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노동시장 규제가 심하기로 세계 157개국 가운데 15위.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
원로 대우를 받는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생각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걸을지는 알 수 없지만 소망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은 더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할 텐데….”
내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정치판을 바라보면 암울한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20대 국회를 향한 내 마음은 기대를 접을 수 없다. ‘노동시장 개혁’에 관한 기대다. 우리나라는 노동시장 개혁을 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 보라. 우리나라는 노동시장 규제가 심하기로 세계 157개국 가운데 15위가 아닌가.
문제의 심각성은 노동시장 규제가 심하지 않기로 김대중 정부 때 123개국 가운데 58위였는데, 박근혜 정부에서 2013년 157개국 가운데 143위(규제가 심하기로 15위)로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는 점이다.
한 NGO의 요청으로 4대 정당의 20대 총선 일자리 공약을 평가했다. 새누리당은 내수산업 활성화라도 내세워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은 한 마디로 노동시장 규제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이다.
경제학도인 나는 앉아서 구경만 할 수는 없다. 나는 구조개혁과 노동개혁에 성공한 독일, 영국, 뉴질랜드, 아일랜드를 대상으로 최근 책을 썼다. 이 책에서 나는 정부와 정치가들과 노조를 향해 외쳤다.
“노동시장 개혁,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영국 : 대처, 노조의 무력화를 통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다
1970년대 영국은 노조 천국이었다. 1968∼1979년 사이 정권 교체가 다섯 차례나 이뤄졌다. 그 중심에 막강한 노조 파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거릿 대처는 1979년 “보수당이 정권을 잡으면 영국에서 노조 파워를 무력화시키고, 사회주의 정책을 추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 대처는 구조개혁 차원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그녀가 추진한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은 ‘노조 파워 무력화’였다.
대처는 맨 먼저 영국의 노사정위원회 격인 정부와 노조 대표 간의 ‘월례회 모임’을 없애버렸다. 이어 정부 단독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노동 관련법 제·개정을 통해 노조 파워를 무력화시켜갔다. 대처는 마지막에 노조의 결속력 강화를 돕는 ‘클로즈드 숍(closed shop) 제도’(노조에 가입해야만 회사원이 될 수 있는 제도)를 삭제했다.
당시 영국의 노조 파워는 현재의 한국보다 훨씬 더 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처의 노조 파워 무력화로 영국은 드디어 노동시장이 유연하게 되었다. 영국은 지금 노동시장이 유연하기로 미국 다음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하게 되자 영국 경제는 살아났다. 1986년 11.2%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2004년 4.7%로 낮아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국 경제는 살아나고 있다.
▲ 마거릿 대처 영국 수상은 노조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했던 영국 내 노조의 힘을 무력화함으로써 노동개혁에 성공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영국판 노사정위원회의 폐지다. |
뉴질랜드 : ‘고용계약법’ 도입만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다
뉴질랜드는 ‘신이 내린 천국’을 건설하겠다며 영국인들이 1800년대 중반부터 건너가 세운 나라다. 뉴질랜드는 1894년 세계 최초로 최저임금제 도입에 이어 같은 해 항만노조의 파업을 막고 산업 평화를 유지할 목적으로 ‘산업 평화와 중재에 관한 법’을 도입했다.
그런데 산업 평화와 중재에 관한 법을 기반으로 뉴질랜드는 100여 년 동안 중앙집권적 노사관계를 유지하여 강성노조가 탄생했다. 강성노조는 1916년 노동당을 창당했고, 1935년 집권에 성공했다. 노동당은 모든 노동자를 의무적으로 노조에 가입케 했고, 각종 사회입법과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다. 뉴질랜드는 ‘신이 내린 천국’ 아닌 ‘노조 천국’이 되어 1980년대 중반 노동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나라가 되었다.
데이비드 롱이 총리는 1984년 정권을 잡자 마거릿 대처처럼 구조개혁 차원에서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강성 노조의 파워로 노동시장 개혁은 뒷전으로 밀렸다. 1984∼1991년간 정권이 네 차례 바뀌고 나서야 ‘고용계약법’ 도입으로 노동시장 개혁이 성공했다.
뉴질랜드는 지금 노동시장이 유연하기로 미국, 영국 다음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하게 되자 뉴질랜드 경제가 살아났다. 1992년 10.7%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2007년 3.7%로 낮아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뉴질랜드 경제도 살아나고 있다.
아일랜드 : 야당·노조의 자발적 참여로 노동시장 개혁 이뤄내다
아일랜드는 193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 400여 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 1845∼1951년간에는 감자 흉작으로 100여만 명이 굶어 죽고, 100여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다. 아일랜드는 한 때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1973년 1차 유가파동 후 아일랜드는 한 때 OECD 국가 가운데 경제 사정이 가장 좋지 않았다. 1980년 전반기 성장률은 마이너스에다 실업률은 1987년 17.5%를 기록했다. 1987년 정권을 잡은 찰스 호이 총리는 마거릿 대처처럼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개혁은 정부 밖에서도 이뤄졌다. 경제가 최악인 상태에서 호이 총리가 구조개혁을 추진하자 정부 밖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일랜드민족당의 앨런 덕스 당수와 아일랜드 최대 노조인 전국노조연합이 자발적으로 정부에 제안하여 노사정 간에 국가 재건을 위한 프로그램 ‘사회연대협약’이 체결되었다. 사회연대협약은 구조개혁이 추진된 1987년부터는 3년 단위로, 2006년에는 10년 단위로, 2015년까지 모두 일곱 차례 체결되어 아일랜드 경제·사회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아일랜드는 노동시장이 유연하기로 미국, 영국, 뉴질랜드 다음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하게 되자 아일랜드 경제는 살아났다. 1987년 17.5%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2001년 3.9%로 떨어졌다.
아일랜드는 노동시장이 유연한 데다 법인세율도 12.5%로 낮아 해외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1971∼2014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4.1%나 된다. 이 결과 아일랜드는 1인당 국민소득이 1990년부터 2007년까지 17년 만에 1만 달러대에서 5만 달러대로 올랐다.
독일 : 슈뢰더, 노동개혁 추진하다 정권을 잃다
2차 세계대전 후 루드비히 에르하르트 총리는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독일경제를 고성장·저실업 구조로 이끌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사민당이 정권을 잡고 16개 주 가운데 15개 주에서 사회주의 정책을 도입하면서부터 독일 경제는 저성장·고실업 구조로 바뀌어 갔다. 특히 1990년 통일 후에는 실업자가 500여만 명에 이르러 독일은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이런 상황에서 슈뢰더 사민당 총재가 정권을 잡았다. 통일 후유증과 경기 침체로 실업자 문제가 현안 이슈로 떠오르자 ‘실업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이 미래 독일을 맡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독일은 구조개혁 외에 대안이 없었다.
슈뢰더는 경기 침체의 주요 원인이 경직된 노동시장,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과 기업 규제, 지나친 사회보장제도,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통일 후유증 등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고 봤다. 슈뢰더는 구조개혁을 위해 ‘어젠다 2010’을 도입했다. 이 정책의 핵심 내용은 ‘하르츠 노동시장 개혁안’이다.
슈뢰더는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 노사정위원회 격인 ‘일자리창출연대’에 의존하려 했으나 노사가 서로 이익만을 챙기려 해 그만뒀다. 슈뢰더는 2015년 5월 한국에 와서 가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시장 개혁을 할 때 노동자와 사용자 등 이해당사자들에게 결정권을 줘서는 안 됩니다.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노조, 사측이 한 테이블에 모여 의논을 했지만 노사가 모두 적대적인 위치에서 정부에 요구만 했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슈뢰더는 노동시장 개혁을 노사정위원회 대신 의회로 끌고 갔다. 어젠다 2010은 야당 앙겔라 메르켈이 이끈 기민당이 동의하여 가까스로 연방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슈뢰더는 실업복지수당을 삭감해가면서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다가 인기를 잃어 두 번째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은 하나의 감동 스토리다. 독일은 실업률이 2005년 11.3%까지 올랐는데 2004년부터 노동시장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결과 10여 년이 지난 2015년 4.6%로 줄었으니 어찌 감동 스토리가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고용률은 2000∼2005년간 65%대였는데 2006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2015년 74.1%를 나타냈다. 독일의 성공 사례는 ‘노동시장 개혁은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임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대한민국 : 박근혜 정부, 노동시장 개혁 과감하게 추진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시장 개혁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노동개혁 내용을 중심으로 다른 나라를 거울삼아 노동시장 개혁 방향을 간략히 제시한다.
쪾독일, 영국 등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노동시장 정책은 ‘개혁’이 아닌 ‘개선’이다. 이 따위 ‘노동개선’을 놓고 매달릴 필요가 없다. 20대 국회에서는 밀어붙여야 한다.
쪾근로기준법 제24조 ①항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서 ‘긴박한’을 삭제하면 정규직 과보호가 완화될 수 있다. 이 세 글자 때문에 한국은 정규직 과보호 악명이 높다.
쪾비정규직보호법은 노무현 대선 후보가 2002년 비정규직 비율 27.3%를 56.7%로 속여 도입한 것이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2년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된다는 비정규직 보호법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은 증가하고 있으니 폐기되어야 한다.
쪾독일은 파견근로를 자유화하여 일자리가 크게 늘었다. 독일과 일본은 오래 전부터 파견근로를 전 업종에 걸쳐 실시하고 있다. 파견근로 규제를 완화하고, 전 업종으로 확대 실시해야 한다.
쪾독일은 창업기업의 경우 기간제 근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한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 기간제 근로자 70% 이상이 기간 연장을 바란다.
쪾뉴질랜드는 ‘고용계약법’ 도입만으로 개별근로자의 노조 선택권이 허용되었다. 대법원의 ‘발레오전장(電裝)노조 판결’처럼 한국도 개별 근로자의 노조 선택권이 확대되어야 한국은 노조 천국 악명을 벗을 수 있다.
쪾호봉제 임금체계는 단순화되고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개선되어야 청년 취업이 늘고, 60세 정년 의무화 시행이 쉬워진다.
쪾불법 노사분규는 마거릿 대처처럼 ‘법과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 슈뢰더처럼 노사정위원회 버려야
박근혜 대통령은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노동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 노사정위원회는 김대중 대통령 정부 1기에서만 기능을 발휘했을 뿐 그 후로는 제 기능을 발휘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노사정위원회 합의에 따라 노동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 슈뢰더가 그렇게 했다. 슈뢰더는 의회의 동의를 얻어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팔을 걷어붙이고 국회로 끌고 가 노동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슈뢰더는 스스로 노동시장 개혁 때문에 정권을 잃었다고 밝혔다. 그 대가로 독일 경제는 회생했다. 독일 경제 회생은 공짜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노동시장 개혁 추진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야당 : 수권 정당 되기 포기하지 않으려면 노동개혁 동의해야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한 때 ‘근로기준법쪾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은 근로자에게 크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개혁이 이뤄진다면 입법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바른 입장이다. 이 세 법은 그냥 통과시켜도 사실상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는 ‘기간제 근로자법과 파견근로법 개혁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고 밝혔다. 올바르지 않은 입장이다. 독일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독일은 창업기업의 경우 기간제(임시직) 근로계약을 4년간 허용할 수 있게 하여 일자리를 늘렸고, 파견근로는 규제를 풀어 일자리를 늘렸다.
‘기간제 근로자법’과 ‘파견근로법’ 개혁은 일자리 증가에 확실하게 기여할 것이다. 이 두 법은 노동계나 고수할 정책이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고 외치는 정치가가 고수할 정책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이 두 법 개혁을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수권(受權)정당이 되는 것을 포기하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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