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발전전략 : 국제法治(법치)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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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5.12.30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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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대한민국 생존의 길

글로벌 법치 시스템 구축을 국가발전전략으로 삼아 정부·법조·비즈니스·교육 분야가 힘을 합쳐야

글로벌 경제가 불황을 넘어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시대에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불안과 어두운 전망이 지배하고 있다. 보릿고개의 빈곤을 넘어 선진국의 문턱까지 이르렀지만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극복하지 못한 채 정체, 아니 남미의 전철을 밟아 주저앉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 박은영 런던국제중재법원 부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주력산업은 품질과 가격에서 모두 도전을 받아 다시 넛 크래커에 갇히게 된다는 염려가 가득하지만 성장 동력은 쉽게 찾기가 힘들다. 창의성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야 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며 좌절감만 키우고 있다.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생존을 위해 고비용 구조를 탈피하고자 많은 국내산업 부문이 해외 이전이나 아웃소싱을 진행 중인데, 그렇게 되면 국내 일자리가 점차 줄어드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 내는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새로운 아젠다가 필요하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는 우리의 강력한 교육 시스템이 한몫을 했고 이것은 UNDP(유엔개발계획)를 비롯한 세계의 개발학자들이 공감한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수십 년간 법조인은 가장 우수한 인재들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면 법조 인력과 사법시스템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근래 법조계는 내부의 다양한 시각을 해소하지 못하고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고, 그로 인한 국가적 부담 또한 크다. 문제는 정부와 국가의 리더들이 이해 당사자들 간의 대립을 해소하여 새로운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글로벌 체제의 선진부문으로 국가 사회에 기여하기는커녕 자칫하면 국가의 ‘부채’가 될 수도 있다. 

‘국제적 기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는 주로 자국민과 기업을 보호한다는 국제법의 기준을 내세워 후진국의 영토와 권한을 할양 받고 배타적 영사재판권을 보장받았으며, 늘 우월한 함포와 총칼로 훈련된 군대를 이용했다. 

늦게나마 조선은 신식군대를 도입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무작정 구식군대를 차별한 정부의 무능과 실패는 임오군란(壬午軍亂)을 야기했고 결국 청일의 군대를 불러들이는 빌미를 줘 종속과 식민 침탈을 가속하게 만들었다. 

정치세력들은 있었으나 위기의 국제 정세에서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며 갈등을 통합하는 리더는 없었다. 제국주의가 가고 세계화된 경제체제에서는 군대가 아니라 법률가나 투자 은행가들이 국제적 기준을 내세워 자국민과 기업의 이익을 보호한다. 

특히 21세기형 국제경제체제에서는 사기업간의 분쟁에서 사적(私的) 중재인들의 판정이 국가법원의 판결을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국제법 위반이라는 중재제소(ISDS)를 하면 국제중재인들의 판정이 국가의 정책과 법을 대체하도록 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국가의 법관이 행사하던 권한이 조약과 투자협정을 통해 외국 중재인들에게 이양되어 있다. 이들 국제 중재인들은 압도적으로 서구의 법률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가 조선, 중공업, 건설, 전자 등 주력산업에서 시장을 주도한다 해도 그에 대해 권리 의무의 분쟁이 생기는 경우 누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는가 하는 데 참여하지 못하면 우리는 국외자가 될 수밖에 없다.

원천기술을 가지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 수익을 만들어도 ‘국제 독점금지법을 어겼다’, ‘결함이 있어 리콜 대상이다’, ‘특허를 침해했다’라는 등의 ‘기준 위반’이 되면 주요한 권익을 보장받지 못한다. 

심지어 스포츠분야에서도 경기에 이기고도 ‘규칙을 위반했다’라거나 ‘이의를 늦게 했다’는 이유로 금메달을 뺏기고 분루를 삼켜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 수백 년간 세계의 중심지였던 영미 제국은 식민지를 떠나면서 영어와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시스템을 남겨뒀다. 그 결과 세계화된 경제체제에서 거래 자문을 하거나 분쟁을 해결할 때 영어와 법치 시스템에 전문성을 가진 법률가, 회계사, 감정인, 기술전문가들이 경제의 상부구조에서 그 기준을 결정해주는 법치 시스템 비즈니스를 발전시켜왔다. 

▲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대량 투입된 법조계가 이제는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역량을 발휘할 때다. 이를 위해선 국제적 법치 시스템 구축을 국가 발전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법의 지배 시스템 

런던과 뉴욕이 그 중심점에 있었다면, 유럽대륙에서는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국제기구 및 사법재판소를 유치하고, 또 중립지로서 그와 같은 서비스를 활성화 했다. 

중동에서는 두바이가 영국 법을 사용하는 국제금융센터(DIFC)와 국제법원을 도입하여 중동의 법치시스템 비즈니스의 중심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 상당한 성과를 보았다. 

특히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증대하는 중동에서 법치와 안정 및 공정한 결정을 보장하는 두바이로 인력과 물자가 몰려들며 경제의 중심지로서 활력을 얻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르완다가 비즈니스와 법치 서비스의 중심지를 선언하여 국가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집단 학살로 인해 국제법원이 탄자니아에 세워져 수많은 재판이 이뤄지면서 르완다 변호사들의 국제 역량이 강화되었는데, 르완다 정부와 사법부의 리더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하여 국가적 발전전략을 만들었다. 

아시아에서 21세기형 국제경제체제에서 이러한 방향을 신속하게 국가전략으로 채택한 나라는 싱가포르다. 50년 전 강대국에 둘러싸인 채 아무런 자원도 없이 거의 밑바닥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지도자의 비전을 일관되게 실행해온 나라가 싱가포르다. 

이 나라는 최근 런던과 뉴욕을 잇는 세계적인 국제 법치 비즈니스의 중심지를 만든다는 목표로 정부, 법원, 학계, 전문가 사회, 비즈니스가 합심하고 있다. 자원과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법치와 신뢰가 약하고 부패가 만연한 주변국들과 차별하여 ‘공정’, ‘투명성’, ‘신뢰’를 서비스 상품화하여 글로벌 시장에 출시한 것이다. 

역내(域內)의 불안정성을 피하기 위해 국제적 기업들의 아시아 지역본부는 상당수 싱가포르로 모여들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러한 외부 유입을 국내적으로 조화하여 국내 시스템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2015년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 창설을 기념하는 연설에서 법무차관 겸 교육차관인 인드라니 라자 차관은 국제상사법원의 목표 중 하나는 싱가포르 변호사들이 단순히 ‘영어를 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그 실력과 기량에서 ‘국제변호사(international lawyer)’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제법치의 선도국이 되는 길 

G2로 급부상한 중국은 이제 미국의 경제력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글로벌 법치 시스템에 연결되는 것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국가 차원에서 중국 변호사들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요한 국제통상 분쟁사건에서 정부는 미국이나 유럽 변호사뿐만 아니라 중국 변호사들이 참여하여 국제 역량을 강화하여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력 투자를 하고 있다. 

또 ISDS(투자자 국가분쟁해결) 분쟁의 절차에서도 중국 전문가들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국제상사법원 실험을 예의주시하면서 중국의 거점 경제도시에 유사한 국제법원을 설립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세계 경제의 상부구조인 법치 시스템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 한국은 여전히 후발주자다. 우선 이미 형성되어 있는 법치 시스템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제도적 역량을 길러야 한다. 우리 법조계는 그 동안 그 우수한 인적 자원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여 경제 발전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이제 조그마한 파이를 누가 먹을 것인가라는 문제로 서로 밀고 당기고 하기 보다는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개혁은 달리는 기차의 바퀴를 갈아 끼우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말이 있다. 서방의 제도를 도입하여 정착시키려면 기존 시스템과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법조의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치밀하고 일관된 방향을 가지고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글로벌 법치 시스템 구축을 국가의 발전 전략의 하나로 삼고 정부·법조·비즈니스·교육 분야가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한다. 법치는 단순히 형식적, 기술적으로 법을 통해 다스린다는 의무가 아니라 그 본질상 공정성, 자유, 기본권의 보장, 적법 절차를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가치가 법조를 넘어 우리의 모든 분야에 스며들어 우리의 생활 양식이 된다면 우리가 당면한 갑을 관계, 불공정의 문제, 부패의 문제 등 상당 부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미국 회사의 임직원들을 대할 때 느끼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권리의 보장에 있어서나 복잡한 이해관계의 해소에 있어 마치 법률이나 외교 전문가와 같은 기량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법치 시스템은 우리가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이룬 성취를 제도화하고 내면화하여 국가 사회의 내적 역량을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법치 시스템은 국제적인 기준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주변국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프트 파워를 가지게 되고, 또 선진제국들과 가치의 공유를 맺는 연결 관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미 선진제국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글로벌 법치 시스템이라는 고속도로에 진입하게 되면 우리가 지난날 그랬듯이 우리의 우수한 인적자원과 창의성, 그리고 응용력으로 선진제국들이 여태껏 보지 못했던 창조적인 새로운 시스템이나 운용체계를 제시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친 채 길이 없다는 암울한 전망만 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의 정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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