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파네스 著, <새>
인간 세상이 파탄나면 도피할 수 있는 피안의 세상은 어디에 있을까? 어딘가에 있을 천국은 너무나 멀고 인간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 인간 이외의 생명체가 만들어 내는 또 다른 평화로운 세상은 없을까? 아리스토파네스(BC 445?~BC 385)는 그런 세상을 꿈꿨다.
새들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는 ‘새들의 세상’이 문학 작품 속에서 펼쳐졌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새>는 이러한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발상을 보여준다. 허구 헌 날 송사(訟事)로 날을 지새우는 아테네의 모습과 제 욕심만 채우려는 치졸한 인간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새들의 조롱은 유쾌하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각각 동맹국들을 이끌고 맞붙은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은 그리스 세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전쟁 막바지인 기원전 414년에 공연된 이 ‘새들의 나라’는 아테네인들에게 잠시나마 전쟁의 시름을 잊고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느껴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내야 하는 아리스토파네스는 고정관념을 통렬하게 전복시킨다. 그는 땅에 사는 인간들과 신들이 지배하는 하늘 사이의 공간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들’에 주목한다. 인간과 신 사이의 공간에 새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모험을 떠나는 이들은 아테네 시민 에우엘피데스와 피스테타이로스이다. 이들이 아테네를 떠나 한적한 곳을 찾아 안주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늘 시민 간에 끊임없는 법정 소송으로 날을 지새우는 지겨운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대기는 하지만 전쟁에 진력이 난 속사정도 가세했을 법하다.
에우엘피데스와 피스테타이로스는 기발한 구상을 새들에게 제안한다. 이 두 돈키호테 같은 아테네인들은 새들을 부추겨 인간 세상과 신들의 직접 소통을 가로막기 위해 수많은 새들의 집단 노동을 통해 공중 공간에 성채를 쌓게 만든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유로운 새들의 이미지와 공간 점유자로서의 기능에서 착안하여 인간과 신 사이에 새로운 왕국을 건설했다. 새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나라의 건국 참여를 빙자하여 한 몫 보려는 인간 군상들을 가차 없이 내쫓았고, 신들에게 한 전쟁 위협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이 희극을 본 아테네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지긋지긋한 전쟁에 시달리는 아테네의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대변한 희극 <새>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받았을까?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다시 마주한 냉혹한 현실은 또 언제 어느 전쟁터로 달려 나가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 정치지도자들이 스파르타와 휴전하고 평화를 복원시켜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희극은 이뤄질 수 없는 한 여름 밤의 꿈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부조리한 연극을 통해 공동체의 안녕과 규범을 도외시하고, 전쟁 통에도 사리사욕 추구에 눈이 멀어 송사에 골몰하는 아테네 시민들의 추악한 민낯에 통렬한 조소와 비판을 던지고 있다. 위대했던 폴리스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던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의 모습에서 정쟁에 골몰하는 이 나라 정치인들의 행태가 떠오르는 건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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