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진보’의 亂(난)을 진압하자
‘민주진보’의 亂(난)을 진압하자
  • 미래한국
  • 승인 2015.12.29 14: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년특집] 대한민국 생존의 길

한국정치의 주도적 가치이자 핵심세력이 되어온 낡은 진보와 선동적 민주, 그리고 소위 ‘민주진보’ 세력을 종식시켜야

40년이나 정치 현장에 있던 김종필 전(前) 총재가 정치는 허업(虛業)이라 회고했던 것에 마음을 울린다. 지나고 보니 실업(實業)은 아니었고, 다시 보니 이뤄놓은 것도 없다는 자조와 겸양의 표현일 것이다. 누구나 정치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정말 진절머리가 날 만도 하다.

▲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봉사하겠다고 말하며 실제로는 군림하는 것이 다반사다. 위선과 허구적 논리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것도 정치라며 감내해야 했다. “나는 다르다”며 로또(lotto)를 사는 심정으로 정치에 뛰어들기도 하고, 욕하면서도 어느덧 스스로도 얼씬거리고 있는 것이 정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정치다. 생산적이지 않아 보이는 허업의 세계에서 진절머리 나는 역겨움을 뚫고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의 숙명이다. 대한민국도 그런 정치 과정을 거쳐 성장해왔다. 모두가 상처투성이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그렇다. 전두환이나 이명박,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상처와 온갖 비난을 뚫어내지 않고는 넘어서지도,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것이 정치다. 

다시 되돌아보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성취의 역사를 만들었다. 지난 70년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 길을 개척해온 역사라는 데 이견을 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부러워하며 우리 모델을 따라 배우고 있다.

봉건사회와 식민체제를 이어 받아 남달리 공산체제와 맞서가며 만든 역사다. 대한민국 건국 때는 누구도 우리가 그런 경지의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뤄냈다. 굴곡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우리 정치는 옳은 길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건 과거다. 오늘을 지켜보면 참혹하다. 점점 더 어렵고, 다시 과거를 돌아다보면 더 크게 보인다. 그런데도 과거를 욕하는 데 열정을 바치며 현실은 방치하고 있다. 당면한 내일을 개척하기는커녕 과거에 대한 ‘해석’을 통해 자기 정당성과 정치논리를 만드는 데 집중되어 있다. 

1987년 체제가 만든 괴물 : ‘민주진보’ 

성취의 시대는 짓밟고 자기 시대는 방치하며 누리고 떠나는 시대가 우리 시대다. 그런 시대를 만든 원초적 근원은 ‘1987년 체제’에서 비롯된 정치구조다. 생산은 없이 남을 욕하며 먹고사는 정치세대의 등장이다.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고, 부정과 타도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정치라 하며, 그것을 통해 집권 정당성을 만드는 정치구조다. 그런 정치세력의 핵심가치가 소위 ‘민주’이고 ‘진보’다. 

2016년 한국 정치가 맞은 최대 과제는 민주진보를 내건 전체주의의 난(亂)을 종결시키는 일이다. 1987년 체제의 완전한 종식이다. 한국정치의 주도적 가치이자 핵심세력이 되어온 낡은 진보와 선동적 민주, 그리고 소위 ‘민주진보’세력의 종식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민주진보’는 온갖 불법과 폭력의 대명사다. 대한민국에 맞서고 자유민주적 보편가치를 짓밟는 중심이다. 그 대표적 상징은 민주노총이고 진보연대다. 1987년 민주주의의 성숙을 계기로 온갖 명분을 다 만들며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에 반하는 길을 만들고 열어왔다. 민주세력이니, 진보진영이니 하는 것이 그것이고 민주화세력이니 노동운동권이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의 변형세력이 민주기지론을 내건 이래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만들어내던 세력은 할 말을 잃었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 나라를 지키고 자유와 인권의 기반을 만들고 산업을 부흥시키던 세력들은 진보가 내질러대는 독재, 극우라는 말에 갈 길을 잃고 가던 길을 내줬다. 

급기야 사이비 민주와 진보 앞에서 한국 사회는 멈춰 섰고 혼란스러워했다. 비굴하기까지 했다. 급기야, 올바르게 가던 길도 내버리고 이리저리 기웃기웃하며 눈치를 보고 ‘민주진보’ 세력이 달아주는 ‘합리적이다’, ‘중도적이다’라는 훈장을 받고자 경쟁하기도 했다.

공산 전체주의와 싸우는 세력은 자취를 감췄고, 북한체제와 맞서 싸우겠다는 사람은 극단적이라느니, 너무 보수적이라느니 하면서 소위 ‘민주진보’에 동조하고 투항하는 일이 다반사다. 

역사적 정당성이 있는 반공(反共)세력은 스스로를 감춰야 했고, 전체주의를 극복하자는 ‘승공(勝共)’은 써서는 안 되는 금기어가 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2400만 인권 유린과 문명과 민족의 파괴에는 눈감고 남북 간 ‘대화, 협력, 지원’이란 논리와 함께 ‘자극하지 말자’는 말들만 떠도는 세상이 되었다. 

▲ 1987년 체제의 핵심 가치인 소위 ‘민주진보’는 대한민국에서 맞서고 자유민주적 보편가치를 짓밟는 불법과 폭력의 대명사가 됐다.

스스로 만드는 가치에 당당해야 한다 

횡행했던 공산전체주의는 1991년을 기점으로 세계적 차원에선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한반도는 예외였다. 공산전체주의에 맞서 싸우고 해방의 길을 개척해야 할 자유민주 세력은 전선에서 후퇴했고, 스스로 정당성과 전투력을 상실했다. 오히려 변형된 전체주의는 한반도 북부에 더 확고히 똬리를 틀게 되었고, 한국 사회에 더 크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진보좌파 운동권은 1980년대 대학과 노동 현장에서 폭발했고, 지난 30년간 정치를 비롯한 사회의 전 영역에서 약진했다. 곳곳에 세력과 진지를 만들고 논리를 만들어 놓았다. 민주를 내건 각종 단체가 그것이고, 통합진보당이 그것이고, 무능 식물국회가 그것이며, 역사교과서가 그것이다. 

극좌적 진보좌파의 난은 한국 정치세력의 전 영역에서 정체와 후퇴를 가져왔다. 김정일이나 김정은과 맞서 목숨을 던지겠다는 정치인이 나오지 않고, 대한민국을 능멸하고 전체주의를 찬양하는 교과서가 13년간 사용되는데도, 그 흔한 국회 청문회 한번, 그 흔한 국정조사 한번 이뤄지지 않는 현실로도 명백히 나타난다. 

전 세계가 조치를 취하고 유엔 인권위원회와 국제형사재판소까지 나선 북한의 우리 민족의 문제에 대해 안중근 의사가 나오지는 못할망정 북한인권법 조차 못 만드는 엄연한 현실이다.

한반도에 조선노동당이 1중대라면 그 뒤를 통합진보당, 새정치민주연합, 그리고 새누리당이 줄줄이 2·3·4 중대의 깃발을 들고 줄 서 있는 형국이다. 전체주의 세력과 싸우지 않으면 그건 전체주의 동조세력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올바른 길을 걷고 세계적 모델국가를 만들던 우리의 최대 문제는 가치의 전도와 허구적 세력에 의한 정치 주도 현상이다. 1987년 체제의 부정적 현상이 온 사회를 덮었다. 미군철수 주장은 대단한 민주화 운동이고, 김정일-김정은과 맞서 싸우자는 활동은 민주화 운동도 되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대화와 협력이 지고지순한 논리가 되었고 자극하지 말자는 논리만 횡행하는 현실이다. ‘이명박 정권 타도’, ‘박근혜 정권 타도’는 시청과 광화문에 넘쳐났지만,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타도하자는 세력은 극소수가 된 한국 사회다. 70년 전 위안부 문제는 매일같이 논의되면서도, 지금 진행되는 극한적 인권 유린과 민족 파괴에는 눈감는 비겁한 사회로 변질되어 있다. 

‘통일 대박론’을 말하면서도 어떻게 전체주의를 붕괴시킬 것인지, 2400만 민족에게 자유와 민주를 가져다 줄 행동에는 나서지 않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된다고 누구나 말하면서도 정작 방울 다는 활동은 없는 격이다. 

듣도 보도 못하던 ‘경제민주화’ 

1987년 체제는 급기야 번영 체제를 멈추게 만들며 포퓰리즘과 ‘경제민주화’라는 듣도 보도 못하던 논리와 정책을 양산시켰다. 포퓰리즘은 힘겹게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을 돕고 지원하는 제도가 아니라, 놀면서 대책을 세우라는 사람을 지원하는 정책을 양산시켜왔다.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기업과 투자를 돕기는커녕 함께 나눠먹자는 논리를 양산시켰다.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는다는 민주주의와 달리 ‘경제민주화’란 기여한 몫과 상관없이 나누자는 것이다. 그 자체가 사회 정의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열심히 일하던 사람까지도 게으르게 만드는 논리다. 기본적으로 경제적 부는 힘겹게 일한 사람의 몫이고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기 위해 재투자해야 할 것이지 일하지 않은 사람까지 뛰어들어 나눠야 할 대상은 아니다. 

민주진보세력의 포퓰리즘과 경제민주화는 국민으로부터 의무적으로 거둔 세금을 특정 지역과 계층에게 수혜가 돌아가게 만드는 역할에 맞춰져 있다. 일하는 국민 80%는 따로 있고, 그 80%의 국민이 열심히 일한 결과에 대한 세금을 갖고 함께 나눠 갖자는 20%가 따로 있는 형국이다. 

출퇴근 시간과 사업 활동에서 교통 정체로 낭비되는 수많은 시간과 휘발유 값을 절약하게 만들기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안 되고, 현금을 나눠주는 것에는 서로가 생색내는 정치다.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 기업을 돕기는커녕 기업이 투자하고 일자리 만들지 못하게 하는 제도만을 양산하며 일자리 타령만 하는 현실이다. 

잘못된 인식으로 무장된 민주진보세력은 생산과 투자, 개발과 번영에는 관심이 없고 모든 것을 나누자고 말한다. 결국 남이 만들어놓은 부를 나눠주면서 다시 정치적 표를 결집시키고 정치적 지배를 확대시키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기술 개발하고 시장 개척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시청 앞에서 머리띠 두르고 ‘물러가라’고 외치는 세력만을 대변하고 있다. 

회사를 만들어 공장과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고, 그 대신 공장을 멈추고 거리로 나오라고 내몰고 있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는 만들어주지 않고, 한창 세상을 배우고 일을 배울 청년에서 세상을 미워하며 돌을 던지라고 선동하고 있다.  

모두가 기득권 세력이고 일하지 않고 먹고 살겠다는 민주진보 세력이다. 전국 2000만 노동자중 상위 5% 전후에 해당하는 귀족층이자, 그들 자체가 나머지 90% 노동자의 착취세력일 뿐이다. 그들은 대부분 7000만 원 전후의 고임금을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받고 버틸 수 있는 자동차, 교직원, 공무원 및 공공부문 노조가 중심이다. 

운동권 정치세력을 퇴출하자 

한국정치에는 정치세력의 교체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올해는 제20대 총선, 내년에는 제19대 대선을 앞두고 있다. 물론 그 방향은 ‘민주진보’를 내건 정치를 제압하고 다양성과 전문성이 반영되는 정치로의 복귀다. ‘민주진보의 난’은 진압되어야 한다. 특히 국회는 민주진보를 내세우는 극좌파 세력의 동우회다. 전대협과 민주노총 혹은 참여연대 등 운동권 세력의 결집일 뿐이다. 

예를 들면 국회의 비례대표제는 특정 이념세력의 정치 진출의 통로가 되어 왔다. 이석기, 김재연과 같은 통진당 의원 6명이 진출했던 것이나, 지난 국회 내내 논란을 빚었던 한명숙, 임수경, 김광진, 김현 등이 모두 비례대표로 진출했다. 전체 국회의원 중 가장 반(反)시장적이고 반(反)기업적 국회의원으로 평가된 10명 중 9명이 비례대표 출신이었다. 제도의 취지를 짓밟게 만든 결과다.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는 권력을 감시하다 말고 김기식과 박원석 등 다수 비례대표를 배출시키며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 산업과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기는커녕 산업 발전과 시장경제에 반하는 인사들이 비례대표제를 통해 결집되게 된 것은 우리 국회가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짓밟는 본산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민주진보의 난’은 국회를 무력화시켜 놓았다. 잘못된 인식으로 무장된 세력은 의회민주주의의 작동을 멈춰놓았다. 민주진보라는 소수독재는 국민 대다수의 뜻을 좌절시키며 민주주의와 헌법을 유린하고 있다. 노동개혁법이나 북한인권법 등 수많은 법안들이 제정되지 못하거나 좌절되도록 만든 것은 결국 소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제정될 수 없는 소위 선진화법이라는 국회법이 만든 상황이다. 

소수가 국민과 국민 다수의 뜻을 볼모로 잡고 민주세력을 내세우며 독재를 감행하고 있다. 다수 정당과 소수 정당간의 책임 소재를 불투명하게 하여 책임정치와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이제 전문성과 다양성을 갖춘 중심세력이 형성되면서 낡은 정치에 창조적 파괴를 감행해야 한다. 

이제, 난은 진압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길목에 들어선 대한민국에 선동적 민주진보의 난은 벌써 진압되었어야 했지만 끝도 없이 지연되어 왔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진압되지 못했다. 2008년부터 사그라 들던 그 인식과 세력은 2012년 다시 부활했다. 

그것은 소위 ‘보수’는 대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민주진보’의 아류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2007년과 2012년 연이어 보수 정부가 만들어졌지만 그 가치를 만들고 확산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진보를 극복하기는커녕 찍히지 않으려고 잘 보이려 했기 때문이다.

철학과 소신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목표 의식을 확고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70년 대한민국 번영과 정통 역사를 민주진보의 프레임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하는 식으로 걱정만하고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일에 희생을 감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분명 허업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전쟁이고 전투다. 과거에는 창과 칼을 들고 했던 것이 정치 아니던가. 포기하는 세력이 지는 것이 바로 전투이고 정치다. 역겹고 진절머리 나게 만들어 상대를 떠나가게 만드는 것도 전투의 한 방법이었음을 안다면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서야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정치는 제도(institution)를 만드는 활동이다. 자유와 번영을 만들고 국민이 각자가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질서와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다. 

미래를 만드는 정치세력 없이 성공한 나라는 없다. 2016년을 맞아 30년간 우리 정치를 지배해온 ‘민주진보’에 맞서 ‘1987년 체제’를 종식시키고 창조적 번영시대를 재구축하기 위해 우리 모두 창과 칼을 들고 새로운 체제와 제도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