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김성수 계파가 이승만을 끌어내렸다
안창호·김성수 계파가 이승만을 끌어내렸다
  • 정재욱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6.07.1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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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망명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  김인서 著, 이주영 엮음, 비봉출판사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 매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이승만 대통령 재임 막바지에 자행된 자유당 정부의 독재와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친일과 분단 책임이라는 사실관계가 잘못된 오명(汚名)까지 더해져 있다.

이러는 사이 대한민국을 건국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 6·25를 극복한 이승만 대통령의 공로는 까맣게 잊혀졌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이끌어낸 리더십도 무시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반(反) 이승만 여론이 최고조를 이어가던 1963년, 4·19혁명 3년 후에 출간된 <망명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은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최초의 시도였다. 이 책은 그때까지만 해도 이 대통령이 하와이에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망명한 전임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신원(伸寃) 요청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5·16으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부가 이승만·장면 정부를 싸잡아서 부패, 무능 정권으로 평가하면서 개혁 대상으로 삼았던 시기였다. 때문에 출간 자체에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던 이 책은 최근까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가 없어 이승만을 공부하는 학자들에게 ‘지적(知的) 갈증’을 자아냈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비봉출판사가 초판본을 구해 최근 재발행 했다. 

저자 김인서 목사는 1930년대 평양에서 기독교계 잡지 <신앙생활>을 내며 문서 전도(傳道)에 헌신한 기독교 문필가다. 저자는 “국민의 본분 외에는 이 박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집필 배경을 밝히고 있다. 

이 책에는 당시 장면 정부를 비롯한 정치권, 언론계 등에서 가한 이승만에 대한 공격의 치열함과 이에 대한 저자의 반론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당시 반(反)이승만 정서를 우남 이승만, 도산 안창호, 인촌 김성수 계열로 구성되는 독립운동 3대 주류의 계파적 갈등 양상의 하나로 분석한 내용이다. 이들과 동시대에 독립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른 저자의 경력은 이 책의 이런 분석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이승만 계열은 안창호 계열과는 1950년 이래, 김성수 계열과는 건국 이래 대립해 왔다. 안창호·김성수 세력이 세를 합쳐 대(對)이승만 강경 투쟁에 나섬으로써 결국 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안창호 계의 장준하가 <사상계>를 통해 이승만에 대해 “교활하기 비할 데 없는 희대의 협잡꾼, 노흉 이승만”라고 평하고, 김성수 계의 <동아일보>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씨’ ‘선생’ ‘전 대통령’ ‘박사’ 등의 명호조차 쓰지 않도록 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원흉(元兇)’이라는 단어도 안창호 계의 최희송 씨가 국회에서 “이승만은 민주 반역의 원흉이다”라고 한 발언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4·19 이후는 어떠했나. 이 책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적어도 이 박사를 타도한 4·19 후에는 인촌 계와 흥사단 계(안창호 계)가 단결해서 나라를 지켰어야 했다. 그런데 이 정권을 타도하자 인촌 계는 민정당으로, 흥사단계는 민주당으로 분열해 서로 맞서게 되니, 방공(防共) 질서는 무너지고 국가는 누란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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