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죄인’인 나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죄인’인 나라 대한민국
  • 미래한국
  • 승인 2015.12.16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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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분석] 한미 양국의 대통령 비판론

체제 반대 세력들이 정책에 대한 비판·비난이 아니라 ‘대통령 축출, 살해’ 주장이 과연 ‘언론의 자유’로  보호 받아야 하는 일인가?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한국과 미국을 비교할 때 자주 회자되는 사례가 군인에 대한 사회의 예우다. 한국에서는 군인들을 ‘군바리’라며 폄하하고, 심지어 폭력배들이 군인을 괴롭히는 일까지 일어나지만, 미국 국민들은 군인을 “시민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로 예우한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이 전혀 다르게 예우를 하는 자리가 국가원수다. 미국 대통령은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부터 특별한 예우를 받는다. 미국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야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니까”라는 식으로 지레 짐작하겠지만, 중요한 점은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의 태도다. 

미국은 간접선거 방식으로 대통령을 뽑는다. 각 주별로 유권자들이 대의원 선거를 한 뒤 당선된 대의원들이 모여서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의원 수는 각 주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합친 수다. 메인 주와 네브래스카 주를 제외하고는 대의원은 ‘승자 독식제’를 채택하고 있다. 즉 특정 정당의 지지율이 높을 경우 해당 정당이 모든 대의원을 독차지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전체 유권자 득표에서는 승리하고도 실제 대선에서 패배한 사례도 있다. 1824년 선출된 민주공화당의 존 퀸시 애덤스, 1876년 공화당 러더퍼드 B. 헤이스, 1889년 공화당 벤자민 해리슨 등이 이렇게 당선됐다. 최근에는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대의원 수에서 이겨 가까스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의 대선 레이스는 한국보다 더 치열하며 비용도 많이 든다. 대선 후보에 대한 상대방의 공격이나 신상 털기, 비난과 비판이 난무한다. 언론들도 각자 논조에 따라 상대 후보를 공격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경쟁은 대통령 선거와 함께 사라진다. 

▲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협박 발언은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 작태다.

대통령을 예우하는 정신 

미국 사회가 대통령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는 한국과는 크게 다르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라는 위치에 걸맞게 세계 각국으로부터 예우를 받는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선출된 군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휘하고,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을 이끌며,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각 분야의 정책을 결정하는 미국 대통령이다 보니 재무성 산하 비밀경호국의 근접 경호 외에도 미 해병대가 백악관 경비를 받는다. 미 해병대의 백악관 경비는 조지 워싱턴 때부터의 전통이고 비밀경호국의 근접 경호는 에이브러햄 링컨 때부터 시작됐다.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대통령과 그 가족들은 평생 경호를 받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부터는 현직에서 물러난 뒤 10년까지만 경호를 받는다. 최근 테러 위협이 증가하면서 이를 다시 ‘평생 경호’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공군 1호기’라는 전용기와 ‘해병 1호기’라는 전용 헬기를 사용한다. 지상 이동 때는 ‘비스트’라는 암호명을 가진 특별 경호 차량을 탄다. GM의 캐딜락 DTS 리무진을 개조한 것으로 로켓탄을 직격으로 맞아도 내부에 탄 사람들은 무사할 정도의 특수 장갑차량이다. 

미국 대통령은 한미연합사를 통해 한반도의 군사력 행사에도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령관을 통해 회원국의 군사작전도 지휘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법안 거부권을 포함해 상하원에서 통과한 법률을 승인할 권한, 상원의 동의를 받은 내각 장차관을 임명하는 권한, 의회의 동의를 얻어 특별 사면 또는 형 집행을 연기할 수 있는 권한 등도 갖는다. 

미국 대통령이 가진 권한과 예우 등은 법률에 따른 것으로 뭔가 특별해 보이지만, 사실 더 특별한 것은 미국 사회에서 대통령을 예우하는 정신이다. 미국 대통령이 가진 권한과 예우는 다른 나라의 대통령과 비교하면 그리 특별하다고는 볼 수 없다. 

의회에 대해서는 해산권도 없고 법안 제출권도 없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대통령을 예우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대선 직후부터 ‘퇴진 운동’을 벌이는 우리나라와는 크게 비교된다. 

‘정책’에 대한 비판·비난은 가능 

미국 내에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수준은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할 때가 많다.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의 발음 때문에 ‘다브야’라는 비아냥을 숱하게 받았다.

이런 표현은 개인은 물론 언론과 시사 프로그램, 심지어는 연예 프로그램과 만화영화에서도 ‘패러디’ 대상이 될 정도였다. 특히 미국 내 좌익 진영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비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를 반대하는 폭스 뉴스는 물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까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중 연설 중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It’s not my fault)”라고 말한 것을 놓고 “내 잘못 아님 대통령(The Not my fault president)”이라고 그를 비난하는 패러디에서부터 그를 무슬림 광신도, 공산주의자라고 표현한 글까지 다양한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바로 미 수정헌법 제1조에서 규정하는 ‘언론의 자유’다. 미국에서 말하는 언론의 자유는 한국의 그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의 좌익 진영에서는 미국 사회의 ‘언론의 자유’가 무한정인 것처럼 말하지만, 미국에서 대통령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범위에는 분명한 선이 존재한다. ‘오바마 케어’와 ‘이란 핵합의’에 대한 미국 우파 진영의 반대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내 좌익 진영의 행태를 비교해보면 그 선이 명확히 드러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기존의 민간 의료보험에 대한 혜택을 줄이는 대신 모든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적(公的) 의료보험 제도를 추진했다.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정책’ 자체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다. 오바마 행정부나 민주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대안 또한 줄줄이 나온다. 

정책비판은 가능, 인신공격은 금물

이란 핵합의에 대한 비판과 비난도 마찬가지다.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에 추진했던 ‘제네바 핵합의’라는 선례를 볼 때 이란이나 북한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 이란에 대한 ‘느슨한 통제’를 믿고 핵 합의를 해준 것이 잘못이라는 비판과 비난이 주를 이룬다. 

반면 한국의 좌익 진영과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야권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아니라 ‘대통령 하야’, ‘정권 퇴진’을 요구한다. 일각에서는 “청와대로 쳐들어가 이명박(박근혜)를 끌어내자”는 주장까지 공공연하게 한다.

국내 좌익 진영에서는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욕해도 한국처럼 사법당국이 수사를 하고 붙잡아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전단을 뿌려도 그 내용이 ‘정책 비판’과 ‘대통령 비판’이지, “대통령을 죽여야 한다”라거나 “선거 자체가 불법”이라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대선을 둘러싸고 부정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2000년 11월, 대선 직후 플로리다 주에서 흑인 수천여 명이 “부시를 찍은 투표용지를 받았다”고 신고해 FBI가 수사에 나선 적이 있다. 2008년 11월에도 버지니아 주에서 “투표 시간을 연장해 달라”는 흑인들의 요구를 지방판사가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선거’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3억 1000만 명의 미국인들 가운데 부정선거를 이유로 당선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거나 퇴진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1%에도 훨씬 못 미친다. 부시 대통령 집권 때나 현재의 오바마 대통령 때나 “대통령 물러나라”거나 “대통령을 끌어내리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청와대로 쳐들어가 박근혜의 목을 매달자” 

반면 한국은 2008년 4월 말부터 시작된 ‘광우병 폭동’ 당시 좌익 진영은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선거 부정을 주장했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는 아예 선거 이튿날부터 국정원을 핑계로 “선거 무효”를 주장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뒤에는 “청와대로 쳐들어가 박근혜의 목을 매달자”는 식의 협박도 난무하고 있다. 

한국의 좌익 진영과 야권은 현직 대통령을 “잡아 죽이자”거나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자”, 즉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뒤집자’고 말하는 것도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면 무사할까. 미국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드러난 사례가 있다. 

2013년 11월 28일(현지시간) 텍사스 휴스턴에 살던 50대 흑인 여성 ‘테디 베어 파라다이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당신을 암살할 것”이라는 협박 편지를 보냈다. ‘데니스 오닐’이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이 여성은 12월 FBI와 경찰에 검거됐고, 2014년 12월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여성은 2008년에도 부시 대통령에게 “널 죽일 것”이라는 협박 편지를 보냈다가 실형을 살았던 경험이 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대통령에게 ‘장난 편지’로 “죽이겠다”고 해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이는 외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15년 7월 7일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이 모 씨(33세)는 미 백악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오바마 대통령의 둘째 딸 나타샤를 성폭행,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되겠다”는 글을 올렸다. 6시간 뒤에는 “오바마 대통령을 테러하겠다”는 글을 또 올렸다. 

같은 해 8월 12일 한국의 서울중앙지검은 이 씨를 구속 기소했다. 미 대통령을 경호하는 비밀경호국의 요청을 받은 FBI가 이 씨에 대한 정보를 한국 정부에 넘긴 것이다. 이 씨는 “PC가 해킹을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을 협박한 것은 아니지만 2012년 3월 26일 미 긴급전화인 911에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를 할 것”이라고 장난 전화를 했던 한국인 20대가 1년 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체포됐다. 이처럼 미국은 자국에 위협을 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하여 법적 대가를 치르도록 한다. 

모든 것이 ‘대통령 탓’인 나라 

국내 온라인을 서핑하다 보면 군인을 대우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부러워하는 이야기가 많다. 비행기에서 일등석을 양보하는 것에서부터, 거의 대부분의 상점에서 군인이라면 현역과 예비역을 가리지 않고 할인해주고, 악수를 청하며 “당신의 복무에 감사드린다”고 말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미국 사회가 군인을 대우해주는 모습은 부러워하면서도 대통령을 존중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미국 사회가 대통령을 비판, 비난하고 패러디의 소재로 삼는 것에는 별 거부감이 없지만,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거나 “대통령을 죽이자”고 말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행동’으로 보는 이유는 군인에 대한 존경, 그리고 경찰·소방관 등 ‘제복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외면하는 걸까. 

미국 사회는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대공황,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국민 스스로가 나라를 일으켜 세워왔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를 세계에 전파하고, 이를 받아들인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바쳤다는 점에 대해서도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런 모든 업적이 이뤄지는 데는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한다. 

반면 한국 사회는 4·19든 5·16이든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주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풍토가 대통령 선거 때도 이어지다 보니 “내가 뽑은 대통령”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함께 책임진다는 의식이 희박하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반대하는 진영은 대통령을 ‘국가의 적(敵)’으로 규정한다. 야당은 ‘정치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런 세력을 감싸고돈다. 이런 행태는 가장 좌편향 되었다는 노무현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체제 반대 세력들이 정책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아니라 ‘혁명’을 주장하고 ‘대통령 축출’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언론의 자유’로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일일까. 

전문가들은 급속도로 발전한 한국 사회는 정신적 공백이 있다고 평가한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책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린다. 비가 안 와도, 낙타 독감이 퍼져도, 운항 중이던 배가 침몰해도 “대통령 잘못” 라면서 대통령을 탓한다. 

미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차이는 국가 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책임감 유무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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