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들의 이유 있는 항변
2030 세대들의 이유 있는 항변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 승인 2016.06.21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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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본질

“오늘의 ‘헬조선’을 만들어낸 것은 서울메트로 등 공기업으로 대변되는 철밥통 기득권 86세대” 

지난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고장신고를 받고 출동해 선로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수리기사 김 모 씨(19)가 전동차에 치어 20여m를 끌려간 뒤 숨졌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초기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튿날 김 씨의 가방에서 나온 사발면과 숟가락 사진이 온라인과 SNS를 통해 퍼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김 씨가 생전에 받은 월급이 140만 원에 불과하며 스크린도어 수리는 비정규직이 담당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분노가 폭발했다. 

휴일이 끝난 뒤부터 김 씨 사망사고는 사회적 논란이 됐다. 언론에 이어 정치권이 나서자 뒤늦게 박원순 서울시장이 현장을 찾았다. 김 씨의 장례식이 끝난 지금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국민들과 언론들은 김 씨의 사망사고에 대처하는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의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자신의 측근들을 임원 자리에 ‘낙하산’ 임명한 박원순 시장, 퇴직 직원들의 ‘자리’를 보전해주려고 하청업체에 강요한 서울메트로 측의 행태는 특히 2030세대의 분노를 샀다. 

2030세대는 19살 나이의 김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전직 서울메트로 직원들만 ‘정규직’인 은성PSD의 희한한 고용 형태에도 의문을 가졌다. 이후 언론을 통해 서울메트로와 은성PSD 간의 계약서 내용이 드러나면서 ‘분노’가 폭발했다.

▲ 많은 청년 시민들이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 중에 숨진 김모 씨를 추모하고 있다. 그런데 청년들은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든 진정한 기득권은 서울메트로 등 공기업으로 대변되는 ‘철밥통’ 86세대인 것을 알고 있을까.

86세대들의 민낯 드러난 사고 

2030세대는 정규직 자리를 차지한 뒤 50대가 넘어서도 자신의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하며, 젊은 세대들에게는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만 강요하는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자를 지칭하는 용어)에 불만이 많다. 평균 근속연수 21년이 넘는 서울메트로는 이러한 ‘86세대’의 민낯이었다. 

2015년 12월 24일 감사원이 공개한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두 공기업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다. 공무원은 물론 공기업 직원들은 음주운전이 적발되면 강력한 징계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2011년 이후 서울메트로에서는 120명이 넘는 직원이 경찰에 음주운전 또는 음주사고로 적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징계를 받지 않았다. 

또 서울메트로가 외환위기, 경기침체, 구조조정 등을 이유로 2002년 희망퇴직을 한 직원들에게 지하철역 상가 40곳을 시세보다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임대료를 받고 내준 사실도 드러났다. 서울메트로의 비상임 임원을 공모할 때 법규를 무시하고 멋대로 자격 미달자를 서울시에 추천, 선임되도록 한 사실도 적발됐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지방 공기업은 행정자치부의 사전 허가 없이는 서울시로부터 자금을 빌릴 수 없고, 빌리더라도 기반시설에만 투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로부터 9000억 원이 넘는 돈을 빌려 부채를 갚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처럼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외주 업체에게 자기네 전직 직원의 ‘자리’를 강요하는 갑질까지 한 것이다. 

2030세대가 86세대를 보는 시선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지금의 ‘헬조선’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86세대들은 “절대 아니다”라고 부정하겠지만, 2030세대의 눈에는 이렇게 보인다. 

2030세대는 1920년대 출생한 사람들이 해방과 6·25 전쟁 당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켰고, 1930년대 출생한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을 산업화의 길로 이끌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출생자들 또한 1930년대 출생자들 아래에서 갖은 고생을 하고, 베트남 전쟁에 파병가고 중동 근로자로 진출하는 등의 노력을 한 것도 안다. 

그러나 1960년대 출생자들이 청소년기를 벗어난 뒤부터는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아졌는지를 안다. 이들이 전두환 정권의 졸업정원제와 사(私)교육 금지 덕분에 대학 입학도 크게 힘들지 않았고, 20대가 되어 대학을 다닐 때는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제는 잘 알려져 있다. 

전두환 정권 당시의 강압적 경제 정책과 달러, 유가, 국제금리의 ‘3저 현상’ 때문에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학교 추천서만 받으면 어디든지 취업했다는 사실도 잘 안다.

이렇게 취업한 86세대가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는 대리 또는 과장이라는 어중간한 지위 덕분에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하지 않았고, 이후 윗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덕에 초고속 승진과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평균 연봉 1억 원을 돌파한 첫 세대였다는 점도 안다. 

여기까지에 대해서는 2030세대도 “운 좋은 세대”라고 인정한다. 2030세대가 86세대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현재 젊은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발언 때문이다. 

86세대는 자신들이 30~40대였을 당시 선배인 산업화 세대를 향해 “꼰대들 썩어빠졌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는 악담을 퍼부으며, 그들의 등에 칼을 꽂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또 당시 기성세대였던 산업화 세대가 “지식도 중요하지만 경험 또한 중요하다”며 연륜을 강조하는 말도 새겨듣지 않았다. 86세대의 홍위병 같은 태도는 산업화 세대의 비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언론과의 인터뷰나 미디어에 나와 자랑하는 가운데서 드러난 것들이다. 

그런 86세대가 이제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인 기성세대가 됐음에도 여전히 ‘기득권 타도’와 ‘민주화’를 외치고, 2030세대에게는 “우리 때는 안 그랬어, 노~오~력을 하란 말이야!”라며 함부로 대한다. 물론 자신들이 차지한 정규직 자리와, 여기에 따라오는 혜택은 만 60세가 될 때까지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공공연히 밝힌다. 

2030세대의 암울한 현실, 참담한 미래 

2030세대는 고달프다. 요즘 대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도서관 자리부터 찾는다. 취업에 필요한 학점을 따고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기 위해 영어 자격시험은 물론 제2외국어, 인턴 경험, 공모전 입상, 자원봉사활동 등까지 다 해야 한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등록금도 큰 부담이다. 한국에서 대기업에 재직, 회사에서 자녀 등록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사람 수는 전체 급여생활자의 10%도 안 된다. 현재 국내 4년제 대학 등록금은 한 학기 평균 500만 원 내외. 

이런저런 과정을 겪고 졸업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 입사를 준비한다.  때문에 최근 대기업들의 평균 입사 경쟁률은 100 대 1, 공무원은 200 대 1, 공기업은 300 대 1이 넘을 때도 있다. 

20대가 중소기업에 가지 않으려는 이유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처우와 문화 때문이다. 

직원 수 100명 이하의 중소기업 대부분은 대졸 신입사원에게 연봉 2500만 원 미만을 준다. 월 수령액 200만 원 내외. 이 돈으로는 수도권에서 독립해 사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에 대학 학자금 융자도 갚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저축은 꿈도 못 꾼다. 

20대 남성은 군대 다녀오고, 휴학해서 해외 연수라도 한 번 다녀오면 28살 넘어서야 졸업한다. 부모와 함께 살고 집안 형편이 좋은 경우가 아니면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순간 저축도, 연애도, 결혼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 이런 현실 때문에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에 취직하지 못한 2030세대에게는 이 나라가 ‘헬조선’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스크린도어 사고로 숨진 김 씨는 대기업, 공무원, 공기업 또는 전문직을 얻지 못한 2030세대의 일반적인 모습에 가깝다. 86세대는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거론하며 “노력을 하라”고 윽박지르면서도, 자신이 쥐고 있는 자리는 놓치지 않으려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 2030세대가 뭘 어떻게 노력하라는 것일까. 

한국 경제의 잿빛 미래 

‘억대 연봉’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대기업 생산직이 되기 위해서는 86세대 노조원이나 회사 간부의 ‘빽’ 없이는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소문,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 가운데 일부는 ‘대를 잇는다’는 소문은 이미 언론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이런 86세대의 장벽을 과연 2030세대가 노력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 

정부와 금융계, 기업들은 내수경기 침체 때문에 몇 년 째 고민하고 있다. 정부가 각종 세제혜택을 주고, 집을 살 수 있도록 저리융자까지 해주지만 경기는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전체 인구의 25%가 넘는 2030세대가 저축하고 쓸 돈이 없는데 어떻게 내수 경기가 살아나겠는가.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 상황은 10년 전 일본에서 ‘단카이 세대’가 은퇴하기 직전과 비슷하다. 다만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전후세대와 함께 산업전사로 활동한 반면, 한국의 86세대는 산업전사를 ‘기득권 세력’이라고 비난하며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는 점이 큰 차이다. 

‘단카이 세대’가 집단 은퇴한 지 10년이 지난 뒤 일본에서는 신입사원을 구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10년 뒤 일본과는 달리 신입사원을 구하는 기업도,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도 별로 없을 가능성이 높다. 

산업전사 보다는 민주화 전사에 역점을 둔 86세대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내세워 ‘보편적 복지’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그 대상이 앞으로는 노년층을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즉 86세대는 자신들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정치인들을 내세워 국가전략과 정부 정책까지 휘두를 가능성이 높지만, 사회적 영향력을 쌓지 못한 2030세대는 중년이 되어서도 86세대를 부양하느라 ‘노예’처럼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의 관료사회, 재계, 정치권, 전문직, 언론, 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86세대다. 일부 깨어 있는 86세대는 “미래 세대에게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며 걱정하지만, 대다수 86세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 이런 현실이 계속된다면, 2030세대가 말하는 ‘헬조선’은 10년 뒤면 현실이 될 것이다. 

얼마 뒤 스크린도어 사고와 관련해 사과 기자회견을 가진 박원순 서울시장은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과 정치권은 여기에 덩달아 숟가락을 얹고 있다. 이 사고가 과연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문제가 본질일까. 

김 씨가 속한 은성PSD 직원 가운데 정규직은 대부분 서울메트로 은퇴자다. 즉 공기업 직원들이 은퇴한 뒤에도 자신의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정규직을 차지하고, 대신 김 씨와 같이 갓 고교를 졸업한 어린 친구들을 ‘비정규직’과 고된 노동으로 내몬 것이다. 

이번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서울메트로의 ‘철밥통’을 깨는 것이다. 

단지 공기업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더 적은 일을 하면서도 더 많은 혜택을 받는, 86세대의 ‘철밥통’을 깨는 것이야말로 제2의 스크린도어 사고를 막는 근본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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