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의 어두운 미래
한일관계의 어두운 미래
  • 미래한국
  • 승인 2016.01.1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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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일본 자민당 장기집권과 우익 과두정치 체제

너무 오랜 기간 일본 자민당 계속 집권, 세습정치에 익숙해져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다양성 상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다시 총리로 선출되면서 일본은 우경화 움직임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한국과 일본은 위안부, 독도, 교과서 개정 등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 백태열 홍익대 문과대학 초빙교수

일본 정부의 우경화 움직임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의 움직임과 행보는 그 어느 때 보다 한일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커다란 암운을 던지고 있다. 과연 한일관계의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근본적 요인은 무엇인가? 

필자는 아베 총리의 등장으로 인한 한일관계 악화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정치구조와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런 부분은 자민당의 장기집권이다.

1955년 일본의 우익정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오늘날까지 거의 반세기 넘게 자민당은 집권하고 있다. 물론 1993년부터 2011년까지 여러 야당이 자민당을 제치고 집권했지만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이 한일관계에 어떻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가? 무엇보다 한 정당의 장기집권은 정치, 사회, 외교 부분에 많은 폐해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은 한 사회의 이데올로기 구축에 기여했고, 이러한 포괄적 구조 틀 속에서 사회의 다른 행위자들과 집단들이 다양한 생각과 시각적 우연성을 갖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은 1997년 12월 김대중 후보의 당선으로 진보와 보수 대립구도의 서막이 올랐고, 노무현 정부에 접어들면서 진보 보수의 대립은 정점에 올랐다. 이러한 현상은 진보와 보수의 호불호에 관계없이 국민들이 다른 생각과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정부는 정책적 편향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의 우익 편향적 사고 

그러나 일본의 경우 국민들과 다양한 집단들이 우익 이외의 시각과 관념을 가질 수 있는 원천적 기회가 적었다. 따라서 일본 국민들과 사회적 집단은 우익 편향적 사고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본 국민 전체와 모든 집단들이 정부의 우경화 드라이브에 동조한다고 볼 수 없지만, 문제는 어떤 이념체계를 가진 지도자와 정부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회를 이끌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특성은 일본 정부로 하여금 과거사를 반성하고 한일관계를 전향적으로 바꾸려는 욕구와 의지가 없게 만들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일본을 이끌었던 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집권 기간 동안 한일관계가 긍정적이고 원만했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권 교체는 신선한 접근과 다양한 이념, 그리고 새로운 목표를 동반한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 독주는 사실상 국민의 선택으로 이뤄진 결과다. 자민당 장기집권은 단순하게 권력을 독점화하면서 여론을 주도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민당의 우경화 현상은 나라 전체에 걸쳐 수평적 확산과 수직적 구도를 형성한다. 

수직적 확산은 자민당을 중심으로 그 위에 일왕(日王)이 위치하고, 아래로 장기간에 걸쳐 자민당을 선택한 국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수평적 구조는 자민당이 장기 집권함으로써 자민당의 정책노선과 방향에 기생하는 견고한 우익집단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면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과 산케이신문(産經新聞) 등을 중심으로 우익 언론매체들이 자민당의 우군집단이 형성된다. 동시에 ‘일본회의’와 ‘재특회(在特會·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와 같은 1000개가 넘는 우익 사회단체들이 자민당의 뜻을 받들어 우익의 이념화에 기여하고 있다.

결국은 일본의 우익 과두정치(Oligarchy)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이념적, 정책적으로 견고하게 단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민당의 하수집단으로 자민당의 입장과 정책을 홍보하고 대변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전달한다. 물론 일본에는 우익집단만 존재하지 않는다. 양심 있는 지식인이나 시민단체도 많지만, 문제는 정국의 여론과 흐름이 집권여당인 자민당과 우익추종집단과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이다. 

▲ 우익 자민당의 장기 집권에 따른 일본 우경화의 지속 가능성은 장차 한일관계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사진은 지난 1월 5일 미에(三重)현에 있는 이세신궁을 참배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우익체제 혁파는 가능한가? 

따라서 우익 이외의 목소리는 주된 여론 형성을 선도하지 못하고 비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 즉 일본은 자민당을 정점으로 거대한 수평적, 수직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우익 과두정치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강력한 우익체제를 혁파할 수 있는가? 그 전망은 어둡다. 자민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야당의 존재도 유명무실하다. 

전후 일본의 정당구조에서 사회당과 공산당은 좌익과 혁신을 표방하면서 집권여당인 자민당을 비교적 효율적으로 견제했다. 그러나 2016년 1월 일본 중의원(House of Representative)의 전체 의석 480석(475+5석 공석)을 정당별로 간단히 살펴보면, 집권여당인 자민당과 우당인 공명당의 전체 의석비율이 68.5%에 달한다. (도표 참조)

반면에 야권의 중심인 일본민주당은 73석이다. 일본민주당은 이념적 분포에서 보면 중도 혹은 중도우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일본공산당(JCP)은 야당으로서 자민당에 정치적으로 대적하기에는 정치적 영향력이 너무나 약화되었다. 

일본의 전통야당이었던 사회당은 1996년을 끝으로 사실상 와해되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야당이 야당다운 면모와 견제력을 갖기에는 자민당의 대체 세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낮다. 일본 정치에서 여와 야에 의한 순환론적이고 정기적인 정권 교체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의 자민당이 집권하는 동안 한일관계는 순탄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상당히 어렵다. 자민당의 집권 이후 한일관계가 항상 나빴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일 간의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진솔하고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민당이 향후에도 정권을 얼마나 유지할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일본의 세습정치, 가문정치의 특성을 고려하면 우경화 현상은 세대를 넘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살펴보자. 2001년 이래 현재까지 총리를 역임했거나, 혹은 총리인 집안의 내력을 살펴보면 우경화 사상이 대를 이어 전승,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발견된다. 

세습정치 구조 고착화 

현 총리인 아베 신조의 부친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다. 아베 신타로는 자신의 아버지인 아베 칸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958년 중의원에 당선되어 1988년까지 일본 중의원을 지냈고 전후 최장수 외상을 역임했다. 그가 67세의 나이로 급서하지 않았다면 아마 후에 총리가 되었을 만큼 막강한 파벌을 당내에 가지고 있었다. 

아베 신조의 친할아버지는 아베 칸으로, 역시 1937년부터 1946년까지 중의원을 지냈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는 전후 가장 유명한 정치인의 한사람인 기시 노부스케(佐藤信介)다. 그는 전범으로서 일본 총리를 역임했고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미일 관계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아베 가문은 철저한 우익·국수주의적 인물로 가득 차 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는 자민당 전직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이념적으로는 다소 온화한 보수주의자다. 그의 아버지 역시 1970년대 중반 이후 자민당의 최대 파벌의 하나인 후쿠다 파를 이끌었던 전직 총리인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다. 비교적 최장수 총리를 지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차남은 약관 28세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를 두 번이나 참배하는 등 아베 총리의 철저한 영계 추종자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전직 자민당 총리나 정치인의 자제들이 현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민당의 우경화 행보는 앞으로도 지속될 개연성이 매우 높고, 그런 점이 한일관계에서 상당히 우려되는 부분이다. 

2015년 연말 극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정책의 실기와 관련하여 통속적으로 하는 말 중에 “too late, too little”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일본의 해법은 어떤 면에서 보면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국민의 호응과 기대에 너무 늦게(too late) 반응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해법은 너무나 부족(too little)하게 보인다. 

벌써부터 한국에서는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와 국민들의 반응이 냉소적이며, 양국 사이의 합의 내용을 놓고 이전투구 양상이 진행 중이다.

한 가지 일본 정부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처리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공언한 만큼, 향후 일본 총리가 누가 되었든 간에,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가더라도 이번 합의를 존중하고 진솔하고 일관된 입장과 태도를 유지한다면 아마도 한국 국민의 공분(公憤)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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