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진적 통일론자에게 묻습니다 “귀하가 원하는 통일은 어떤 통일입니까?”
점진적 통일론자에게 묻습니다 “귀하가 원하는 통일은 어떤 통일입니까?”
  • 미래한국
  • 승인 2015.11.2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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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통일에 대한 경제적 셈법의 오류

점진적 통일론은 통일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며, 통일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약자의 처세술

‘통일대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경제학자 중심으로 통일 논의가 재편되며 점진적 통일론이 화두다. 이런 가운데 지난 주 서울대 K 교수가 한 일간지에 ‘급진통일론자에게 묻습니다’라는 칼럼을 통해 점진적 통일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 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미래한국 편집위원

그의 주장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남북이 독일과 같은 통일을 답습한다면 엄청난 재정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재앙이 될 것이며, 둘째, 통일 후 평등지향적인 북한 주민이 투표권을 갖게 되면 정치인들은 복지 포퓰리즘에 경도되어 국가 재정이 파탄 날 뿐 아니라, 셋째,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외국 자본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런 논지로 소위 독일식 통일을 염두에 둔 사람들을 점잖게 나무라고 있다. 독일이 흡수통일을 밀어붙여 300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해야 했는데, 하물며 여러 조건이 독일보다 열악한 남북한의 경우 재정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독일 통일을 이렇듯 경제학적 잣대로 바라본다면 이는 독일 통일의 실체를 지나치게 왜곡하는 일이며,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앗아가 자칫 통일의 기회를 놓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 통일은 기적 

독일 통일은 기적이다. 이 말에 국제사회는 물론 대다수 독일인이 동의하고 있다. 독일에는 통일이 기적이라는 주제의 책만 해도 수십 종에 달한다. 동방정책의 기수였던 사민당(SPD)의 빌리 브란트도 “형제가 이제야 비로소 함께 성장하게 되었구나!”라며 통일의 감격을 담았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책 <음미해야 할 기적>에는 독일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바이제카 대통령의 서문을 넣어 통일의 기적을 20년이 지난 순간에도 기억하고 음미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서문에서 바이제카 대통령은 “통일은 나눔을 배우는 것-물질적, 정신적으로”라며 기적에 대해 겸허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런 독일 통일에 대한 K 교수의 시각은 지나치게 편협하고 단선적이다. 그는 독일통일=흡수통일=급진통일로 단정하며 통일의 음지만 그려내고 있다. 복지비용, 오시즈 베시즈로 대변되는 동서 갈등, 베를린 장벽에 들어선 ‘머릿속 장벽’ 같은 부작용들이다. 마치 장맛은 모르고 구더기만 보는 행태다. 

40년 독재체제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빈곤의 늪에서 견뎌온 동독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하다. 이런 고통의 누적이 만들어낸 기적에 대한 평가는 물론, 동독인들이 무혈혁명을 완수하고 독재정권을 민주적 리더십으로 대체한 것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는 잠잠하다. 

동독의 인민회의가 1990년 8월 23일 임시회의를 열어 서독의 연방체제에 편입할 것을 결의한 사건에 대해서도 유구무언이다. 새벽 2시 47분의 결의로 서독과 동독이 평화적이고 단계적으로 통일을 이뤄낸 것에 대한 감격도 모른다. 

‘흡수(Absorption)’라는 단어는 소위 서독 내 좌파 언론들이 통일 후 부작용을 부풀려 사용한 단어다. 골수 공산당이나 서독 내 불만세력들이 만들어낸 용어를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개념인데, 이 개념을 독일 통일에 관용구처럼 사용하고 있다. 

독일 통일에 대한 편협한 시각보다 더 큰 문제는 K 교수가 통일을 경제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통일에 대한 가치와 국제정치학적 의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 보인다. 

통일은 가치의 문제 

독일 사회를 이끌어가는 여러 가치들이 있지만 특히 “나도 살고, 너도 살자”만큼 전후(戰後) 독일을 성숙하게 만든 가치도 없다. 독일 사회가 나치의 치욕적 역사로부터 배운 가치와 교훈으로 통일의 그림자가 여전한데도 불구하고 시리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몰려오는 난민들을 유럽에서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다. 

미국은 6·25 전쟁에 178만 명의 젊은이들을 한반도에 파병해 4만 명 전사, 1만 명 실종, 10만 명 이상 부상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이들의 헌신을 기리고 있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at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at they never met).” 

이것이 국가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 힘이 오늘날 미국의 힘의 원천이다. 국가는 이들 젊은이들의 희생은 헛된 것이 아니라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한 가치 있는 희생이었음을 영원히 기리고 교육하고 있다. 

K 교수의 가치관에서는 한 해 수십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독일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방 땅의 자유를 위해 자국(自國) 젊은이들이 수만 명 이상 희생토록 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편적 가치들을 지킬 수 있어야 인류는 인간다운 공간을 지켜낼 수 있음을 오랜 역사를 통해서 배우고 있다. 

이렇듯 K 교수의 주장에는 통일에 대한 가치, 자유·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 헌법정신에 대한 존중심이 담겨 있지 않다. 오로지 어떻게 해야 통일을 쉽게 할 것인지 주판알 튕기듯 재단하는 모습만 보인다. 또 반세기 숙원인 통일을 염원하며 치러야 할 비용에는 그렇게 인색한지 이해할 수 없다. 통일은 공짜가 아닌데도…. 

▲ 독일 통일을 경제적으로만 보는 시각은 통일에 대한 우리의 자신감을 빼앗을 수 있다. 사진은 1989년 12월 19일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동독 드레스덴에서의 연설 장면.

점진적 통일론의 허구 

급진적으로 통일하면 재앙이 될 것이라는 단정도 납득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점진적 통일을 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고 통일대박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점진적 통일은 남과 북이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비정치적 분야에서부터 교류와 협력을 추진해 나중에 정치적 통합을 완성해 간다는 방안일 것이다. 

나무랄 데 없는 평화적, 점진적 방안이다. 다만 과연 이 방안이 생각대로 추진될 것이냐는 현실론이다. 

북한은 김 씨 세습정권이 70년 동안 일관된 통일전략전술을 추진하고 있다. 300만 주민을 기아에 방치해 죽게 할망정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국제사회의 비판을 감수하고도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는 것도 이런 권력을 유지하고 적화통일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 RO(Revolution Organization)를 조직해 내란음모를 꾸몄던 것도 북한의 통일전략전술의 일환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적화통일 야욕을 포기했다면 굳이 국정화 교과서 문제에 개입해 황교안 총리를 3행시에 빗대 (황)당하고 (교)활하고 (안)하무인으로 폄하하고 남한 내 갈등을 조장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런 북한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교류 협력을 강화해 통일을 이룬다는 점진적 통일론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황당하다. 남한 체제 내에서 여야가 만나 대화도 제대로 못하는 우리가 북한과 대화로 남북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로 나아간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이자 결단이다. 기회가 오면 결단해 잡는 것이지 득실을 따져 선택할 사항이 아니다. 지난 10월 초 한 인터넷 언론 창간 포럼에 참가했을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 당신이 김정은이라면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당시 포럼의 분위기는 경제적으로 낙후한 북한과 통일을 이룬다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북한을 도와 일정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루도록 한 후 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북한에 새마을운동과 같은 사업을 이식해 대동강 기적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야말로 경제학적 접근이자 평화적, 점진적 통일론이다. 

내가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자 장내 분위기는 순간 차갑게 가라앉는 듯했다.

“제가 만약 김정은이라면 우선 남한이 제시하는 경협의 손길을 넙죽 잡고 대동강 기적을 이룬 후 본격적으로 남한 접수에 나설 것입니다. 핵과 미사일을 보유한 군사강국이 대동강 기적을 통해 경제력도 확보한다면 남한 정도를 먹어 치우는 것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더욱이 남한의 꼴을 보십시오. 종북 콘서트로 물의를 빚어 사법당국이 추방한 신은미를 한 언론이 나서 통일문화상을 수여하는 나라입니다.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은 시민단체들이 이름만 바꿔 버젓이 활동하는 나라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라고 하지만 오합지졸 아닌가요?” 

하기야 천안함 폭침을 아직도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믿고 전파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니 이런 허구와 궤변이 통용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부언하지만 점진적 통일은 유럽연합(EU)의 통합과 같이 동일한 체제의 국가들 간에나 가능한 일이요, 남과 북 같이 전혀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체제 간에 논의될 사안이 아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통일관 

K 교수가 통일을 앞두고 부정적인 것들을 계수하고 있는 것과 달리 독일의 밤베르크 대학 경제학과 울리히 블룸 교수는 한반도 통일을 낙관하고 있다. 블룸 교수는 2013년 4월 28일 독일의 유력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에 ‘북한 재건’이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 내용은 한마디로 “남북 통일은 독일보다 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독일 통일이라는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일이 통일 과정에서 범했던 여러 시행착오들을 연구해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통일정책에서 피해야 할 목록인 ‘코리아 카탈로그’를 제시해 줬다. 독일 통일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 교훈, 시행착오 및 경험 뿐 아니라 통일에 대비해야 할 매뉴얼이다. 주요 내용은 ▲재산권 반환이 아닌 보상을 원칙으로 할 것 ▲인프라 촉진법을 도입할 것 ▲북한 기술자를 보호하고 활용할 것 ▲건설·토목·공장·설비 등 직접투자에 중점을 둘 것 ▲인민군 조직을 활용할 것 등이다. 

1991년부터 북한을 연구해 온 오스트리아 비인 대학 뤼디거 프랑크 박사도 한반도 통일이 독일보다 유리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불완전한 사회보장 시스템이 오히려 북한 재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그의 아이디어다.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함께 중국 변수도 통일에 유리하다고 말하는 프랑크는 독일 통일 당시 소련은 ‘지는 해’에 불과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경기는 침체하고 연방은 해체 위기에 있었다. 거대한 소련 시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이에 반해 중국은 여전히 경제 강국이다. 물론 성장세가 꺾이기는 했어도 여전히 6% 이상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통일 후 북한 경제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북한 기업에게 중국 시장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북한이 중국과 체결한 여러 조인트 벤처로부터도 북한 경영자들은 시장경제에 대해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은 우리 사회 희박한 통일 의식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서독인의 가슴에 통일의 피가 끓어오르게 한 것은 헬무트 콜 총리였다. 콜 총리는 “우리가 돈 때문에 통일을 거부한다면 역사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힘을 결집했다. 

통일비용에 대해서도 K 교수는 우리가 모든 비용을 조달해야 할 것처럼 단정하고 있다. 법과 제도를 잘 정비하고 인프라를 구축해 최적의 투자환경을 마련한다면 지구촌 곳곳의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미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또 북한의 제로 베이스가 통일에 유리하다. 신도시를 개발할 때 강북지역이 아니라 허허벌판에 개발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어설픈 경제회복은 더 큰 비용을 초래할 것이며 섣부른 기득권만 양산해 낼 것이 자명하다. 

귀하가 원하는 통일은 어떤 통일입니까? 

헬무트 콜 총리는 “돈 때문에 통일을 미루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역사적 기회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통일 4년차(재임 12년차)에는 통일비용 등 통일로 인한 부작용과 혼란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가중되자 “역사적으로 통일의 전례가 있었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해해 주십시오”라며 국민 설득에 나섰다.

이런 콜에게 독일 국민은 또 한 번 승리를 안겨줬고 콜은 16년간의 총리 직을 수행하며 통일 전후 독일을 선두에서 이끌어 오늘날 강한 독일의 발판을 마련했다. 

분단국 국민으로서 분단을 극복하는 일보다 급한 과제는 없을 것이다. 부정과 어둠으로 일관된 통일관으로 통일의 자신감을 앗아가고 통일의 기회마저 무산시키는 과오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점진적 통일론자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회복하면 우리와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통일은 어떤 통일인가? 적화통일, 자유통일, 분단 고착화? 어느 것인가?  점진적 통일론은 통일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며, 통일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약자의 처세술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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