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 진심으로 끌어안아야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 진심으로 끌어안아야
  • 정재욱 기자
  • 승인 2015.12.31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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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한일 위안부 협정 타결, 그 후

할머니들을 反日 강성 시민단체로부터 분리시켜 진심으로 위로하고 할머니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줘야 한다

지난 12월 28일 한일(韓日) 정부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한일 관계의 오랜 걸림돌이었던 위안부 협상을 최종 타결한 것과 관련, 야당과 시민단체, 일부 피해 할머니들의 반발이 거세다.

▲ 지난 12월 30일 수요 집회에 참석해 위안부 문제 관련 정부의 한일 최종 협정 타결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右)와 길원옥 할머니(左).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번 최종 합의에 대해 타결 다음날인 12월 29일 곧바로 “제1차 한일 굴욕협정(1965년)에 이은 제2차 한일 굴욕협정”이라고 맹비난했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도 “일본 정부가 범죄의 주체라는 사실과 군 위안부 범죄의 불법성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는 12월 30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 집회에 참석해 정부의 협상 타결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날 집회에서 “할머니들에게 이런 협상이 있다고 사전에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 배상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같은 날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과의 면담에서도 사전 협의가 없었던 부분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반면 외교 전문가들은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를 거부해 온 아베 내각이 이를 전격 수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가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향후 동북아 안보 협력에 긴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뜻이 담긴 평가다.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협상의 최종 타결은 1991년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폭로해 위안부 문제가 한일 관계의 현안으로 등장한 지 24년 만이다.

일본 정부가 책임 통감

한일 정부 간 최종 합의의 핵심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아베 일본 총리가 내각의 총리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현했으며 ▲일본에서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10억 엔(약 100억 원)을 출연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정대협 등 시민단체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위안부 피해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명확하게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 요구해온 ‘아베의 사과’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이 이뤄진 셈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아베 일본 총리에게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2015년 5월 아베 총리의 방미(訪美) 기간에 맞춰 미국을 방문, 하버드대와 워싱턴의 의회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또 민간에서 모금했다는 이유로 실패한 지난 1995년의 아시아여성기금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지원한다는 대목도 진일보한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 타결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일부 피해 할머니들은 협상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46명) 대다수의 심정은 언론을 통해 반대 일색인 듯이 비쳐지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번 협상 타결안에 대한 비난의 전면에 나서는 할머니들은 주로 서울 마포구에 소재한 정대협 시설이나, 이들이 주관하는 일본 대사관 앞 수요 집회, 아니면 경기도 광주시의 ‘나눔의 집’에서 언론과 만난 4~5명의 할머니들이다.

더욱이 이들 할머니들이 시위 현장에서 외치는 호소와 언론 인터뷰에서 짧은 시간에 즉문즉답 식으로 나오는 할머니들의 발언들이 할머니들의 온전한 심정인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가운데 강성으로 통하는 정대협 주관의 행사나 시설에서 이뤄진 시위나 인터뷰는 아무래도 이들 단체들의 주장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의문이 드는 이유는 이번 협정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고 있는 이용수 할머니는 2015년 6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선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고, 일본과의 협상도 필요하다”면서 “일본과의 협상보다는 투쟁 일변도인 정대협 수요 집회에는 최근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기 때문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일본의 ‘법적 배상’에 매달리는 정대협 등 강성 시민단체의 투쟁적 방식에 염증이 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반대자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이용수 할머니는 정부의 협상 결과에 대해 왜 이처럼 격하게 반대하고 정대협의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일까? 이 문제는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소외시킨 데 있다. 이 때문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정대협 같은 강성 시민단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더욱 강화됐다.

한국과 일본의 협정 타결이라는 외교적 해결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 관련 국내 문제는 별개의 영역이다. 국내에선 당사자인 할머니들과 이들의 이슈를 장악하고 있는 강성 시민단체, 반일(反日) 감정을 조장하고 이를 반(反)정부, 반(反)대한민국 투쟁에 적극 활용하는 언론 및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는 시민단체와 언론, 정치권의 이익에 따라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얼마든지 달리 표현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인 할머니들과 이들 세력 간의 연결고리부터 약화시켜야 했던 게 이번 한일 협정 관련 국내 문제 해결을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일본과의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했다.

정부 당국자들이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최근의 수요 집회나 외교부 당국자와의 만남에서 가장 먼저 했던 말이 바로 이 할머니의 진심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전에 알렸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2015년 6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대협이 당사자인 할머니들을 협상 과정에서 소외시킨다며 분통을 터뜨리면서 정대협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표출했다. 때문에 이용수 할머니가 지금 정대협 편으로 돌아서서 정부의 최종 합의를 맹비난하는 것은 정부 책임이다.

이미 협상은 타결됐고,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의 자금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을 위한 재단을 설립할 예정이다. 이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지원 대상으로만 한정하지 말고 재단 설립의 준비 과정부터 할머니들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강성 시민단체로부터 할머니들을 독립시키는 길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해 6월 본지 인터뷰에서 “아베의 사과는 언제 받을 수 알 수 없으니, 살아 있을 때 나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던 말이 대다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진심일 수 있다.

비현실적인 일본의 법적 배상論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은 '국가불법행위'를 전제로 그에 대한 국가적 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일본 정부가 일본 의회를 설득해서 특별입법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견해다. 근거 법률 없이 일본 행정부가 배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보수 정당인 자민당이 다수당인 일본의 현실에서 위안부 배상 법안이 여당과 야당의 합의 아래 의회를 통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 전문가들은 '법적 배상론'에 얽매이지 않는 게 진정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을 위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정대협이 주장하는 것처럼 피해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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