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이슬람化가 한국에 주는 교훈
유럽의 이슬람化가 한국에 주는 교훈
  • 유해석 FIM 국제선교회 국제 대표
  • 승인 2016.04.07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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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특집] 유럽의 이슬람化

 

1960년대 초반부터 무슬림들이 유럽에 대규모로 진출한 이후 유럽은 수많은 변화를 경험해야 했다. 그렇다면 무슬림의 유럽 진출로 인해 유럽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무슬림이 유럽 도시에 진출하면서 벌어진 현상은 유럽인들이 외국인들이 사는 지역을 피해서 외부로 이사를 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백인 대열에 합류할 수 없었다. 무슬림들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았고 재정도 넉넉하지 못했다. 따라서 실업자가 되거나 저임금을 받고 일했으며 빈민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럽의 무슬림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다양한 처방과 전략을 시도했다. 무슬림들이 비(非)무슬림 국가에 사는 이유가 다와(Dawa), 즉 비무슬림을 이슬람으로 인도하는 선교라고 생각했다.

1990년 영국 무슬림의회(Muslim Parliament) 설립자인 칼림 시디키는 “유럽은 도덕적으로 파산했으며 모든 적(敵)에 대해 이슬람의 승리와 이슬람 국가의 창조를 위해 소수 무슬림을 끌고 이슬람의 정치적인 힘을 보여준 예언자 무함마드의 열정을 가지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무슬림 뉴스’ 신문에 의하면 한 영국인 무슬림이 그의 단체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리했다. 

‘우리가 반드시 추구하는 것은 영국을 믿지 않는 자의 땅(Dar Al-Kufr)에서 이슬람의 땅(Dar Al-Islam)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우리의 목적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이곳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알라께서 승리하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 이스트 런던에 세워진 모스크. 모스크 주변에는 이슬람식 고기와 식품을 파는 시장, 부속 건물인 이슬람 꾸란 학교 등이 세워지면서 그 지역이 게토화 된다. 무슬림을 피해 그 지역을 떠나는 백인들의 자리를 새로운 무슬림이 채우는 과정을 되풀이함으로써 결국 유럽의 이슬람화는 더욱 심해진다.

근친결혼

2010년 BBC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 있는 파키스탄 이민자들 중 절반 이상(55%)이 사촌과 결혼했다. 이런 근친혼으로 인해 영국에 거주하는 파키스탄 가족은 다른 인종의 가족에 비해 13배 이상 유전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파키스탄 사람들의 출생률은 영국 전체 출생률의 3%를 차지하지만 파키스탄 아이들 중 유전적 선천적 결손을 가지고 태어나는 신생아의 비율은 전체 신생아의 33%를 차지한다. 

덴마크 출신 심리학자 나콜라이 세넬스는 무슬림 근친결혼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무슬림 결혼 패턴의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낮은 지적(知的) 용량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의 자료에 의하면 근친결혼을 통해 출생한 무슬림 아이들의 IQ는 평균보다 10~16점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낮은 IQ와 비판적 사고를 금지하는 이슬람 종교로 인해 무슬림들이 경쟁 사회에서 성공을 거두기는 매우 어렵다. 

덴마크에서 2007년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근친결혼을 하는 아랍 배경을 가진 이민자 자녀 중 3분의 2가 10년 동안 덴마크 학교에서 공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64%가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다.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교육을 위한추가 비용 지출은 덴마크 학교 재정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덴마크 국립과학원의 연구에 의하면 ‘IQ 70 이하의 아이들이 태어날 확률이 일반 부모에서는 1.2%이며 근친결혼으로 태어난 아이는 6.2%로, 이는 400% 이상 높은 수치’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연구 결과는 또 ‘악성 종양, 선천적 기형, 정신적 지체 및 육체적 장애가 보통 부모사이의 아이보다 근친결혼을 통한 아이에게 더욱 많이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 근친결혼을 하면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을 확률이 2배가 넘는다. 이는 유럽 각 나라의 국가의료서비스의 지출을 높이게 된다. 

시리아 법의 도입

영국 4차원정책연구소(Four Policy Studies Institute Survey) 조사에 의하면 무슬림의 74%는 이슬람이 그들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반면에 힌두교인은 43%, 시크교도는 46%가 종교가 일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답변했다. 

이슬람 수용 사례는 샤리아(Sharia) 법의 도입이다. 샤리아는 이슬람 율법을 의미하는데, 이 샤리아를 적용하는 법정이 현재 영국 사법제도의 일부로 공식 편입되었다. 

2007년 8월에 무슬림 국제법원의 샤리아 재판소를 여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이 통과된 후 2008년에 영국 런던, 버밍햄, 브레드포드, 맨체스터, 누네톤, 워릭, 글래스고와 에든버러에 샤리아 법정이 세워졌다. 영국 정부는 샤리아 법정에 증언 청취와 심문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이 법정의 판결에 법적 구속력을 허용했다. 2009년에는 영국 전역에서 85개의 샤리아 법정이 세워졌다. 

이슬람에서는 낙태를 반대한다. 낙태를 하는 병원 앞에서 무슬림들이 ‘살인자’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는가 하면, 합법적인 도박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반대 시위를 한다. 또 두건을 쓰고 가게에 들어가 모든 술을 압수하고, 늦은 시간에 짧은 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들을 쫓아가서 괴롭힌다. 이로 인해 이들 지역에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무슬림 자경단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유튜브에 따르면 이슬람 개종자가 이 지역에 사는 백인 여성에게 “당신들은 종교를 존중하며, 신념을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말고 이제는 이 지역을 떠나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무슬림이 많이 살고 있는 브레드포드와 웨스트 요크에 있는 듀스베리, 루톤, 베즈 등을 영국 안에서 이슬람 법인 샤리아에 의해 다스려지는 독립된 주(州)를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 

모스크의 성장

북유럽에 세워진 최초의 모스크는 1889년 런던 근교의 워킹에 들어선 샤자한 모스크였다. 이곳에는 1887년에 인도에서 온 무슬림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모스크가 지어진 과정은 비슷했다. 먼저 개인이 기도할 장소를 마련한 후 이슬람 인구가 성장하면 작은 건물들로 기도처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도처소는 더 큰 모스크로 발전되어 갔다. 

모스크가 빠르게 성장한데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유럽인들이 떠난 공장에 무슬림 노동자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 지역에 그들을 위한 모스크를 만들었다. 둘째, 무슬림들은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자기 민족끼리 모여 산다.

이런 이유로 같은 지역 출신들을 중심으로 모스크가 만들어졌다. 언어를 중심으로 특성을 가진 모스크들이 경쟁적으로 생겨났다. 셋째, 각 이슬람 종파들이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종파를 따라 모스크를 만들었다. 

이슬람은 시아파, 순니파를 포함하여 모두 73개의 종파가 존재한다. 모스크가 세워지면 모스크 앞에는 이슬람식으로 도살된 고기와 식품(할랄)을 파는 시장이 들어선다. 모스크에 모인 사람들은 엄격하게 이슬람식으로 도살한 고기를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모스크가 세워지면 단순한 종교적 집회 장소로 끝나지 않는다. 이슬람식 시장이 세워지고, 주변에는 모스크의 부속 건물인 이슬람 꾸란 학교 등이 세워지면서 그 지역이 게토화(Ghettoize) 된다. 이슬람 문화가 그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게 된다. 

도시의 중앙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백인들 사이에 세워진 모스크로 인해 그 지역이 게토화 되자 땅값이 하락하고 자녀 교육에 문제가 발생하자 백인들이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그 지역은 더 이슬람화 되어 가는 것이다. 

모스크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알라의 땅으로 선포하는 것이기에 한번 지어진 모스크는 무너지지 않는다. 모스크는 독일에 2600개, 프랑스에 2200개, 영국에 1800개와 3000~5000개의 꾸란 학교가 있다. 

유럽인들이 유럽을 떠난다

이슬람 인구가 포함된 이민자들로 인해 유럽인들이 유럽을 떠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독일에서는 2001년에 10만9500명, 2005년에 14만4800명이 자신의 조국인 독일을 떠나 캐나다, 호주 등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다. 영국 통계청에 의하면 2010년 33만6000명의 영국 백인들이 영국을 떠났으며, 프랑스에서는 북부 아프리카에서 온 무슬림들로 인해 유대인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협회에 의하면 2002년 무슬림들이 유대인을 공격하자 3000명이 넘는 유대인(총인구의 0.5%)들이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2004년에 네덜란드의 영화감독인 데오 반 고흐가 꾸란을 비난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후 암스테르담에서 모로코 태생 무슬림에 의해 살해 당했다. 

1주일 후에 네덜란드에서 이민을 담당하는 회사에 1만3000건의 이민 관련 문의가 쏟아졌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대사관 등은 이민에 대한 문의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볼 때 유럽의 백인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영국 버밍햄 인구를 보면 1990년에 백인 인구비율이 77%였지만 2006년에는 65.3%로 하락했고, 2026년이 되면 버밍햄에서 백인은 소수민족이 될 것이다. 레스터에도 1991년 70.15%의 백인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2006년에는 59.5%의 백인만 남게 되었다. 레스터도 10년 안에 백인이 소수민족이 될 것이다. 

영국은 2010년 선거에서는 이민자와 그의 후손들이 전체 유권자의 12%였는데, 2015년 선거에서는 18%로 늘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들 가운데 이민자와 그의 후손들 비율이 늘고 있다.

2015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현재 303명의 보수당 국회의원 가운데 3.6%, 노동당 국회의원의 6.2%가 이민자와 그의 후손들이다. 이를 합치면 국회의원 중 약 10%가 이민자와 그의 후손들이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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