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거저 오지 않는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거저 오지 않는다
  • 미래한국
  • 승인 2016.01.0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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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대한민국 생존의 길

입으로는 ‘통일’을 수도 없이 외치면서, 진정한 통일준비는 전혀 없이 ‘대박’만을 기대

25년 전 동서독 통일은 분단은 통일로 마감될 역사적 과정임을 증거하는 사건이었다. 예멘이나 베트남의 통일도 동일하다. 한반도 통일도 당연한 것이요,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직 시간과 여유가 있을 때 통일에 대비하는 것이다. 통일부에 관련 부서가 만들어지고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가 설립되어 다양한 통일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 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대표· 미래한국 편집위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통일준비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내부에 북한을 보는 시각(대북관)이 극명하게 갈라져 효율적인 통일준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 씨 세습 독재정권은 지구 상 최악의 정권으로 극복의 대상이라는 시각이 있다. 한편에선 김정은 정권은 북한 내부적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소위 내재적 접근론의 시각이 부딪치고 있다. 

전자는 북한 정권은 붕괴할 수밖에 없으며, 이 급변 사태롤 통일로 이끌어내야 한다는 통일관을 지니고 있는 한편, 후자는 북한 김정은 정권이 안정을 되찾고 개혁을 추진하여 연착륙을 돕고 남북관계를 개선해 통일을 이뤄가자는 입장이다. 전자는 통일된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이어야 함을 강조하지만, 후자는 남북대화를 통한 점진적 통일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시각이 대립하며 모든 분야(안보·북한·통일)에서 사사건건 갈등을 초래하고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어떻게, 누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무시한 채 추진하는 어떤 대북정책이나 통일 논의도 한낮 이벤트에 불과하다. 대동강 기적이니 DMZ 생태평화공원과 같은 사업들이 대표적인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통일준비는 헌법정신으로 돌아가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민중이라는 깃발 뒤에 숨어 헌법을 무시하고 공권력을 조롱하는 세력들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하며, 7500만 남북한 주민의 미래가 달린 통일을 국민의 눈치나 포퓰리즘에 내맡기려는 정치 지도가가 있다면 이제는 과감히 정치권에서 추방해야 한다. 시간이 마냥 우리 편이 아니다. 

우리의 현대사는 기적의 역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40여 개국에 달하는 신생 독립국 중 소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유일한 나라다. 하지만 이제 산업화와 민주화 기득권 세력은 최전선에서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더욱이 산업화, 민주화 세력에 북한이라는 요소가 추가될 때 통진당과 같은 괴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제1과제: (되찾아야 할) 협상의 주도권 

이런 괴물이 우리나라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있다. 유엔이 2003년부터 대북 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2014년부터는 유엔 안보리가 북한 인권을 정식 의제로 상정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국인 우리는 북한인권결의안을 10년째 방치하고 있다.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남남(南南)갈등을 고조시키는 일도 다반사다. 

이런 괴물이 과거 정권의 대북 노하우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정상회담은 필요했던 것인지? 햇볕정책의 공과는 무엇이며, 그로부터 얻을 교훈은 무엇인지?

이 기간 8조 원에 달했던 대북지원이 북한의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사용되지는 않았는지? 이명박 정권의 비핵 개방 3000 구상은 어디에 문제점이 있었는지?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한 것이 이명박 정권의 대북 강경정책 때문이었는지? 

역대 정권이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추진했던 대북정책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저 ‘도’ 아니면 ‘모’ 식의 대립과 갈등 일변도다. 이런 우리의 속성을 꿰뚫고 있으니 남북대화는 늘 북한이 주도하고 있다.

북한은 절대로 남북회담을 서두르지 않는다, 몸이 달아 회담을 구걸하는 남한에 대해 적당히 요구 조건을 내세워 챙길 것을 챙긴다. 이런 괴물을 추방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이며, 어떤 대북정책도 무용지물이다. 

제2과제: 법치와 원칙의 회복 

독일의 현대사 역시 기적의 역사다. 패전 독일이 한 세대 만에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이를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렀다. 이후 독일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통일의 기적을 이루고,  또 다시 한 세대 만에 유럽 최강의 나라로 우뚝 섰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통일을 이루고 2조 유로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하고도 이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서독 사회의 준법정신 때문이다. 편법을 멀리하고 원칙을 존중하는 행동양식이 몸에 밴 나라이기 때문에 기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1989년 동독에 반공운동이 거세지며 서독 정치권에서 통일 방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집권 여당이었던 기민련과 자민당은 기본법 23조에 따른 통일 방안을, 야당이었던 사민당은 기본법 146조를 근거로 한 통일을 내세웠다. 23조는 서독의 연방체제에 동독이 편입하는 것이고 146조는 통일헌법을 제정해 통일을 이룬다는 조항이다. 

연방의회는 투표를 통해 23조를 통일 방안으로 채택한 후 어느 정치인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없었다. 모두가 23조에 따른 통일 방안을 통일의 원칙으로 동의했으며, 콜 정부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 방안을 고수해 통일을 성사시켰다. 동독 인민회의가 1990년 8월 23일 임시회의를 열어 서독 기본법 23조에 따른 통일을 의결함에 따라 정부가 통일 협상이 급물살을 타며 통일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통일은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숨 막히게 터져 나오는 현안들을 바로 바로 처리해야 하는 의사결정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경우 굵직한 현안만 챙겨도 동독 이주자 문제, 소련 및 동유럽 독일 혈통 이주, 동독 공산당 불법행위 처리, 슈타지 문서 관리, 경제·사회·화폐통합의 건, 트로이한트(신탁관리청) 구성과 사유화 방안, 수도 이전의 문제, 통일조약 체결 및 비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현안을 처리해야 했다. 

우리의 경우 국회 파산선고를 내릴 정도로 국회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입법부조차 법률을 위반하는 일이 다반사이며, 심지어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의 권위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마저 적지 않다. ‘그 놈의 헌법’을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고 법과 원칙 위에 민중과 민족을 내세우는 일이 만연한다면 막상 통일의 기회가 도래해도 통일을 이뤄내기 어렵다. 

헌법정신이 훼손되고 법치가 무시되며 공권력이 무력한 채 통일이 된다면 그 혼란은 극복하기 어렵다. 평생을 독재체제에서 성장해온 북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체득해야 할 행동양식이 있다면 법에 대한 존중이다. 

2000년 이후 역대 정권의 대북 및 통일 정책은 한 마디로 낙제 내지 파산이다. 그 이유는 이 시기를 지나며 우리 사회가 통일 자신감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려 하지 않는다. 

▲ 북한이 주도하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 우리 스스로 몸이 달아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남북대화 방식으로는 남북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통일을 이룰 수도 없다. 사진은 북한 측의 무리한 요구로 결렬된 지난 12월의 남북당국자회담 모습.

제3과제: 통일 자신감 회복 

독일통일은 흡수통일로 치부하며 구더기 얘기만 늘어놓고 있다. 통일 후 경제 강국에 이어 유럽을 리드하는 정치대국으로 성장한 장 담근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독일은 가능하고 한국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패배 의식이 대세이다. 독일 밤베르크 대학의 울리히 블룸 교수나 비인 대학의 뤼디거 프랑크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한국의 통일 여건은 독일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의견에는 귀를 닫는다. 

이런 패배주의는 통일비용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통일비용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비용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식이다. 많은 통일 전문가들이 독일통일을 흡수통일로 치부하며 반대하는 것도 결국 비용 때문으로 보인다. 

아니다. 비용에 앞서 통일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관건이다. 통일은 비용에 앞서 가치의 문제다. 암 환자에게 치료비는 다음 문제다.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느냐가 제1의 가치다. 이런 가치 의식이 우리 사회에 결여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통일의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북한에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만으로도 통일비용을 조달할 수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북한에 매장된 지하자원의 가치는 7000조 원에서 1경에 이른다. 우리나라 국부의 1경 1000조 원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이 지하자원만으로도 통일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통일비용도 우리가 모두 부담할 필요가 없다. 아니 부담할 수도 없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의 말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 하겠다”고 한다. 북한이야말로 지구촌 마지막 남은 투자의 보고(寶庫)다. 통일된 북한 지역은 중국을 능가하는 투자 대상국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통일비용은 전 세계 투자자를 통해 조달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감당해야 할 투자는 북한에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교통, 통신 등 인프라를 잘 구축해 전 세계로부터 투자자를 유치하는 노력이다. 

통일은 윈윈 게임이다. 통일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와 모든 주변국에게도 대박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자유민주주의 통일은 우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제거하게 될 것이다.

통일한국은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에 복귀하게 되어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을 놓게 된다. 통일이 되면 북한 발(發) 특수로 인해 우리 경제는 물론 주변국들에게도 경제적으로 대박을 이루게 되어 동북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다. 

최근 독일 언론에서 잇따라 우리나라 탈북민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보도의 핵심은 탈북민들이 남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적지 않은 탈북민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주요 일간지 타츠는 2015년 1월 20일 ‘고향 속 이방인’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의 생활을 보도했다. 

무려 7페이지나 할애한 보도에서 타츠는 꿈과 희망을 안고 목숨을 걸고 탈북해 남한에 왔는데 남한에서의 삶은 기대 밖으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으로 ‘이등 국민’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이방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는 보도였다. 

제4과제 : 탈북민 보호와 정착 

일간지 디 벨트는 2015년 3월 31일 ‘김정은 제국에 대한 향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데 이어 인터넷 신문(derStandeard.de)도 ‘왜, 점점 많은 탈북민이 북한으로 돌아가려 하는가?’라며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민들의 남한 생활을 보도했다.

보도의 요지는 남한 정부의 통일의지 및 탈북민 정착과 지원에 대한 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밖에도 탈북민들의 정착 실패와 남한 사회의 편견을 보도해온 기사는 생각 밖으로 많다. 

지난 2015년 12월 5일 미국은 2006년부터 191명의 탈북민을 난민으로 받아들였다고 발표한 데 이어 유럽 각국에 1200명 이상의 탈북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국민을 제3국에 방치하는 식이다. 더욱이 탈북민은 70여 년 세습독재 하에서 온갖 박해를 받아온 동포다. 이런 사람들을 제3국에 내맡기며 통일대박을 이야기하고 통일외교를 가동한다는 주장은 상호 모순이다. 

서독이 분단 초기부터 해마다 20만 명의 동독 탈출자를 받아들여 분단 동안 그 수가 400만 명 이상을 초과한 데 이어, 통일 후 수십만 명의 독일 혈통이 구(舊) 소련 및 동유럽에서 독일로 몰려들어도 아무런 잡음 없이 이 문제를 잘 처리한 것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다. 

탈북민 정착도 불협화음이 크다. 정부와 민간단체 간 소통의 부재로 곳곳에서 정책적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별다른 지원이 없는 중국동포나 해외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아 자국으로 송금해 주택도 구입하고 가족도 돕는다. 

하지만 탈북민 정착을 돕는 각종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탈북민들은 정착이 어렵다고 불만이다. 물론 정부의 지원책이 충분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민관(民官)의 소통 부재가 탈북민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면도 있다. 서독의 경우보다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을 주고도 효과는 훨씬 낮다. 

안성 하나원 근처에 탈북 청소년들만을 모아 교육하는 한겨레 학교가 있다. 특정 종교단체가 운영을 맡아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최신 시설을 갖추고 교사와 자원봉사자들이 거의 1:1 맞춤 교육을 무료로 실시한다. 전국의 일반 학교에 비해 모든 것이 월등하다. 

하지만 과연 이런 시설을 갖추고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 호화로운 교육을 해야 탈북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탈북민에 대한 차별이자 전시행정의 표본과 같다. 

과연 탈북 청소년들이 이 학교를 떠나면 어떻게 될까? 문제없이 대학에 진학하고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힘들더라도 처음부터 남한 청소년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며 적응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은 그 학교 내에서 여러 대안을 만들어 적응케 해야 한다. 

물론 탈북민을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는 행태는 더욱 금물이다. 탈북민들은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내팽개쳐진 어린아이와 같다. 이 상황에서 탈북민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상상 외로 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탈북민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다시 대한민국을 떠나는 탈북민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이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 시급하다. 진정한 친구는 빵만 주지 않는다. 때로는 따끔한 충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사회나 왕따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탈북민들은 한반도 통일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소중한 보물들이다. 이들을 무시하고 통일을 이루며 통일대국을 건설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통일준비, 아직 시간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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