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경제민주화’ 도끼질이 면세점 경쟁력 망쳐
국회의 ‘경제민주화’ 도끼질이 면세점 경쟁력 망쳐
  • 정재욱 기자
  • 승인 2015.12.03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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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경제민주화’에 휘둘리는 관광·쇼핑 한국

“면세점과 브랜드의 5년간 계약은 재앙이며 브랜드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 한국이 세계적인 면세사업자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행운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번에 정부가 자기 발에 총을 쏘았다”(국제 유통 전문지 무디리포트)

지난 11월 14일 관세청의 서울 시내 면세점(관세법상 보세판매장) 특허권 입찰 결과 발표에 따른 후폭풍이 심각하고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 심사에서 탈락한 기존 면세점 사업자(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SK네트웍스 워커힐점)의 직원 1300여명과 900여 명이 한 순간에 실직 위기에 놓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이 지난해와 올해 매장 확장과 인테리어 개선에 투자한 3000억 원과 1000억 원도 허공으로 사라질 판이다.

동시에 월드타워점과 워커힐점이 각각 26년과 23년 동안 쌓아온 면세점 영업의 글로벌 경쟁력도 졸지에 잃어버렸다. 월드타워점과 워커힐점의 지난해 매출액은 각각 4820억 원, 2747억 원이었다. 

이날 이후 각 언론에서는 5년마다 원점에서 심사와 승인을 받도록 한 현행 면세점 제도에 대한 비판 기사와 개선을 요구하는 칼럼, 사설 등이 쏟아졌다. 특히 이번 심사 결과는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서비스업을 강화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전력을 다하던 정부의 기존 정책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어서 비판의 강도가 강했다. 

우리나라 면세점은 시장규모 면에서 세계 1위(2014년 9조1000억여 원 매출)를 차지하고 있다. 또 지난해 국내 관광 수입 19조 원 가운데 27%인 5조 원을 면세점이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한 막강한 사업자를 두 개나 보유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2014년 매출 33억4600만 유로로 세계 3위, 신라면세점은 18억7700만 유로로 세계 7위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그 동안 면세점 사업자들은 10년 단위로 영업상 특별한 하자가 없는 경우 자동 갱신되어 사업을 지속해 왔다. 그런데 사업권을 5년 단위로 승인을 받도록 관련법이 개정되어, 5년마다 엄격한 심사 과정을 통해 일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폐업을 해야 한다. 이것은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한 개정 관세법이 지난 201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부터 일어난 변화다. 

이 때문에 면세점 사업권의 면탈이 걸린 특허 승인 심사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라 내년 5월 김포공항 내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2017년의 롯데면세점 코엑스점 등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번처럼 기존 사업자들이 면세점을 폐업해야 하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면세점의 특허 제도 자체가 해외 면세점들과 치열하게 소비자 유치 경쟁을 하는 면세산업의 본질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면세점은 초기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최소 10년은 지나야 경쟁력을 발휘한다”면서 “이번에 20년 넘게 사업을 영위하며 국내 면세점 사업의 국제경쟁력을 키워온 두 곳이 하루아침에 철퇴를 맞았는데, 수천억 원 씩 선(先)투자를 한 면세점들의 사업권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 야당에서 반(反) 시장적인 경제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양산하는 면세점 관련 법안들은 지나친 규제와 무조건적인 나눠주기로 세계 1위 국내 면세점 사업의 경쟁력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국회의 ‘규제 대공습’에 흔들리는 세계 1위 면세점 시장 

문제는 국회가 양산하고 있는 면세점 규제의 칼날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면세점 5년 재승인 법안을 발의한 홍종학 의원은 한발 더 나가 면세점의 면적을 기준으로 특허를 강제 할당해 중소기업에 30%, 한국관광공사 및 공기업에 20%씩 분배하는 법안(2013년 11월 발의), 특허수수료를 기존 0.05%에서 100배 인상해 매출액의 5%를 납부하도록 규정하는 법안(2015년 10월 8일)을 잇따라 발의했다. 

같은 당의 김관영 의원도 2015년 9월 26일 발의한 법안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특허를 부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했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의 시장점유율이 80%를 넘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밖에도 주류·담배 등의 품목을 중소중견 기업만이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윤호중 새민련 의원·2014년 5월 7일), 영업이익의 15% 범위에서 관광기금을 부과하는 법안(박혜자 새민련 의원·2014년 9월 3일) 등 국내 면세점을 향한 규제들이 논의되고 있다. 

이들 법안들은 국회 기획재정위 산하 조세소위와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해야 법률로 확정되지만, 이런 규제들이 현실화될 경우 실제 산업 현장에선 대혼란이 야기돼 세계 수준의 면세점 사업 경쟁력이 뿌리째 흔들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시장지배자에 대한 특허 취득권이 제한되거나, 면적 기준으로 특허가 할당되면 롯데면세점이나 신라면세점 등 이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면세점들은 재승인의 길이 막히고 매장의 강제 축소가 불가피하다. 

특허수수료 대폭 인상도 마찬가지다. 수수료 인상은 물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쇼핑객들이 발길을 끊는다는 게 업계의 항변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되면 국내 면세점들의 경쟁력 상실은 물론이고, 정상적으로 내고 있는 법인세, 지방세 등의 조세, 사회공헌기금마저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면세점의 세금면제는 관광객의 간접세를 면제해 주는 것이지, 면세점 사업자의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면세점들은 이미 이익에 따른 법인세를 납부하고 있다”면서 “특허수수료를 올리려다 오히려 면세점 매출이 줄어 법인세를 받는 정부의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력 없으면 중국인 관광객 언제든 발 돌려 

업계와 전문가들 주장의 핵심은 국내 경쟁만을 고려해 면세점 현황에 대해 독과점이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가 면세점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는 외국인의 수를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고객을 유인해 더 많은 상품을 판매하는 경쟁이 면세점 사업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김승욱 교수는 “우리 면세점들이 지난 3월 이탈리아의 월드 오브 듀티프리 인수전에서 세계 2위의 스위스 듀프리(Duffry)에 밀린 것처럼 현재 전 세계적으로 대형 면세점들의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면서 “국내에서 수익이 잠깐 생겼다고 나눠먹기에 신경 쓰면 순식간에 국제 경쟁에서 밀려나 도태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면세점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국회와 정부의 무지막지한 규제 요구는 세계적 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마치 국회나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임의로 중소기업에 할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게 면세점 업계의 증언이다. 실상은 그 반대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입장에선 물건을 미리 구매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면세점 특유의 판매 시스템이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이에 더해 물품 조달 가격도 ‘규모의 경제’가 좌우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12년 중소기업에 면세점 신규 특허를 11개 추가로 내줬지만, 다음해인 2013년 경주·전남·인천·강원의 중소기업 면세점들이 특허를 반납했다. 

중국인 관광객은 한국 면세점이 물건 구색도 시원치 않고 가격도 다른 나라 면세점보다 비싸면 언제라도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린다. 중국의 경기 침체로 아예 지갑을 닫을 수도 있다. 외국인 방문에 의한 반짝 호황이 금세 사그라진 경우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경제민주화와 반(反) 재벌 규제가 가져온 면세점 파동 

1990년대 일본 관광객에 의존해 잠시 호황을 누리던 면세점들은 일본의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무더기로 도산했다. 1990년에 부산 신라면세점, 서울 파라다이스면세점이 문을 닫았고, 1995년에는 제주 동화면세점 등 10개의 면세점이 폐쇄됐다. 이 과정에서 1989년 29개였던 시내 면세점은 한진, 애경 등의 사업 포기를 포함해 1999년에는 11개만 살아남았다. 

전문가들이 면세점 규제 법안에 대해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면세점 특허권이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 의원들은 경제민주화 및 재벌 개혁의 연장선에서 면세점 사업 규제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새민련은 당내 재벌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박영선)가 선정한 5대 입법 과제 가운데 하나로 관세법 개정안을 선정하고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 

경실련 정책위원장 출신으로 면세점 관련 법안을 다수 발의한 홍종학 새민련 의원이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생각을 보면 면세점 법안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재벌 대기업과 해외 명품 브랜드만 배불리는 면세점 사업을 왜 국가가 나서서 육성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업계에서 투자비용, 재고 부담 때문에 5년 내에 수익을 내기 힘들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업자 스스로 수익성을 판단하여 입찰에 참여할지 말지를 판단하면 된다.” 

“(기존 면세점 직원들의 고용 문제는) 그분들은 대부분 중국어·일본어가 가능한 고급 인력들이기 때문에 새로 면세점을 운영하게 될 사업자들이 고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1월 13일 국회에서 새민련 의원들 주최로 열린 면세점 관련 공청회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이날 서영교 의원은 “면세점이 재벌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있다”고 밝혔고, 김관영 의원도 “면세점의 재벌 독점 개선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모두 면세점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면세점 관련 법안을 주도하는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보면, 최근의 면세점 관련 법률 개정 움직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면세점이 갖는 경쟁력이나 국내 관광산업의 성장 유인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다. 관련 법안들이 경제민주화 전략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재벌 때리기’, ‘약자 나눠주기’ 식으로 추진됐다는 뜻이다. 

특히 5년 재승인 법안으로 2200여 명의 대량 실직자를 양산할 위기를 만든 홍종학 의원은 면세점이 아닌 청년 실업과 관련된 보도자료에선 최근의 고용불안 현상을 지적하며 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을 비판하는 이중성을 보이기도 했다.

홍 의원은 2013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를 인용해 “20대 이하는 10명 중 무려 8명이 입사한 지 불과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고 있으며, 30~40대의 경우도 10명 6명 이상이 3년 내 직장을 떠나 심각한 고용 불안에 처해 있음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관광·고용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면세점 심사에서 탈락한 사업자들의 선투자 비용에 대해선 업체가 감당할 몫이라고 강변하고, 면세점 심사 때문에 실직 위기에 놓인 직원들에 대해선 고급 인력이기 때문에 재취업이 가능하다는 식의, 어찌 보면 대단히 자유주의 경제학자적 입장을 보인 것과는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국회의 반(反)시장적 행태를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권혁철 자유기업센터 소장이 조사(제19대 국회 시장친화성 평가)한 바에 따르면 19대 국회의 총 233개 의안 중 29.2%인 68건만이 시장친화적이었고 나머지 70.8%인 165건이 반(反)시장적이었다. 면세점 관련 법안들도 이런 19대 국회의 반(反)시장적 법안 발의 유행에 따랐다는 의미다. 

의원별로는 새민련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반시장적 경향이 강했다. 특히 면세점 관련 법안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홍종학 의원은 이 조사의 시장친화지수 순위가 전체 의원 300명 가운데 229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면세점은 규제보다는 국내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승욱 교수는 “해외 면세점들이 사활을 건 경쟁을 하는 와중에 관광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유인할 고민은 하지 않고 잠깐 매출이 늘어났다고 이를 나눠먹을 규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 국회와 정부”라면서 “지금은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여 관광 산업 전체의 파이를 늘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본 같은 경쟁국에 이들을 놓칠 위기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식음료 등 소모품까지 면세품을 확대했고, 소비세도 전액 환급해 주며 편의점이나 약국들도 면세점으로 허가해 면세점이 1만 개가 넘는 실정이다. 여기에 엔저 현상까지 가세해 올해 일본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이 83%나 증가했다. 중국 정부도 해외여행 소비를 국내로 전환하기 위해 하이난 섬(海南島)에 대형면세점을 세웠다.

국제 유통 전문지인 무디리포트는 ‘면세점과 브랜드의 5년간 계약은 재앙이며 브랜드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이라며 ‘한국이 세계적인 면세사업자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행운이라고 판단했는데 이번에 정부가 자기 발에 총을 쏘았다’고 논평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피를 말리는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독점이나 재벌 이익 운운하며 사업을 인위적으로 제한한다는 사실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며 “이번 면세점 재승인 파동은 경제민주화라는 포퓰리즘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라고 강조했다.

또 한정석 본지 편집위원은 “이념 편향적인 시민단체 출신, 얼치기 전문가나 여론에 편승하는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안이 국회 내에서 걸러지지 않고 법제화 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관세청의 심사 기준 자체를 문제 삼았다. 오 교수는 “글로벌 면세 사업의 경쟁 우위를 가리는 데, 상생협력 항목에 집중하도록 한 것은 사업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다”면서 “특히 관리능력, 경영능력과 같은 중요한 항목 평가에서 심사위원들이 현장 실사 한번 안 했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지금처럼 정부가 특별허가를 내주는 방식이 오히려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을 초래하고 반(反)시장적인 제2, 제3의 규제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에 아예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면세점 사업 진출을 원하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정근 교수는 “면세점 사업의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기 위해 등록제나 완전 자유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도 “현행 면세점을 허가제로 하는 것을 신고제로 개정해야 한다”며 “규제가 기업의 경쟁력을 위축시키고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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