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는 유교와 민족주의의 결합
한국 자본주의는 유교와 민족주의의 결합
  • 류석춘 유광호
  • 승인 2016.05.09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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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틀 깨기] 유교와 민족주의의 결합

경제적 민족주의의 양태는 ‘우리도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에서 출발, ‘일본인도 하는데 한국인이 왜 못하나’ 하는 일본 따라잡기로 구체적인 모습 드러내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유광호 박정희기념도서관 연구위원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중흥” 혹은 “조국 근대화”와 같은 민족주의적 이념과 목표가 등장하고 나서야 지속적인 경제발전이 이뤄졌다.

▲ 류석춘 일리노이대 사회학 박사·한국동남아학회 이사

민족주의라는 가치 속에서 한국의 기업은 국가의 대표 그리고 국민의 대표로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며 기업보국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과제에 뛰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윤 추구를 정당화하는 자본주의 정신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국제경쟁에서의 생존이라는 민족주의 가치에 온 국민이 다함께 참여하도록 하는 자극이 필요하다

유교의 철학적 특징

유교적인 전통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베버 이래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최근에는 유교의 죽음에 대한 처리, 즉 후손이 조상에 대해 주기적으로 의례, 즉 제사를 지내는 일의 의미를 종교적으로 재해석하여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 헌신적인 노동윤리 나아가서 세계적인 교육열의 등장을 설명하는 논의가 등장했다.

이 논의는 특히 효 즉 제사의 종교적 의미를 재해석하여 그것이 제도화 되는 과정에서 선대를 더 잘 기억하고 더 잘 재현하려는 동기가 집집마다 경쟁적으로 보급되면서 한국인들로 하여금 다른 집보다 그래서 남들보다 현세에서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체화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유교의 효라는 가치가 선대의 기억과 재현을 위해 근면하게 일해야 한다는 노동윤리와 자식 교육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경쟁을 유발해 경제 발전을 위한 개인 차원의 미시적 동기를 제공했다는 설명이다.

‘배워서 이기기’ 정신

죽음을 둘러싼 이와 같은 유교의 종교적 동기는 유교의 다른 철학적 특징들과 결합하면서 한국 자본주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다름 아닌 ‘모방에 의한 창조’ 즉 ‘배워서 이긴다’는 가치와 태도를 유교 철학이 한국인들을 고무했기 때문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學而時習)는 문구가 유교 최고의 경전 <논어>의 출발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자세를 유교가 절대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배우겠다는 자세야말로 근대화 과정에서 선진국을 따라잡는 가장 중요한 태도이고 가치이다. 특히 진정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을 기꺼이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내 것이 되게 하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유교는 나름의 자존적인 문명의식을 가지고 항상 중심을 지향하면서 보다 고등한 문명에 대한 동경과 적응력을 보여줬다. 기본적으로 유교는 세계 종교 가운데 가장 탈주술화 된 종교로서 현세적응적 합리주의를 가지고 있다. 비록 유교가 과학기술 측면에서 중대한 결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인간이야말로 천하와 만물의 주인이라는 인본주의를 내면화하고 ‘화이관’(華夷觀)에 입각한 문화적·정신적 차원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한국인의 문화적 자존심이 근대화 과정에서 선진국의 부강함에 대하여 반응하고 도전하는 ‘경제적 민족주의’를 실행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모방’(emulation) 나아가 경쟁심이란 앞선 상대의 방식을 따라하면서 겨루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배우고 나아가 ‘따라잡기’(catch-up)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유교문화의 핵심적 특징이다.

개인과 사회·국가의 상호 배타성

마지막으로 유교는 사회학적으로 표현하면 개인과 사회·국가를 상호 배태된 관계로 보는 인간관과 사회관을 특징적으로 가지고 있다. 유교는 부자 형제간의 도리인 효제(孝悌)를 밖으로 미뤄 남에게 베풀라는 지향 즉 인(仁)의 도리를 사회화하는 이념을 핵심 가치로 세웠다.

이러한 유교의 특징을 상투적인 용어인 ‘가족주의’라고 표현한다면 그 온전한 의미를 잡아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히려 가족 이기주의와 반대되는 사고이자 윤리이며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가치관을 따르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가치는 ‘여민’(與民) 즉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것을 공동선으로 여기는 가치이다. 다시 말해 남에게 기여하는 도덕적 의무감을 고취하는 가치이다. 이 가치가 경제적 민족주의와 결합하면 국가적으로 필요한 과제를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각각의 개인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의 희생을 무릅쓰는 결과를 가져온다.

민족주의라는 자본주의 정신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으로 프로테스탄트 윤리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각각의 문화에는 그것에 대한 기능적 등가물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또한 그 어떤 전통 종교도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끊임없는 이윤 추구’ 나아가서 그에 기초한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요구하는 윤리를 제시하지 않는다.

반면에, 근면을 통해 생활을 향상시키고 현실에서 여유 있게 생활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전통 윤리나 가르침은 이 지구상에 수도 없이 많다. 전통적 종교와 윤리가 경제적 풍요와 부에 대해 보여주는 이와 같이 애매한 입장 때문에, 종교가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과 윤리로 작용했다는 설명은 항상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논의에서 중요한 질문은 왜 자본주의 정신 즉 끝없는 이윤의 추구가 한 편으로는 개인 수준에서 인간의 본성을 구성하는 합리적 이기심으로, 다른 한 편으로는 동시에 사회적 수준에서 공동선과 최고의 집합이익을 구현하는 방법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기독교이건 유교이건 혹은 그 어떤 종교이건 인간의 지나친 돈벌이 욕구는 규율해야 하는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면 그것은 일부 개인의 특성, 즉 탐욕으로만 여겼다. 따라서 돈벌이에 대한 욕구 즉 이윤 추구를 긍정하는 사회적 가치의 출현 뒤에는 새로운 기준에서 집합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정당화하는 윤리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본격적인 자본주의 정신의 등장은 의도하지 않은 역할을 ‘우연히’ 제공하는 전통적 윤리의 존재만으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이 보다는 훨씬 더 분명한 집단적 목표와 새로운 성취동기 그리고 윤리체계를 필요로 한다. 베버 테제가 보여주는 이와 같은 약한 고리에 대한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보완이 최근의 연구에서 제시되었다.

이들은 세계사의 경험으로 볼 때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근검절약이라는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동기가 아니라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국민적 차원의 경제적 동기 즉 ‘경제적 민족주의’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민족주의야말로 자본주의 정신이 등장하는 결정적 배경이라는 추론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자. 일찍이 백 여 년 전 베버는 개신교 종파인 캘빈주의의 예정설 때문에 구원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한 신자들이 현세에서의 생활을 근면성실하게 영위함으로써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본의 아니게’ 성립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베버의 이 주장은 같은 캘빈주의 국가면서 동시에 당시 경제적으로 가장 앞서 있었던 네덜란드 공화국을 제치고 상대적으로 후진이었던 영국이 왜 산업화에 먼저 성공하였는지를 분명히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윤리·가치 체계로서의 경제적 민족주의

새로운 연구들은 경제 발전의 역사에서 민족주의가 자본주의와 매우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산업혁명의 역사가 민족주의 역사와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실제 경제 발전의 역사는 선진 국가로부터 후진 국가로 발전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간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매우 역동적인 추격과 방어의 과정을 동반하여 왔다.

예컨대 영국은 뒤처진 가운데 출발하여 앞서 있던 네덜란드 경제를 따라잡고 결국에는 추월했다. 이후 프랑스, 독일, 일본의 영국 추격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에는 중국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게다가 앞서 살펴봤듯이 똑같이 캘빈주의를 신봉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선진이었던 네덜란드 공화국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후진이었던 영국이 돌파구를 만들어 근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속적인 지배력을 획득했다.

이러한 사실은 “프로테스탄트 윤리” 가설에 대해 변칙적인 상황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린펠트는 이러한 변칙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에 관한 논의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는 최초로 영국에서 출현해서 사회의 지배적인 비전이 되었고 1600년까지 영국의 사회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환시켰다. 비슷한 전환들이 다른 나라에서 감지되기까지는 백 여 년의 시간이 더 지나야 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당시 최고의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국민적 정체성과 의식의 변환은 오히려 훨씬 더 지체되었다. 심지어 19세기에 들어설 때까지도 네덜란드에서는 그러한 의식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 새로운 정신 혹은 원동력은 영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상대적으로 후진적인 조건에 하나의 결정적인 요소를 더해 줬다. 그 요소는 다름 아닌 빈약한 조건과 자원을 새로운 방법으로 결합하고 확대하여, 다른 나라들이 더 잘 갖추고 있었던 자본주의의 발전 조건을 영국이 추월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역할이었다. 이 정신적 동력이야말로 영국이 다른 나라들에 대한 경쟁 우위를 추구하여 산업화를 최초로 이룩할 수 있도록 만든 새로운 힘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 가설이 분석하는 자본주의 정신의 ‘우연한’ 성립과는 달리, 민족주의 테제는 근대경제가 요구하는 사회 구조의 유형을 ‘필연적’으로 촉진시킨다. 왜냐하면 대외적으로 경쟁하는 민족주의는 대내적으로 평등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외부의 경쟁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부의 위계를 흔들어 특히 전통적으로 무시당하던 직업 특히 이윤 추구를 지향하는 직업의 지위를 상승시켜야 한다. 그래야 국력을 키워서 대외적인 경쟁을 할 수 있다. 이는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캘빈주의의 예정조화 교리와 소명론을 통해서 스스로의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논리와 정확히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효과를 가진다.

또한 민족주의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경쟁적으로 평가되는 조국의 위상 즉 국가적 위신을 높여야 한다는 구성원들의 관심 때문에 반드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동반한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동력이야말로 한 나라가 그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갖게 하는 최고의 자극이다.

따라서 경제적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후발국은 선발국을 따라잡는 자본주의적 국제경쟁에 헌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자극이야말로 근대 경제의 경향적 특징인 국민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만들어 내는 궁극적 동력이다.

따라서 경제적 민족주의는 경제성장에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고 온갖 인간의 욕망을 경제성장에 집중하게 하는 하나의 새로운 세트로 구성된 윤리와 가치체계이다. 특히 경제적 민족주의라는 자본주의 정신은 특정한 나라의 경제가 국제적 경쟁의 장 속에 포함되는 맥락에서만 등장한다. 따라서 민족·국민·국가 의식(national consciousness)을 기초로 한 자본주의 정신의 성립은 나라마다 그 환경과 조건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독일의 경우 결정적 계기는 비스마르크 체제를 뒷받침한 민족주의 경제사상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활동이었다. 일본은 전통적인 ‘경세제민’ 이념에 입각해 ‘경제 전쟁’이라는 관점과 전략에서 선진국 따라잡기를 시작한 명치유신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두 나라 모두 2차 대전 패전 후 이러한 자극은 더욱 강화되어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잘못을 뒤로 하고 최근에는 더욱 경제적 민족주의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 경제적 민족주의는 박정희가 “우리 민족의 무기력한 역사에 대하여 행한 충절의 반역” 즉 5·16 혁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선공후사의 가치와 규율에 입각하여 개인과 국가의 상호 배태에 의해 조율된 행동의 힘이 본격적으로 경제에서 작동하면서 이른바 수출 주도 산업화에 매진하며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제적 민족주의의 양태는 ‘우리도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부터 출발하여, ‘일본인도 하는데 한국인이 왜 못하나’ 하는 일본 따라잡기로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나아가서 경제적 민족주의 의식은 기업인으로 하여금 국가와 민족공동체에 대한 의무로서 해외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국제경쟁력을 가진 기업의 육성을 요구하였다.

단순한 사욕 즉 인간의 본능적인 탐욕은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오지 못한다. 이윤 추구 동기가 경제적 민족주의라는 집합적 가치와 목표에 귀속되는 경우에만 자본주의 정신으로 발현되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장기적인 경제 발전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중흥” 혹은 “조국 근대화”와 같은 민족주의적 이념과 목표가 등장하고 나서야 지속적인 경제 발전이 이뤄졌다. 민족주의라는 가치 속에서 한국의 기업은 국가의 대표 그리고 국민의 대표로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며 기업보국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과제에 뛰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윤 추구를 정당화하는 자본주의 정신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국제경쟁에서의 생존이라는 민족주의 가치에 온 국민이 다함께 참여하도록 하는 자극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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