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 의혹 삼양화학 한영자 회장, 그녀는 누구인가?
방산비리 의혹 삼양화학 한영자 회장, 그녀는 누구인가?
  • 정재욱 기자
  • 승인 2016.04.22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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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뚫리는 방탄복' 등 30년 방산비리 의혹의 주인공 삼양화학

최루탄 ‘여왕’부터 율곡비리 연루, ‘뚫리는’ 방탄복까지…. 문제의 삼양화학은 한영자 회장이 유부남과 불륜관계를 맺고 유부남의 아버지 회사를 빼앗은 것이라는 주장 제기

지난 3월 23일 감사원은 국방부가 국내 방산회사로부터 취업 보장 및 금품 수수 등 각종 로비를 받고 이 회사를 신형 방탄복 연구개발 및 독점 공급자로 선정해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총 2700억여 원 상당의 신형 방탄복 30만8500개를 독점 공급하도록 했다는 내용의 ‘전력지원물자 획득비리 기동점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렇게 획득한 독점공급권에 따라 260억여 원 상당의 이 업체 방탄복 3만5283 벌이 2014년부터 2년 동안 국방부에 공급돼 해외 파병 부대 등 특수임무 부대 장병들에게 지급됐다. 이 방탄복은 2015년 6월 감사원 시험에서 북한군이 사용하는 철갑탄에 완전 관통되는 결과를 보였다. 우리 장병들이 북한군의 철갑탄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게 감사원의 발표다.

▲ 정권 실세의 비호, 대선 자금 제공, 군피아 로비 등 지난 30여 년 간 이어져 온 삼양화학의 군납비리 의혹은 회사 오너인 한영자 회장의 기업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른바 ‘뚫리는 방탄복’으로 파문을 일으킨 문제의 방산회사는 삼양화학공업(주)의 계열사인 삼양컴텍이다. 감사원은 또 삼양컴텍이 2008년 2월부터 2014년 5월까지 계열사 등에 국방부 등의 전직 임직원 29명을 재취업시켰는데, 이 가운데 9명은 계열사에 소속을 두는 편법을 이용함으로써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취업심사를 회피했다고 밝혔다. 군(軍) 출신 로비스트로 이뤄진 소위 ‘군피아’가 이번 방탄복 납품 비리 의혹의 중심에 있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검찰이 4월 21일 서울에 있는 이 회사를 압수 수색했는데, 검찰은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의 납품 혐의 외에 또 다른 혐의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감사원, “뚫리는 방탄복 뒤에는 군(軍)피아 있었다”

감사원이 밝힌 군피아 로비 의혹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 국방부 장성 A 씨가 삼양컴텍의 군 출신 취업자로부터 2011년 8월경 다목적 방탄복 독점 공급 청탁을 받았다. A 씨는 같은 해 10월 기존의 철갑탄 방호용 방탄복 조달 계획을 철회하고 다목적 방탄복을 수의계약으로 구입하도록 하고, 이 다목적 방탄복의 성능 기준을 보통탄 방호 수준으로 정한다. 삼양컴텍은 그 대가로 A 씨의 부인을 계열사에 위장취업 시켰다는 게 감사원의 조사 결과다.

또 전 육사(陸士) 교수 B 씨는 허위 방탄시험 성적서를 작성해주는 식으로 편의를 봐준 후 2010년 2월 삼양컴텍 연구소장으로 취업했다. B 씨는 2016년 3월 2일 이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사실 이 회사가 군납 비리나 뇌물 수수 등의 이유로 언론에 오르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96년 12·12 및 5·18사건을 재수사 중이던 검찰이 13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87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민정당 대선 후보에게 각각 100억 원씩 총 200억 원을 제공한 혐의로 국내 방산회사 대표를 지목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삼양컴텍의 모회사인 삼양화학공업의 한영자 회장이었다.

당시  한영자 회장은 이미 3년 전인 1993년, 율곡비리 수사를 피해 미국으로 출국해 있었다. 록히드 마틴의 F-16 전투기 도입을 포함한 당시 군 무기 현대화 사업이었던 율곡사업 비리 사건에도 한영자 회장이 연루됐기 때문이다. 한 회장이 받았던 혐의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10월경 국방부 고위 관리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그보다 전인 1988년으로 돌려 보자. 1987년 6월 연세대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 씨가 시위 도중 최루탄 파편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최루탄에 대한 국민 감정이 극도로 악화됐다. 이 와중에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국내 유일의 최루탄 제조회사의 정체가 드러나기에 이른다. 그 회사가 삼양화학공업이었다.

이 무렵 삼양화학공업의 오너인 한영자 회장이 1987년 52억5300만 원의 소득을 얻어 28억7800만 원 소득세를 납부함으로써 국세청이 발표한 국내 소득세 랭킹에서 쟁쟁한 대기업 오너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삼양화학공업이 개인회사였기 때문에 주식회사였던 대기업 대표들의 소득과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최루탄 제조회사 오너가 대한민국 소득세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만으로 여론은 들끓었다.

이때 삼양화학공업이 1980년대 들어 급속하게 성장한 배경에 의혹의 시선이 쏟아졌다. 삼양화학공업의 초고속 성장 배경에 ‘전두환 정권의 비호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안개 속의 최루탄 기업’ 삼양화학

1975년부터 최루탄을 개발하기 시작해 3년여 만에 개발에 성공한 삼양화학공업은 1979년 방위산업체로 지정 받고 1980년 이후 고속 성장을 이어가 1986년 매출 499억 원을 달성했다. 이 기간 동안 한영자 회장의 소득세 순위는 1982년 16위, 1983년 17위, 1984년 11위, 1985년 4위, 1986년 2위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또 ‘안개 속의 최루탄 기업’이나 ‘베일에 싸인 여자 경영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당시 이 회사나 경영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알려진 게 없었던 비밀스런 회사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물론 의심을 받을 만한 정황이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 둘째 누나의 장남 허 모 씨가 의혹의 진원지였다. 현직 대통령을 외삼촌으로 뒀던 허 씨는 전두환 대통령의 집권 시기이자 삼양화학공업의 비약적 성장기인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이 회사 이사로 근무했다. 당연히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씨가 삼양화학공업을 돕고 있다”는 식의 루머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영자 회장은 1988년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허 씨에게 목동 아파트를 사줬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 '최루탄 신데렐라'로 처음 알려진 삼양화학 한영자 회장이 시아버지로부터 회사 경영권을 빼앗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리하면, 삼양화학은 1980년~1990년대 대통령 친인척 채용, 대선 자금 제공, 국방부 장관에 대한 뇌물 제공 등의 각종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오다 최근 또 다시 군피아 로비를 통한 방탄복 군납 비리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한영자 회장에 관련된 이런저런 의혹들이 방산업계를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다. 소문은 한영자 회장이 “전과 ○○범이다”, “학력과 경력을 속였다”는 식의 사생활 관련 내용부터 특별한 직업이 없던 한영자 회장이 “삼양화학공업사를 창업주로부터 빼앗았다”는 회사 경영권과 관련된 의혹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영자 회장과 삼양화학공업을 둘러싼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는 44년 전인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 경영권과 관련된 의혹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영자 회장은 1972년 남편이 있는 유부녀 상태에서 삼양화학공업사(창업자 박정봉 사장)의 전무이자 박정봉 사장의 아들이었던 박상철 씨를 만나 제2의 가정을 만든다. 박상철 씨도 유부남이었기에 한영자 씨와 박상철 씨 각각 원래의 가정을 깨는 불륜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렇게 삼양화학공업사 오너 일가에 접근한 한영자 회장은 박상철 전무를 “간통으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했고, 박 전무는 창업주인 고(故) 박정봉 사장이 병환 중인 틈을 이용하여 아버지의 도장을 훔쳐 회사의 경영권을 넘겨받는다. 창업주 가족들은 한영자 회장이 박 전무를 협박하여 회사를 빼앗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여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창업자 박정봉 사장과 직계 가족들의 요구마저 거부했다는 게 한영자 회장과 관련된 막장 드라마 같은 소문의 골자다.

경영권을 차지한 한영자 회장은 박상철 씨의 자식들은 완전 배제시키고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출생한 자식들을 주요 경영진에 임명했다. 현재 삼양화학공업의 2세 경영자들은 창업자인 박정봉 씨, 그의 아들 박상철 씨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불륜 드라마 같은 소문의 주인공 한영자 회장

삼양화학공업사는 1969년 1월 10일 서울 용산에서 창립돼 1973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금속표면 처리제의 납품을 시작하며 사세를 키웠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979년 3월 발행한 <전국기업체총람>에 따르면 삼양화학은 종업원 10명의 부동액 제조공장이었다.

과거 언론 보도에는 한영자 회장의 남편인 박상철 씨(사실은 결혼을 하지 않은 내연 관계)가 1969년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처음 화학 공장을 세운 것이 시초이고, 이를 부인인 한 회장이 인수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삼양화학공업사는 1970년대 초반까지 창업주인 박정봉 씨가 대표였다. 1973년 대표자 박정봉 명의로 국방부 조달본부와 공급 계약을 맺었고, 삼양화학공업사가 1991년 10월 10일자 신문에 박정봉 씨를 삼양화학 창업주로 기재한 부고(訃告) 기사를 게재했다. 이 부고 기사에서 한영자 회장은 박정봉 씨의 자부(子婦), 박상철 씨의 부인으로 나와 있다.

삼양화학 창업주가 박정봉 씨이고 한영자 회장이 경영권을 넘겨받은 사실은 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정말 한영자 회장이 회사의 소유권을 가로챈 것일까. 의혹의 내용은 한 회장이 1975년 시아버지 격인 박정봉 씨가 병환 중이었던 틈을 이용해 삼양화학공업사의 사업자 명의를 본인으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며느리 격인 한영자 회장에게 회사를 빼앗긴 시아버지 박정봉 씨는 한 회장으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다가 여의치 않자 결국 병환으로 1991년 9월 20일 사망했다는 소문은 사실일까.

취재 결과 박정봉 씨가 한영자 회장에게 보상금을 받기 위한 소송을 벌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지가 입수한 1990년 4월 4일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약정금 지급 관련 민사재판의 증인신문조서와, 두 달 후인 6월 16일자 원고 측 준비 서면에 따르면, 박정봉 씨는 한영자 회장에게 삼양화학공업주식회사 자산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원을 정산 지급키로 한 약정을 이행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또 증인으로 나선 박정봉 씨의 차남 박상억 씨는 1988년 6월 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영자 회장이 박정봉 씨에게 이와 같이 약정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4월 4일 신문 조서에서 박상억 씨는 피고인 한영자 회장이 1973년경부터 박정봉 씨가 경영하는 삼양화학공업사의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해 1975년 박정봉 씨 몰래 삼양화학공업사의 사업자 명의를 한영자로 변경하여 가로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박정봉 씨가 창업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자 한 회장이 이에 동의해 회사 재산을 정산하여 언제든지 2분의 1을 주겠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6월 16일 준비 서면에 따르면 박정봉 씨는 1989년 10월 20일 한영자 회장에게 50억 원을 요구하다 한영자 회장이 이를 거절하고 15억 원을 주겠다고 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이 민사재판에선 원고인 박정봉 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면으로 된 약정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원고 측은 재판 과정에서 원고와 피고가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특수 관계였기 때문에 서면으로 약정서를 남기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정봉 씨는 약정금 민사재판이 끝난 이후인 1991년 10월 9일 사망했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이후에도 석연치 않은 일들이 생긴다. 재판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박상억 씨는 1992년 8월 18일 한영자 회장에 대해 일체의 민·형사상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거액의 돈을 받았다. 한영자 회장이 율곡비리 사건으로 미국에 도피해 있던 1993년 미국에 있던 시동생 박상억 씨에게 추가로 돈을 지급하기로 하고 실제로 1998년부터 2012년까지 6억 원 이상의 돈을 지급했다는 증언도 있다.

“며느리에게 회사를 빼앗겼다”

한 회장이 시동생에게 거액의 돈을 지급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녀가 “며느리에게 경영권을 빼앗겼다”는 시아버지 박정봉 씨의 주장을 인정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사실 한영자 회장과 시아버지인 박정봉 씨와의 악연은 한 회장과 박상철 씨, 즉 박정봉 씨의 아들과의 비윤리적인 만남에서 잉태됐다. 취재 결과 세간의 소문대로 한영자 회장과 삼양화학공업사 전무였던 박상철 씨가 처음 만났던 1972년은 서로 가정이 있는 상태였다.

한 회장에게는 당시 남편 박 모 씨와의 슬하에 3남이 있었고, 박상철 씨는 부인 김 모 씨와의 슬하에 1남 2녀가 있었다. 이 때 박상철 씨의 부인 김 모 씨가 강하게 반발해 이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박정봉 씨는 아버지 입장에서 장남의 가정을 깬 주인공이 한영자 회장이니 그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는데, 불륜으로 만난 그 며느리를 상대로 경영권 찬탈 관련 약정금 소송까지 벌이게 된 것이다.

현재 삼양화학공업사를 창업했던 박정봉 씨나 그 가족, 박상철 씨와 첫째 부인 김 모 씨 사이에서 출생한 1남 2녀는 삼양화학그룹의 경영에서 완전 배제돼 있다. 이와 관련 박상천 씨와 김 모 씨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 박정봉 씨의 직계 손자들이 한영자 회장에게 100억 원 대의 보상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양화학을 둘러싼 경영권 보상 분쟁이 대를 이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삼양화학공업(주)은 한영자 회장이 직접 지휘하고, 주요 계열사인 제오빌더와 삼양세라텍의 대표이사는 박재준 씨가 맡고 있다. 제오빌더는 삼양컴텍(34.16%)·삼양화학공업(33.39%)·(주)삼양화학(33.39%) 등의 대주주다. 삼양화학산업(주)의 대표는 박상준 씨가 맡고 있다. 박상준, 박재준 씨는 모두 한 영자 회장과 전 남편 사이에서 출생한 자제들이다.

문제는 삼양화학그룹 오너 한영자 회장에 얽힌 사생활이 아니다. 방위사업체 오너나 경영자의 경영철학과 기업가 정신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우리 장병들의 안전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윤리적인 잡음이 제기되는 경영자가 있는 방위사업체가 군납비리 의혹의 주인공으로 40여 년 동안 등장하는 현실이 과연 우연일까. 한영자 회장이 박상억 씨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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