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핵심가치는 대한민국 지키기
보수의 핵심가치는 대한민국 지키기
  • 김민정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6.05.18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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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포커스] 한국 보수주의 탐구

공산주의 세력과의 전쟁에서 국가를 지키고, 산업화·민주화에 성공한 건국 이후의 역사 자체가 보수의 가치를 지켜온 과정 

새누리당이 4·13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를 놓고 다양한 분석들이 제기되고 있다.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불협화음에 대한 친박(親朴) 및 대통령 책임론, 김무성 전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의 무능론에 이르기까지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최근에는 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보수진영 전체의 자성론과 ‘이대로 가면 대선도 승산이 없다’는 내년 말 대통령 선거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정작 현 시점에서 선행돼야 할 논의는 이런 정치공학적 문제가 아니다. “다음 대선의 후보가 누구냐”의 문제보다, 보수진영 내 핵심 가치의 재정립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이는 대한민국을 위해 진보진영이 아닌, 보수진영이 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고, 보수우파가 지키려는 가치는 또 어떤 것인가의 문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보수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라는 보수의 가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명확한 대목부터 시작된다. 대다수 보수주의 운동가들은 한국 보수주의의 가치로 대한민국 자체와 건국이념을 꼽는다. 보수진영이 지키려는 핵심이 바로 1948년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탄생한 자유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가치와 체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세력과의 전쟁에서 국가를 지키고, 산업화·민주화에 성공한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역사 자체가 보수의 가치를 지켜온 과정이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4·19의 자유민주주의적 민주화 운동 이념도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이념으로 설정한 대한민국의 원래 가치를 회복하려는 운동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4·19 중심세력의 지향점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변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5·16 이후 산업화 과정 또한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공고히 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노력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건국 가치가 지금도 낡은 것이 아니며, 그 본질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보수가 수구적이고 진보진영이 발전적이라는 것은 단지 편견이자 착각일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야말로 먹고사는 문제를 천시하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계만 따지던 조선시대 500년의 낡은 질서를 극복하고 시장적 사회질서를 정립한 진보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기업가와 기업가 정신이 국가의 주역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때가 우리 역사에서 처음이었다. 

한국의 보수운동이 이념운동 성격으로 본격화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80년대 대한민국 체제의 변혁 세력, 즉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NL 주사파가 ‘민주화’의 탈을 쓰고 학생운동의 전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런 운동세력이 민주화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후 급기야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집권을 계기로 대한민국 체제에 대한 노골적 도전을 시작했다. 

보수주의 운동가들은 이때가 바로 보수운동이 본격화 된 시점이라고 회고한다. 노무현 정권 시기 대한민국의 체제 위기를 감지한 사람들이 체제 변화,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 건국이념에서의 이탈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는 물론 사회운동과도 무관했던 이들이 대한민국 수호 운동에 뛰어든 것은 순전히 좌파의 체제 변혁 시도에 대한 조건반사적 반동이었다. 

▲ 한국 보수주의의 핵심가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건국 이념을 지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2004년 10월 4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보수단체가 30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노무현 정부의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는 국민대회를 개최한 모습. 김상철 미래한국 회장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이승재 미래한국 객원기자>

정치철학으로서의 보수주의 

그렇다면 보수운동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철학으로서 보수주의는 무엇인가. 한국의 보수운동과 보수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선 대중운동과 이념으로 먼저 정립된 미국의 현대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공교롭게도 미국 보수주의의 시작도 한국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우리의 보수운동이 노무현 정권 시절 좌파 헤게모니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했듯이 미국 보수운동도 이른바 ‘리버럴 컨센서스’로 불린 미국 내 좌파 헤게모니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32년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집권으로 미국의 건국이념, 혹은 헌법적 가치가 위기에 놓인 시점이었다. 

이것은 루스벨트의 뉴딜 운동과 미국 현대 리버럴리즘에 대한 반대였는데, 이 흐름은 크게 세 갈래로 나타났다. 첫째는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중시하는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 리버테리안(libertarian)적 흐름이었다. 경제적 보수주의라고도 하는 이 흐름은 뉴딜 이후 국가가 비대화되면서 개인의 자유가 축소되고, 경제 및 사생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강화되는 데 따른 반발이었다. 

둘째 흐름이 루스벨트의 친소(親蘇) 정책에 위기감을 느낀 반공적 보수주의, 혹은 안보 보수주의이고, 셋째가 국가·교회·가족 등과 같은 전통적 공동체의 가치를 지키려는 ‘전통주의적 보수주의’(혹은 철학적 보수주의)였다. 

전통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의 문제 제기는 2차 세계대전으로 드러난 근대(modern)에 대한 회의였다. 즉 이성과 합리에 의한 ‘진보’와 ‘민주주의’라는 개념,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사회가 독일 나치즘과 러시아 볼셰비즘을 초래했다는 비판이었다. 

1930년대 시작된 이런 세 가지 원형이 1955년 창간된 잡지 <내셔널 리뷰>를 통해 하나로 융합돼 미국 현대 보수주의라는 단일 대오로 재탄생한다. 국내 대표적인 보수주의 이론가 중의 한 사람인 황성준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다음의 4대 강령이 미국 현대 보수주의를 하나의 울타리로 묶어준다고 설명한다. 

▲정부의 권한, 특히 경제적 권한이 견제돼야 한다는 ‘제한된 정부’ ▲자유 기업 ▲강한 국방 ▲개인의 자유, 국가·교회·가족 공동체, 애국주의와 같은 ‘전통적 미국 가치’의 존중 등이다. 

이후 미국 보수주의 운동은 1960년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들’(YAF)이라는 청년조직을 결성하면서 청년대중운동으로 확장됐고, 1964년 보수주의 운동가인 배리 골드워터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면서 현실정치 운동세력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YAF를 중심으로 성장한 청년 보수주의자들, 또 ‘골드워터의 아이들’로 불리는 세력이 훗날 미국 ‘레이건 보수주의 혁명’의 주역이 됐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은 과거 소수 지식인 중심의 운동과 구별되는 ‘뉴 라이트 운동’(New Right)을 벌여 대중화에 성공했고, 1970년대 중후반 유태인 좌파 출신 전향자들이 중심이 된 신보수주의(Neo Conservative) 및 사회적 보수주의(Social Conservative)와 결합되면서 1980년 레이건 혁명을 이룩하게 된다. 

네오콘은 그동안 보수주의 진영이 취약했던 문화전쟁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고, 사회적 보수주의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적 보수주의 세력을 보수주의 운동으로 묶는 데 기여했다. 

인간의 한계와 자유를 모두 인정하라 

이렇게 해서 보수주의는 현대 미국의 주요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황성준 논설위원은 다음과 같은 핵심 명제로 미국의 현대 보수주의를 설명한다. 

첫째, 한계가 명확한 인간이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것은 망상이라는 불완전한 인간관에 기초한다. 

둘째, 인간의 이성은 사회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회공학적 지적(知的) 교만에 반대한다.  인간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 아니라, 오랜 역사 동안 집단적으로 축적되고 경험으로 검증된 지적 유산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셋째, 헌정적 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를 신봉한다. 이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다수의 통치가 소수 독재보다 우월하지만, 이 다수에 의해 제한될 수 없는 자연이 부여한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고 믿는다. 이런 맥락에서 다수의 폭력을 신봉하는 민중민주주의와 절대적 가치를 부정하는 문화적 상대주의도 반대한다. 

넷째, 시장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헌정적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경제 체제로 본다. 

다섯째, 이런 보수주의의 핵심 명제들을 담보하는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헌신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 단계에선 국가를 통해서만 자유와 질서를 담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애국과 안보는 보수주의자들의 중요한 덕목이 된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과 가치에 대해 주목한 보수주의는 인간이 신(神)을 대체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교만과 인간을 대중 속의 몰개성적 존재의 일부로서 간주하는 시각을 동시에 경계한다. 

미국의 보수주의자 배리 골드워터는 이와 관련, 보수주의의 고전인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1960)에서 인간 각자가 유일한 창조물이며, 개인의 영혼이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소유물이라고 밝혔다. 인간이 무차별적인 대중에 포함된 하나라는 사고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발전은 외부에 규정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은 자신의 발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즉 보수주의자는 독재자뿐만 아니라 대중의 폭정도 경계한다. 이런 인간관, 그리고 이와 관련된 도덕에 대한 관점은 보수주의를 마르크스주의 같은 전체주의 또는 미국의 현대 자유주의(Liberalism)와 특히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미국 현대 보수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의 현대성이 극단으로 흐른 사례로서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그리고 현대 미국의 자유주의를 꼽는다. 

공산주의는 인간이 유토피아를 창조할 수 있다는 허황된 망상일 뿐이다. 전통적 가치를 상실한 개인들의 집합인 대중은 진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언제든 나치즘,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로 전환될 수 있다. 인간과 이성을 과신해 초월적 존재를 내다버린 군중이 전체주의에서 자신을 보호할 ‘유모’를 찾았다는 것이다. 

미국 현대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도 비슷한 맥락이다.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집권하면서 미국의 현대 자유주의는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유럽의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개인에 대한 국가 개입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신종 자유주의는 사회주의 성향과 접목되면서 이름만 자유주의일 뿐 사실상 집단주의로 전락한다. 소유권, 행복 추구권, 생명 등 의심할 수 없는 권리인 자연권을 부정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고, 결과적으로 사회주의와 다를 바 없는 수준까지 변질됐다는 것이다. 지금 리버럴리즘이라고 부르는 미국 현대 자유주의가 바로 이것이다. 

정리하면 미국의 현대 보수주의는 1930년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좌파의 ‘리버럴 헤게모니’, 공산주의의 위협, 그리고 가족 같은 전통적 가치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등장했다. 바로 미국의 건국이념이라는 가치를 지키자는 보수운동이었다. 

이런 보수주의의 주요 가치는 제한된 정부, 자유 기업, 강한 국방, 개인의 자유·국가·교회·가족 공동체·애국주의와 같은 ‘전통적 미국의 가치’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런 가치는 한국의 보수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로 봐도 크게 다를 바 없는 대목이다. 

2002년보다 더 심각한 대한민국의 위기 
 
한국 보수운동의 본격화 시점도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흔들렸던 때였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평범한 청년들이 좌파 헤게모니에 반기를 들었던 2002년과 달라졌을까. 오히려 그 반대다. 과거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시장경제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일부 운동권 세력의 전유물이었다면, 지금은 전 세대의 분위기로 확장된 상황이다. 

이렇게 보면, 선거에서 보수진영이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대한민국의 가치가 절체절명의 위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 보수주의의 가치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수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은 역사가 성공적이었던 만큼 선거에서의 승리 전략도 발전돼 있다. 미국 보수주의 정치 전략가 데이비드 호로비츠는 자신의 저서 <민주당을 어떻게 격파할 것인가>에서 정치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원칙을 역설한다. 그가 선거를 전쟁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선거 결과에 따라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이다. 

여기서 호로비츠는 “정치는 공포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거는 유권자의 다수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행위이지만, 정작 중요한 전략은 유권자들이 상대방을 적으로 여기고 상대방의 승리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면서 “점잖은 보수주의자는 더러운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면서 “정치 혐오 혹은 정치 무관심은 보수주의 진영의 약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호로비츠의 선거 전략은 지난 총선의 실패로 인해 낙담해 있는 한국의 보수진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진영은 지난 선거만큼 좌파 승리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는지 여부를 떠나 정치 혐오나 무관심에 빠지고 말았다. 

자신들의 삶의 존재 양식, 한국의 경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존재에 대한 공포는 보수주의 운동의 가장 강력한 이슈다. 

지난 대선을 기억해 보자. 50대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후보에게 몰표를 선사했기 때문에 이긴 선거였다. 체제 붕괴 위기가 만들어낸 공포가 사소한 불만을 눌러 버린 것이다. 그리고 체제 붕괴의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은 보수진영이 다시 2002년 초심으로 돌아갈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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