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누굴 믿어야 하나?
국민들은 누굴 믿어야 하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6.06.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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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비즈] LG생활건강의 독극물 가습기 살균제 사건

LG생활건강이 출시했다가 판매 금지한 ‘119 가습기 살균제’에도 독성 물질인 염화벤잘코늄(BKC) 섞여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구한 변명만 늘어놓아

국민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는 정부의 규제 실패와 책임감 없는 기업들의 탐욕이 빚은 참사였다. 무엇보다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시 인체 유해 여부 실험에 대한 데이터가 없을 경우, 제품 승인 여부를 결정해서 KC인증마크를 부여한 부처가 당시 환경부가 아니라, 당시 지식경제부였다는 점은 정부의 규제 실패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는 옥시 같은 중소기업들의 경우, 살균제 제품을 가습기 세척용으로 승인받고도 마치 살균제를 가습기 물에 희석시켜 공기로 흡입해도 문제가 없다는 식의 광고를 한 점이었다. 이런 문제는 대개 해당 제품의 시장이 작을 경우, 선발 업체들 가운데 자본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저지르는 부도덕한 관행들에 해당한다. 

과거 골목에서 팔던 식품들에 불량식품이 많았던 이유도 시장이 작고, 공급자의 규모도 영세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가진 대기업의 경우, 리스크가 많은 분야에는 선도투자를 하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 시장에 대기업들이 뛰어들지 않았던 이유도 그렇게 설명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부보다 시장의 자기 공시기능이 더 믿을 만하며, 시장이 커질수록, 또 자본의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제품은 안전해진다는 시장원리를 믿는다. 

▲ LG생활건강이 제조 판매했던 가습기 살균제 광고

하지만 LG생활건강은 그런 믿음을 산산이 깨뜨렸다. 이 회사는 옥시처럼, 1990년대 후반 ‘119 가습기 세균 제거제’라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을 출시했다. 그리고 해당 제품의 생산을 2001년 중단했다. 회사 측 설명은 시장 진입 초기에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산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측이 이 문제를 해명하는 과정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LG생활건강은 자사(自社)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70년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럭키를 거쳐 1990년대에는 (주)LG화학이라는 브랜드로 국내 생활잡화시장에서 1등 브랜드를 구가했고, 2001년에는 (주)LG생활건강이라는 독립법인으로 변경됐다. 

‘119 가습기 세균 제거제’가 나올 때는 이미 LG생활건강은 비누와 세제 분야에서 대기업이자 선도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가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는 과정을 보면 ‘한탕주의’에 경도된 중소기업들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였다. 

LG생활건강, 독성 물질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 판매 

LG생활건강은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 판매하는 과정에서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 배려가 전혀 없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회사 관계자는 언론에 “해당 제품에는 최근 문제되는 성분(PHMG 등)이 포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단종됐던 것이 다행”(5월 10일 뉴시스)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소비자를 우롱하는 가증스러운 작태라는 것이 밝혀졌다. 

LG생활건강은 문제가 된 PHMG 성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 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는 염화벤잘코늄(BKC)이라는 물질을 사용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독성정보제공시스템에 의하면 염화벤잘코늄(BKC)은 중추 신경계 억제 증상을 유발시킬 수 있는 독성 물질인 것으로 보고된다.

이런 문제 때문에 LG생활건강보다 작은 기업들인 모나리자나 보령메디앙스 같은 기업들은 PHMG는 물론, LG생활건강이 사용한 BKC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물티슈 등을 만들었다. 

LG생활건강이 자신들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출시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만해도, 자사가 사용한 살균제 성분에 대한 발표에 함구했다는 점이고, 발표 역시 “PHMG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점이다. 

LG생활건강은 문제가 확대되자 해명자료를 통해 “1997년부터 2003년까지 판매했던 ‘119 가습기 세균 제거제’에 염화벤잘코늄(BKC) 0.045%, 라우릴아미노프로필글라이신-라우릴디에틸렌디아미노글라이신 혼합물(상품명 Tego51) 0.01%가 사용됐다”고 밝혔다.

BKC가 유해물질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미국 환경보호국(EPA)이 정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 한도인 0.085%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Tego51도 지극히 소량인 0.01%만 함유돼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LG생활건강의 ‘119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되기 전에 이미 BKC는 유해물질로 등록되어 있었고, LG 측은 이에 대해 인체 흡입시의 안전성을 실험으로 입증한 바도 없다. 그렇다면 사용 용법에 ‘흡입 안전성은 확인된 바 없으니 가습기를 세척하는 데만 사용하라’는 문구라도 적었어야 했다. 그런 점이 대기업과 한탕주의 중소기업이 다른 이유 아닐까. 

LG생활건강의 상술은 1등 브랜드를 추구한다는 대기업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소비자는 회사를 믿고 선택해서 1등을 만들어 줬던 것이지, 무책임해도 좋다는 뜻으로 선택해 준 것이 아니다. 

구구한 변명 

국내 해당 분야 1등인 대기업이 ‘묻지마’ 식의 중소기업과 같은 마케팅을 한다면 소비자는 누굴 믿어야 할까. 

적어도 소비자들은 LG생활건강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가졌기에 이 회사의 제품을 선택해 대기업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그렇다면 LG생활건강은 구구한 변명 이전에 먼저 오너와 임직원들이 소비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를 하는 것이 옳았다. 

LG생활건강은 “제품 출시 이후 지금까지 회사에 피해 사례가 접수된 바 없었다”며 “지난 2003년 해당 제품 판매를 중단한 후 상당 기간이 지났지만 관련 피해 사실이 확인될 경우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도대체 소비자에 대한 모독을 어디까지 하고 싶은 것일까. 

LG생활건강은 ‘소비자가 알아서 신고하라’는 태도가 아니라, 자사 비용으로 제품 판매 루트와 사용 소비자를 한 명이라도 파악해서 역학조사를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소비자를 병들게 하거나, 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신고하라”는 태도가 과연 대한민국 1등 브랜드의 대기업이 가져야 할 태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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