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돌풍’이 주는 역설의 교훈
‘트럼프 돌풍’이 주는 역설의 교훈
  • 강혜련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05.1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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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담론] 대한민국 어디로 가는가?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으로 깊어진 사회적 균열을 통합하기 보다는 상처 난 곳에 소금 뿌리듯 균열을 부추기고 선동하는 ‘트럼프’ 식 정치 세력 온 국민이 막아내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는 지금 먹고사는 일과 일자리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인간 삶의 근본적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면 신념이나 가치, 품격이나 관대함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음을 최근 미국의 정치 상황에서 깨닫는다. 

미국 대선(大選)의 특정 후보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시장경제의 최고 수혜자인 트럼프가 시장경제의 낙오자인 미국 서민들의 열성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역설에 놀랄 뿐이다. 

美 백인 서민의 피해의식을 먹고사는 트럼프의 선동정치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적어도 필자의 일천한 지식으로는 전 세계에서 이민자를 받아 다양한 노동력과 문화를 구축하여 경제와 군사의 대국(大國)이 되었고, 이를 발판삼아 지금까지 초일류 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국가가 자국(自國)의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하지만, 미국이 그간 전 세계 자유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쟁을 비롯해 수많은 전쟁에서 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감수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미국이 지금껏 절대 강자의 자리를 인정받는 것은 미국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 도전장을 낼 만한 다른 국가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어려워도 내색하지 않고 듬직한 맏형 구실을 할 줄 알았던 미국이 서민들의 먹고 살기가 팍팍해지자 변하고 있다. 미국의 불법 이민자 문제는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었는데 새삼스럽게 대선 이슈로 부각된 것은 결국 미국 경제, 특히 서민층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핵심은 히스패닉계를 비롯해 1000만 명이 넘는 불법 이민자들이 백인들의 저임금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불만이었다. 트럼프가 이를 부추기자 대리만족을 느끼며 열광하는 것이다. 

더구나 뉴욕타임스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를 보면 저학력 저소득의 중년 백인 남성의 연간 사망률이 동일 계층의 히스패닉계보다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물론 기대수명이나 사망률 비교는 남미 국가의 낙천적 국민성 등 다양한 요인이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석학(碩學)인 노암 촘스키도 미국 정치판에서 불고 있는 트럼프 열풍은 분노한 백인 소외계층을 대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다원주의적 가치를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접목해 국민의 아픔을 보듬어주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회갈등을 부추기고 선동하는 트럼프식 정치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지금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인 트럼프가 본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될지 여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당선이 되지 않더라도 타협이나 통합은 다 쓸데없는 것으로, 그가 불을 지펴 놓은 선정적인 구호는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분열시킬 것이다. 

그는 대미(對美) 무역 비중이 높은 일본이나 한국뿐만 아니라, 기업체인 애플에게도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지 않으면 세금 폭탄을 퍼붓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백인 서민계층의 삶에 손해가 되는 주체들을 모두 분노의 대상으로 정해버린 것이다. 이제 그가 촉발시킨 사회적 갈등을 과연 누가 봉합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온 우리나라가 미국의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배워야할 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하나의 국가로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지향점, 지켜야 할 가치, 국가 지도자의 자질과 역할 등에 관한 것이 아닐까.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없는 사회 

인간은 개인적으로 성격이나 기질이라는 특성을 지니며 집합적으로 국민성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그런데 기질이나 국민성은 다분히 생득적인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산업화 시절에는 워낙 다들 못살았기 때문에 ‘보릿고개’ 넘듯이 뭔가 열심히 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졌고,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도 불평에 머무르기 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국가 시스템이 갖춰지고 구조가 촘촘히 짜이면서 빈곳이나 여백이 없어졌다. 웬만큼 노력하거나 운이 따르지 않으면 기회가 생기지 않고, 기득권이나 우월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 되면서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초경쟁적 사회는 과거 ‘뭔가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성취 지향적 분위기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손에 있던 것도 없어지겠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는 어느 덧 ‘자기 몫을 스스로 지키는 것’이 절대적 명제가 되어버렸다. 

세계적 심리학자인 콜럼비아대의 히긴스 교수는 사회적 분위기와 양육 환경이 개인적 기질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니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보상받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와, “세상은 험악한 곳이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 고립감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OECD가 2015년에 발표한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이 평가한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0점으로 OECD 평균(6.58점)보다 낮았다. 

특히 눈에 띄는 항목이 ‘사회적 네트워크 지원’이다. 이는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부문인데, 이것이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 즉, 우리의 사회적 여건이 ‘도전적 삶을 위해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던 분위기에서 ‘방어적 삶을 위해 냉소적 에너지를 축적’하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미국, 남미, 유럽국가 등을 비롯해 전 세계적 현상이며, 지금의 문제는 다원주의적 가치를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어떻게 접목시키는가에 관한 것이다. 

기득권 버려야 나라가 산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트럼프’식 접근이다. 좌절로 고통 받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트럼프’식 직설화법으로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것이 통쾌감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갈등을 지렛대 삼아 권력을 거머쥐려는 것은 국민을 볼모로 흥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물질적, 심리적 고통을 함께 고민하기보다는 자극적으로 드러내고 선동하는 무책임한 정치인들에게 결코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다음 국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각 세력들이 품고 있는 역설을 정면으로 돌파해내는 용기와 현명함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양대 노총(한노총, 민노총)의 역설이다. 전체 근로자의 7~8% 정도만 참여하고 있는 양대 노총이 전체 근로자의 대표성을 갖는 노사정위(勞使政委)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노총위원장 출신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관례가 만들어지면서 양대 노총은 더 이상 일반 근로자의 시름을 대변해주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 세력화와 이를 유지하기 위한 기득권 노조의 비호에만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정규직 해결의 난제는 정규직 노조가 기득권을 버릴 때 비로소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기득권 노조원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간부(과장) 승진을 거부할 권한을 달라는 희극적 요구도 우리나라의 기득권 노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노조와 노총이 근로자의 진정한 권익을 훼손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 역설적 상황을 해결할 용기와 현명함을 가진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나서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정치인들, 즉 국민이 선거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가진 직업인’으로 자기 세력화에만 골몰하고 국가 발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무능함을 더 이상 국민들이 봐줘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적 역할은 입법 활동인데, 지난 19대 국회의원들의 입법 활동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법안 가결률이 12%로 역대 최저라는 결과가 나왔다. 세월호 사고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든 국회가 하는 일은 사건이 터진 후 호통치고 사후약방문 찾는 식으로 법안 만든다고 뒷북치고 야단법석 하는 것뿐이다. 

국민의 세금인 정부예산 편성과 집행을 감시해야 할 의원들이 자기 지역으로 예산을 끌어들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관료집단과 국회의원들이 적당히 타협하면서 이런 관행을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국회와 국회의원이 국가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우리의 의회주의 정치가 거듭나지 않고서는 국가 발전은 요원한 일이다. 

트럼프 식 선동정치 막아야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으로 깊어진 사회적 균열을 통합하기 보다는 상처 난 곳에 소금 뿌리듯 균열을 부추기고 선동하는 ‘트럼프’ 식 정치 세력을 온 국민이 막아내야 한다. 정부의 기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이를 법과 제도로 보완하는 노력에 매진하는 정치인과 정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국민은 이제 어느 한편에 일방적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면서 국민의 좌절과 아픔을 보듬어주기 위해 다원적 가치를 현실정치에 반영하는 현명함, 그리고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를 위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 정치적 리더십을 우리 모두는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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