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보다 팔로워십(followership)이 문제
리더십보다 팔로워십(followership)이 문제
  • 미래한국
  • 승인 2015.12.18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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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리더십과 팔로워십

리더십의 역할은 20% 정도에 불과하고 팔로워십(followership)의 역할이 80% 정도에 달한다. 우리는 리더십에만 초점을 맞춰 대통령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고, 책임을 추궁하고, 비난을 일삼는다.

대통령은 높은 자리이지만 고독한 자리다. 마치 높은 나무 위에 올라 있는 것과 같다. 높은 나무 위에서는 더 멀리 더 많이 볼 수 있지만, 조금만 바람이 불면 눈앞에 보이는 과일이라도 따기 어렵게 된다.

▲ 김충남 대통령학 전문가

더구나 사람들이 과일을 빨리 따 달라고 나무를 흔들어대면 더 따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계속 흔들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태우 대통령은 재임 당시 자신을 ‘동네북’이라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 한 번씩 두드려본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몇 달 만에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는 대통령이 어디 있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비난을 쏟아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말을 했겠는가? 더구나 단임제 대통령은 조기에 레임덕 현상에 빠져 제대로 일하기조차 어렵다. 미국에서 단임으로 끝난 대통령치고 중요한 업적을 이룩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회자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정치인들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를 막기 위해 이원집정제 또는 내각제 개헌을 거론하기도 한다. 일반인들도 대통령은 무엇이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자리로 인식한다.  과연 그런가? 

김영삼 대통령의 국상(國喪) 기간에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그 동안 우리는 김영삼 대통령을 얼마나 비난해 왔던가? 사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비판·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국의 대통령은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라 가시 박힌 면류관을 쓴 자리여서 퇴임 후에도 따뜻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월간조선>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역대 대통령 모두가 한국 현대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20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도자들이 그렇게 형편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겠는가? 

대통령을 ‘가해자’로 조사하겠다는 사람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라고 했다.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얼마나 고뇌가 컸기에 그런 심정을 토로했을까? 해야 할 일은 산적한데 제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취임한 지 3년 가까이 되지만 그 동안 잠시도 발 뻗고 쉰 적이 없다고 했다.

하루 종일 빈틈없이 짜인 일정을 마친 후 보고서를 한보따리 들고 관저로 가서 밤새 읽으며 장관과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하고 지시도 하는 등 업무가 계속된다고 한다. 그래서 누적된 피로로 박 대통령의 얼굴이 많이 달라졌다. 

현대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민주제도란 지극히 복잡한 정밀기계 같은 것이어서 어느 한 부분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전체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외국 학자는 리더십의 역할은 20% 정도에 불과하고 팔로워십(followership)의 역할이 80% 정도에 달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리더십에만 초점을 맞춰 대통령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고, 책임을 추궁하고, 비난을 일삼는다. 그래서 관료의 책임,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가해자’로 분류하여 조사하겠다고 결정했다. 세월호 침몰은 배를 소유한 선사(船社)와 선장 등에게 근본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종의 ‘교통사고’였다는 것이다. 물론 해경 등 관계당국의 사후 대처가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선박 사고의 특성상 아무리 잘 대처했더라도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통해서도 관계 공무원들의 전문성과 위기 대응 능력에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후 첫 사망자가 나오기까지 11일 간이나 관계공무원들이 안이한 판단으로 체계적인 방역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세월호 사태와 메르스 사태로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고, 대외적으로도 국가의 위신을 떨어뜨렸다. 이처럼 관료의 무능과 실패가 정권의 무능, 대통령의 무능이 되고 그 책임이 대통령에게 전가되었을 뿐, 관료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행정체제에 대한 혁신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한국사 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조치에 대해 찬성보다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한국사 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판단했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인기에 구애하지 않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한국사 검인정 교재를 보면 도저히 용납되기 어려운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고, 교과서로서의 품격도 수준이하지만 검인정 절차를 통해 그런 교과서를 허용한 교육부 공무원들의 무지와 무책임은 용납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과거 관료들은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사명감도 책임감도 전문성도 없으면서 적당히 눈치 보며 자리만 유지하면 된다는 보신주의와 무사안일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규제 철폐가 경제의 활력 회복을 위해 절실하지만 관료들은 자신의 권익과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규제의 끈을 움켜쥐고 있다.

이처럼 공직자들이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등 팔로워십 역할에 실패함으로써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유능한 대통령이라도 이런 관료들과 함께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도 문제다. 지자체가 너무 정치화되어 중앙정부는 물론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정면으로 비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여건이라면 정부의 정책이 일선에서 제대로 집행되기 어렵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교육에서도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노골적으로 정부 정책에 엇박자를 내고 있다. 

민주국가의 성공 여부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협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의회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입법을 통해 행정부를 뒷받침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물론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는 데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민주 대 반민주의 낡은 이념적 틀에 갇혀 강경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기 어려운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 우리나라는 모든 일이 대통령 책임이라는 듯이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해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을 가해자로 지목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회의 장면이다.

후진적 정치로는 미래가 없다 

청년실업, 자영업 부진, 노인 빈곤, 가계부채 증가 등이 고질적인 현안이 되어 왔고, 최대의 수출시장인 중국경제의 위축으로 수출까지 줄어들면서 산업생산도 뒷걸음질 치고 있다. 중국이 거대한 소비시장을 배경으로 기술력까지 한국을 따라 오면서 우리의 주력산업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세계경제는 급속한 구조재편 과정에 있다. 2008년 미국 발(發)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제로금리를 유지하며 달러화를 무한대로 풀었고, 유럽연합(EU)은 그리스 등 남유럽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계속 비상대책을 강구해왔다.

최근의 파리 테러로 유럽경제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으며, 이웃나라 일본도 엔화를 풀어 경기부양에 적극적이다. 이처럼 선진국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브릭스(BRICS)로 알려진 신흥공업국들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등 ‘민중 총궐기’에 참가한 단체들은 노동개혁, 국사 교과서 국정화, 한·중 FTA 등을 반대하며 IS 집단처럼 복면을 하고 쇠파이프와 각목 등 온갖 흉기를 휘두르며 공권력을 우롱하고 수도 서울의 중심부를 무법천지로 만들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과연 이 나라가 형편없는 후진국인지 아니면 선진국 문턱에 있는 세계 유수의 산업국가인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그럼에도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들이 별로 없다. 

박근혜 정부는 3년 가까이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해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4대개혁을 추진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그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외국의 직접투자가 동아시아 신흥국 중에서 꼴찌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 투자환경이 열악하여 한국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기업마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었기 때문에 노동개혁을 하지 않으면 새로 채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줄어들어 청년실업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개혁은 무엇보다 시급하지만 이번 정기국회에서 노동개혁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했다. 

글로벌 경쟁은 잔인한 것이지만 무역국가인 우리나라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나 기업의 인수·합병을 용이하게 하는 것은 우리 경제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다. 최근 지식인 1000명이 우리경제의 현실을 미중유의 위기로 규정하고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의 각성을 촉구한 바 있다. 

현재 야당은 최악의 정당 

국제경쟁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국내 정치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야당은 온갖 이유를 내세우며 경제 활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법안들을 거부한 것이다. 치열한 국제경쟁의 현실을 무시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무대에서 비참한 낙오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 같은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적인 역할을 했느냐는 비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전임자들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래 매년 국회에 나가서 시정연설을 했다.

국회 연설 전후에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자들과 회동하기도 했고, 몇 차례 여야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치하고 국정 현안에 타결을 시도했다.  그러나 한 번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무엇보다 지금의 야당이 최악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1970~80년대식 민주 대 반민주의 이념투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정부 여당을 경쟁과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반대와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 야당은 이념적 강경파로 인해 심각한 계파 갈등이 계속되면서 리더십이 확립되지 못하고 주요 현안에 대한 당론 결정이 어려우며, 원내대표가 협상한 결과를 의원총회에서 빈번히 거부당하여 원내대표가 사퇴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를 만난들 기대하는 결과가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지렛대로 하여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들고 행정부가 하는 일을 사사건건 비토(veto)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는 3류도 못 되고 4~5류로 낙제 수준이다. 정치의 국제경쟁력은 후진국 수준이고, 한국의 의회민주주의는 이름뿐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책임은 망각한 채 모든 책임을 대통령과 정부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란 하나의 배를 타고 있는 운명공동체다.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책임진 선장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선거가 끝나면 유권자들은 대통령을 지지했든 안 했든 ‘선장’인 대통령을 성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정치 풍토는 지나치게 대립적이어서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에도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대통령으로 예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선거를 상대세력을 타도하겠다는 의도로 임했기 때문에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승복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기는커녕 야유와 비판과 적대시의 대상으로 삼는다. 모두가 하나의 팀이 되지 못하고 줄다리기 하는 것처럼 양편으로 나누어져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경제가 미중유의 위기라는 경고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야당의 반대로 19대 마지막 정기국회는 시급한 노동개혁 법안, 서비스산업기본법 등 일자리 창출과 직결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3년 가까이 국회에 통과를 요청했던 법안들이다. 

경제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기업구조조정 법안도 처리하지 않았고, 파리 테러로 세계가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음에도 테러방지법까지도 외면했다. 테러방지법은 2001년 9·11테러 직후부터 14년간 논의되었지만 아직까지 성사되지 못했다. 

이처럼 민생과 국익은 팽개치고 이권 챙기기와 예산 나눠먹기에는 재빨랐다. 더구나 19대 국회는 과거에 비해 부정비리에 연루된 의원이 많았고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망각한 무책임한 의원들도 많았다.

입만 열면 국민을 들먹이면서도 실제로는 이권 챙기기에 분주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처럼 정치인들의 무책임이 극도에 달하여 19대 국회는 최악의 실적을 남기고 막을 내리게 되었다. 
 
투표혁명을 통한 정치혁신이 해결책 

왜 정치인들은 국민을 기만하며 우롱하는가? 정치인들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정활동을 잘못해도, 국회의원으로서 함량 미달이더라도, 온갖 파렴치한 비행을 저질러도 또 다시 출마하면 당선되기 때문이다. 특정지역에서는 특정정당 후보를 무조건 지지하고, 도시지역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묻지 마’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을 탓하기 전에 그런 사람들을 잘못 선출했던 우리 자신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정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이라고 했다. 국민이 준엄한 심판을 하지 않는 한 19대 국회의원 대다수가 국회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정치가 달라지지 않는 한 경제 활력 회복과 국가혁신도 어렵고 밝을 미래를 기약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스스로 혁신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우리는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한다.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정치인들이 국정을 농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분노하고 일어나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의 단합된 힘으로 정치혁신이라는 위대한 명예혁명을 이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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