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내 나이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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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5.12.0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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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특집] 나는 대한민국의 아스팔트 우파다 /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상임대표

운동권 편향적인 판결과 변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아스팔트 우파로 전향

“70대 나이에 아스팔트 우파라니, 당신 죽을래?” 

▲ 서석구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상임대표·변호사

아내가 걱정하는 소리다. 이 나이에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전국을 누비고, 교회와 나라를 지킨다고 밤늦게 귀가하는 때도 적지 않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이 소심한 성격을 키워 학생 시절 남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했던 내가 아스팔트 투사가 되도록 변하다니!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미국 선교사가 세운 대구에 있는 계성고등학교. 도서관 장학생으로 저자와 저술 요약 서평을 보면서 독서광이 되었다. 세계사 강의에 심취해 문명 비평가와 미래 학자의 꿈을 키웠고, 학교의 신구약 과목 수업과 예배는 축복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 졸업까지의 자취 생활 동안 예수님과 사무엘 사진을 책상에 두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으나, 헌금할 돈이 없어 교회에 나갈 수는 없었다. 

대학생 때 절미(節米)와 도박 근절 등 농촌 계몽 운동을 하여 당시 재건국민운동 대구경북본부장으로부터 상을 받았는데, 덴마크의 달가스와 그룬트비히 같은 지도자를 닮고 싶었다.  공군 장교 시절 백령도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서울 법대 출신 군목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전투기를 관제하는 요격 관제사로서 안보 의식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나, 가난한 환경은 사고를 치게 만들었다. 

운동권을 정의의 대명사로 착각 

제대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 발령을 받았으나, 운동권 서적을 즐겨 읽다가 운동권 판결과 운동권 변론을 장기간 했다. 운동권을 믿음과 정의의 대명사로 착각해 영화 ‘변호인’의 대상이 되는 부림사건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까지 무죄판결을 했다. 후회스러운 대목이다. 

운동권 변론을 하는 동안 이들 대부분이 ‘남한 정권=괴뢰 정권’, ‘남한 기업=매판 자본’, ‘북한 정권=자주 정권’이라는 논리, 특히 자주통일을 주장하는 김일성 주사파라는 것을 깨닫고 엄청난 충격과 실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 동안 운동권 판결과 운동권 변론이 교회와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는 죄책감에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김상철 변호사가 창간했던 ‘미래한국’의 주주가 되고, 아스팔트 우파가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노무현 변호사는 부림사건 피고인들로부터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받아 읽고 인생의 전환점이 된 명저(名著)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과 월맹은 대단히 좋은 나라, 미국과 월남은 대단히 나쁜 나라, 즉 공산주의는 옳고 민주주의는 나쁘다고 단죄하는 편협하고 균형 잃은 책이다. 

▲ 종북세력청산범국민협의회 등 시민단체의 회원들이 지난 6월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발장을 작성한 서석구 변호사가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영희 교수는 “6·25를 전후하여 남한의 양심적인 지도자와 진정한 애국자는 모두 남한을 버리고 북한으로 갔다”고 하면서 대한민국에 적대적이었던 교수인데, 그런 교수의 저서를 명저로 소개한 영화 ‘변호인’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6·25 때 월북한 사람은 적지만 흥남 부두에서 수많은 북한 동포가 철수하는 미국 배를 타고 피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죄의 뜻으로 뛰어든 아스팔트 우파의 길은 고난이었다. 많은 호남인들의 요구로 김대중 전(前) 대통령을 고발했고, 이후 법정 변론 과정에서는 “중국에 가서 (6·25 전범) 모택동을 가장 존경한다고 해 6·25 호국영령의 명예를 훼손한 현직 대통령이던 노무현 대통령을 구속하라”고 발언했다.

이런 투쟁의 결과 변호사 사무실 운영이 마비되어 6000만 원 넘게 마이너스 통장의 적자가 늘어나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마이너스 통장 신세를 지고 있다. 

아스팔트 우파 활동하기 딱 좋은 나이 

현장의 우파 활동은 치열했다. 광우병 괴담(怪談)을 양산하던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인천 자유공원에서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했던 세력에 맞섰고, 한미 FTA를 하면 미국의 식민지가 된다고 날조하는 반미(反美) 세력, 북한의 도발을 비호하며 국정원의 해체를 주장하는 좌파, “이명박 구속, 박근혜 사퇴”를 촉구하는 정의구현사제단과도 대결했다. 

최근엔 보수단체와 연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와 4·16연대 및 박래군 씨를 고발하는 기자회견도 했다. 이 모두가 한미동맹, 자유민주주의, 북한인권을 위해 나선 일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적(利敵)단체 한총련의 합법화 투쟁을 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전 회장 이석태 변호사를 세월호 특조위위원장으로 선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킨 국회, 민생 법안과 경제활성화법 통과에 지지부진한 국회 때문에 우리 우파 활동가들은 아스팔트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70대, 내 나이가 어때서. 아스팔트 우파 하기에 딱 좋은 나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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