄 수 있지만, 북한 주민들을 위해 조건 없는 원조를 확대한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건 없는 원조 확대는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만들려는 자생적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그 결과 빈곤을 연장시켜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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