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를 사는 민노총
선사시대를 사는 민노총
  • 미래한국
  • 승인 2015.12.1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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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선일보> 게재 칼럼

※ 다음은 차기환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12월 14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 칼럼 전문입니다.

▲ 차기환 미래한국 편집위원‧변호사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 10일 조계사에서 나와 경찰에 출두한 후 13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달 14일 민주노총이 주도한 '민중 총궐기' 폭력 집회 후 조계사로 피신한 지 27일 만이다.

한 위원장은 민노총 위원장 선거 시 '총파업'을 내세웠고 지난 집회에서 '나라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선동한 인물이다.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그간 한상균 위원장을 조계사 내에 보호한 채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고 정부와 민노총의 중재를 자임하고 나서 사태를 장기화시켰고,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제2, 제3의 한상균도 품겠다고 밝혔다.

민노총과 조계종 화쟁위원회의 이런 인식과 행동은 모두 시대착오적이다. 범법자가 종교 시설로 도피하는 관행은 과거 동서양에 다 있었다. 삼한(三韓) 시절의 소도(蘇塗), 그리스 로마의 아실리(Asillie) 제도, 기독교 성경상의 도피성(逃避城) 제도가 그러한 예다.

사회적 약자에게 도피처를 제공하거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에 따라 보복하는 것을 제한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런 제도는 근대국가가 성립하기 이전 정부의 권력이 발달하지 못해 통제력이 한계가 있는 데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및 80년대 시국 사범이 명동성당으로 피신하면 공권력이 진입하지 못하여 장기간 대치하는 사례가 있었다.

70년대 유신 정권하의 긴급조치 및 과중한 처벌에 대한 반발, 80년대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정통성 시비로 인하여 천주교가 도피자를 보호한 것은 일면 타당성을 가질 수 있었고, 사안에 따라 국민의 심정적 지지도 받았다.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현행 헌법은 1987년 자유로운 국민투표로 제정됐고 그 헌법 체제하에서 국민의 선택에 의해 정권 교체가 반복됐다.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이 확실하게 확보된 것이다.

또 법원의 재판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증거 법칙을 적용하고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도 충실하게 보장하고 있다. 내란선동죄로 기소된 이석기 사건에 다수의 변호인이 개입해 치열하게 다툴 수 있을 정도로 피고인의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

법원의 공안 사범에 대한 양형 역시 가볍다고 볼 수 있을지언정 과중하다고 보기 어렵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이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상으로도 한국은 '완전한 민주국가'로 분류하는 25위 이내 순위에 오르며 일본·미국과 대등한 평가를 받는다.

유신 시절이나 전두환 정권 시절과 같이 종교가 종교 시설로 도피하여 온 범법자를 보호하면서 법의 집행을 거부할 근거가 없어졌다. 한상균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세월호 추모 집회 때 경찰의 해산 명령을 위반하고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다가 기소됐을 뿐만 아니라 올해 5월 노동절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수차례 재판에 불응했다.

세상 어느 누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법 집행을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가. 그는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사회적 약자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범법자를 보호할 명분이 전혀 없다.

한편 민노총은 그들의 단체행동권이 헌법상 보장된 것이라고 해도 그 권리를 헌법 및 법률에 맞게 행사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기준법, 기간제근로자법, 파견근로자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개정안에 대한 민노총의 반대 활동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11월 14일과 같은 폭력 시위나 총파업은 경제 위기를 심화하고 국민의 외면을 초래할 것이다.

민노총은 노동법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하면서 경제적 현실에 근거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과거와 같이 도식적으로 기간제 근로자의 전원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등을 외치는 것은 현재 경제하에서 설득력도 실현 가능성도 없다.

민노총 조합원들은 대부분 한국 근로자 상위 10%에 속하고, 근로자 상위 10%가 2012년 전체 근로자의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이른다. 그런 조직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민노총 조합원과 같은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많은 구직 청년 및 비정규직 청년들이 민노총 소속 대기업 노조원들의 이해관계가 자신들과 충돌한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주장은 합리적인 좌·우익 양 진영에서 모두 제기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민노총이 정치적 이슈로 총파업을 하거나 폭력 시위를 시도한다면 고립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은 더 이상 권위주의 체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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