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려했던 일 벌어져
결국 우려했던 일 벌어져
  •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16.03.16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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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박사의 전략이야기] 美北 평화협정 논의와 한국의 대책

미 정부, “우리는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논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 않는다” 기존 원칙 변화 감지돼 

한국전쟁 이후 지난 60여 년 동안 한반도가 진정 안정적인 시대는 한 번도 없었지만 상당기간 동안 한국의 정치가들과 대다수 보통 사람들은 한반도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햇볕정책이 시행되던 기간 동안 한국 사람들은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북한이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다시 환기하자는 의미에서 김일성이 1970년대 초반에 했던 말을 다시 인용해 본다. 

“남조선이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가 만반의 전쟁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일단 유사시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게 되면 남조선의 발전된 경제가 다 우리 것이 된다.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전에는 우리에게 평화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은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한다는 대전략 목표를 향해 매진해 왔고, 이제 3대 세습군주인 김정은이 그 목표를 완성시키겠다고 저러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북한이 의미하는 평화는 오로지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한 이후에나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남조선을 해방하고 조국을 통일’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은 미국이 한반도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일이었다. 북한은 미국만 빠져 준다면 한국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적수로 봤다. 근자에 이르러 북한이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게 된 이유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게 하려는 북한의 군사적 노력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목표를 이룩하지 못한 이유가 미국의 개입 때문이었고,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자신이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한미동맹, 주한미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는 것, 또는 최소한 한국 통일 문제에서 미국이 중립을 지키도록 하는 상황을 실현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해 왔다.

한반도 문제에서 궁극적으로 미국을 배제하려는 북한의 노력은 외교적, 군사적 등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기고문은 북한의 상기 노력 중 외교적인 부분, 즉 북한의 대미 평화협정 체결 노력을 다루는 것이지만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을 배제하려는 북한의 군사적 노력을 먼저 간략히 설명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지식인을 자처하는 일부 사람들은 북한이 미국과 전쟁을 하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반대가 진실이다. 북한은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장거리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한국과의 싸움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경우 미국의 개입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전략 목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북한은 미국의 대도시들을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반드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미국이 아무리 한국과 동맹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 뉴욕, 워싱턴을 포기할 각오를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남 통일 전쟁을 단행해야 하는데 미국의 개입이 두려워서 이제껏 주저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언젠가 미국의 대도시들을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핵능력을 보유하는 날, 북한은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를 목숨 거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며 미국을 설득할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은 미국에게 “한반도 통일을 이룩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 편에 서서 중국과 대적해 줄 터이니 걱정 말라”고 너스레를 떨 것이다. 

북한이 미국을 향해 “당신네들이 공산주의 월맹이 통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느냐? 보라! 지금 중국과의 싸움에서 통일을 이룩한 월남이 얼마나 미국의 편에 서서 도움을 주고 있는가! 당신네들이 무서운 게 우리같이 작고 허약한 나라는 아니지 않는가? 당신네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 아닌가? 통일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지정학적으로 당신네(미국) 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당신들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김정일은 이미 수십 년 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령님 대에 조국을 통일하자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마음 놓고 조국통일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핵전략 이론의 정석에 맞춰 진행되어온, 잘 계산된 행동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과 북한 간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논의의 시작? 

북한의 독재자들로 하여금 미국만 없다면 ‘한국쯤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이 보여준 태도에서 연원한다. 손가락 하나 다치는 것도 무서워하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정부 지도자들의 행태는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 따위는…”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한때 대한민국 대통령이던 사람이 한 말인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라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언급은 북한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전략에 대해 무지한 한국 사람들 중에는 미국과 북한이 평화조약을 맺으면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이고 북한이 핵무기도 폐기할 것이라며 북한의 대미 접촉 노력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한 신문사의 대기자라는 사람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봤다. 실제로 북한의 숙원이 풀리는 듯한 정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를 농락한 북한은 핵실험 직전인 지난 12월 미국에 대해 평화협정 체결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제의했고, 미국은 그 제의를 받아들여 서로 만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이라는 미국 정부의 기존 대북 정책 원칙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3일 미국에서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만난 장면. 중국은 지속적으로 한반도 평화협정 병행 논의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과 접촉 가능하다고 생각한 미국 

작년 말의 미북 접촉은 다음 단계로 진전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도발을 단행한 후 대북제재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케리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다. 

구체적으로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3월 3일(미국 현지 시간) 미 국무부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논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 않는다”며 “병행 논의에는 한반도 비핵화가 있어야 하고, (이는) 6자회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비핵화는 어떤 논의에도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선(先) 비핵화, 후(後) 평화협정’이라는 미 정부의 기존 원칙에 변화가 감지되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가 평화협정보다 우선”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 봤을 때 참으로 우려스런 진전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에 대해 논한다는 일 자체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애나 리치-앨런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미국은 어떤 대화의 초점도 비핵화에 맞출 것을 주장해 왔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최우선 순위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말했다. 

필자는 솔직히 말해 작년 겨울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위한 만남을 가졌다는 보도를 보고 놀라지는 않았다. 결국 벌어질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가지 이상한 믿음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경우라도 미국은 변함없이 한국 편에 서서 한국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국가이익 계산에 능한 나라이며, 친구와 적을 아무 때나 바꿀 수 있는 나라다. 미국과 일본을 보라. 

일본과 그토록 잔인한 전쟁을 치렀던 미국은 지금 일본과 세계 최고의 우호국이요 동맹국이 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동지로서 일본에 함께 대항했던 중국은 지금 미국 제1의 가상 적대국이 되어 있는 상태다. 미국은 언제라도 국가이익이 우선하지 영원한 적과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전략적 원칙에 의거 행동하는 나라다. 

작년 9월 한국 대통령은 미국 등 자유진영 동맹국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우리는 나름대로 그럴 이유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미국이 우리의 처지를 십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말로는 우리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미국은 이 같은 한국의 행동이 내심 대단히 서운했을 것이다.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는 북한의 저의 

북한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미국이 골치 아파하는 핵무기라는 카드도 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북한과 접촉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어떤 타협이라도 이뤄 낼 수 있다면 북한과의 접촉을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믿었던 동맹국 대한민국이 미국의 소망을 무시한 채 미국이 전략적 적대국으로 생각하는 중국과 마치 동맹국처럼 친하게 지내려는 태도는 미국으로 하여금 오로지 한국 편에 서서 북한과 지속적으로 적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능히 소멸 시켰을 것이다. 

북한은 오랫동안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해 왔다. 미국과는 싸우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앞에서 인용한 김일성의 언급처럼 북한은 남조선을 궤멸시키고 통일을 이룩하는 날까지 평화란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다.

대한민국과 일전을 벌여야 하는데 미국의 개입을 단연코 막아야 한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싸움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1 대 1 싸움이 된다. 북한은 미국을 뺄 경우 자신이 한반도의 승자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한반도의 국제 구조는 완벽하게 바뀌게 된다. 우선 북한은 미국과 평화조약을 맺었으니 자신을 위협하는 주한미군 및 한미동맹을 종식시켜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지금 미국이 북한에게 요구하는 것이 ‘비핵화’

인데 북한은 그 대가로 한미동맹의 종식,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할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단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 결과 미북 평화협정 체결도 요원한 일이라고 보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북 평화협정은 한국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비핵화하는 경우에도 남북한 간에 평화가 도래할 가능성은 없다. 북한은 119만 명에 이르는 현역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온 국민이 전투원이 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북한 핵무기 개발로 인한 위협 아래 너무 오래 살다보니 핵무기만 없애면 마치 한반도에 평화가 올 것처럼 생각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일이다. 북한이 정말로 핵을 폐기하는 경우, 그래서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면 그 이후 한반도의 모습은 최고로 중무장한 북한의 재래식 병력과 대한민국이 1 대 1로 대치하는 상황으로 바뀔 뿐이다. 

물론 북한은 6·25 당시와 같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북한은 게릴라, 테러 등 대한민국의 우세한 재래식 전투력이 별 효용을 발휘할 수 없는 각종 도발을 일삼을 것이다. 

평화협정과 불가침조약은 전쟁의 전조

정상적인 평화협정은 전쟁에서 승패가 판가름 된 후 패전국과 승전국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런 평화협정도 평화의 지속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이유 평화협정이 겨우 20년 만에 대전쟁으로 폐기된 것은 좋은 사례다. 

더욱 믿을 수 없는 평화협정은 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 체결되는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과 북베트남(월맹)의 평화협정이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이 바로 미국과 북베트남 사이의 파리 평화협정과 같은 것이다. 북베트남은 파리 평화협정으로 미국을 베트남에서 철수 시킨 후 남베트남(월남)과 1 대 1로 전쟁을 벌여 신속한 승리를 거머쥔 바 있었다.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상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국가들’ 사이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오히려 전쟁이 더욱 자주 발발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싸우지 않을 나라들이라면 평화협정 혹은 불가침 협정을 맺을 이유도 없다.

평화협정 혹은 불가침 협정은 지금 싸우지 말고 조금 있다 싸우자는 의미이거나, 월남전의 경우처럼 미국을 빼고 우리끼리 결판을 내겠다는 의미와 같다. 미국과 평화조약은 미국을 빼고 남북한이 1 대 1로 결판을 내자는 상황의 도래를 원하는 북한의 소망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미북 평화협정은 갈등하는 당사자들 사이의 평화협정이기 때문에 결코 한반도에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최선은 미북 간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논의가 아예 시작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논하려 할 경우 우리는 반드시 당사국으로 개입해야 한다. 즉 한국은 미국에게 “한국의 참여 없는 평화협정 논의는 절대 반대”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월남 사태의 재판을 노리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다. 당시 남베트남은 구경꾼에 불과했고 미국이 빠져나간 후 북베트남의 전면 남침전쟁으로 사멸되고 말았다. 

한국전쟁의 전범자를 먼저 처단하는 조건, 북한 핵 포기는 물론 재래식 군사력의 대폭 감축을 이룩하는 것 등 북한이 남침 전쟁을 벌일 수 없는 상황을 먼저 만드는 것이 평화협정 개시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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