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의 논리
새 출발의 논리
  • 미래한국
  • 승인 2016.01.24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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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지난날의 영화에 나약한 향수를 느끼기 쉽다. 심지어 별것 아닌 과거사까지도 꿈속의 유토피아처럼 미화시켜 과거에 매달리려는 허약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같은 노스탤지어는 지금 새 출발의 제일보를 내닫는 마당에서 백번 해로울 뿐 유익한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과감하게 지난날의 자랑을 과거와 함께 묻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약한 노스탤지어는 새 출발의 결단을 마비시키는 독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과거의 영화에 매달리듯, 과거의 실패에 얽매여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지난날의 실패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앓고, 그것을 삭이지 못하여 전전긍긍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지난해 경제난의 한파로 실직, 파산, 부도와 같은 아픈 얘기들을 많이 들었고, 도덕의 붕괴로 사회질서가 파괴된 상황에서 숱한 아픔의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당시 겪은 참담한 굴욕과 절망 때문에 두고두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았다. 도성의 거민들은 무차별 학살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적군에게 끌려가 능욕을 당했다. 거리는 황폐해졌고, 나라의 임금은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묶여 끌려갔다. 하나님의 성전은 쑥밭이 되고, 귀족과 지도자들은 포로가 되어 이방으로 끌려갔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고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럽고 슬프고 욕된 과거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지 말라. 보라 새 일을 행하리니 거친 광야에서 길이 나고 황량한 사막에로 강이 흐르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지난날의 참담한 굴욕과 절망에 집착하여 무기력한 실의에 빠져 있지만 말고, 그 모든 실패와 허물을 과감하게 과거와 함께 묻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새 출발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미래 소망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를 결단할 때만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이 말은 결코 우리의 전진하는 삶에 있어 과거로부터 연유된 현재의 상황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과거로부터 연유된 현재의 조건에만 매어 산다고 하면 전진은커녕 새로운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날의 잘되고 못된 것이 그리고 그 결과로 주어진 현재의 좋고 나쁜 조건이 앞으로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 우리가 바라고 다짐하는 미래의 목표와 소망이 새출발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떠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미래 목표가 바르게 설정되어야 한다. 실패는 죄가 아니다. 목적이 잘못된 것이 죄다. 어떤 처지나 위치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 한해를 주신 하나님 앞에서 무슨 목표를 갖고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 추상적 목적이 아니고 현실적이거나 변명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삶의 목표가 내게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그 분의 목표를 향해 우리가 달려가야 한다. 누군가 내게 와서 화해와 희생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가서 화해와 희생을 쌓아야 한다.

그때 새로운 시대가 오고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날이 가고 달이 바뀌었다 해서 새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과 내 뜻이 바뀌고 내 삶의 목표가 새로워질 때 새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새로워지면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새로워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내 양심이 나를 칭찬하고 내가 나를 성원할 수 있는 명랑하고 은혜스러운 새해 새 출발을 할 수 있기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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