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신나게 - 상주 낙동강변(洛東江邊)
자전거로 신나게 - 상주 낙동강변(洛東江邊)
  • 미래한국
  • 승인 2003.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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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익의 국토기행 (25)
바닷가의 황혼이 유화라면, 강가의 그것은 수채화이다. 호수 면의 노을이 잠기어 가라앉는다면, 강물의 그것은 춤추며 흘러간다. 그 빛과 색채의 율동에 넋이 빠져 있노라면, 강섶으로 조용조용 안개가 피어나고 어느새 아스라이 강을 덮어간다.자연과 문화의 세기, 이 둘을 잇는 환경친화적 매체로 자전거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자동차 지붕에 자전거를 매다는 것이 특권 아닌 패션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전거 많이 타고, 자전거 길이 아름다운 상주(尙州)가 모처럼 신바람 났다. 경주와 상주를 합쳐 경상도라고 한 신라시대 이래 모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바람도 쐴 겸 낙동강변으로 나갔다. 내 어린 시절을 보낸 비단폭 같은 강가다. 강변에 펼쳐지는 정경이 안온하다. 자전거는 강변 내리막길을 상쾌히 달려간다. 은빛 바퀴가 내는 금속성 회전음에 얹혀 날렵하기까지 하다. 마주 부는 강바람이 가슴을 씻어낸다. 서서히 마음 속의 온갖 찌꺼기들이 씻겨 나간다. 도시의 회색 먼지가 털려 나가고, 크고 작은 묵은 응어리들이 풀려나가면서 속이 시원해진다. 강물은 시간의 가운데를 흐르고, 자전거는 그 흐름을 타고 나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함이 없이. 다만 빛으로 어우르고, 움직임으로 맞추고, 소리로 조율하면서 스치는 공간의 색깔에 흠씬 적셔드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와의 상쾌한 입맞춤이다.오르막에서는 속도가 줄고 힘이 든다. 인생처럼. 엉덩이를 치켜들어 페달에 체중을 실어보고, 경사를 마주하지 않으려 갈지(之)자로 흔들면서 안간힘도 써 본다. 결과는 알지만 멈추는 데까지다. 마침내 내려서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 걸어 올라가니, 하나가 다른 하나를 끈다고 하기보다는 서로가 기대어 동행한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숨을 몰아 쉴 정도는 아니지만, 서로가 의지할 상대를 필요로 하고 있는 참이다.땀이 슬슬 스며난다. 살갗 밑에 고였던 찌꺼기들이 조금씩 밀려나온다. 숨었던 탐욕이 끈적끈적 배어나고, 매몰찬 아집과 독선이 스멀스멀 녹아나오고, 온갖 거짓이 제풀에 기어나온다. 처음에는 조금씩, 점점 더 많이, 그리고 마침내 퍼붓듯이. 이 땀은 사우나에서 억지로 빼내는 체액과는 다르다. 몸을 움직여 흘리는 것이라야 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헬스클럽에서 흘리는 땀과도 다르다. 자연 속에서 흘리는 것이라야 진짜 땀이기 때문이다. 진짜 땀을 흘리면 피곤하지 않다. 오히려 상쾌한 피로일 뿐이다. 등에 밴 땀이 시리게 날아간다. 이것이 평화의 깊은 맛이다.미루나무 숲새로 비단 같은 백사장이 휘감아 나간다. 낙양(洛陽)의 동쪽이라고 붙인 이름이라던가, 낙악산 기슭에 기댄 강 마을이 낙동(洛東)이다. 여기에서 낙동강 칠백리가 시작된다. 가야, 팔공, 소백의 맥이 매듭을 내고, 북류하던 위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삼산이수(三山二水)의 명승이다. 낙동대감의 낚시터로 유명한 옛 나루터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다리를 쉬어본다. 달리는 곳은 상주 고을이고, 강 건너는 의성 땅이요, 아래쪽은 선산이다.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막아서자, 강물은 선선히 방향을 바꿔 여유 있게 활주한다. 선들바람이 백사장과 물위를 쓰다듬고 지나가다 모른 체 들판으로 달려가는 강변은 여느 고장과 다를 게 없는 정겨운 농촌이다.한양에서 동래까지 낙동강, 금강, 한강 유역을 가로질러 한반도 중앙부와 동남부의 삶을 나누고 모아 잇던 영남대로(嶺南?路). 왕조의 역사와 함께 민초의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큰 길이다. 경부축에서 비껴나고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관통하지만 여전히 당당한 대로다. 흐르는 강을 따라 달리는 길에 실려 가는 것은 역사다. 그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전거는 여전히 가볍게 나아간다.가파른 언덕배기가 어느새 밋밋해지고 있다. 골짜기에 모였던 솔향기가 산그늘이 길어지면서 강변으로 내려온다. 손바닥만하던 들판이 제법 널찍하게 열리더니 언제나처럼 엎드린 몇 채의 집이 보인다. 잠시 목을 축일 수 있으리라. 버들잎 띄운 샘물 대접이 아니라도 좋다. 오가는 이들을 그저 바라보기도 하고, 무심히 건네는 몇 마디 이야기라도 들을라치면, 물씬 다가서는 고향의 모습이 거기 있지 않은가?어둑살은 달라진 농촌 마을의 외관을 옛날로 되돌려 놓는다. 그러나 토담 사이로 묻어나는 흙내음, 골목에 깔려나오는 밥짓는 연기의 매캐한 향내는 사라졌다. 골목을 메우고 재잘거리던 아이들 소리, 그 아이들을 마음놓고 불러 젖히는 아낙네의 구성진 목청, 소 몰고 들어서는 들일 마친 농부의 권위 있는 헛기침도 이제는 듣기 어렵다.그렇다고 농촌의 그림이 변한 걸 탓할 수는 없다. 마루 벽에 걸린 사진틀 속에서처럼 낡고 바래어서도 옛 모습으로 남아 있어 주길 기대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오만일 뿐이다. 마음이 열려 있고 눈이 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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