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 세력 승리의 길
자유민주 세력 승리의 길
  •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
  • 승인 2016.05.2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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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보수우파의 위기 원인과 지향 가치

보수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고 무책임한 중도와 

포퓰리즘의 길을 걷는 것이 대한민국 위기의 원인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

지난 20대 4·13 총선 결과로 확인된 것은 새누리당이 보수 가치와 정당성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유민주 가치를 가진 국민들이 왜, 보수정당을 지지하기 위해 투표하러 가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과 의미를 가질 수 없었던 결과다.

▲ 고려대 정치외교학·MBC 방문진 이사·자유민주연구학회장 역임

물론 그렇게 된 것은 새누리당이 보수적 국민에게 투표장에 가야 할 의의를 부여하고 동원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보수의 위기와 보수정당의 위기는 명백히 다른 것이고, 새누리당의 실패로 보수우파가 위축되고 잘못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실패의 길이기도 하다. 

보수 정당에 대한 구애를 멈추라 

새누리당의 실패가 자유민주 세력의 실패로 가서는 안 된다. 보수 세력이 국가의 중심세력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는 스스로 세력을 형성하여 보수정당을 이끌어가야 했으나 새누리당을 바라보며 구애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보수 위기의 첫째 원인도 스스로 사회를 주도하기보다는 정부와 새누리당만을 바라보고 활동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보수는 자리(직책)를 내다보고 하는 보수 활동이지 않았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스스로의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가치와 자유민주 가치를 지향하는 일관된 활동이 아니라, 보수당과 정부의 자리와 감투를 목표로 하는 활동으로는 새누리당과 보수정부를 이끌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자리 보수’이고 ‘완장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자리와 감투를 향한 보수 활동으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애국적 보수세력이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 또 다른 원인은 좌파가 만든 ‘비난 프레임’에 타깃이 되지 않고자 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좌파로부터 공격받는 데 것에 대한 강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보수정당에서 활동하면서도 자신은 보수가 아니며, 중도적이며 심지어 진보적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우파가 너무 많다. 

문창극 총리 후보의 낙마와 이영조 교수의 공천권 박탈 등에서 보듯 진보좌파로부터 공격받는 보수는 보수정당과 정부로부터도 직책과 공천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좌파에게도 잘 보여야 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 

어느덧 보수의 생사여탈권은 진보가 쥐고 있는 현실이다. 진보좌파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한 갖가지 수단을 사용하며, 그중 하나가 진보인 척하며 사는 것이다. 그래야 이재오, 정두언, 유승민 처럼 단지 좌파와 연대하며 가깝다는 이유로 ‘개혁’이니 ‘혁신’이라고 평가받는 현실이다. 

보수는 진보 프레임을 벗어 던져야 한다 

보수적 자유민주 세력은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그럴 때 보수정당과 정부를 이끌 수 있다. 새누리당과 정부에 자신을 잘 보이려고 구애를 보내면서 보수 가치를 구현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보수가 국가를 중시할 때, 진보는 계급을 중시한다. 계급투쟁과 사회 갈등에 집착하고 확대하려는 좌파에 맞서기 위해 보수는 대한민국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에 대한 강한 정당성과 자신감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봉건체제를 타파하고 근대 문명사회를 지향하고, 자주독립은 물론이고 한반도 땅에 자유민주국가와 세계적 산업국가를 만들어온 거대한 역정과 위대한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대한민국 70년 역사를 성공한 역사로 보느냐, 실패한 역사로 보느냐 하는 역사관이 실제 모든 것을 규정짓는다. 1980년대 운동권 세력과 그 연장선에 있는 낡은 민주진보세력이 왜 그렇게까지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보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계급투쟁과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진보는 대한민국을 결코 성공한 역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성취를 부정하고 ‘헬 조선’을 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난은 쉽고,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는 진실이다. 건물을 짓기는 어려워도, 지어진 건물에 대해 비판하기는 쉽다. 그런데도 진보적 프레임에 갇혀 보수가 나서서 대한민국 비판에 동참하는 자기 모습을 되돌아봐야 한다. 스스로 만든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만들고 지킨 세력과 선배들에 대한 감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특히, 보수는 자유와 민주에 대한 착종된 인식을 극복해야 한다. 자유는 안보와 안정된 질서 위에서 확립되는 것이다. 안보와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곧 자유로운 체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며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세력이 자유세력이고, 경찰과 군이 자유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와 자유를 분리해서 인식하거나 상호 대립된 것이라는 좌파적 인식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안보와 질서를 중시하다보니 자유를 제약했다는 식의 착종된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보수는 일하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 

보수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지, 게으른 사람을 도와서는 안 된다. 복지는 일하는 사람을 돕고,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것이지, 일하는 사람이 모아놓은 돈을 빼앗아서 게으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정의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돈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며, 통합과 화합을 말하며 “함께 나눠쓰자”는 부정의한 세력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보수는 새벽부터 길에 나가 폐지를 줍고, 계단을 청소하는 힘든 노모(老母)의 복지를 생각해야지, 그런 노모에 의존하며 새벽까지 술 먹다 들어와 늦잠 자며 불평하는 아들에게 복지가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놀고먹는 자들에겐 가혹해야 하는 것이 보수의 가치여야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놀고먹자는 사람에게 뜯기는 것을 막는 것이야말로 사회도 발전시키고, 정의도 바로세우는 것이다. 

기업에게 세금을 더 거둬 분배하는 것이 서민에게 도움 되는지, 아니면 투자 확대와 기업 경쟁력 제고로 만드는 일자리 창출 결과가 더 서민에게 도움 되는 것인지에 대한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 

또한,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 확대와 실업자 지원 확대에서도 무엇이 더 사회 전체와 국민 전체에 긍정적 결과를 만들었는지는 입증시키고 실천해야 할 사안이지 ‘대기업 우선’과 ‘서민 우선’의 길이 따로 있지 않다. 항구를 만들고 도로를 확충하여 국민 비용과 시간 및 불편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더 서민 우선이란 것을 입증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수는 그 어떤 노동기득권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 모든 대가와 권위는 오직 그가 만들어낸 가치(성과) 만큼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번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 혹은 공공기관의 직원이 되었다고 해서 60세 정년까지 그 직책이 보장되는 것은 기회균등과 정의사회에 대한 정면 위반이다. 

누구나 일생 전체에서 능력에 따라 직업선택의 기회가 균등해야 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작할 때 메이저 리거가 되었다고 해서 그 후 30년 이상 계속 메이저 리거로 남는다면 A리그나 AA리그 등에 있는 사람은 꿈이 없는 사회다. 어느 누구도 마이너 리그에서 시작하거나 일하려고 하지 않는 사회로 굳어진다.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그 누구라도 정규직이 되고, 메이저리그로 갈 수 있게 노동 기득권을 타파하고, 노동 이동의 자유를 만드는 것이 바로 보수개혁이다. 

동일한 논리로, 보수는 경제성장에 몰두하다보니 한국 사회는 노동자 권익은 소홀히 했다는 식의 허구적 모순논리에 빠져서도 안 된다. 노동자의 이익과 권익은 성장의 결과이지 성장 없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전 세계 그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익이 보장받고, 노동자가 잘 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보수는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성장을 만드는 것이 곧 노동자를 위한 것임을 확인시켜야 한다. 1억 원의 가치를 만드는 것과 1억 원을 분배하는 것은 결코 동질적 가치가 아니다. 1억 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렵고 힘든 것이냐를 고려하며 정당한 평가를 해주는 것이야말로 보수가 해야 할 일이다. 

▲ 미래한국 고재영

보수는 민족해방의 과제를 안고 있다 

보수는 김정은이라는 반(反)민족적 문명파괴 세력과 싸우고 피를 흘려야 한다. 한반도에서 광복을 맞이한 우리 민족은 한반도 남쪽에서일 뿐이다. 한반도 북쪽에는 아직 자유도 없고, 독립도 없고, 해방도 없다. 2300만의 우리 민족을 파괴하고 자유와 민주를 유린하며 문명 파괴를 자행하고 있는 전체주의 세력과 싸우지 않는다면 그건 보수우파가 아니다. 

보수는 반공주의를 걸었던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공산정부를 붕괴시키는 데 자기 희생과 헌신을 다하겠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일본시대 군국주의와 싸우던 독립운동이 위대했다면, 대한민국 시대에 공산 전체주의와 싸우는 것은 훨씬 더 위대한 것이다. 자유와 인권을 사랑하는 전 세계인과 연대하며 반민족적 문명 파괴 체제를 만든 김정은 체제와 맞서 싸우는 것이 민주화 투쟁이고 자유화 투쟁이며, 민족해방 투쟁이다. 보수는 김정은 체제에 맞서 싸우는 민족주의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하고, 모든 희생을 감내하며 달성해야 할 과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을 지원하고, 대화하고, 협력하고, 공존하겠다는 반민족적 논리를 극복해야 한다. 한반도 남쪽에서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길을 열었고 성공 역사를 만들었다는 자긍심을 넘어, 연이어 한반도 북쪽에 똬리를 틀고 있는 반민족적 반민주적 세력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해방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민족해방 투쟁을 긴장 조성이라는 허구적 논리와 공격에 맞서 스스로 떳떳해야 한다. 

이 시대에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 그리고 인권과 번영이라는 가치를 북한의 우리 민족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만큼 고귀한 투쟁은 없다. 

보수는 자기 부정부터 멈춰야 한다 

보수를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은 자기 부정이다. 보수의 무력화란 새누리당과 정부가 스스로 정립하고 강화해야 할 보수이념의 폐기와 중도주의란 방향성 상실로부터 온 것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가치와 방향을 헤아리고 대변하기는커녕, 늘 스스로 보수의 길을 버리고 중도와 좌파 투항의 길로 가고 말았다. 

실제 중도(中道)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단지, 보수가치와 진보가치의 부재를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도 중도를 내걸면 비판을 덜 받을 것이고, 더 많은 지지표가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중도는 지향성이 아니라 입장 부재의 결과일 뿐임에도 무정형의 중도 집착에 빠지는 것은 스스로 갈 길을 잃었고, 갈 길을 모른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시비(是非)를 따져 올바른 길을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화장하고 치장하며 자기도 속이고, 국민도 속이는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문제이든, 광우병 사건이든, 효순-미선 사건이든, 세월호 사건이든, 한미 FTA 문제이든 보수가 사죄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모든 사건만 나면 보수정부는 사죄하고 중도 내지, 좌로 가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사회적 논란이 전개되면 보수를 포기하고 좌파의 방향으로 가는 것을 반복해왔다. 

사회적 논란이 진행되면 좌(左)클릭과 복지 포퓰리즘을 추종하며 좌파적 구체제에 편승하고 연명(延命)하는 길로 갔었다. 예를 들면 2009년 허구적 광우병 선동투쟁을 바로잡지 않고 무릎 끓었고, 무상급식이라는 복지 포퓰리즘과의 투쟁에서 건전한 시민 의식을 패배시킨 것도 보수정당이다. 

예를 들면, 2011년 무상급식이라는 포퓰리즘에 맞서 책임 있는 서울 시민은 행동에 나섰다. 휴일 지정도 안 되었고 선거 분위기도 없는 상황에서 ‘나쁜 투표’라는 진보의 공세를 뚫고 서울시민 25.7%인 216여만 명이 투표에 나섰다. 총선 득표보다 많았던 그런 216만 명을 믿어야 했지만, 오히려 싸우기도 전에 패배의 길로 몰아갔던 것은 보수정당이었다. 

보수 가치를 포기하고 중도로 간다는 것은 핵심 활동가가 되어야 할 10%를 무장 해제시키고, 그들이 지향하고 설득해야 할 가치와 과제를 잃어버리게 하는 짓이다. 함께 가야 할 방향과 세력을 만들지 않고, 정치참여 및 표현의사가 없는 20%와 나머지 진보좌파를 다수의 국민의사라고 간주하고 이에 맞추려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투항하고 미아(迷兒)가 되는 길이다. 

보수는 욕먹더라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갈 길을 제시하거나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수가 보수적이지는 않다는 궤변을 내세우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보수정당의 개혁의 상징이자, 최고위원이던 정두언은 “우리가 민주당과 뭐가 다른지 모르게 됐을 때 스윙보터들이 표를 주는 것”이라는 궤변이야말로 우리가 목도했던 현실이다. 

업적을 쌓고 지지 세력을 만드는 것은 분명 고달픈 행위다. 그러나 여론조사를 해서 그 중간에 서는 일은 매우 쉬운 행위다. 고달픈 개척의 길을 버리고 쉬운 길을 걷는 것은 자기기만이자, 자기 진지를 버리는 행위다.

보수가 문제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성공 국가를 만드는 어려운 길 대신 무책임한 중도와 포퓰리즘의 길을 걷는 데에 대한민국의 위기가 있다. 한국의 보수가 스스로 포퓰리스트가 되고, 모두가 진보 아류(亞流)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보수는 민중, 자주, 민주, 분배라는 민중주의와 부자-서민,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 사회라는 이분법을 중심으로 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학생운동권 좌파가 만든 구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세계적 역동체제를 만들어온 나라가 어느덧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진보가 ‘비판’이란 전가의 보도를 가졌다면 보수는 ‘책임(責任)’을 운명으로 해야 한다. 자기 길에 대한 정당성과 확신에 기반하며 성공 역사를 개척하는 것이 보수의 책임이다.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힘들게 일하는 국민들을 보살피고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광동 미래한국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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