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게 살다 품위 있게 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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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6.02.04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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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웰 다잉(well dying) 시대

고령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진 인생의 ‘웰 다잉’ 마침표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연명의료법’(이하 ‘웰 다잉법’, 원래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 김명자 호스피스 국민본부 공동대표·전 환경부 장관

이로써 앞으로 말기환자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되고,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동안 웰다잉 법안은 1990년대부터 의료계, 법조계,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의 견해 차이로 몇 차례 국회 문턱을 넘다가 막히곤 했다. 이번에도 막바지에서 고비는 있었다. 이번 웰 다잉법은 7개 관련 법안의 병합 심의의 결정판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안’, ‘암 관리법 전부 개정법률안’, ‘존엄사 법안’ 등이 그것이다.

고령사회가 우리 사회의 난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이기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고령(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3%, 12년 뒤엔 20%의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농촌의 3분의 2는 이미 그렇게 됐다. 유엔은 2002년 ‘마드리드 노인 선언’을 발표했고,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급속한 고령화를 지구촌의 ‘시한폭탄’이라 표현했다. 

노년층, 품위 있는 죽음 원해 

고령사회에서는 웰빙(well being)도 중요하지만 웰다잉(well dying)으로 마침표를 잘 찍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에겐 웰 다잉이 더욱 절실하다. 아프면서 오래 살기 때문이다. 

2012년 기준 60세 남성은 22년, 여성은 27년을 더 살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기대여명(餘命) 기간에서 10여 년을 아프다 세상을 뜬다. 이는 선진국의 두 배다.  진료비 통계를 보자. 2013년 고령층 진료비는 총 진료비(50조7426억 원)의 35%에 이른다. 사망 원인은 암·뇌혈관 질환·심장 질환·폐렴 순이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말기 판정에도 불구하고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 등 연명 의료를 받는 환자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연명의료 환자의 가족이 병 수발로 겪는 정신적·경제적 고통은 비참한 사건을 낳기도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빈곤이 심각하다. 2013년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중위 소득의 50% 미만 인구)은 48%로 전체 값의 3.3배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60세 이상의 자살률이 최고다.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평가에서 40개국 중 32위(Economist Intelligence Unit, 2010)로 하위권이다. 

존엄스러운 삶의 마무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노년층은 단연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꼽았고, ‘무의미한 치료 중단’과 ‘품위 있는 죽음’을 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가 말기환자의 웰 다잉과 가족의 고통 경감을 위해 호스피스를 제도화하고 있다. 호스피스는 연명의료 대신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의료 서비스와 심리적, 영적 돌봄을 받는 총체적 돌봄 의료(holistic care)를 가리킨다.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마지막 돌봄(End of Life Care)’을 국가 방침으로 정하고 있다. 미국은 전체 사망자의 43%가 호스피스를 거친다. 의술적·제도적 인프라가 구축됐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 때부터의 전통을 계승해 11월을 ‘호스피스 달’(Hospice Month Day)로 지정했다. 캐나다는 인터넷 캠페인을 벌이고, 대만은 호스피스 애니메이션 캠페인을 한다. 

우리 국회가 웰다잉 관련 법안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였다. 정부는 2002년 호스피스 법제화 추진을 선언한 뒤 시범사업도 하고 암 관리법도 제정했다. 그러나 2014년 예산 지원은 27억 원으로 54개 기관이 혜택을 받는 정도였다.

오랫동안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 보니 호스피스는 적자 운영의 기피 시설이 됐다. 이용자 수도 적어서 말기 암 환자만 이용할 수 있는데, 2014년 기준 1만559명(13.8%)이다. 크게 늘어난 수치가 이 정도다. 영국(95%) 등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 서울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전경. 웰다잉이 정착하기 위해선 의료 서비스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죽으러 가는 곳으로 인식되는 호스피스 

일반 의료와 호스피스 의료와의 연계가 안 되다 보니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으로 인식되는 실정이다. 전문기관은 2015년 말 기준 64개소로 1053병상이다. 이는 2015년까지 2500병상을 확보한다던 당초 정부 계획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필자는 ‘국회 바이오 포럼’(공동주최)에서 우리 사회의 웰 다잉에 관해 다룰 기회가 있었다. 행정과 입법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호스피스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선결돼야 함을 절감했다. 민간 부문에서 호스피스 운동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는데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못한 것은 사회적 합의가 미흡했던 탓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지가 없으면 국회나 정부나 적극 나서기 어렵다. 따라서 연명의료 등에 대한 논란을 매듭짓고 ‘죽음의 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합의를 도출하는 시민운동 차원에서 지난 3월 ‘호스피스 국민본부’ 발족에 나서게 됐다. 

지난해 3월 23일 출범한 호스피스 국민본부에는 몇 주 사이에 각계 80여 명의 대표 발기인을 비롯해 1만4865명의 시민 발기인과 의료기관 등 80여개 단체가 이름을 올렸다.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사회의 뜨거운 관심이 확인된 계기였다.

그동안 호스피스 운동에 참여하던 분들의 열성이 뜨거웠고 일반 시민의 관심도 컸다. 동네에서 만난 낯선 분으로부터 “고위 공직을 지내면서 누리기만 하는데, 참 좋은 일했다”는 격려도 받았다. 

공동대표로서 필자와 성낙인 서울대 총장, 전윤철 전 부총리, 유중근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윤평중 한신대 교수가 참여했다. 김주영, 안성기, 손숙, 이금림, 박정자 등등 문화예술계 인사와 주요 대학 현직 총장이 망라된 대표 발기인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활동 목표는 국회 19대 회기 내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 종합 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언론계의 관심이 커서 인터뷰와 칼럼 등 지면과 화면을 많이 제공한 것이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 큰 힘이 됐다. 

국회와 공동으로 공청회와 세미나 등을 개최한 것은 호스피스 입법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호스피스 의료 96%, 연명의료 중단 80% 찬성으로 나타났다. 호스피스·완화의료국민본부는 1월 8일 성명을 통해 “수많은 말기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이 해소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을 환영하고, 정부가 법안 통과를 시작으로 호스피스 사업 정책 수립과 예산 확보에 박차를 가해야 함”을 강조했다. 

2016년 1월, 연명의료법은 18년 동안의 길고도 지루한 논쟁의 터널을 빠져 나왔다. 보라매 병원 사건(1997년 뇌수술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중단과 퇴원을 요구한 가족들에게 살인죄가 적용된 사건) 발생 이후 19년이 지났고, 대법원이 세브란스 병원 김 할머니 사건(식물인간 상태에서 연명의료를 거부해 호흡기를 떼고도 200일을 더 살았던 사례)을 다루며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허용기준을 제시한 이후 7년만의 결실이다. 

앞으로 연명의료법 시행은 2년 뒤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조항은 1년 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19세 이상 성인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할 수 있게 된다. 의향서를 등록한 환자가 임종 선고를 받으면 담당의사는 환자 의견을 재확인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의향서가 없는 무의식 환자는 가족 2명 이상이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치 않았다”는 증언을 하면 된다. 

그러나 연명의료를 중단하더라도 고통 완화, 영양·산소·수분 공급은 계속된다.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 시설·인력·장비기준을 충족한 의료기관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으로 지정된다. 

지역마다 호스피스 거점 센터가 총괄하도록 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이 완화의료 방문 진료를 하는 등의 체계를 구축한다. 2017년 6월부터는 대상자가 암 환자뿐만 아니라 에이즈,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병변 등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질환으로 확대된다. 가정 호스피스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웰다잉 위한 문화·제도 구축이 절실 

웰 다잉법은 오랜 산고 끝에 태어났다. 법적인 틀과 원칙, 절차, 기준을 정했으니 이제 골격은 잡힌 셈이다. 그러나 입법 자체가 국민의 웰 다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법 제정의 취지가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과제가 만만치 않다. 일례로 연명의료 중단 대상을 ‘임종 과정의 말기 환자’로 정의한 것과 관련해서 암 환자의 경우에는 쟁점이 별로 없다.

그러나 다른 질환(만성 간경변, 폐쇄성 호흡기 질환자 등)은 임종 과정에서의 말기 판정이 간단치 않다는 지적이 초기 법안 초안 작성 때부터 대두됐다. 이번에 법안이 통과된 후 연명의료 중단 대상이 아닌데 식물인간처럼 ‘말기 경계’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시행 과정에서 관련 주체 간 쟁점이 될 사안도 여럿이고, 2년간 준비해야 할 일도 많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표준 서식과 등록 시스템 개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선정,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 확충. 가정 호스피스 제도 도입 등도 시급한 과제다. 가정 호스피스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정기적으로 환자를 방문하고 24시간 전화 상담이 가능한 형태로 설계되고 있다. 웰다잉 관련 하위 법령 개정 등 갈 길이 바쁘다. 

복지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증하는 시점에서 보건의료 분야 정책 수립은 주체간의 갈등 조정이 지난한 과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입법 취지대로 잘 시행되고 있다는 신뢰를 주고 사회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일도 쉽지 않다. 

결국 핵심은 질 높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 체계를 구축하고 전문인력 양성과 훈련에 의해 모처럼 도입한 웰 다잉 의료 서비스를 선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법과 제도의 성공을 위해서는 시행 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시민사회단체의 피드백도 중요하다. 법과 제도가 갖춰졌다고 해도 시행 과정에서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인 시행착오는 개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호스피스 기관으로서 2015년에 아산상을 받은 강릉 갈바리 의원은 임종을 앞둔 환자가 가족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별 파티’를 한다.

함께 울고 또 웃으며 “사랑한다”, “고맙다”, “행복했다”고 서로를 가슴으로 껴안는다. 호스피스 시설 기반 확충이라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웰 다잉 문화 정착을 위한 사회적, 문화적 기반을 구축하는 노력이 못지않게 중요함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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