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다잉(well-dying) 가능해졌다
웰 다잉(well-dying) 가능해졌다
  • 미래한국
  • 승인 2016.02.03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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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규의 청진기] 연명의료중단 허용의 의미와 향후 과제

의료진이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갖은 검사와 수술을 하고 환자가 사망할 때까지 연명의료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미래한국 편집위원 

2016년 1월 8일,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고 해서 일명 ‘웰 다잉(well-dying)법’ 또는 ‘존엄사법’으로 불린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일부 종교단체에서 이 법의 통과를 반대했고, 국회 통과 직전 한의사 단체에서 연명의료 중단의 결정 과정에 한의사도 넣어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국회 통과가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회 본회의를 끝내 통과한 이 법안의 정확한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의 통과로 2018년부터는 사망에 임박한 일부 환자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된다. 이 법안의 내용과 추진된 배경과 의미, 그리고 향후 과제를 알아보자. 

용어의 정리 

일부 언론에서는 존엄사법이나 웰 다잉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공식 명칭은 연명의료 중단이다. 왜 이런 낯선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먼저 사용되고 있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안락사 

‘편안한 죽음’을 뜻하는 용어다. 그런데 안락사는 편안한 죽음뿐만 아니라 편안하게 죽도록 하는 행위(安死術·안사술·mercy killing-죽어가는 사람의 사망 시기를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행위)도 내포돼 있는 용어다. 통상 불치의 중병에 걸린 등의 이유로 치료 및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안락사에는 약물을 투여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적극적 행위를 의미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인공호흡기 적용을 중지함으로써 죽어가게 하는 등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의료 행위를 중단하는 행위 등의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안락’이라는 단어가 자칫 좋은 의미만 전달할 수 있어 가치중립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존엄사 

치유가 불가능한 말기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한 자기결정권에 따른 죽음의 선택을 의미한다. 품위 있는 죽음을 의미하지만, 안락사와 같이 품위 있게 죽도록 하는 적극적 행위도 포함하는 용어로서, 연명치료 중단 등 소극적 행위에서 자살 등 적극적 행위까지 포괄하는 용어다. 

미국 오리건 주에서 1994년에 제정한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은 연명치료의 소극적 중단이 아니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치사량의 약물을 주입받는 등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살하는 소위 ‘의사助力(조력) 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까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존엄사와 웰 다잉법 등 가치중립적이 아닌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명치료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기술-의존적 처치, 즉 환자의 주된 병적 상태를 바꿀 수 없지만,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말한다. 연명치료는 인공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치료 등과 같은 특수연명치료와 영양공급 등과 같은 보통연명치료로 나눈다. 

연명의료 

‘연명치료’라는 용어가 익숙하지만, ‘치료’라는 단어가 환자를 위해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의료행위로 이해됨으로써 ‘치료 중단’이라고 표현하는 경우 그 자체로 비윤리적으로 오해될 위험성이 있다. 이에 따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치료’라는 용어를 대신하여 가치중립적인 용어인 ‘의료’로 통일하여 사용할 것을 결의하여 이후 연명의료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법안의 내용 

말기 및 임종 단계의 환자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연명의료계획서를 주치의와 함께 작성하는 경우, 또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 중단을 희망한다’는 내용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를 미리 작성해 둔 경우 회복될 수 없는 말기나 임종기에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 포함된다. 

만일 환자 본인이 미리 작성해 둔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없는 경우, 가족과 의료진의 판단으로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었다. 환자 가족 전원이 연명의료를 안 받겠다는 뜻을 의료진에게 전달하고 의사 2명이 이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가족이 없는 환자는 의료기관의 내·외부 전문가 5명 이상으로 구성되는 ‘의료기관 윤리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결정하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윤리위원회는 종교계, 법조계, 윤리학계, 시민단체 등의 추천을 받은 비(非)의료인 위원을 2명 이상 포함해야 한다. 

주의할 사항은? ―법안의 주의점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환자에게 영양과 수분, 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의사가 중단 대상이 아닌 환자에게 중단 결정을 내렸거나 환자 가족이 거짓 진술을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보건복지부 장관 산하에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설치돼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및 관리, 연명의료 결정 현황 조사 및 연구 등 업무를 맡게 된다. 이 법은 즉시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니라 국회를 통과한 날로부터 2년 후 시행된다. 

▲ 연명의료 중단이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왜 추진되었나? ―추진 배경 

1. 보라매병원 사건(1997년)  

연간 사망하는 약 20만 명의 환자 중 약 절반은 병원에서 사망한다. 그 중 다수는 가망 없음 진단을 받은 채 죽음을 기다리다 죽음을 맞는다. 보라매병원 사건 이전에는 가망 없는 환자에 대해 환자의 가족과 의료진이 합의 되는 경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했었다.

그러나 1997년 뇌를 다친 후 수술을 받고 중태에 빠진 어느 남자 환자의 부인이 수술 후에 추가적인 치료를 극력 거부하고 퇴원을 요구하자 이 환자 가족의 요구를 수용했던 의료진들이 이후에 살인죄로 기소를 당했다. 이것이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관행은 사라졌다. 의료진들은 살인죄를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살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도 사망할 때까지 치료행위를 계속해야 했고, 이에 따르는 모든 경제적 부담은 환자나 가족이 져야 했다. 이 때문에 치료중단을 요구하는 환자 가족들과 치료의 지속 여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2. 김 할머니 사건(2008년) 

병원에서 검사를 받다가 뇌손상을 받은 채 병상에 누워 있게 된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의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법원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지해 달라는 취지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 소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 결정을 내렸다. 이 사건은 연명의료 중단과 관련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3.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2009년)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기계적 치료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존엄사 논란이 일었고, 김 할머니 사건과 함께 김수환 추기경의 소위 존엄사 논란은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던 ‘존엄사’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 해 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및 대한병원협회가 합동으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 제정 특별 위원회’를 구성했고, 2009년 10월에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을 만들어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법제화되지 못했고 따라서 별다른 실효성이 없었다. 

4.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2013년) 

18대 국회에서 입법에 실패한 후 2013년 1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산하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제도 마련’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2013년 7월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권고안이 최종적으로 보고되었으며 이 권고안을 토대로 만들어진 법안이 이번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법안의 의미 

1. 자기결정권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법안의 핵심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다. 즉 환자가 죽음에 임박하기 이전에 불필요한 연명의료에 대해 분명히 자기의사를 표명한 경우 이를 존중하여 환자의 결정에 따른 의사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핵심이다. 

사실 이 부분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예를 들어 암 진단을 받은 환자를 강제로 병원으로 보낼 방법도 없고 이유도 없다. 치료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오직 환자 자신이 결정할 문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환자가 병원에 일단 실려 왔는데 환자의 의식을 확인할 길이 없다면 환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끝까지’ 모든 검사와 치료 등 모든 의료행위를 다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인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연명의료허용 법안의 통과는 ‘불필요한 연명의료행위’에 대해 환자가 갖고 있던 평소 자기 결정을 존중하라는 뜻이다.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비동의 의지가 확인된다면 굳이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환자는 의사와 함께 향후 세밀한 치료계획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2. 가족의 대리 결정 

이 법안의 또 다른 핵심은 환자의 사전 의향서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에는 가족 또는 적법한 대리인과 의사의 확인에 의해 의사를 추정하거나 대리결정을 할 수 있다는 항목이다. 이 대리결정에 대해 일부에서는 “비윤리적”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무작정 반대할 일이 아니다. 

첫째, 환자가 자신의 의사표현이 어려운 경우에는 가족의 결정이 필요하다. 한 예로 환자가 신생아인 경우 환자가 결정할 수 없고 가족이 결정해야 한다. 둘째, 연명의료는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환자나 가족이 부담한다. 무의미한 연명의료가 계속되는 경우 그 부담은 모두 가족의 몫이다. 

3. 사회적 책임 

연명의료법은 불필요한 의료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다.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사법부가 의료진을 살인범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 이후 누구도 연명의료에 대한 아무런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은 채 방치해 놓았었다.

진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불필요한 고통과 불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환자 가족들과, 이 불필요한 행위를 해야만 했던 의사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이 발생했지만 정부와 입법기관은 그 동안 이를 환자 또는 환자 가족과 의사들에게만 떠넘긴 채 아무런 대책을 세워두지 않았었다. 

이번 연명의료중단 법안은 그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대안 없는 반대는 무책임한 일이다. 더욱이 내 문제로 닥치면 판단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보라매병원 사건의 1심 재판에서 의사들에게 살인죄 판결을 내렸던 판사는 몇 년 후 자신의 어머니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게 되자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면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호스피스를 찬성하며 말기 암 환자 등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을 간호하는 의료시설인 호스피스 시설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동의한다. 그런데 호스피스는 “인생의 말기를 맞은 자에게 육체적 고통을 경감시키고 정신적으로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되어 있고, 이에 따라 인공심폐소생술 등 ‘적극적인 치료행위’를 배제한다. 이것은 연명의료중단과 같은 취지다. 

말기암 상태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병원에 실려 왔거나 또는 병원에 도착한 이후 의식을 잃게 되었을 때, 의료진이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갖은 검사와 수술을 하고 환자가 사망할 때까지 연명의료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향후 과제 

이번 연명의료법의 국회 통과는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19년간 방치되었던 연명의료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윤곽이 잡혔을 뿐이다. 향후 가이드라인의 구체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복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보라매병원 사건의 보호자가 조기에 치료를 포기했던 이유는 의료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의료비 때문에 재정 파탄에 빠지는 가구발생비율이 OECD 34개 국가 중 압도적으로 1위다. 의료비는 낮지만, 의료비 부담을 정부가 아니라 개인에게 지우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연명의료법이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사회복지제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불치병을 본인에게 알려주는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끝으로 연명의료중단은 호스피스의 연장선이며, 결코 안락사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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