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중국은 무엇인가?
  • 복거일 작가
  • 승인 2016.03.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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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談峻論] 강대국 옆에서 생존하는 법

스스로 지키려는 뜻이 없는 집단을 남들이 도울 수는 없다. 아무리 작아도, 스스로 지키려는 뜻이 강하면, 강대한 집단이 넘보기 어렵다. 

지정학적 조건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큰 나라들 사이에 낀 작은 나라엔 특히 절실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대륙의 강대국 중국은 늘 한반도에 큰 영향력을 지녔었다.

▲ 복거일 작가

특히 1950년 겨울 중공군이 국제연합군을 기습했을 때는 한반도 전체가 중국 공산당 정권의 지배를 받을 뻔했다. 리지웨이 장군의 뛰어난 지휘와 이승만 대통령의 굳은 의지가 대한민국을 벼랑 끝에서 되살렸다. 그 뒤로 중국이 미국과 협력적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와의 관계도 점차 개선되었다. 

걱정스럽게도, 요즈음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가 한결 음산해졌다. 북한의 핵무기가 부쩍 위협적이 되었어도, 중국은 북한을 감싸기 바쁘다. 자신의 힘이 크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북한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외교를 비난하고 보복 가능성을 언급한다. 도대체 중국의 속셈은 무엇인가? 

어느 사회에서나 국가와 집권 세력은 이해가 다소간 엇갈린다. 시민들의 뜻이 선거를 통해서 정치에 반영되는 사회들에선 그런 이해의 엇갈림이 제한된다. 시민들의 뜻이 무시되는 압제적 사회들에선 집권 세력의 이익이 우선 추구되고 국익은 집권 세력에 도움이 되는 한도까지만 고려되므로, 엇갈림이 커지게 마련이다. 중국의 속셈을 가늠하는 데는 이 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1940년대 말엽 국공내전에서 이겨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권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차지했다. 그 뒤로 공산당 정권은 공산주의 이상향을 세우려 권력을 독점한다고 말해왔다.

1970년대 말엽 경제적으로 파산한 중국이 공산주의 명령경제를 버리고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했으므로, 공산주의를 추구한 공산당 정권은 정당성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권력을 움켜쥔 채 민족주의를 내세워 정당성을 되찾으려 한다. 

백년국치(百年國恥) 

1842년 아편전쟁에서 참패한 뒤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진 일본이 중국에서 물러날 때까지 중국은 외세에 시달렸다. 중국 사람들 스스로 “백년국치(百年國恥)”라 부르는 이 굴욕적 상황을 끝낸 것은 중국 공산당이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에서 주역은 미국이었다. 중국은 조역에 머물렀고, 그나마 당시 중국을 대표한 것은 국민당이었다. 

공산당의 선전과는 달리, 국민당 정권의 국부군은 외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처지에서도 강대한 일본군과 잘 싸웠다. 1937년의 ‘상하이(上海) 싸움’에서 국부군은 우세한 일본군에 맞서 중국을 얕보던 일본군이 당황할 정도로 용감하게 싸웠다. 약탈, 강간, 살인으로 악명 높은 ‘난징(南京) 학살’은 일본군이 상하이 작전에서 겪은 고전과 좌절에서 비롯한 면도 있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일본군에 맞서 거의 두 달을 버틴 1944년의 ‘헹양(衡陽) 싸움’은 강대한 일본군에 대한 국부군의 영웅적 저항을 상징한다. 반면에, 공산군의 전과는 그리 크지 않았고, 공산군은 일본군과 싸우는 대신 국부군과의 대결에 대비해서 전력을 비축한다는 비난을 들었다. 

외세와 관련하여 공산당이 내세우는 것은 한국전쟁이다. 그들은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에서 ‘북조선’을 도와 미국에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승리로 자신들이 백년국치를 끝냈다고 자랑한다. 그런 역사 해석이 중국 공산당 정권의 정당성을 떠받친다. 

만일 중공군이 “항미원조전쟁”에서 이겼다면, 북한이 한반도의 주인이어야 논리적이다. 미국의 ‘괴뢰 정권’인 한국은 잘살고 중국의 원조를 받은 북한이 몰락한 현재의 상황은 중국 공산당 정권으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정당성을 떠받치는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을 지키려면, 중국 공산당 정권은 북한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는 것이라도 막아야 한다. 그것이 중국 정권이 기를 쓰고 북한을 돕는 근본적 이유다. 

물론 중국은 한반도의 분열을 즐긴다. 둘로 나뉘어 경쟁적으로 중국에 매달리는 한반도의 현 상황이 자신에게 가장 낫다고 중국은 생각한다. 악한 국가(rogue state)인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지녔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면들에서 맞서는 미국과의 교섭에서 좋은 패이기도 하다. 당연히, 중국 정권은 북한 정권의 존속에 큰 가치를 두고 북한 정권에 대한 지지로 보는 어지간한 손해들은 감수한다. 

그러나 중국 정권이 북한 정권을 감싸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정권의 붕괴가 중국에 미칠 정치적 영향이다. 북한에서 압제적 정권이 무너지면, 자유화의 바람은 중국에서도 거세게 불 것이다. 한 사회에서 일어난 혁명은 이웃의 압제적 사회들에서도 혁명의 기운을 일으킨다. 

▲ 6·25전쟁에서 미국에 맞섰다는 것을 외세에 대한 유일한 승리로 내세우는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괴뢰정권’일 뿐이다. 사진은 3월 5일 개막한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 전 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모습.

허약해진 중국 정권 기반 

최근의 예는 ‘아랍의 봄’이니, 당국의 자의적 단속에 죽음으로 항의한 튀니지의 젊은 행상은 폐쇄적 아랍 사회들에서 튼튼해 보였던 압제적 정권들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얼마 전 홍콩 당국의 행상 단속이 거센 반(反)중국 시위를 부른 상황은 ‘천안문 사건’의 악몽에 시달리는 중국 지도자들의 꿈자리를 더욱 어지럽힌다. 

지금 중국 정권은 튼튼해 보인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러나 중국 정권의 기반은 단단치 못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위에서 지적한 바처럼, 공산당 정권은 정당성을 지니지 못했다. 경제에서 공산주의와 명령경제를 버리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했으면, 공산당은 적어도 그런 변신에 대해 과오를 인정하고 인민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런 심판을 통해서 정당성을 다시 얻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스스로 그런 과정을 밟을 용기를 지니지 못했으므로, 공산당 정권은 인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기본적 권리들을 박탈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정권은 근본적으로 불안하다. 

공산당이 계속 권력을 독점하면서, 중국에선 정치적 전체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결합된 체제가 나왔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이념들이 억지로 결합되었으므로, 그런 체제는 심각한 모순들을 품을 수밖에 없다.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행동하려면, 경제 주체들에 대한 사회적 강제들이 최소화되어야 하고 모든 정보들과 지식들이 자유롭게 유통되어야 한다.  특히 재산권의 확립이 긴요하다. 

그러나 정치적 부문을 인도하는 원리인 공산주의는 그런 조건들을 허용할 수 없다. 재산권과 인권은 법의 지배를 전제로 하는데, 법의 지배는 공산당의 권력 독점이 무너져야 가능하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순간, 공산주의 정치 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이처럼 정치적 공산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는 궁극적으로 조화될 수 없는 원리들이다. 중국 경제가 원숙해지면, 이런 모순은 점점 커져서 체제를 비효율적이고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그 모순은 결국 정치적 전체주의의 패배로 해소될 것이다. 

도덕적 접근 

앞으로 중국에서 공산당 정권의 이해와 사회 전체의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들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북한 정권의 비호도 그런 부분들 가운데 하나다. 북한 정권의 붕괴는 중국 사회에 두루 좋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공산당 정권은 당장 생존을 걱정하게 된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중국 정권은 중국에 짐만 되는 북한 정권을 큰 비용을 들여서 떠받친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으니, 그들은 속셈을 숨기려 별의별 연기를 다 한다. 자신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작다고 늘 강조한다. 심지어 북한의 모욕적 대접을 사서 받기도 하니, 얼마 전 중국 외교 사절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를 골라서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발표하는 연극을 했다. 

북한이 워낙 폐쇄적이라 경제적 제재가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논리도 편다. 북한의 위협을 막을 ‘사드’가 중국을 위협한다고 시비를 걸어, 논점을 흐린다. 

중국 정권의 속셈이 그러하므로, 우리로선 대응하기 힘들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북한 정권의 유지와 핵무기 개발 사이엔 유기적 연관이 없다고 설득하는 일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 및 미국의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뒤흔들어서 미국을 따라잡을 시간을 벌려는 중국의 기본 전략에 방해가 된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근본적 대응은 도덕적 접근이다. 악한 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돕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부도덕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 고려를 바탕으로 삼아야 우리 외교는 효과적일 수 있다. 

현실정치 영역인 외교엔 도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그런 통념은 피상적 관찰에 바탕을 뒀다. 도덕심은 사람의 천성이어서, 도덕은 모든 일들에서 판단을 인도하는 원리다. 외교라고 예외일 리 없다. 

‘도덕 무기’의 중요성을 깊이 이해한 지도자는 윌슨 대통령이니, 당시 비현실적 이상이라 여겨진 민족자결주의는 이내 기본적 국제 질서로 자리잡았다. 공산주의 이상향을 지향한다고 알려진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은 한때 온 세계에 열렬한 추종 세력을 거느렸고, 덕분에 코민테른을 움직인 소련은 큰 이익을 얻었다. 

근년에는 국제적 여론으로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 정권이 무너졌고 미얀마의 압제적 군부 정권이 민주화에 동의했다. 무엇보다도, 레이건 대통령이 냉전에 도덕적 차원을 더해서 “사악한 제국” 소련을 무너뜨린 것은 도덕적 접근의 강력함을 일깨워준다. 

이번에 국제연합이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를 의결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도덕의 힘에서 나왔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돕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판단이 다른 고려 사항들을 압도했기 때문에, 북한과 계속 거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리한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했다.

▲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국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지만 사실상 지원 내지 방조하고 있다. 사진은 발사 차량이 중국 기업의 제품인 것으로 드러난 북한 미사일 KN-08의 이동 장면.

 

중국 기술과 자금으로 시작한 북한 핵 개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원래 중국의 기술과 자금으로 시작했고 뒤에 파키스탄의 기술적 도움을 받았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도 중국이 원조했으므로, 북한 핵무기에 대한 중국의 도덕적 책임은 총체적이다. 우리의 대중국 외교는 그 점을 강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약자를 궁극적으로 지키는 것은 도덕이다. 

모두 잘 아는 것처럼, 외교를 떠받치는 것은 국력이다. 도덕은 중력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나 강력하게 작용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외교적 문제가 풀릴 수는 없다. 도덕적 정당성과 국력이 함께 작용해야 효과적 외교가 나올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국력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런 비대칭적 상황에서 강대국은 상대를 압도하려는 정책을 고르게 마련이고 약소국은 강대국의 압력으로부터 핵심적 가치를 지키려는 적응적 묵종(adaptive acquiescence)을 추구하게 된다. 

적응적 묵종의 전략적 개념은 양보(concessions)와 대항력(counterweight)이다. 강대국에 최소한의 양보를 하면서 핵심 가치를 지키는 데 필요한 대항력을 갖춘다는 얘기다. 물론 대항력이 커지면, 양보는 작아지게 마련이다. 

대항력은 외교적 대항력, 군사적 대항력 및 시민적 대항력으로 이뤄진다. 외교를 통해서 국제적 환경을 개선하고 강대국에 대한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 외교적 대항력의 본질이다. 군사적 대항력엔 자국의 군사력만이 아니라 동맹국의 군사력도 포함된다. 시민적 대항력은 정권이 누리는 시민들의 지지를 뜻한다. 

외교적 대항력과 군사적 대항력은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약소국 스스로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민적 대항력은 약소국 스스로 키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두 요소들의 기반이 된다. 스스로 지키려는 뜻이 없는 집단을 남들이 도울 수는 없다. 아무리 작아도, 스스로 지키려는 뜻이 강하면, 강대한 집단이 넘보기 어렵다. 스스로 지키겠다는 시민들의 정치적 의지는 대항력의 근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울분을 느끼는 것이 바로 시민적 대항력의 부족이다.  우리 사회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외국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할 만큼 무심하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을 무조건 지지한다. 

좌파 정당들의 지도자들은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려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고 효과적 정책들을 반대한다. 현 정권이 모처럼 단호한 대응책으로 북한의 돈줄인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하자,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치가가 “전쟁을 하자는 거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2016년의 한반도 상황은 1946년의 한반도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 북한에선 이미 소련의 위성국가가 섰고 북한군의 증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남한에선 미군정 당국이 이상론에 묻혀 좌우합작을 추진하고, 시민들은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에 매달렸다. 

이처럼 시민적 대항력이 약하면, 중국과 북한에 대한 우리의 외교적 노력도 힘을 쓸 수 없고 동맹국의 막강한 군사력도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시민적 대항력을 늘리는 것이고 그것이 다른 대항력들의 바탕이라는 것을 우리 시민들이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과 호의적이지 않은 거대한 이웃 중국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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