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IS와의 전쟁
끝이 보이지 않는 IS와의 전쟁
  • 미래한국
  • 승인 2015.12.10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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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테러조직 IS의 뿌리

IS는 알 카에다 추종하던 군소테러조직, 

이라크의 공화국 수비대·바스당 관료 흡수하며 폭발적으로 성장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IS의 시작은 이라크였다. 2001년 9·11 테러 공격을 당해 3000여 명의 미국 국민이 사망하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빠진 사이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 중”이라는 첩보가 미 정보 당국에 입수됐다. 미국은 2003년 3월 20일,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이라크를 침공, 불과 두 달 사이에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군정을 실시한다. 

부시 행정부는 폴 브레너 군정사령관을 임명하고, 공화국 수비대와 바스당을 해산했다. 그리고 이라크의 치안 유지와 공공 서비스를 미군이 직접 수행하도록 지시했다. 

이때 요르단 폭력배 출신의 테러리스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1999년 자신이 조직한 소규모 테러조직 ‘유일신과 성전(자맛 알 타위드 왈 지하드)’이라는 조직을 이끌고 이라크에 침투했다. 자르카위는 후세인 정권 핵심세력의 고향이자 이슬람 수니파 근거지인 팔루자를 중심으로 시아파 모스크,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등을 공격하며 세력을 키웠다. 

2004년에는 미국인 닉 버그, 한국인 김선일 등을 납치해 참수하고,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해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그 사이 ‘유일신과 성전’ 조직은 급속히 확대됐다. 시아파 무슬림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에 대한 증오감으로 가득 차 있던 공화국 수비대 출신과 사담 후세인의 민병대인 ‘사담 페다인’ 출신, 바스당 출신들을 조직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 때문에 빈털터리 실업자로 전락한 사담 후세인 정권의 하수인들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조직을 성장시켰다.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오사마 빈 라덴 등 알 카에다 수뇌부는 2004년 10월, 자르카위에게 연대를 제안, 알 카에다 테러 네트워크로 편입시켰다.

이후 자르카위가 이끄는 유일신과 성전은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AQI)’로 불리며, 2010년까지 이라크 곳곳에서 미군과 다국적군, 이들로부터 하청을 받은 민간계약자(PMC) 등을 대상으로 급조폭발물(IED) 공격, 자살폭탄테러 공격을 자행했다. 

자르카위가 이끄는 AQI는 미군과 다국적군의 포위망을 피해 곳곳에서 테러를 저질렀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국 정보기관은 추적 끝에 2006년 6월 7일 자르카위의 은거지를 찾아내 드론 공격으로 사살했다. 

하지만 AQI 조직원 가운데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라는 이슬람 성직자 출신이 등장해 알 카에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이라크 사마라 지역에서 태어나 이슬람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슬람 수니파 살라피스트(이슬람 율법으로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는 ‘살라피즘’ 추종자)였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뒤 무장세력에 가담한 알 바그다디는 2004년 2월 미군에게 체포돼 부카 수용소에 수감됐으나 가담 정도가 미미하고 조직 내에서의 지위가 낮아 2004년 12월 석방됐다. 이후 그는 AQI에 가담하여 2006년 6월 알 자르카위가 사살된 뒤 조직의 지도자가 되었다. 

▲ 이슬람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내용의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사진.

‘이슬람 국가’ 선포 

그는 지도자가 됨과 동시에 미군정과 이라크 과도정부에 불만을 품은 공화국 수비대 출신과 바스당 출신을 적극 영입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2011년 초 알제리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었다. 

알 바그다디는 알 카에다 테러 네트워크를 통해 ‘재스민 혁명’이야말로 ‘이슬람 혁명’을 일으킬 절호의 찬스라고 주장했다. ‘재스민 혁명’이 알제리, 리비아, 모로코, 시리아, 예멘, 이집트 등으로 확산되자 알 카에다 조직들이 ‘무슬림 형제단’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대거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 정권이 무너진 뒤 알 카에다 조직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한 직접선거를 요구하는 반정부 세력들을 암살하기 시작했다. 자유민주주의 요구 세력이 강한 시리아, 예멘, 리비아 등에서는 내전이 벌어졌다. 

알 바그다디는 미군이 주둔 중인 이라크보다는 알 아사드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반군 세력이 등장한 시리아가 ‘이슬람 제국’을 세우는 데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알 바그다디는 시리아의 알 카에다 지부인 ‘알 누스라 전선’을 지원하면서 세력을 더 키웠다. 

미국 정부는 2011년 5월 2일 알 카에다의 수괴 오사마 빈 라덴을 파키스탄에서 사살한 뒤 2011년 12월 이라크 주둔 미군의 전면 철수를 발표하며 ‘종전’을 선언했다. 이 날을 기다렸던 알 바그다디는 이라크에서 대대적인 활동에 나섰다. 

2012년부터 시리아 내전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반군 ‘자유시리아군’이 알 누스라 전선과 ‘정체불명의 조직’에게 공격을 받아 학살당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정보기관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호라산 그룹’ 같은 군소 조직의 소행이라고 간과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조직’이 2014년 초부터 시리아 국경을 넘어 이라크 북동부 일대까지 장악하자 서방 국가들은 긴장했다. 이때 알 바그다디가 등장하여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을 ‘이슬람 국가(IS)’라고 선포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IS 세력 

이라크 군대는 IS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뒤 미국으로부터 받은 거의 모든 장비를 통째로 넘겼고, IS는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 지역을 점령한 뒤 이교도인 야디지족, 쿠르드족 등 소수민족과 자신들과 종파가 다른 시아파를 무차별 학살했다. 

IS는 점령지에서 10살 미만의 어린이는 물론 30대까지 모든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고, 노예시장을 만들어 사고파는가 하면,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같은 무슬림도 참수, 십자가 매달기, 총살, 화형, 탱크로 깔아뭉개기 등의 기괴한 방법으로 처형했다. 

2014년 8월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동맹국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GCC 연합군이 IS 근거지에 공습을 퍼부었지만, IS 세력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17세기 체결한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종교와 정치를 완전히 분리시킨다. 이제는 ‘베스트팔렌 체제’가 국제사회의 기준이다. 하지만 여기에 반대하는 세력이 바로 이슬람 살라피즘이다. 

살라피즘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와하비즘에서 나온 것이다. 와하비즘은 이슬람 사회가 타락한 상태이며, 이를 신(神)과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4대 율법(꾸란, 샤리아, 하디스, 파트와)에 따라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변한 것이 살라피즘이다. 

1928년 이집트에서 창설된 ‘무슬림 형제단’에서 시작된 살라피즘은 와하비즘에서 더 나아가 “세상을 이슬람 율법으로 다스리던 7세기 ‘꾸란 선포 시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현대 살라피즘을 엿볼 수 있는 <이정표(Milestone)>라는 책이 있다. 무슬림 형제단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는 사이드 쿠틉이 쓴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살라피즘은 “무슬림이 세계를 정복하고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되는 천국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집트에서 권력 장악한 무슬림 형제단 

더 무서운 점은 그 과정이다. 선거를 통해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할 것을 권장한다. 이슬람 수니파 가운데 살라피즘을 따르지 않는 모든 사람을 이교도나 배교도로 간주하고, 죽여도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성이나 이교도, 어린아이에게는 ‘인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성전(聖戰)이라면 돼지고기를 먹어도, 간음을 해도, 살인을 해도, 사기를 쳐도, 도둑질을 해도, 폭력을 사용해도 죄가 아니라는 주장도 한다. 이것은 나치즘이나 파시즘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주장을 따르는 정치 세력들이 이미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그 가운데서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던 단체가 ‘무슬림 형제단’이다. 

사이드 쿠틉이 쓴 <이정표>는 출간과 동시에 이집트 정부에 의해 금서(禁書)로 지정됐고, 사이드 쿠틉은 1966년 교수형을 당한다. 당시 이집트 정부가 사이드 쿠틉을 탄압하고 그의 책을 금서로 정한 것은 세계 역학관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동맹국을 만들었다. 이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은 미국과 손을 잡았고, 소련은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여러 나라와 동맹관계가 됐다.

소련은 중동 민족주의자들을 부추겨 ‘아랍민족주의 정당’을 만들도록 했다. 이것이 ‘아랍 사회주의 부흥당(바스당)’이다. ‘바스당’은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와하비즘이 발전하면서 생긴 ‘범아랍 통일주의’와 세속주의, 사회주의를 버무린 정당이었다. 

1940년 시리아에서 처음 생긴 바스당은 이후 이라크, 요르단, 바레인, 예멘, 팔레스타인, 모리타니, 수단 등으로도 퍼졌다. 이집트에서는 아랍민족주의를 표방한 사회주의자 나세르가 나타난 뒤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냉전 시대에는 바스당과 아랍 민족주의가 득세했지만, 소련이 붕괴하면서 바스당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대신 더 과격한 이슬람 우선주의 세력이 성장했고, 그 선봉이 ‘무슬림 형제단’이 있다. 

2011년 초 재스민 혁명이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 때 이집트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 집권이 막을 내렸다. 이때 재스민 혁명에 큰 영향을 끼친 무슬림 형제단은 무함마드 무르시를 당수로 내세워 자유공정당을 창당했다. 이들은 선거에서 승리하여 이집트 집권당이 되었고, 무르시는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무르시 정권은 한계를 드러냈다. 종교만을 앞세우는 무슬림 형제단 중에서 지도자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각료를 뽑고, 이들이 정책을 펼치다 보니 이미 세속화된 국민들과는 동떨어진 정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슬람 율법을 내세워 외국 자본을 쫓아내면서 경제가 급격히 침체했다. 

중동 최강을 자랑하는 이집트 군부와 ‘종교 우선’을 표방하는 무르시 정권의 대립이 시작됐다. 기존의 군부세력을 숙청하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무슬림 형제단과의 갈등으로 2013년 7월 압델 파타 엘시시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무르시 정권을 타도했다. 

2014년 엘시시 정권과 군부는 무슬림 형제단을 불법조직으로 지목하고 무슬림 형제단 단원 683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단체를 해체했다. 지도부는 대부분 해외로 도피했다. 

하지만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에서 철수했을 뿐 다른 나라에서 다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엘시시 정권이 이들을 불법단체로 지목하면서 활동은 더 은밀 과격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은 알 카에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알 카에다 두목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은 무슬림 형제단의 정신적 지주인 사이드 쿠틉을 자신의 역할모델이라고 누차 밝혔고, 알 카에다의 현재 두목인 아이히만 알 자와히리는 사이드 쿠틉과 사제지간(師弟之間)이다. 

그런데 알 카에다보다 사이드 쿠틉의 가르침에 더 충실한 세력이 IS다. 알 카에다 테러 네트워크 소속이었던 조직들이 앞 다퉈 IS의 알 바그다디에게 충성 서약을 하는 이유도 바로 이 ‘가르침의 실행’ 때문이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인가? 

현재 전 세계에서 IS에 충성 맹세를 한 테러조직으로는 나이지리아 북부의 ‘보코하람’, 말리의 ‘안사르 알 딘’과 ‘알 무라비툰’, 알제리의 ‘준드 알 칼리프’, 이라크와 이란을 잇는 지역의 ‘ISIL 호라산 지부’,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니스’, 파키스탄의 ‘파키스탄 탈레반(TPP)’, 소말리아의 ‘알 샤바브’,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제마 이슬라미야’, 필리핀의 ‘아부 사야프’ 등이 있다. 

이들 외에도 IS에 동조하는 이슬람교도들의 숫자도 적지 않다. 코카서스 산맥 일대에서 활동하는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MU)’이나 미국, EU 내의 ‘외로운 늑대’들도 IS를 추종하고 있다. 터키도 무슬림 형제단을 지지하는 세력들 가운데 IS를 추종자들이 있다. 때문에 터키에는 IS 비밀지부가 최소 10개 이상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IS가 이처럼 광범위한 지지와 추종을 얻는 비밀은 이슬람 수니파의 교리에 담겨 있다. 이슬람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는데 세계 무슬림의 90% 이상이 수니파다. 수니파 가운데 살라피즘을 따르는 인구는 10% 정도로 추정되는데, 수치로는 1억6000만 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1%만 IS를 추종한다고 계산해도 160만 명이다. 

와하비즘의 본거지인 사우디아라비아, 걸프 연안의 산유국들, 살라피즘의 본거지인 이집트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지하는 부자들이 있고,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인도 북부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위해 자살도 무릅쓰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IS에 자금, 인력 등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이상, 이들이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들로 끊임없이 이민을 하는 이상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실이 이럼에도 한국은 IS와 와하비즘, 살라피즘의 위험성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특히 최근 언론에 나와 “IS는 진짜 이슬람이 아니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하는, 소위 ‘전문가들’이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자들의 도움으로 현지에 유학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지금 한국에서 알려진 IS와 와하비즘, 살라피즘에 대한 정보와 시각은 완전히 잘못돼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IS와 살라피스트들의 최종 목표가 ‘이슬람의 세계 정복’과 ‘이교도 멸종’이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약간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들의 위험성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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